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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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짧은 동거 (장모씨 이야기)

“그들은 원래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었어. 그걸 전 세계로 퍼뜨린 것은 탐욕의 함대, 노예선단이야. 낮선 도시에서 그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따뜻하고 어두운 곳으로 몰려드는 것뿐이야. 도시에서 그런 곳이 어디지? 사람 사는 데야, 어쩔 수 없는 거라구. 사람들은 어...

2007-06-04 장헌길
“그들은 원래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었어. 그걸 전 세계로 퍼뜨린 것은 탐욕의 함대, 노예선단이야. 낮선 도시에서 그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따뜻하고 어두운 곳으로 몰려드는 것뿐이야. 도시에서 그런 곳이 어디지? 사람 사는 데야, 어쩔 수 없는 거라구. 사람들은 어둠을 병적으로 무서워해서 집안 곳곳을 환하게 밝혀놓았지. 하지만 그럴수록 새로운 어둠! 형광등으로 인한 문명의 그림자가 생겨나. 바퀴벌레들이 그토록 저주받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이 두려워하는 어둠! 그것도 바로 침대 밑, 싱크대 뒤쪽, 가장 일상적인 어둠 속에 몰려 살기 때문이야. 전염병의 매개체? 흥, 인간은 온갖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채 지구 곳곳을 떼지어 몰려다니고 그로 인해 이미 수십 만 종의 생물이 멸종했어. 생명체의 다양성, 즉 유니버스(universe)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야 말로 가장 위험하고 불결하고 파괴적인 족속이야.” “플루토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를 보면, 트랜스젠더인 주인공이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런던으로 떠난 어머니를 찾아 고향을 떠난다. 그(또는 그녀는)는 자신의 어머니를 “유령숙녀(phantom lady)”라고 부르며 런던의 곳곳을 해매이다 “런던이라는 대도시가 그녀를 먹어버렸다.”라는 애잔한 대사를 내뱉는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문명의 집합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그날부터 자연과의 거친 투쟁을 통해 진화해온 인간은, 마치 자연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선언하듯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처럼, 결코 잠들지 않는 불야성의 도시들을 건설했다. “도시”는 인간의 욕망이 구체화되어 유령처럼 떠다니는 이질적인 공간으로서 많은 작가들의 예술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묘사되어왔다. 여기에 소개하는 “그와의 짧은 동거”에서도 작가가 “외로움”을 느끼고, “계절”을 느끼며, “군중속의 고독”에 괴로워하는 모든 원인은 모두 “도시”와 “문명”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하나의 자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의 말미에 자신을 “갯벌”에 비유하며 스스로를 “경계에 서있는 인간”으로 규정한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함”은 그를 괴롭히며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느끼는 치명적인 “외로움”은 점차 그를 좀먹는다. ‘방바닥에 치약이 밟혔다. 치약이... 오늘은 어째 도가 좀 지나친 날이다. 외로움의 정도가... 그렇게 쪼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덜컥 인정하고 말았다. 그와의 공존을... 외로움의 도가 지나친 날이었기 때문에.....’ ‘안 팔리는 만화가’가 직업인 주인공은 옥탑방에서 혼자 산다. 그를 좀먹는 것은 ‘외로움’이며, ‘경계의 언저리’에 있다는 존재적 불안이다. 주류 시스템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예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함이 그를 계속 불안으로 내몬다. 그리고 그의 눈에 자신처럼 ‘경계의 언저리’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 ‘바퀴벌레’가 들어온다. 인간이 갈라놓은 빛과 어둠의 경계(어두침침한 방의 어느 구석), 타인과 자신의 경계(벽과 벽사이의 틈새), 생활과 수납의 경계(거실과 주방, 방과 옷장사이),에서 살아가는 멀고 먼 아프리카에서 온 존재, 바로 ‘바퀴벌레’다. 외로움의 도가 지나친 어느 날, 그는 ‘그’와의 동거를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