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만화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던 한 만화가 지망생은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 “저는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 만화가 지망생은 1995년 성인 만화잡지 『미스터블루』 제1회 신인만화 공모에서 「곤충 채집가 K와 L」이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는다. 이후 이 작품은 『누들누드』라는 이름을 얻었고 한국 만화계는 ‘양영순’이라는 전무후무한 이종 만화가를 얻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되어 왔던 ‘성’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기발하고도 대담한 상상력으로 뒤집은 『누들누드』에 대한 독자들의 열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대한민국 남성들의 은밀한 상상을 노골적으로 다루면서 전혀 천박하지 않게 건강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누들누드』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또 다른 쾌감을 선사하였다.
이후로 『정크북』, 『싸이케치』, 『기동이』, 『쿵다리맨』 등과 같은 엽기발랄한 만화들을 선보이며 양영순표 상상력은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아색기가』는 그 어떤 금기에 얽매이지 않고 엽기적 상상력을 펼치다가 마지막에 뒤통수를 내려치는 통쾌한 반전으로 독자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스포츠신문을 통해 연재된 『아색기가』는 이후 4페이지 컬러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신문 만화의 주류가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천일야화』는 ‘섹스’와 ‘엽기’라는 코드로 작가 양영순을 가두어두려던 기존의 굴레를 가볍게 벗어던지며 그의 진면목이 스토리텔링에 있다는 것을 명실상부하게 드러냈다.
2000년부터 기획된 『천일야화』는 5년간의 준비기간을 걸쳐 파란닷컴에 선보이자마자 하루 방문객 30만 명이라는 폭발적인 반응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