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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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17) 또 하나의 기둥 스토리작가

근래에 만화가들의 스토리작가 의존도가 점점 커지면서, 원작자들도 자기들의 권익을 지켜 줄 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작품의 표지에는 원작자 이름을 명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음지에서 양지로 한 발짝 나오게 된 그들은 단체를 결성해 그 존재를 만화계 안팎으로 알리자고 작정한다...

2009-04-23 박기준

제7장 개화기 

(17) 또 하나의 기둥 스토리작가


한국 스토리 작가 협회 회의 사진
한국 스토리 작가 협회 회의 사진


근래에 만화가들의 스토리작가 의존도가 점점 커지면서, 원작자들도 자기들의 권익을 지켜 줄 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작품의 표지에는 원작자 이름을 명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음지에서 양지로 한 발짝 나오게 된 그들은 단체를 결성해 그 존재를 만화계 안팎으로 알리자고 작정한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6월 25일 50여명의 회원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스토리작가 협회가 출범식을 갖고 창립되었다. 이 날 총회에서 회장에 김민기 씨, 부회장에 조성황, 이종욱 씨, 상임이사에 유광남 씨 등이 선출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그 인원이 늘어 현재는 백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야설록, 임웅순 씨는 각각 3대와 5대 회장으로 추대되어서 제반 협회업무에 최선을 다했으며, 유광남 씨도 만화가 협회 이사 겸 스토리만화가 협회 임원으로 초기부터 현재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우리 이웃 일본의 스토리작가들의 실태를 살펴보자.
‘엄마의 바이올린’ ‘내일의 죠’ 등으로 우리 한국에까지 잘 알려져 있는 치바데츠야의 경우, 40여 년 동안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 온 원로만화가이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쓰는 스토리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자기 스타일로는 더 이상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자신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그는 결국 스토리작가를 기용하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나 새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데, 그 작품이 ‘내일의 죠’였다. 원작자 다카모리 아사오는 스포츠 기자 출신의 작가 지망자니까 전문가 중의 전문가로서 두 사람은 무리 없이 창작활동을 계속, 인기도 성공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캔디 캔디’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여류 작가 이가라시 유미코의 경우엔 심각하다.
그녀는 어느 날 만화스토리를 들고 찾아 온 한 여자의 원작을 잡지 연재물로 작품화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인기의 여파로 ‘캔디 캔디’는 애니메이션으로, 소설로도 제작이 되어 많은 부를 창출해냈다.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그런데 얼마 전 원작자가 이가라시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음이 알려졌고, 이가라시는 패소했다. 판결문은 그동안 많은 손해를 본 스토리작가에게 이가라시는 변상하도록 하라는 것으로, 그 때문에 이가라시의 재산 차압 등 심각한 사태가 전개되면서 이가라시의 집은 초상집처럼 변해 버렸다 한다. 일본 만화가협회의 이사이기도 한 이가라시는 국제만화 행사라면 꼭 자진하여 참가, 환한 웃음으로 그 분위기를 유도해 주곤 했었다.
그러던 이가라시가 국제만화 행사에 일체 참가하지도 않게 되고 두문불출 지내고 있다 한다. 우리 한국에서도 이 같은 일을 교훈으로 삼아서, 스토리작가와 만화가 양자간에 확실한 계약서를 주고받아 양자 모두 득이 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