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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드니 로디에의 <원자폭탄>: 죽은 자의 길 위의 트리니티

<지금, 만화> 14호 '지금만화 pick평' 에 실린 글입니다. <원자폭탄>/글 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그림 드니 로디에

2023-03-31 주다빈

초등학교 필독 도서에는 꼭 안네의 일기가 있었다. 필자는 학교에서 시키는 일에는 꽤 순종적인 학생이었기에 매번 책 읽기에 도전했지만, 누군가의 고통에 너무 취약한 성향 탓에 늘 완독에 실패했다. 책을 읽고 몇 시간은 그 감정에 매몰돼 있곤 했다. 그리고 20대가 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지만, 기록을 찾기 어려운 200여 명의 여성 군인들의 전쟁과 그 후의 삶을 담고 있다. 이때도 중반 정도까지 책을 읽은 후 포기해야만 했다. 느낀 점이라 하면 당연하지만, 전쟁은 약자에게 더 잔혹했고 차가웠고 모두가 승리에 집착해 광란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승자와 패자를 갈랐지만 결국 모두가 패자만 남겨져 있는 것이 전쟁이었다. 세계사의 굵직한 전쟁사 중, 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원자폭탄이 있다.


<그림1>〈원자폭탄〉 Ⓒ 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드니 로디에


원자폭탄은 제목대로 원자폭탄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2차 세계대전을 풀어나간다. 독일과 미국 그리고 일본, 세 개의 국가를 중심에 두고 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은 한국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감사하게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이 부분에 대해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일본에 식민지로서 착취당해왔고 제2차 세계대전에도 인적 · 물적 자원을 강제로 탈취당했다. 그리고 처절한 저항을 지속하는 와중 원폭 피해를 입은 일본의 패전 선언을 통해 끝내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일본을 원자폭탄에 피해를 본 아픈 역사를 가진 국가로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조선과 대한제국은 없다. 그러나 이야기 초입 난징대학살을 언급하고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선택한 비인도적 행위를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일본이 행한 문제를 덮으려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 등 식민 국가에 행했던 무자비한 일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전쟁과 원자폭탄으로 삶을 파괴 당한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따 라가 주시길.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인생은 ‘BD 사이의 C’ 탄생(Born)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을 인생이라 표현한 것인데 원자폭탄의 개발도 그러했다. 핵분열과 원자폭탄에 대한 이야기는 뉴욕 맨해튼의 커피숍에서 페르미와 실라르드의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라르드는 본인의 이론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고 페르미는 가능성은 인정했지만 수일 내에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실라르드는 핵분열을 통해 새로운 중성자를 발견했다. 학자로서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쁨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당시 히틀러와 나치는 세계에 대한 야욕을 펼치고 있었고 나치 내부적으로도 원자폭탄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각 국가가 원자폭탄을 소유하기 위해 보이는 수싸움과 전쟁에서 원자폭탄 사용을 막으려는 과학자들의 움직임 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갈하게 전개된다. 과학자들과 또 몇몇 군 수뇌부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라는 수레의 구름에 따라 현재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결말을 맞게 된다.


P.480의 글과 그림으로 담긴 6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정세는 특정한 규칙도 없이 요동쳤다. 작가는 후기에서 그러니까, 나는 산 앞에 선 느낌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수집해야 할 자료와 그것들을 배치하여 주요한 것을 취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를 솎아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원자폭탄이 가진 잔인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활용돼야 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필자는 작가가 그 일을 굉장히 잘 해결해냈다고 생각하게 됐다. ‘원자폭탄이란 제목이 전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다고 느꼈다. 2차 세계대전이 다뤄지는 만큼 원자폭탄에서 전쟁으로 주제의 무게추가 아주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중심을 잘 잡아, 끝내 원자폭탄에 대한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몇 번의 평론을 탈고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하나의 주제를 정해 서 그 주제를 위한 한 편의 글을 만들어내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으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픈 세계사를 건드리는 것은 더욱 부담이 큰일이다. 사실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확인해야 하고 개인의 판단이 어쩌면 모든 해석을 바꿔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2>〈원자폭탄〉 Ⓒ 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드니 로디에


이렇게 많은 정보를 하나의 책으로 묶어냈다면 지루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수 있다. 물론 원자폭탄이 담고 있는 정보는 오랜 시간 집중해 읽는 데에 쉬운 부류는 아니다. 실제로 책의 챕터 3까지 겨우 읽어냈더니 3시간이 흘러 있었고 더 이상 집중하 는 게 어려워 책 읽기를 미뤘다. 이는 3시간 동안 책에 굉장히 몰입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6년의 세월은 480페이지에 거칠지만, 매력적인 그림체로 조금은 길지만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을 해주는 글줄로 모두 담겼다.


리틀 보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의 위력은 당대인들의 마음에 어떠한 부채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레슬리 그로브 장군은 원자폭탄의 위험을 경고하는 실라르드와 적대하며 실험을 강행했는데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의 성공 후, ‘이제 우리는 모두 개자식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그 파괴력에 대해 모두 공포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리틀보이가 19458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명백하게 성공적임이란 상부 보고가 있었다. 누군가가 성공을 자축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해당 폭발로 만들어진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타는 몸을 바다로 내 던지고 있었다. 이 폭발은 단지 그 짧은 순간에서 끝나지 않았다. 당일 히로시마에서는 7만여 명이 핵폭발로 사망했다. 그리고 4개월 뒤, 히로시마에서 총 14만여 명이 사망했고 5년 뒤 그 수는 20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죽음으로써 끝난 이가 있는가 하면, 계속 현실의 지옥을 사는 이들도 있었다. 방사능에 피폭된 피해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출혈과 구토가 이어지고 머리털이 빠졌다. 이 들은 히바쿠샤(피폭자)’로 불리며 사회로부터 배척당했다.

<그림3>〈원자폭탄〉 Ⓒ 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드니 로디에


차르 봄바

현대에도 몇몇 나라는 자국이 보유한 무기로 무력을 과시하며 전쟁 발발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불안에 떨었지만, 이내 그런 일을 저지르기엔 각국이 잃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점을 떠올려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리고 몇 개월 전,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군사력 차이를 보이는 우크라이나의 전선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러시아는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여지를 두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었다. 세계는 러시아가 자국의 위기 상황에 따라 원자폭탄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 일명 차르 봄바는 히로시마 폭탄의 약 3,333배로 알려졌다. 만약 이 핵무기가 폭발한다면 원자폭탄에서 그려낸 것보다 더 잔인한 현실이 실현될 것이다. 물론 많은 전문가는 러시아가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핵폭탄 사용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려된 끝에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된 만큼, 러시아의 핵폭탄 사용도 가능성이 작을 뿐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안심할 수는 없다. 전염병과 전쟁,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경제 문제 등 세계가 빠른 시간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원자폭탄에서 그려낸 것처럼 한 번의 선택이 인류 전체가 끌어안아야 할 상처로 남지 않 길 원하며 글을 마친다.

<그림4>〈원자폭탄〉 Ⓒ 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드니 로디에

필진이미지

주다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