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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 페리의 〈침실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 법〉: 평생 쌓인 질문을 쓸어버리는 섹스 지침서

<지금, 만화> 16호 '지금만화 pick평' 에 실린 글입니다. <침실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 법>/글, 그림 플로 페리

2023-06-30 작은비버

평생 쌓인 질문을 쓸어버리는 섹스 지침서

플로 페리의 〈침실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 법〉


당신이 섹스로 고민을 한 적이 있다면, 가령 섹스 후의 기분 좋음을 무너뜨리고 덮어 버릴 정도로 불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속에 돌을 두고 가는 것 같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라면, 이 책을 머리맡에 한 권 두는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조금 직설적이다.

침실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제목부터, 표지도 마젠타 빛 안에 온갖 여자들이 편안한 자세로 속옷만 입고 웃고 있다. 내용까지 제목과 표지에 지지 않는다.

생식기와 친해지기, 처녀성, 오르가즘, 자위, 나체 사진을 보내는 방법, 원나잇하는 법 등등 사실 지하철에서는 읽지 못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당황스러움 가운데에 쪼그려 앉아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렸다.

 

생리와 섹스를 왜 해야 하는 건지 아시나요?

평균적인 한국의 여자 아이들처럼 나는 12년간 성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성교육은 쓰잘데기가 없었다. 자라며 서서히 생겨가는 질문들, 예를 들어 생리를 왜 하는지, 생리하면 왜 어떤 아이는 응급실에 갈 정도로 아프고, 어떤 아이는 덜 아픈 건지, 왜 아이들 마다 아픈 곳이 다른지. 생리가 내 몸에서 무슨 역할을 하기에 이걸 멈출 수는 없는 건지, 어느 집은 생리 축하 파티까지 한다는데, 학교에서 생리 이야기를 하면 왜 부끄러운 것이며 필수품인 생리대는 왜 책상 위에 두면 안 되는지. 자위는 무엇이고 포르노는 무엇이며 분명 부모님도 그걸(섹스라고 직접 말할 순 없었다.) 하셔서 내가 태어난 것이라는데 왜 모두 그걸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그러면 안 하면 될 텐데 언젠가 꼭 섹스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이 모든 질문에 답이 된 것이라고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정 형태를 갖춰, 적절하게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내 몸을, 생리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 추가로 낙태는 절대 안 된다는 것도.

성인이 되고 나서도 늘 질문만이 쌓였다. 여전히 섹스는 여자인 나에게 궁금하고 부끄러운 주제였다. 궁금증이 폭발해 성급히 해보고 나서도 의문은 해소되질 않았다. 오히려 더해졌을 뿐. 나는 섹스가 즐겁지 않았다.

오르가즘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하는데 만나기는 커녕 나에게 섹스는 상대를 위한 노동의 대가로 불안감을 얻는 역겨운 일일 뿐이었다. 생리에 대한 답은 소아청소년과에서 백신을 맞으며 얻어냈지만 섹스는 알 일이 없었다. 이 부끄러운 일은 병원에서도 물어볼 수 없었으니까.

이 책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질문의 답을 조금 당황스럽게, 하지만 속이 시원하 도록 알려준다.

▲<그림1>● 〈침실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 법〉 Ⓒ 플로 페리


섹스 커리큘럼

이 책의 저자 플로 페리는 즐거운 섹스를 위해 해야 할 것과 없애야 할 것들에 대해 직설적이지만 세세하고 친절하게 콕 짚어 설명해주고 있다.

제일 먼저 섹스를 위해서는 먼저 본인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부 터 거의 모든 여자가 힘들어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무리 주변에서 당신에게 본인의 몸을 받아들이세요, 당신은 그대로 아름다워요, 그리고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 다. 당신이 마르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마세요.” 같은 말을 쉼 없이 해주더라도 잘 와닿지 않으니까. 나부터가 그랬으니 잘 알고 있다.

왜 여자들은 자기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재단할까? 조사 결과 20대 섭식장애 환자의 성별 비율은 여자가 또래 남성보다 9배 높다고 한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사회는 여자들에게 헛되고 가혹한 기준을 세워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안 되는 것처럼 불안감을 깐 후 희망을 하나 비춰 놓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극도로 말라 생리가 오지 않을 정도의 몸을 아름답다며 동경하게 되었고, 비만은 당연하고 과체중인 정도의 사람을 희화화하며 심지어는 저체중에게 까지도 부위별로 재단하며 더 마를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점점 일명 자기관리라 부르는 끝없는 기준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 기준이 허무맹랑한 것을 알기조차 어렵다. 살아가는 동안 너무나 필요 한 것들까지도 이 기준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옷이 대표적인 예다. 성인 여자가 옷을 사 보니 반려동물에게 딱 맞았다는 이야기나, 아동복과 사이즈가 비슷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몸에 큰 차이가 없는 아주 어린 아이의 팬티조차 남성에 비해 천이 작다.

▲<그림2>● 〈침실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 법〉 Ⓒ 플로 페리


아무리 내 몸을 사랑하며 마이웨이로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옷 가게에 갈 때마다 맞는 옷이 없다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기준으로 인한 불안을 벗어나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방법을 4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1. 재단하는 자신을 용서한다. 2. 스스로에게 아름답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한다. 3. 자기 몸에 여전히 부정적이더라도 자책하지 않는다. 4.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팔로우한다. 또한 때에 따라 기준이 달랐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예 를 들어 나이지리아의 한 부족은 여자가 살집이 있을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해 살을 더 찌우려 한다거나, 중세 영국에서의 기준은 이마를 강조하기 위해 눈썹과 속눈썹을 모두 뽑았다는 것들. 이렇게 보면 참 웃기지 않은가? 우리에게 가해지는 기준 또한 누군가는 어이없어하고 웃을 일이라는 걸 생각해보자.

 

한국 여자도 섹스를 안전히 즐기고 싶다! 이 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섹스와 연애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들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나는 여기에 더해 한국의 여자가 섹스를 즐기기 위해서는 여자에게만 주어지는 리스크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섹스는 둘이 하는 것인데, 남성은 섹스의 횟수가 자랑거리이지만 여자는 수치스럽거나 더러운 일로 치부되는 일이 많다. 왜 그런 것일까?



▲<그림3>● 〈침실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 법〉 Ⓒ 플로 페리


여자와 남자가 섹스에 대한 교육을 다르게 받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겠고 또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섹스의 증거가 여자의 몸에서만 일어나며, 여자에게 만 십자가를 지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운 섹스 후에 남성은 성병이 생길지라도 본인이 입을 다물면 눈에 띄지 않는 것에 비해. 여자는 확률적으로 생리가 멎고, 배가 부풀어 오르는 임신을 하게 된다. 초반에는 모를지라도 점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이며 낙태가 허용되는 초기에 알거나, 후에 어렵사리 시도하더라도 사회가 죄책감을 안긴다.

리스크를 나누기 위해 남성에게 말을 할 경우에 상의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으나 내 애인지 어떻게 알아?”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맞다. 지금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임신 7 주차부터 검사를 할 수 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태아 상태의 친자 확인이 불법이다. 여자가 한 인간의 인생을 책임지는 리스크를 한평생 겪겠다고 다짐하고, 그러고도 10개월 후에야 태어난 아기로부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남성과 관계를 가졌을 때쯤에는 섹스 중 콘돔이 없다면 삽입은 물론이고 내 몸에 접촉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그만큼 불안했다. 심지어 나는 생리 불순이었기에 초기 확인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생리 주기가 일정한 친구들도 만만치 않게 불안해하며 약을 먹는 일도 많다. 이 불안감을 가지고서도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겠는가?

 

한국과 외국이라는 차이가 있고 당황스럽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 책이 아니었다면 처녀성이 얼마나 어이없는 말인지와 어째서 연애 초기에 그렇게나 불타오르는지, 크게 싸운 뒤에는 화해의 섹스를 하게 되는지는 평생 몰랐을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한다.




필진이미지

작은비버

만화가
〈빵요정 도감〉, 〈빵요정 동화책〉, 지역의 사생활99_광주광역시편 〈용도락/광주 식도락 투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