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영혼을 잠식하는 공포
김태영의 〈안개무덤〉
얼마 전,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제곡 ‘안개’가 많은 이의 마음을 적셨다. 극장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안개’를 듣는 동안 제목 그대로 안개처럼 스며드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가수 정훈희의 호소력 있고 우울한 목소리에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안개처럼 스며드는 작품이 또 있는데 바로 김태영의 〈안개무덤〉이다. 정훈희의 ‘안개’가 우울을 퍼트린다면 〈안개무덤〉은 공포를 퍼트린다. 〈안개무덤〉은 탄탄하게 잘 짜인 경찰 수사물 서사 안에 마치 안개의 수증기처럼 공포가 곳곳에 스며든 웹툰이다. 어두운 겨울 밤, 캄캄한 방안에 홀로 누워 창백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휴대전화로 이 웹툰을 읽고 있노라면 공포가 곧 영혼을 잠식한다.
▲<그림1>〈안개무덤〉 Ⓒ 김태영
스릴러와 오컬트 호러의 결합 〈안개무덤〉
〈안개무덤〉은 서두부터 바로 사건의 핵심으로 뛰어든다. 갑자기 트럭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벌레떼가 남자를 공격해 벌레로 뒤덮인 남자는 쓰러지고 트럭 운전수는 혼비백산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는 한 남자. 주인공 문대영 경감이다. 그가 한 여자아이의 스냅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제4문’이라는 붉은 글씨가 크게 쓰여진 창고 건물 앞에 서 있는 어린 여자아이. 갑자기 여자아이 위에 벌레가 한 마리 앉더니 곧 걷잡을 수 없이 벌레의 숫자가 늘어간다. 문 경감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굳어진다. 타이틀 〈안개무덤〉이 뜬다.
〈안개무덤〉은 네이버웹툰 지상최대공모전 1기 우수상 수상작이다. 2019년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해 올해 여름에 연재를 종료했다. 한국식 오컬트 호러에 스릴러를 결합한 장르 웹툰으로 독특한 색을 보여준다. 그동안 한국에 서 나온 오컬트 장르물로는 〈곡성〉, 〈사바하〉, 〈검은 사제들〉, 〈손: The Guest〉 등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가 있고 지난 16호에 소개한 〈미래의 골동품 가게〉 같은 웹툰도 있다. 그 중 〈안개무덤〉은 스릴러에 오컬트 호러를 결합시켰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보통 스릴러와 호러가 섞일 때는 스릴러 요소가 더 강하거나 호러 요소가 더 강한 식으로 이종 배합되는데 〈안개무덤〉의 경우는 경찰 스릴러와 오컬트 호러가 마치 만수산 칡넝쿨처럼 서로 단단히 얽혀 있어 어느 하나 우열을 논할 수가 없다. 경찰 스릴러 구조 위에 공포라는 수증기가 샅샅이 스며든 형국이다.
일반적으로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의 구조를 갖추려면 크게 세 가지의 형식이 필요하다. 수수께끼, 복선, 논리적 해결이다. 〈안개무덤〉은 주인공이 경찰이고 주요 줄거리가 경찰 수사팀이 미스터리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며 전체 서사가 수수께끼, 복선, 논리적 해결 이 세 가지 형식을 갖춘 만큼 언뜻 보면 잘 짜인 경찰 스릴러 같다. 하지만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웹툰의 모든 곳에 골고루 스며든 공포가 일반적인 스릴러와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호러 웹툰으로 단정하기에는 수사극의 모양새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외관은 스릴러이지만 맛은 호러인 웹툰이라고 해야 할까.
한 가족의 실종사건, 그리고 한 마을에 얽힌 미스터리
공식적인 줄거리는 이렇게 요약된다. ‘실종된 가족을 수사하려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초자연 현상에 시달린다. 사건 현장을 뒤덮는 벌레들. 그리고 부적. 이곳은 무덤이다.’
▲<그림2>〈안개무덤〉 Ⓒ 김태영
문대영 경감은 후배 최 형사, 강 형사와 함께 귀인장 모텔에서 일어난 자살사건을 수사하러 간다. 자살자의 신원은 윤몽주로 문 경감과 강 형사는 윤몽주가 아버지 윤동문과 머물던 집으로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의 이불에서 사람 모양의 기괴한 흔적을 발견한다. 여관방과 윤 부자의 집은 두 곳 모두 창문이 검게 칠해져 있고 바퀴벌레 같은 벌레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문 경감은 어두운 실내, 벌레 떼, 수증기 같은 이상한 안개,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적이 나온 여관방과 윤동문의 집이 일종의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인 윤동문은 치매 환자인데 종적을 알 길이 없고 종종 집에 출몰했다는 윤몽주의 형 윤철 또한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다.
윤동문의 집 건너편 건물에서 이상한 여자를 본 문 경감은 홀로 조사하러 간다. 여자는 문 경감에게 “문대영은 벌레가 살기 좋은 집”이라는 이상한 말을 남겨놓고 갑자기 안개처럼 자취를 감춰버린다. 쌀을 담아 놓은 신주단지와 신당처럼 깃발이 휘날리는 방에 홀로 남겨진 문 경감은 강 형사가 찾으러 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자살한 윤몽주의 시신을 부검하니 몸 안에서 사진이 나온다. 바로 첫 장면에서 문대영 경감이 들여다보던 여자아이의 스냅사진이다. 여자아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4문이라는 글씨가 씌여진 건물은 어디에 있는지 수수께끼투성이다. 문 경감은 이상한 여자와의 조우했던 후유증으로 알콜 중독 치료를 받으러 간다. 그곳에서 마주쳤던 술냄새 나는 여자가 수사팀에 동료로 합류한다. 바로 프로파일러 이청옥 경위로 민속학자인 남편이 활촌이란 마을을 다녀와서 정신병을 앓고 화재로 죽은 이후로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청옥 경위는 여관방과 윤동문의 집에서 나온 ‘사람 인’ 글자가 뒤집힌 부적을 ‘사토르 마방진’이라고 말한다. 사토르 마방진은 가로로 읽으나 세로로 읽으나 같은 구조인데 보통은 귀신을 쫓기 위한 부적이지만 이 부적은 귀신을 부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림3>〈안개무덤〉 Ⓒ 김태영
윤몽주의 형 윤철이 알고 보니 동생을 그렇게 죽게 만든 원흉이었다. 윤철은 귀인장 여관방의 여사장과 같은 사이비 종교를 믿는 광신도였다. 두 사람은 윤몽주에게 펼쳤던 주술의 흔적을 없애지만 윤철이 여사장을 비다라(복수인형)로 만들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면서 정체가 발각된다. 수사팀에 쫓기던 윤철은 문 경감의 아들을 납치하려다가 아내를 차로 치여 죽인다. 문대영 경감은 아내가 죽고 아들이 납치되어 수사선에서 제외되자 갑자기 사라지고, 남은 수사팀은 문 경감의 아들을 찾아 계속 수사를 한다. 산 밑에서 문 경감 아내의 차가 발견되지만 속임수였다. 윤철은 문 경감의 아들을 데리고 가까이에 숨어 있었다. 수사팀과 문 경감은 다시 만나고 드디어 아들을 찾아내지만 아들은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고 윤철은 달아난다.
수사팀은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인 활촌 마을로 찾아가는데…….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촌을 지배했던 신앙의 역사를 알게 되면 될수록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진다. 김이레 목사와 정내천에 얽힌 사연은 무엇인가. 문 경감과 이 경위를 위시한 수사팀은 과연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와 손맛 있는 그림체가 만나다
사이비 종교나 광신적인 종교 지도자를 다룬 장르물은 이미 많다. 〈안개무덤〉의 가장 큰 차별점은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를 창조해냈다는 데에 있다. 웹툰을 읽는 내내 작가가 한국 전통 무속 및 종교에 대해 충실히 자료조사를 했다는 걸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자료조사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실감한다. 1,000을 조사해도 실제로 작업 속에 보여주는 건 1이나 2 정도이다. 소설 속에 자료조사한 내용을 다 풀어버리면 오히려 서사가 늘어진다. 그렇다고 조사를 소홀히 하면 단단하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김태영 작가도 불과 1, 2를 보여주기 위해 1,000이나 10,000을 조사 하고 공부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림4>〈안개무덤〉 Ⓒ 김태영
〈안개무덤〉이 한국형 장르물이 쉽사리 빠져드는 신파에 매몰되지 않은 것도 칭찬할 점이다. 주인공 문대영 경감은 딸, 아내 마지막으로 아들까지 일가족이 죽는 비극을 겪지만 수사에 담담하게 임한다. 자신의 감정을 꾹꾹 억누르고 오로지 진실을 향하는 그 집념이 〈안개무덤〉의 서사를 거침없이 나아가게 한다. 한국형 장르물들이 남발하는 로맨스 요소를 빼 버려 군더더기 없는 서사를 자랑한다. 문 경감과 이 경위, 강 형사 와 최 형사 모두 남녀 파트너들이지만 연애 모드는 전혀 없다. 오직 사건을 함께 파헤치는 경찰 동료들일 뿐이다. 여형사들이 나약하거나 수동적인 캐릭터가 아닌 점도 보기 좋았다.
그림체 역시 〈안개무덤〉의 매력을 견인한다. 등장인물 및 배경은 대개 무채색이다. 눈동자 색을 때때로 붉은색으로 채색해 인물의 광기와 공포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전체적으로 색을 극도로 절제한 가운데 붉은색만 강조하여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연출한다. 거기에 손맛이 살아 있는 선이 압권이다. 웹툰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선으로 그리는 게 보통인데 김태영 작가는 거칠고 투박한 선을 애용한다. 덕분에 〈안개무덤〉은 웹툰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깊이감과 질감이 우러나오는 그림체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종이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손맛 있는 그림을 고수한 게 아닐까.
완급조절과 단순한 캐릭터가 아쉬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안개무덤〉의 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라 완급조절이 부족하다. 독자에게 전력 질주는 다소 부담스럽다. 직진, 강직, 근엄한 서사라 로맨스 코드를 굳이 넣지 않더라도 쉬어가는 에피소드 한두 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때로는 강함 옆에 부드러움이 있어야 그 강함이 더 돋보이는 법이니까 말이다. 문대영 경감이 마치 이순신 장군처럼 정의롭고 치열한 인물로만 그려진 부분 역시 아쉽다. 문 경감에게 안티히어로처럼 단점과 약점을 부과해줬다면 캐릭터에 인간적인 매력이 더해졌을 것이다. 김이레, 정내천, 이청옥에게도 서브 서사가 더 붙었다면 내용이 더 풍요로워졌을 듯싶다. 정내천의 정체에 대한 설명도 조금 부족하다.
〈안개무덤〉은 곧 영화화될 예정이다. 임필성 감독이 연출하고 신하균 배우가 주인공 문대성 경감을 맡는다. 극장에서 만나는 〈안개무덤〉은 과연 어떤 모 습일지 자못 기대된다. 휴대전화의 작은 화면에서 느꼈던 〈안개무덤〉의 공포가 큰 화면으로 확장되는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