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推理小說)은 탐정소설(detective story), 범죄소설(crime novel), 경찰소설(Roman Policier), 미스터리(mystery novel)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각각의 명칭에 따라 시조로 삼는 작품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저 우울한 천재인 에드거 앨런 포가 단 세 작품으로 장르의 기초를 다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에드거 앨런 포와 코난 도일, 그리고 서구 미스터리 장르 문학의 시작
포가 1841년에 발표한 최초의 추리소설인 《모르그 가의 살인》은 범죄가 불가능한 밀폐 된듯한 공간에서 벌어진 라스파네 모녀 살인사건을 뒤팽이 천재적인 추리력으로 해결하는 작품인데, 후대의 ‘밀실 미스터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림1>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는 미궁에 빠진 마리 로제 살인사건 조사를 의뢰받은 뒤팽이 신문에 실린 기사와 증인들의 증언 내용만 가지고 사건을 추리한다. 수많은 명탐정의 계보가 줄을 잇는 ‘안락의자 추리(armchair detectives)’에 원형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1844년에 발표된 《도둑맞은 편지》는 D 장관이 훔친 왕족의 편지가 있는 곳을 뒤팽이 간단한 추론으로 찾아내는 이야기인데,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답이 사실은 옳은 답’이라는 발상으로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차용하고 있는 기법을 쓴다. 이를 “불가능한 걸 모두 제거하고 나면, 남은 것들은 아무리 불가능해 보인다 해도 진실임에 틀림없다.”는 명제로 표현한 인물이 추리 장르 역사 상 가장 위대한 탐정인 셜록 홈즈다.
코난 도일은 1887년에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색 연구’를 《비튼의 크리스마스 연감》에, 1890년에 두 번째 작품인 ‘네 사람의 서명’을 《리핀코트 매거진》에 실었지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891년부터 《스트랜드 매거진》에 홈즈가 활약하는 단편들을 싣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작가의 의도 와는 다르게 셜록 홈즈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고, 싫증을 느낀 작가가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떨어뜨려 죽여도 악착같이 살아 돌아왔다. 2008년 영국의 한 TV 방송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홈즈를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윈스턴 처칠이 허구의 인물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25%나 되었다고 한다.
▲<그림2>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
지금도 베이커 스트리트 221B 로 사건 의뢰가 세계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으며, ‘셜록키언’, ‘홈지언’이라 불리는 마니아들이 홈즈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셜록 홈즈의 대성공은 많은 작가에게 영감과 도전 의식을 부추겼고, 제 1,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서 고전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명탐정들이 등장했고 온갖 구조와 트릭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와 캐릭터를 간단히 살펴보면, 잭 푸트렐의 ‘사고 기계’ 오거스터스 S. F. X. 반 두젠 교수, G. K.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이름도 없이 별명으로만 알려진 에마 오르치 남작부인의 ‘구석의 노인’, 어니스트 브래머의 ‘맹인 탐정’ 맥스 캐러도스, 최초의 ‘법의학자 탐정’인 오스틴 프리먼의 손다이크 박사,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아르센 뤼팽, 도로시 세이어즈의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 S. S. 밴 다인의 ‘예술애호가’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이 집필한 소설의 작가이자 주인 공인 엘러리 퀸, 밀실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킨 존 딕슨 카와 캐릭터인 기디언 펠 박사 등 지금도 사랑받는 고전 미스터리의 걸작과 명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황금기를 이끈 작가 중 한 명을 꼽으라면,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를 빼놓을 수 없다. 1920년에 발표한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시작으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ABC 살인 사건》, 《나일강의 죽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80여 권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했으며, 그녀가 창조한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 제인 마플은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 새로운 독자와 만나고 있다.
하지만 고전 미스터리의 지나친 전형성과 비현실적인 탐정 캐릭터에 염증을 느낀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들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머리만 굴리는 탐정이 아니라, 실제 범죄와 부딪히며 폭력에 노출되고 때론 실수를 범하기도 하는 살아있는 인물을 원했고, 미국의 싸구려 펄프 잡지를 중심으로 ‘하드보일드’라는 새로운 서브 장르가 탄생했다. 특히 하드보일드는 감정을 배제한 간결한 문체를 활용해 단순한 오락거리 취급을 받던 추리 소설을 문학적 위치로 끌어올렸다.
하드보일드의 계보를 이야기할 때 흔히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를 적자(嫡子)로 보기는 하지만, 다른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미키 스필레인은 복수를 위해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때로는 무고한 사람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냉혈한 마이크 해머를 내세워 당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전 추리소설과 하드보일드 이후 추리 장르는 다양한 하위 장르로 분화되었다. 에릭 앰블러와 존 르 카레로 대변되는 스파이 소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分署) 시리즈’와 같은 경찰 소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로 대표되는 스릴러 등이 등장했고, 그 가운데서도 메디컬 스릴러, 테크노 스릴러, 사이코 스릴러처럼 세계적인 흥행을 이끈 대표작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카테고리로 나뉘었다. 현재는 다양한 하위 장르가 서로 혼합하고 재분화하면서 선뜻 하나의 장르로 분류하기 어려운 하이브리드 장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일본 미스터리 장르 문학의 계보
동양에서 추리 장르가 가장 꽃피운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900년대 초부터 서양의 고전 추리소설을 번역・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작하는 일에 열심을 보였다. 고가 사부로, 미즈타니 준, 야마시타 리사부로 등의 작가가 활약하는 가운데 두 명의 걸출한 작가가 탄생한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와 국민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창조한 요코미조 세이시다. 본명이 히라이 타로(平井太郎)인 에도가와 란포는 에드거 앨런 포를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 것인데 《음울한 짐승》, 《인간 의자》와 같은 작품을 읽어보면 포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 수 있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의 전설이나 설화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는데, 제1회 탐정 작가 클럽상 수상작인 《혼진 살인 사건》를 비롯해서 《옥문도》, 《팔묘촌》, 《악마의 공놀이 노래》 등의 걸출한 작품을 남겼다.
▲<그림3>에도가와 란포의 《인간의자》
▲<그림4>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
영미권에서 고전 추리소설에 대한 반발이 하드보일드 장르를 탄생시킨 것 처럼, 트릭만을 중시하고 범죄의 사회성이나 의미에 대해 소홀한 것에 대한 반 발로 탄생한 것이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가난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40세가 넘어서 작가로 데뷔한 마쓰모토 세이초는 1958년 《점과 선》을 발표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미즈카 미츠토무 등이 트릭보다는 범죄를 둘러싼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인 모순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사회파’라는 독특한 계보가 일본 추리 장르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한동안 대세를 이루던 사회파 미스터리는 1980년대가 되면서 역풍을 맞게 되는데, 범죄를 다룬다는 목적 아래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액션에 치중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존 딕슨 카나 엘러리 퀸의 작품을 즐겨 읽던 대학의 추리소설연구회를 중심으로 고전 추리소설을 재해석한 ‘신본격’이 태동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으로, 이후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의 노리즈키 린타로, 《인형은 잠들지 않아》의 아비코 다케마루, 《점성술 살인사건》의 시마다 소지 등이 신본격의 기치를 높였다.
현재 일본의 추리소설은 사회파, 신본격 작품들이 여전한 가운데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니시오 이신은 라이트 노벨에서 활용하는 마법과 같은 요소를 추리 소설에 끌어들이고 있고, 교코쿠 나쓰히코는 괴담을 주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란 분류 아래 SF나 호 러, 판타지적인 설정을 활용해서 유령이나 영매, 천사, 좀비와 같은 소재까지도 적극적으로 용인하는 추세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시라이 도모유키의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아쓰카와 다쓰미의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의 추리 미스터리 장르
그렇다면 한국의 추리 장르는 어떤 계보로 발전해 왔는가? 아쉬운 점은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추리 장르를 수용했던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은 추리소설을 번안하거나 창작하는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추리소설이 처음 유입되었던 1920년대, 일본에 번역 소개된 작품을 번안해서 발표하던 작가들로 양주동, 이하윤, 김환태, 김광섭, 이헌구, 김유정, 이석훈, 안회남, 방인근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추리소설을 값싼 오락물로 취급하던 세간의 인식 때문에 본명이 아니라 해몽생(海夢生), 피피생, 봄바람, 북극성(北極星), 붉은빛, 하인리(河仁里) 등 정체불명의 가명을 사용했다. 심지어 서동산이란 필명으로 〈조선일보〉에 《염마》를 발표한 채만식은 작중인물의 입을 빌려 추리소설을 “날탕패나 문단에서 낙오된 찌스레기들이 할 수 없으니까” 쓰는 것으로 폄훼한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 한국 최초의 추리작가가 등장한 것은 1935년 일본의 탐정소설 전문지인 《프로필》에 〈타원형의 거울〉과 〈탐정소설가의 살인〉을 싣고 국 내로 돌아온 김내성이 시초였다. 김내성은 이후 《마인》, 《가상범인》, 《백가면》등 의 작품을 발표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청춘극장(靑春劇場)》과 같은 대중소설로 방향을 바꾼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겪으면서 한국의 추리 장르는 딱지본의 재출간 등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다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김성종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출현과 함께 황금기를 맞는다. 김성종은 《제5열》, 《제5의 사나이》, 《피아노 살인》, 《국제열차 살인사건》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한국 추리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고,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현재훈, 이상우, 노원, 정건섭, 이수광의 작품은 대개 십만 부 이상의 판매 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작품성을 갖추지 못한 선정적인 태작이 쏟아지면서 많은 독자가 등을 돌리게 된다. 이후 백휴, 김차애, 서미애, 황세연, 정석화, 최혁곤 등이 등장해서 본격 미스터리, 스릴러, 사이코 스릴러, 유머 미스터리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내놓았으나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은 없었다. 현재 한국의 추리 장르는 영상화와 OTT에 힘입어 다시 한번 상승하고 있다.
▲<그림5>김성종의 《제5열》
2000년대 중반부터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연속 히트를 기록했고, ‘팩션(faction)’ 붐을 일으켰다. 추리 기법의 다양한 변용은 텔레비전에 갇혀있던 드라마가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급증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어둠의 경로’를 통해 추리 장르의 미드와 일드를 즐겼던 젊은 영상 세대는, 가족끼리 지지고 볶는 김수현 식의 드라마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추리 기법이 활용된 〈히트〉, 〈시그널〉, 〈마왕〉, 〈싸인〉, 〈추적자〉, 〈투윅스〉 등의 드라마에 열광했고, 케이블 방송국들도 앞다투어 추리 드라마를 제작 방영하고 있다. JTBC와 OCN에서 각각 방영한 박하익 원작의 〈선암여고 탐정단〉, 송시우의 〈달리는 조사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실 추리 장르야말로 드라마, 영화, 만화, 웹툰 등 다양한 장르로 변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다. 셜록 홈즈 캐릭터로 만든 영화와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이 하드보일드 역시 일찍이 할리우드가 사랑한 장르다.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말타의 매〉, 로버트 미첨이 필립 말로우 역을 한 〈잘 가요 내 사랑〉, 로만 폴란스키 감독을 맡고 잭 니콜슨이 주연을 한 〈차이나타운〉 등 몇몇 작품만 떠올려 보아도 알 수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추리 장르에 빚진 바가 크다.
〈형사 콜롬보〉, 〈제시카의 추리극장〉, 〈명탐정 몽크〉, 〈CSI〉와 같은 영미권의 작품들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매 분기 제작되는 추리 드라마의 가짓수가 엄청나다. 그중에는 프리 시즌까지 22년 동안 방영되고 있는 〈파트너(相捧)〉, 1999년부터 방영되고 있는 〈과수연의 여자〉 등의 최장수 작품이 포함된다.
만화 혹은 그래픽노블 장르도 마찬가지다. 1937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DC의 원래 뜻이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로도 제작된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노블 〈씬 시티〉는 추리 장르의 미덕을 고스란히 살린 작품으로 손꼽힌다. 일본의 경우에는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 의 명예를 걸고 추리하는 긴다이치 하지메(金田一)가 등장하는 〈소년탐정 김전 일〉 외에도 〈명탐정 코난〉, 〈Q. E. D. : 증명종료〉,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절대미각 식탐정〉, 〈민속탐정 야쿠모〉 등 일일이 손에 꼽기에도 숨이 찬 긴 리스트가 존재한다.
분명히 추리 장르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 문화이며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웹툰 심지어 방 탈출 게임과 같은 온갖 곳에 스며들어 있다. 추리 장르를 어떻게 혼합하고 변용하여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에 먹힐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가 창작자로서 당면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