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범죄 사건의 취재와 인터뷰 A to Z 이종범 만화가가 묻고 권일용 전 프로파일러가 대답하다
좋은 만화와 웹툰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료 조사를 피할 수 없다. 책과 신문기사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전문가와의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특히 실제 범죄를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한다면 다방면의 조사가 필수적이다. 심리학의 전문성과 독자들을 사로잡는 재미를 모두 갖춘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만화가가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학교 교수를 만나서 파트너와의 협업으로 이어지는 전문가의 인터뷰와 취재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 권일용, 이종범 만화가(좌로부터)
이종범 만화가(이종범): 먼저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닥터 프로스트〉를 그린 만화가 이종범입니다. 권일용 교수님과 함께 ‘실제 범죄와 수사 소재 스토리를 위한 취재와 인터뷰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전 심리학을 전공했고 또 심리학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려고 정신과 전문의와 프로파일러 분들을 따로 취재해서 작업한 덕분에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료작가들이나 후배들이 “전문가를 만나고 싶어도 어떻게 취재를 해야될지 모르겠다.” 혹은 “내가 너무 대충 준비해 가서 폐 끼칠까봐 무섭다”고 하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하 악의 마음) 드라마 소식을 듣게 되면서 교수님께 여쭙고 싶은 질문이 많았습니다. 먼저 〈악의 마음〉처럼 콘텐츠 개발 관련으로 작업하신 건 처음이셨나요?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이하 권일용): 네, 〈악의 마음〉이 처음이었습니다.
▲권일용 교수, 이종범 만화가(좌로부터)
이종범: 그럼 그전에는 주로 감상자로서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셨던 경험들밖에 없으셨나요?
권일용: 네. 왜냐하면 현장에서 수사하는 사람들은 사건 수사에 에너지를 써야지 그 외에 방법으로 사회에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종범: 만화가들도 만화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 힘들어하는데요 교수님은 현직에 계셨을 때 범죄 스릴러 작품이나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 드라마를 보셨을 때 전반적으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권일용: 정말 냉정하게 말하는데 안 봤어요.
이종범: 아예 안 보셨군요.
권일용: 거의 완벽하게 안 보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을 볼 만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왜냐면 그런 작품들은 예술의 영역이고, 창작의 영역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본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는 건 잠시 다른 일을 하는 거라고 여깁니다. 95% 이상의 내 모든 에너지는 현장에 쏟아야 했기 때문에 굳이 범죄 영화를 찾아보고서는 맞고 틀리고를 분석할 여유는 없었죠.
이종범: 그럼 이제 현직에서 은퇴하셨고 〈악의 마음〉도 드라마화가 되면서 예전보다는 여러 가지 작품들을 보실 수 있는 여건이 되셨을 듯합니다. 그 이후에 보셨던 작품 중에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권일용: 다양해요. 전 영화도 어떤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다양하게 보는 편이에요. 이종범: 범죄 스릴러나 아니면 〈악의 마음〉처럼 프로파일러나 경찰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작품 중에 기억나는 건 무엇인가요?
권일용: 당연히 〈악의 마음〉이지요.(웃음)
이종범: 〈악의 마음〉을 고나무 대표와 함께 쓰셨던 때에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권일용: 사실 저는 그 책을 안 쓰려고 했어요. 그 전부터 그런 종류의 책을 쓰자는 제의도 많았고 경찰청에 찾아오는 분들도 많았지만 거절을 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보통 한 경찰서에서 30년 동안 근무했을 때 살인사건을 10건 정도 하면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종범: 생각보다 적네요.
권일용: 우리나라에서 1년에 살인사건이 몇 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이종범: 얼마나 일어납니까?
권일용: 1년에 평균 1천 건이 일어납니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 2~3년 전부터 8백~9백 건 수준이지만, 평균 1천 건입니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16개의 지방경찰청과 그 산하 경찰서는 수백 개가 있습니다. 그중 한 경찰서에서 평균적으로 10건을 수사하고 지방에서 일어나지만 수사를 할 필요가 없는, 예를 들어 술 마시고 동네 사람들이 싸우다가 생기는 폭행 치사, 상해 치사 같은 사건들까지 포함하면 많다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런데 서울의 31개 경찰서에 일어난 사건에는 서울 경찰청에 있는 CSI(과학수사대) 요원이나 프로파일러들이 모두 투입됩니다. 그리고 경찰청에 근무하게 되면 전국에 일어난 사건 중에 수사가 진행되지 않거나 해결되지 않는 사건에 다 투입되고요. 그러면 사건이 많을 때는 20~30건이 됩니다. 그런데 수사라는 게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6개월도 갈 수도 있고, 1년도 갈 수도 있고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수많은 사건들에 투입해서 일하다 보니 굳이 내가 현장에서의 경험을 소위 무용담처럼 쓰기 싫었습니다.
이종범: 직업적 피로도도 있고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셨나요?
권일용: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범죄 현장에서 경험한 피해자의 고통과 유가족의 슬픔들을 마치 내가 어떤 역할을 잘 수행하고 범인이 잘 잡힌 것처럼 만들어서 사회에 내놓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안 쓰려고 했는데 고나무 대표가 찾아와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범죄는 시대별로 특별한 계기로 인해서 변해가고 있는데 그 변해가는 시점의 범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왜 이런 것을 준비했는지를 기록하는 글을 쓰자고요. 그러니까 이 책의 목표는 사건 해결을 내세우는 무용담이 아니었어요.
1980~90년대 초 한국 사회 범죄의 동기는 뚜렷했어요. 그야말로 ‘수사반장’만 있으면 됐지요. 그런데 1990년대 초반을 넘어가면서 지존파, 막가파 같은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범죄로 변화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때 누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수사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조직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가를 기록해 놓는다면 나중에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올 범죄가 생겼을 때, 그 당시에 일어났던 범죄와 사건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가 이 책의 목표였어요. 그래서 시작을 한 겁니다. 그렇게 〈악의 마음〉을 쓸 때 계속 서로의 글을 주고받으면서 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드라마화 된다고 했을 때 일언지하에 반대했었습니다. 고나무 대표한테 “난 반대한다. 내가 현장에서 직접 보아왔던 범인들이 유명한 배우들의 얼굴로 다시 그 자리에 앉아서 그럴듯한 서사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원치 않는다.”라고 했어요. 그건 이 책의 목표가 아니었고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반대를 했는데 그 드라마의 작가와 PD가 고나무 대표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당시 고군분투했던 사람들과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은 드라마라고요. 그러면 현장에 있었던 저로서는 취지가 딱 맞아요. 그런데 무작정 프로파일러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명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걸 왜 내가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현장의 수사본부에서 수없이 밤을 새웠던 이야기를 그 사람들에게 해줄 명분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이종범: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는 무용담을 원했지만, 사건 관련 당사자들은 기록물을 원했던 거군요.
권일용: 사실은 그런 건데 고나무 대표가 말을 바꿔서 한 거죠.(웃음)
이종범: 〈악의 마음〉의 독자와 시청자로서는 그 뜻이 잘 전달됐었습니다.
권일용: 그렇다면 나로서는 목표를 달성한 인터뷰이자 작품인거죠. 그런데 유명한 배우가 유영철이나 강호순 역할을 하면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현장의 고통을 그대로 전해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즐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인을 잡기 위해서 현장의 모든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봐야하는 사명감 때문에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견디는 것이니까요.
작가와 전문가의 공동 목표를 세워 취재 대상에서 협업 관계로 발전시켜라!
이종범: 제가 그린 〈닥터 프로스트〉 시즌 3는 폐쇄병동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자문을 얻기 위해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과 심리상담센터 소장님께 인터뷰를 많이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 이유가 말씀하신 것과 똑같았습니다. 전국에 심각한 정신 질환 증세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닥터 프로스트〉가 흥미 위주의 웹툰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저에게 무척 큰 힘이 됐습니다. 또 독자 댓글 중에서 “나도 그런 증세를 앓고 있는데 〈닥터 프로스트〉를 보면서 힘이 됐다.”는 내용을 보면 저도 힘이 나더라구요.
권일용: 전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떤 전문 분야를 다룰 때 그 전문가가 추구한 것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취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와 함께 수많은 다른 이야기가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이 범죄자는 이렇게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이런 놈이야.”라는 식으로 사실관계만 기록하기 위한 기자의 질문이라면 저도 짧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작가가 질문하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입을 다물게 됩니다.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종범 만화가, 고나무 대표, 권일용 교수(좌로부터)
이종범: 취재할 때 전 웹툰을 그리면서 10년 동안 취재를 해왔기 때문에 주의해야할 점을 알고 있지만 취재를 받는 전문가 입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작가들을 만나면 해줄 이야기도 없고 힘만 드는데 또 어떤 작가들은 그렇지 않은가요?
권일용: 제 편향적인 경험이라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뭐예요?”라는 식의 질문을 들으면 입을 열기 어려워요. 이 작가님은 그동안 그리신 작품을 다 기억하시듯이 저도 현장의 길을 지나갈 때는 그 현장이 사진을 찍은 것처럼 내 머릿속에 떠올라요. 그런 사건들 속에서 “제일 기억나는 사건은 뭐냐? 범인이 사이코패스였냐? 범행 동기는 뭐냐?”는 식의 피상적인 질문을 하면 작품을 만들려고 묻는 게 아니라 본인이 궁금해서 묻는 건가 싶어요.
이 작가님께서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정신 장애나 성격 장애로 인해서 고통받았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도와 계기를 가지고 실제 사건에서 이렇게 반영하고 싶은데 이런 방향과 주제가 맞겠느냐고 질문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건에 대한 분석과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것만 가져가려는 질문만 하면 내가 무엇을 전달해야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이종범: 무슨 말씀이신지 확실히 이해됐습니다. 제게 자문해 주셨던 선생님들도 이런 취재와 인터뷰가 넓은 의미의 협업이라고 하셨거든요. 정리를 하면 작가들이 전문가를 취재할 때는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대상으로만 인식할게 아니라 본인의 작업의 목표, 방향성, 주제와 의미 등을 충분히 납득시킬 준비를 하고 접근해야지 전문가도 협업관계로 함께 참여할 의지를 가지게 된다고 보면 될까요?
권일용: 아주 명쾌하십니다. 그렇게 방향성이 상당히 맞고 2차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이종범: 저도 심리극을 그리는 작가이지만 언제나 대중 매체,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을 보면 범죄 사건과 장면을 그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왜 보통 사람들은 이런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소재의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보십니까?
권일용: 범죄자가 타고 나느냐, 만들어지느냐는 거지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내가 수천 명을 만나봤는데 타고난 사람도 있었고 만들어진 사람도 있었어요.
이종범: 당연히 섞여있겠죠.
권일용: 그래서 답은 “잘 모르겠다.”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악도 선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악과 선이 공존하는데, 어떤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 견디지만 어떤 사람은 견디지 못할까, 그리고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라는 걸 제일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지존파가 등장했을 때 수많은 범죄 심리학자들이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중산층의 몰락 같은 사회학적 분석들을 쏟아냈습니다. 또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남들은 누리고 있었다는 비교와 열등의식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졸업과 취업 같은 사회적 압박을 어떻게 견디는지 그 차이점을 심도 있게 찾아야한다고 봅니다.
이종범: 사실 제가 제일 관심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최근 웹툰 독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 작가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 “악당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라.”라는 말이에요. 작가들은 왜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려내야 안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예방차원에서 필요한데 독자들은 범죄자들의 과거사,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 등을 그리기만 하면 욕할 준비부터 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권일용: 욕을 하면서도 궁금한 게 그 지점이죠. 전 아까의 차이점으로 고립과 목표의 상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립이나 목표의 상실을 핵심적으로 그린다면 굳이 서사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이종범: 제가 찾은 방법은 악당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 배경을 그리는데 아무리 똑같은 일을 겪었어도 누구도 안 했을 선택임에도 명확히 악을 선택한 그 지점을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를 하려고 했더니 독자들이 조금 이해를 해주더라고요.
권일용: 당연히 그렇겠죠. 그 부분에 공감하는 이유가, 그 상황에서 목표가 뚜렷하고 고립되지 않았을 캐릭터를 떠올렸을 테니까요. 누군가 주변에 있었고 그걸 통해서 목표를 가진 캐릭터 때문에 소위 사회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상황에 지배를 받는 게 아니고 사람이 상황을 지배하는 이야기에 공감했을 거예요. 상황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면서 주변을 통제하지만, 반대로 고립된 사람은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거기에 휩쓸려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거든요. 마치 돈이 필요하면 땀 흘려 일해서 버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을 뺏는 것처럼요.
이종범: 확실히 악당을 묘사할 때, 그 악당에 대해서 이해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시선이 드러나면 독자들도 재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종범 만화가
권일용: 그게 사람들이 원하는 거죠. 또 한 가지 개인적인 생각은 결국 악당은 처벌을 받잖아요. 악당은 자신의 행위에 반드시 책임을 진다는 결말을 원하는 겁니다. 사실 이런 얘기는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실제 범죄자는 마동석 같은 괴물형사 캐릭터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에 비해 대중들은 마동석 같은 괴물형사를 원하고 그게 그 캐릭터가 성공한 지점이라고 봐요. 왜냐면 첫째 그렇게 때리는 형사는 즉시 구속이거든요.(일동 웃음)
이종범: 그렇겠죠.(웃음) 일종의 판타지인거죠.
권일용: 두 번째,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처벌이 두려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재수 없어 잡힌 거라고 생각하지 법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중이 원하는 건 무엇이죠?
이종범: 사이다죠.
권일용: 법이 강력해서 국가가 나를 지켜주고 응징하는 것. 이것이 영화 〈범죄도시〉에서 마 동석이라는 괴물형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고 굉장히 성공한 거라고 봅니다.
이종범: 독자와 시장이 원하는 사이다를 주기 위한 일종의 픽션이죠.
권일용: 그래서 전 작품을 논의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데 작품을 이렇게 쓰는 게 좋은지, 저렇게 쓰는 게 좋은 지라고 물으면 정말 당황스러워요. 그 작품은 내가 만들어서 내 의견을 넣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알찬 취재 인터뷰를 만들어라!
이종범: 그런데 작가들에게는 그런 욕망도 있어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할 때, 전문가들도 감탄하고 칭찬하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있거든요.
권일용: 그런 것들을 좀 내려놔야해요. 예전에 제가 작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질문이 작업하고 있는 작품을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지도를 해달라고 내용이 많았어요. 이런 스토리에 이런 범죄가 가능한지 묻는데, 전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나 싶은 거지요. 그래서 모르는 건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종범: 하하, 그럼 어떤 걸 물어봐야할까요?
권일용: 예를 들어 내가 쓰고 있는 스토리에 어떤 범죄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는 것들이요.
이종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꿈을 가졌고, 범죄를 저지르는 마음을 품게 되는 이유 같은 건가요?
권일용: 네, “그런 범죄자와 마주앉았을 때 무슨 말을 하게 될까요?”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이요. 그러면 내가 어떤 범죄자를 설명하고 있구나하는 이미지가 그려지죠. 그런데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람인지 물으면 그런 이미지가 없어져요.
▲권일용 교수
이종범: 작가 스스로가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의 특정한 부분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지 못하고 있거나 인물에 대해서 확실한 목적을 갖지 않으면 전문가도 그에 대해 답하기가 어렵다고 정리하면 될까요?
권일용: 네. 그래서 정물화로 친다면 지금 사과를 그리는 건지, 술병을 그리고 있는지, 나무를 그리고 있는지 윤곽을 잡은 상태에서 질문을 해야지 그에 도움이 되는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내 영역이 아닌데 왜 나한테 질문하지 싶어서 곤란하지요.
이종범: 실제로 많은 동료나 후배 작가들이 그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 인터뷰를 통해서 많은 작가님들에게 좋은 힌트를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분명히 듭니다. 이제까지의 말씀을 들으면, 그렇게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시거나 즐기시는 타입은 아니신 것 같아요.
권일용: 아니요. 사실 지금은 장르 구분 없이 많이 봐요. 현직에 있다가 퇴직한 뒤 시간이 지나서 다른 삶을 살다보니까 현장 수사 속에서의 삶과 그 삶을 바라보는 지금을 보면 생각이 달라져요. 그래서 범죄영화를 볼 때, 현직에 있을 때는 저 영화 내용은 잘못된 표현이 많고, 저 의도는 좋거나 좋지 않다고 평가를 했었다면, 지금은 왜 저렇게 표현하고, 왜 저런 방식을 썼을까 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이종범: 주제와 의도가 궁금해지신 거군요. 지금 제 가장 큰 관심사는 혐오범죄로 제 작품의 마지막 시즌인 4부에서 다뤘었습니다. 계속 고민한 결과, 분명히 수년 안에 혐오가 근간이 되는 테러형 범죄, 외국인이나 세대간 갈등으로 생기는 범죄가 늘어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을 취재하면서 그들의 갈등과 고민을 하면 할수록 그런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런 갈등과 혐오를 그리는 게 일종의 경고나 재미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고 피해를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들이 범죄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주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권일용: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피해자에게 해를 끼치느냐 여부의 이분법에 따른다면 어 떤 작품도 완벽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작품 속 장점이 단점을 상쇄할 만큼 강력한지, 아니면 작은 단점 때문에 작품 전체의 장점을 덮어버리는지 구분할 필요는 있겠지요. 분명히 좋은 점이 있음에도 치명적인 단점으로 모든 장점을 가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작품도 있으니까요. 그런 작품들이 공존한다면 불필요한 피해를 키우는 단점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범: 미리 욕먹을 걸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창작하란 말씀이시죠?
권일용: 네. 그러면 그 장점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혼을 깨우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드라마 〈악의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악한 범죄자는 처벌받아야하고, 피해자는 재조명되어야하고, 그 피해자의 가족은 또 슬퍼해야 되겠지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러나 작품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나 SNS상으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노력들이 너무 고맙다고 해요.
이종범: 그 노력들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거지요.
▲권일용 교수, 이종범 만화가(좌로부터)
권일용: 요즘 강연을 나가면 질문이 “피해자들은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꼭 몇몇은 “유영철, 강호순은 정말 오만하고 건방져요?”라고 물었지만 지금은 “피해자분들은 어떻게 지내세요? 그 가족들은 다 함께 잘 살고 계시나요?”라고 물어요.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는 게 창작 작품의 장점이죠.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를 본 대중들은 가해자만 비난할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도록 바뀌었잖아요. 그런 모습이 창작 작품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죠.
이종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작가들이 제일 관심가질 수 있는 전문가와의 인터뷰 팁이라거나 그 직종의 디테일한 정보들에 대한 것보다는 창작과 작품은 그 자체로 별개라는 뜻으로 전달받았고요. 동시에 그런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쓸 수만 있다면 사실과 약간 어긋나거나 고증이 좀 틀려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정도로 이해해도 될까요?
권일용: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그래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전문가를 찾아갔으면 그 사람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하고 가셨으면 합니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들이나 이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이해를 먼저 하고 간다면 훨씬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그 사람이 왜 현장에 있게 되었고, 굉장히 좋은 부서로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왜 떠나지 않고 계속 일하는지에 대해 미리 숙지를 하면 작품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보만 캐내려고 하지 말고 먼저 신뢰와 우정을 쌓아라!
이종범: 창작자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인터뷰할 때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부분을 잘 말씀해주셔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전문가분들과의 대화에서 배웠던 점은 취재하는 시간을 즐겁고 의미 있다고 계속 느끼게 해서 협업관계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제 생각이 틀리지 않구나 싶었습니다.
권일용: 참고로 프로파일러의 비밀을 알려드리자면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말을 잘 하게 만드는 거예요. 질문을 해서 답변을 얻는 건 형사고 말을 하게 만드는 건 프로파일러라고 하거든요.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질문하게 해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간다면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질문하고 잘 들어야 신뢰와 우정을 빨리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종범: 그 전문가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고 가는 것 중에는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 가는 것도 있군요.
권일용: 그렇죠. 만약 취재할 전문가의 사무실을 들어갔는데 들어오는 사람이 잘 볼 수 있도록 유명한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국제 세미나 사진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보는 거지요. 그러면 차 한잔 하면서 저렇게 유명한 사람과 찍었는데 또 아는 분 없냐고 물으면서 시작하면 흥미와 신뢰를 얻기가 쉬워집니다.
이종범: 〈악의 마음〉 작업 때 고나무 대표와 술을 함께 많이 드셨다는데 그런 것도 도움이 될까요?
권일용: 솔직히 전 경계했어요. 제가 무너질까봐요. 너무 가까워지면 자꾸 함께 작업하는 글에 주관적인 감정이 들어가 적당한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함께 술을 마시기까지도 6개월이 지나서였지요. 고나무란 사람이 권일용이란 사람을 찾아왔을 때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다 온 사람들끼리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협업을 해야 하는데, 단순히 몇 마디 나누고 술도 같이 마시고 형, 동생하면서 의기투합 먼저 했다면 좋은 작품이 될까요? 전 안된다고 봐요. 특히나 범죄와 같은 심오한 이야기들, 내가 살아오는 동안 해왔던 일에 대해 관점을 가지고 압축해서 써야 되는데 술친구 같은 관계로 가능할지 의심이 드는 거지요.
이종범: 마지막에 무척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앞서 작가가 전문가를 만나서 신뢰와 우정을 형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에 보태서 그게 너무 과해져서 원래의 목적을 잊을 정도가 된다면 곤란하다는 뜻이지요?
권일용: 전 정말 위험하다고 봐요. 나한테 무슨 이야기든 다 해주는 전문가가 있다면 그게 과연 깊이 있고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일까 의구심이 들 테니까요.
이종범: 대면 인터뷰를 통한 취재를 잘 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제가 준비한 질문보다는 교수님과 이야기하면서 준비한 질문의 방향 성과 관련된 즉흥적으로 떠오른 질문을 더 많이 여쭤봤는데요. 그렇게 답변해 주신 내용이 훨씬 더 알차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권일용: 제 인터뷰 방식이 그래요. 질문지를 잘 안 봐요. 사전 질문에 맞춰서 이렇게 준비해야하지 하고 미리 기준점을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 작가님의 질문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질문 내용들이 좋은 것들이어서 내공이 있다고 느껴졌고요.
이종범: 귀한 시간 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권일용: 고맙습니다.
(인터뷰 공동 기획: 팩트스토리· 장소제공: 씨앤씨레볼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