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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웹툰 저작권 문제 - 결국 업계 종사자인 ‘인간’이 논의해야

<지금, 만화> 제19호(2023. 9. 5. 발행) ‘Critique’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4-03-16 최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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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웹툰 저작권 문제

- 결국 업계 종사자인 인간이 논의해야

  최근에 한 동료작가는 “AI에 관한 포스팅을 차단해주는 AI는 없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GPT 열풍이 생성형 AI 기술을 대중화시켰고 웹툰미, 달리,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도 상용화되었다. 지상최대공모전은 AI 기술 도입을 허용한 반면 모 웹툰은 독자들의 거센 반발에 AI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도전만화에서는 AI 웹툰 보이콧 운동이 있었고, 한 편에서는 국내 최초의 AI 웹툰 플랫폼 룰(LOOOL)이 오픈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천지개벽할 소식들이 업데이트된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주는 친구이자 미래 산업이겠지만, 일단 대다 수 창작자와 지망생, 연구자와 애독자들에게는 큰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교육과 수련의 성과를 부정당하는 허탈감. 인고의 세월과 성실한 노력 없이도 누구나 명예와 대우받을 수 있다는 박탈감. 내가 연구한 테크닉이 평준화되어 초보 기술자들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는 생태계에 대한 거부감. 대세를 인정하고 적응하라는 외부인(?)의 오지랖에 느끼는 야속함. 나와 공감할 거라 믿었던 동료들이 이미 몇몇은 달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초조함.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신념에 대한 혼란. 이는 직업의 존폐를 가름할 만한 가장 현실적인 사안, 즉 창작자와 저작권에 대한 이슈들로 수렴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웹툰 업계 종사자가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관계 파악에서부터 힘에 부친다.

  AI가 활용될 수 있는 예술영역은 글, 그림, 음악 등 모든 장르를 총망라한다. 기회비용이 작아지는 반면 생산성이 너무 높아져서, 매체 간 융합이나 만화, 웹툰, 영화, 애니, 게임, 소설, 출판 등 컨버팅도 쉬워져 동시다발적인 기획과 콘텐츠 발표가 가능해질 것이다. 모두가 손쉽게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본격적인 트랜스미디어의 시대. 웹툰작가들만실업자가 될 리는 없다. 혹 모든 인류가 실업자가 된다 한들, 그건 또 그 나름대로의 유토피아일 거고. 다양한 상황에서 수많은 감정을 겪겠지만 결국 작가들은 늘 그랬듯이 초연해질 것이고 제자리에서 본분을 지킬 것이며 방법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웹툰으로 확장된 AI의 미래

  그렇다면 AI는 어느 정도까지 웹툰의 영역을 차지할까? 그림의 손맛, 일관성, 기획, 스토리, 구성, 연출 면에서는 아직 미흡하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획기적으로 개선된 기술이 개발될 것이다.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핵심 창작능력이라고 인식되던 모든 영역들이 곧 따라잡히거나 대체될 수도 있다는 위협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TEZUKA 2020 오피셜 비디오

  AI는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흡사 AI가 저작권을 무력화하는 느낌이지 만 사실관계 자체가 다르다. 저작권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물론 전 세계가 합 심해 현시대의 법체계를 송두리째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인간을 제외한 동물이나 기계는 저작물을 창작할 수도, 저작권을 행사하는 주체도 될 수 없다. 저작권 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뜻하고 저작자는 창작 한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AI를 활용할 뿐이다.

  AI의 데이터 학습을 저작권 침해로 보고 막을 수는 있을까? 사실 SW개발사 등 수많은 주체들은 학술, 기술개발 목적 등으로 이미 오랫동안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왔다. 역사를 되돌려 데이터 학습금지를 소급 적용한다면 모를까, 불가능해 보인다. AI는 태그에 맞는 공통된 특성과 패턴을 다층적으로 학습하며, 이는 뇌 의 신경망과 유사하다. 랜덤 시드값을 주거나 모델을 섞어 새로운 임의의 패턴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의 학습과 비슷하다. A작가와 B작가의 그림체를 동경해 조금씩 참조해 자기만의 그림체를 만든 C작가가 있듯이. 설령 C작가가 인공지능이 자신의 그림체를 학습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한들 AIC작가의 소스가 전혀 없이 도 A작가, B작가의 그림체를 학습해 C작가의 그림체와 느낌을 창출할 수 있다.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기준과 경계선도 불분명하다. 누군가는 자기 그림의 학습을 거부하거나 허용할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그림을 학습시키길 원할 것이며, 누군가는 이미 세상에 없어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수백 수천 개의 그림체를 혼합한 그림체를 만든다면? 내 그림을 학습하지 말라고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허무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다.

  생성형 AI가 더 일반화되면 각종 저작권 침해 여부와 침해 주체, 의거관계, 유사성, 고의성 등을 놓고 다투는 수많은 법적 소송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느 정도까지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사실 저작권은 그림체 자체가 아니라 그려진 캐릭터나 표현의 문맥을 보호한다. 특정 장면을 통째로 베껴 트레이싱하지 않는 한, 화풍이나 그림체 자체를 저작권법으로 보호받기 어렵고 앞으로도 회의적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이 힘들고 법률적으로 판단하기에도 너무나 복합적이고 까다롭다.

 

생성형 AI 제작 만화 여명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

  대중이 AI를 활용한 그림의 소비를 정서적으로 거부할 순 있겠지만, 그걸 판별하고 수치화하는 것마저 어렵다. 활용률이 10%인지 50%인지를 정량적으로 판별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를 받아들일 것인지 모두가 납득할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다. AI를 활용하든 안하든 그림 스타일이나 화법 자체만으로 저작권을 인정받기는 요원해질 것이다. 물론 동료작가와 대중들의 도덕적 비판까지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AI 산업의 현실과 전망

  AI 산업의 발전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AI, 아니 정확히는 사람이 AI를 활용해 제작한 창작물도 저작권을 인정받게 될 것이고, 그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될 것이다. AI와 저작권 이슈의 가장 앞선 판례를 만들고 있는 미국에서의 게티이미지와 스태빌리티AI의 소송전을 보듯이 공정이용이라는 개념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사회 전체 이익을 증대시킨다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상업적 목적이 있더라도 공정한 이용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영국 역시도 폭넓은 범위의 저작물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2023614, EU에서 초안이 통과된 인공지능법도 주목할 만하다. 그 핵심은 크게 5가지로 1) 감정인식 인공지능 금지 2) 공공장소에서 실시간 생체인식 및 예측 치안 금지 3) 소셜 스코어링 금지 4) 생성형 AI 신규 규제 5) 소셜미디어 추천 알고리즘 규제이다. 이중, 생성형 AI 규제의 내용은 저작권이 있는 자료의 전면 사용 금지’, ‘원천 콘텐츠 출처 표기 의무화를 담고 있으며 AI의 저작권 이용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2026년부터 생성형 AI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는 학습에 사용된 저작물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저작자들은 자신의 창작물이 AI가 만든 콘텐츠에 사용 될 경우 수익 분배도 요구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미국 작가노조의 파업과 미국 배우노조의 지지성명의 사례는 우리나라 웹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작가와 배우들이 나섰다는 점, 그리고 거대 플랫폼에 맞서 개인 창작자들이 연합해 대응한 여론전을 펼쳤다는 의미가 있다. 웹툰업계는 창, , , , 관 등 다양한 관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 생태계가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볼 부분이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될 때마다 사람들은 갑론을박을 했으며 큰 혼란과 진통을 겪으며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들어왔다. 멀리 보면 훈민정음, 인쇄술, 증기기관, 핵 개발이 있었고, 사진이나 영화의 탄생도 그랬으며, 가까이는 인터넷혁명은 물론 스크린톤, 포토샵, 클립스튜디오, 태블릿PC와 같은 제작 툴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결국 중요한 건 인간이었다. AI가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AI를 활용해 저작권 침해를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AI는 도구이므로 AI가 아닌 사람이 위법을 막아야 하는 문제다. 초상권 침해나 딥페이크 등 불법 성인물 문제도 마찬가지. 사이버범죄를 이유로 인터넷이나 카메라를 금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든 고민과 질문, 시선과 논의의 방향은 다시 인간으로 돌려야 한다.

  AI와 저작권 이슈는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인간다운 창작활동을 지킬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현장 일선의 창작자들은 물론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의 풍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 특히 저작권법이나 규제의 경우는 더욱 업계 외부의 도움도 많이 필요한 일이다. 서로의 의견과 입장이 달라 갈등이 불거지든, 이해하고 양보하고 존중하는 화합의 목소리를 내든,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유의미할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인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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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

부산경남만화가연대 대표, 영산대학교 웹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