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자두야>는 내 인생!
만화가 이빈을 만나다
(글 민규협)
Q. 1997년 출간한 <안녕 자두야>는 1970~80년대 생활상과 정서를 고스란히 그려내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로 정평이 났습니다. 장수 만화(?)이다 보니 <안녕 자두야>를 읽고 자란 독자들이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와 함께 <안녕 자두야>를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뮤지컬 <내 이름은 최자두>를 관람하고 캐릭터 굿즈를 구매합니다. 원작자로 감회가 어떤지요?
A.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 자두야>는 학산문화사에서 발행한 월간 ≪파티≫창간과 함께 연재를 시작해서 현재까지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안녕 자두야>는 1997년도에 연재를 시작해서 현재 27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8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80년대 키즈’인데요. 말씀하신 대로 그 시절 ≪파티≫와 <안녕 자두야>를 보신 독자분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또 아이들을 낳아서 아이 손을 잡고 함께 제 책도 읽고 TV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사인회에도 같이 옵니다. 작가로서 이렇게 세대를 아우르는 만화를그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감동적이고 스스로도 자랑스럽습니다. 젊은 엄마, 아빠와 아이들을안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제가 느끼는 꽉 찬 감동은 아무리 짧은 단어로 설명하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또 한 가지, 지금 함께 활동하고 있는 후배 작가님들이 어린 시절 제 책과 만화를 읽고 자란 팬이었다고 말씀을 해주실 때는 또 그만큼의 감동이 없지요. “만화를 그려서 잘했어. 정말 잘했어”라고 매일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은 도제식 만화 작가 양성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성장한 작가 1세대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마추어 동호회 ‘결’에 가입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어떤 계기와 방법으로 가입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A.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겠지만 사실 전 문하생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순정만화계의 전설이자 대모이신 황미나 선생님 화실에 문하생으로 들어갔고, 몇 달 동안 그림을 배우다가 바로 신인 만화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그만두었지만요. 황미나 선생님은 그때 이후로 제 마음속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항상 마감으로 인해 바쁘셔서 일만 하셨기 때문에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항상 저희 같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주신 훌륭한 선생님이자 선배이셨습니다. 손이 어찌나 빠르신지 하루 만에 만화잡지 연재 한 편(20p 정도 지금 웹툰 기준 60컷 정도) 데생을 끝마치시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거의 잠도 못 주무시고 하루 종일 일만 하셨어요. 한 달에 연재하는 횟수가 엄청 많았습니다. 아마추어 동호회 ‘결’은 말씀하신 대로 중학교 3학년 때 가입했는데, 학교에서 함께 만화를 그리던 친구가 자기 언니가 동인지를 만들기로 했는데 함께 가입하자고 꼬셔서 들어갔어요. 저희가 막내였고 언니들은 모두 사회인이었는데요. 대부분 만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에게 만화와 관련된 지식, 테크닉을 배웠습니다. 모임이 끝나면 언니들이 떡볶이를 사주셨는데 맛있게 먹으면서 나도 빨리 커서 돈 많이 벌면 언니들한테 떡볶이를 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은 실력이 좋으신 분들이 많아서 많은 프로 작가를 배출했습니다.
Q. 1990년대 초반 여성만화잡지가 연이어 창간되었고 작가님은 1991년 선두주자였던 ≪르네상스≫의 신인 공모전을 통해 <나는 깍두기>로 데뷔하셨습니다. 지금 작가님처럼 만화가를 꿈꾸는 예비 만화가들은 작가님의 데뷔 전 상황을 궁금해합니다. 신인 공모전에 응모한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을까요?
A.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황미나 선생님 화실에 문하생으로 다니고 있었고 학교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 국내 최초 순정 잡지 ≪르네상스≫에서 공모전이 있어서 원고를 내기로 결정했어요. 아무래도 원고를 낼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서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화실을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격려를 해주시며 덕담을 들려주셨죠. 넌 꼭 만화가가 될 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총 2화분(32p 120컷 정도)을 그려서 제출했습니다. 다행히 데뷔는 했는데 그때는 데뷔를 했어도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부족하다 보니 바로 전업 작가가 되진 못했어요. 학교도 다니고 취직도 해서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해서 광고 회사에 다녔는데 거기서 광고 콘티(스토리보드)를 그리는 일을 했어요. 또 아르바이트로 영화 스토리보드 외주를 받아서 그리곤 했습니다. 이때는 정말 제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였는데요. 그래도 스토리보드 그리는 일은 나중에 만화 콘티를 짤 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새벽까지 잡지에 투고할 원고를 그렸습니다. 1년에 한두 편씩 단편을 발표하는 걸 2~3년 정도 했는데,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그리고 <꽃보다 남자>(그 당시 해적판명: 오렌지 보이)로 국내에 만화 붐이 일어나면서 만화잡지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 같은 신인 작가도 연재할 수 있는 지면이 생겨서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때 생겼던 잡지가 ≪댕기≫, ≪윙크≫, ≪이슈≫ 등 2세대 순정 잡지입니다. 그 이후 저에게도 전성기가 찾아와 한 달 평균 5~6꼭지(원고 5~6개)를 마감했습니다. 격주간지 ≪윙크≫와 ≪이슈≫, 월간지 ≪파티≫와 ≪화이트≫를 동시에 뛰었죠. 한 달에 각기 다른 작품 3개를 동시에 연재했어요. 그렇게 하다가 어깨와 손목을 다쳤습니다. 어깨 회전근개 파열, 손목 터널증후군이 생겼어요. 나중에 전부 수술을 했어요. 손목은 물이 차서 지금도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으러 다닙니다. 디지털 원고도 아니고 직접 펜을 사용해서 손으로 그리던 시기였으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함께 일했던 작가들 전부 저와 사정이 같습니다. 아마 수술을 안 한 작가가 없을 거예요. 말하자면 9회 전부 완투한 투수 같은 거죠. 미련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땐 젊어서 잘 몰랐습니다. 알았어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Q. <안녕 자두야>보다 2년 먼저 출간된 청소년 드라마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1996)도 인상적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발달심리학자인 제프리 아넷은 개인차와 문화적 요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청소년 시기의 대표적 ‘질풍과 노도’ 특징으로 부모와의 갈등, 정서의 붕괴, 위험한 행동이라 분석했습니다. 1999년에 주창한 아넷의 이론보다 앞선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의 성무, 혜정, 지미, 보나에게는 이러한 파격적 일탈의 청소년 특징이 크고 작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는 한 권의 이론서보다 청소년 문화와 특징을 더 잘 표현합니다.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1996)의 스토리 영감은 어떻게 받으셨는지요?
A. 그땐 저도 한창 흑염룡의 시기여서 S. E. 힌턴의 <아웃사이더>나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라디오 헤드 그리고 왕가위 영화에 한창 빠져 있었습니다(웃음). 보통 10대에 그런 시기가 오는데 전 10대에는 만화만 그리는 얌전한 학생이어서 그랬는지 질풍노도 시기가 20대에 온 것 같아요. 밀레니엄 세기말 분위기에도 휩쓸려서 그런 허무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주류였던 순정만화와는 결이 다른 작품들을 주로 그렸던 것 같아요. 성공하고 인기도 얻고 싶었는데 왜 그런 비주류 만화를 그렸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전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힘들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Q. 1997년 9월부터 월간 순정만화잡지 ≪파티≫에 <안녕?! 자두야!!>를 연재하셨습니다. <안녕 자두야>의 탄생은 우연이라고 이제 인터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평소 가족들과 어린 시절을 자주 회상한다든지, 써둔 메모나 일기가 있다든지 하지 않는다면 갑작스러운 제안에 흔쾌히 작업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작가로서 스토리텔링적 비법이 있었을까요?
A. ≪파티≫가 창간을 할 때 한 달에 4개, 꽉 찬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이슈≫의 편잡장이던 친한 편집자님이 ≪파티≫ 창간을 맡게 되면서 10p라도 좋으니까 원고를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원래 거절을 잘 못 하는 저는 그 부탁을 수락했어요. <안녕 자두야>는 어쩌면 ‘스불재’ 같은 작품으로 시작했습니다. 짧은 10p라도 이미 너무 많은 연재를 하고 있어서 극화체로는 못 하고 후기만화처럼 만화체로 그리는 에세이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만화체 작가가 아니라서 SD를 그리는 데 익숙지 않아 초반에 좀 헤매고 고생을 했어요. <안녕 자두야> 1권 초기 그림을 보시면 자두가 지금 그림체가 아니라 뭔가 엄청 길쭉하고 어색합니다(웃음). <안녕 자두야>는 사실 이때 그리려고 한 만화가 아니라 나중에 나이가 들면 자서전 같은 에세이 만화를 그리려고 제목도 미리 지어두고 에피소드 같은 것도 메모해둔 상태였습니다. 그 편집자님 덕분에 세상에 일찍 나오게 되었네요. 후배 웹툰 작가님들이 ‘한국 최초의 생활툰 또는 에세이툰’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웹툰이 나오기 전에 그린 에세이툰 또는 생활툰이니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메모를 하는 편입니다. 예전엔 다이어리에서 적었고, 요샌 스마트폰 메모 앱에 전부 메모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 비법이라면 제가 어릴 때부터 다독가라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이게 비법인 것 같아요.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사실 학교 다닐 땐 만화보다 소설가나 시인을 꿈꾸며 많은 국내외 백일장에서 상도 타는 문학소녀였습니다. 대학노트에 연재소설을 썼는데 교내 학생들 전체가 그걸 돌려 읽어서 뒤편을 빨리 쓰라는 재촉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지금의 인소나 웹소 같은 내용이었어요
(웃음).

Q. 1997년 <안녕?! 자두야!!>에는 학산초 3학년 1반 친구들 등 많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거의 모두 자전적 추억 속의 인물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는지요?
A. 아니요. 어린 시절 추억 속 친구들을 바탕으로 현실의 친구들을 넣어서 재창조했습니다. 단짝친구 김민지는 사실 연재 당시 제 담당 기자님이시고, 이미자 선생님은 팀장님, 딸기는 만화가 윤X기, 양재현, 전부 제 실제 친구들입니다. 그중에 돌돌이도 친구(정확하게는 후배)였는데 나중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죠. 제가 돌돌이의 모델과 결혼한 것이지 작품 속 자두의 세계관과는 별개입니다. 팬분들이 자꾸 자두와 돌돌이가 결혼하냐고 물어보셔서요. 참, 이윤석은 실제 제 첫사랑의 이름입니다. 키 크고 재미있는 우리 반 반장이었어요. 실제 별명도 ‘스컹크’에 ‘방귀대장 뿡뿡이’였습니다. 남편은 이윤석만 나오면 질투합니다(웃음).
Q. 극중 캐릭터와 실제 가족은 얼마나 닮았나요?
A. 실제 가족의 구성원도 똑같고 성격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저희 엄마는 자두 엄마처럼 억세고 강하진 않습니다. 자두 엄마는 제 성격하고 비슷합니다. <안녕 자두야>를 처음 시작할 때는 자두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서 스토리를 썼는데 세월이 흐르고 제가 엄마가 되면서부터 자두 엄마에 빙의하게 되더군요. 남편과 아이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두 엄마가 나오면 저랑 똑같다고 합니다.
Q.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한지요? 부모님과 형제들의 반응과 자제분의 반응은 다를 것 같은데요.
A. 가족들은 신기해하고 기뻐해주세요. 작품이나 애니메이션에 같은 반 친구나 간판 이름에 저희 아이 이름을 넣었는데 아이는 만화를 볼 때마다 자기 이름이 나온다고 엄청 좋아합니다.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어릴 때 보던 만화의 작가가 친구 엄마라고 신기해합니다.
Q. 1997년 <안녕?! 자두야!!>에서는 이전과 비교해 그림체가 동글동글하게 바뀌었습니다.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그림체 전환이었는지요?
A. 네, 처음에는 만화체 작가가 아니라서 SD 그림을 그리는 게 힘들었습니다. 장난식으로 몇 컷 그리는 것과 그 그림으로 연재를 하고 주변 배경까지 데포르메화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그런데 오래 그리고 보니 점점 익숙해졌고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면서 애니메이션팀과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게 처음 부탁하신 게 작중 캐릭터들의 턴어라운드 그림을 통일하는 것이 좋다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등신으로 할 건지, 속눈썹은 아래위 3개씩 넣는다든지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화 하기 쉽게요.
Q.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제목에 삽입된 물음표와 느낌표입니다. 모두 같은 ‘최자두’의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인데 어떤 제목에는 <안녕?! 자두야!!>처럼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고 어떤 제목에는 <안녕 자두야>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작가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요?
A. 전혀 아닙니다(웃음). 제가 처음에 지은 제목이 <안녕?! 자두야!!>였는데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부호를 다 쓰면 너무 길어서 부호를 뺀 거예요.

Q. 작가님은 2015년 1편 ‘배려’에서 2021년 18편 ‘감정표현’까지 출간한 <안녕 자두야> 인성동화 시리즈(채우리 출판사) 작업에 참여하셨는데요. <안녕 자두야> 인성동화 시리즈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의 솔직 담백한 시선을 담아 많은 학부모의 성원을 받는 동화 시리즈입니다. 아동문학은 시각화 경향이 짙을 수밖에 없는 장르입니다. 만화와 아동문학은 서로 다른 콘텐츠인 듯하지만 결국 ‘어린이’라는 공통의 독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화와 아동문학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추세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채우리 출판사는 아동출판물을 발행하는 학산문화사의 자회사입니다. 같은 회사라 좋은 제의를 주셔서 아동 출판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저 역시 만화와 아동문학은 같은 줄기를 가진 형제 콘텐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화도 동화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같은 동료 만화가나 저에게 만화를 배웠던 제 문하생 중에는 동화작가로 전환하신 분들도 꽤 있습니다. 그중에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저명하신 분도 계시지요. 저도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동화가 몇 편 있습니다. 나중에 삽화까지 그려서 꼭 발간할 계획입니다.
Q. 어린이의 올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 필요한 삶의 태도를 친근한 캐릭터의 일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인데요. 독자들의 입장에서 예상해본다면, 인성동화로 만나는 자두와 만화로 만나는 자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A. 원작에 나오는 자두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자두, 동화에 나오는 자두는 각각 다릅니다. 원작에 나오는 자두는 좀 더 ‘저’에 가깝고, 애니메이션과 동화에 나오는 자두는 각각 쓰시는 작가님들에 의하여 재창조된 자두라서 아무래도 다르지요. 하지만 공통점은 불완전하다는 점입니다. 불완전하고 실수를 함으로써 우리에게 친밀감을 주고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며 응원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제 아이가 제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자라서 이제 본격적으로 다시 만화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안녕 자두야>는 올해 8월에 연재 27주년을 맞아 시즌2에 들어갑니다. 스토리에 변화를 주어 자두와 친구들은 열두 살, 5학년이 되어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애기는 초등학생이 되었어요. 삼촌은 드디어 대학생이 되어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대학가요제에 나가게 되며 여자친구도 사귀게 됩니다. 이상 자두에 관한 이야기이고요.
저는 따로 순정만화 연재도 계획하고 있어 가을쯤 단편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성인물이에요. 그리고 내년 출판을 목표로 에세이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에세이는 처음 써보는지라 많이 헤매고 있습니다만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진행하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Q. 제2의 이빈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Tip을 주신다면?
A. 저희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그림을 배울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습작을 통하여 다양한 그림을 많이 그려보고 자기 그림체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AI가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AI에 대응하여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만의 그림체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OO의 그림체인데 AI가 그 그림체를 쓸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많은 책을 읽고 독서를 통하여 많은 콘텐츠와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독서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안녕 자두야>는 OO이다.
A. <안녕 자두야>는 내 인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