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과 공감을 교환한 보증관계 SNS툰과 청년 사이를 유랑하며
원고를 청탁 받고 이야깃거리를 찾고 정리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니 아는 만화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시간이 오래 지난 탓에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기도 했겠지만, 당시에는 만화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짤’로 느껴졌기 때문에 모른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재밌게 봤던 SNS툰은 주로 만평처럼 한 컷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는데 그저 웃겼기 때문에 좋아했다. 친구들과 웃긴 만화를 찾으면 주고받았고 공부로 힘든 얘기가 나오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에 업로드했다. 친구들과 10분 정도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소재로는 충분했으므로 그 만화는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낸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인스타툰 그려보라는 추천을 많이 들었다. 그때는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겪게 된 좌충우돌이 많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내 이야기가 특별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라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을 매 학기 바꿔대던 만큼 쉽게 질리는 스타일이라 꾸준히 그림을 그려 어딘가에 올린다는 건 예견된 실패를 굳이 해보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 주변의 너덧 명은 인스타툰을 연재하겠다고 새 계정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도전자는 채 10개의 게시물도 업로드하지 못하고 도전을 끝내곤 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아이패드를 사게 됐을 때, 비싼 돈 주고 산 기기가 아깝단 생각에 인스타툰 준비생을 자처했던 적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그릴 수 있을지 이야기 소스를 정리하고 몇 개의 테스트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인생에서 꼽을 정도로 재밌고 독특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저런 일이?’ 하는 이야기 소스를 찾다 보니 10여 개의 토픽을 발굴해 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웃기게 보이려 연출을 넣다 보니 억지스러웠고 그린 그림을 스스로도 봐줄 수가 없어 전량 폐기했다. 예상한 결과긴 했지만, 만화란 역시 쉬운 게 아니었단 걸 처음 직접 느끼게 됐다.
물론 인스타툰이란 말이 생기기 전부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트위터툰이라든지 페이스북툰이란 말이 대중화되어 흔히 쓰이지 않았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경우 담벼락 형식으로 타인의 게시물을 늘어놓고 유저의 선호에 따라 고르는 형태가 아니라 스크롤 과정에서 엄청난 우연으로 만화에 노출되어야 하는 한계점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시 유행하던 그림왕양치기 작가의 <약치기 그림>을 재밌게 봤던지라 직접 검색해 들어가 보기까지 했음에도 페이스북을 이용하던 시절엔 단 한 번도 피드 알고리즘에 만화가 걸린 적이 없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선 만화를 보고 있다고 인식하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만화를 보고 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한 번은 <메리지 레드>의 한 편을 탐색 탭에서 우연히 보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져서 계정을 타고 들어가 약 7개월 전에 올라온 게시물을 겨우 찾아 이야기를 다 읽은 적도 있다. 이렇게 콘텐츠의 난장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읽고 ‘앞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 뒤에 뭔 일이 있길래?’ 하며 계정으로 유입되고, 에피소드를 다 읽고 마음에 들면 작가의 또 다른 에피소드를 읽었던 경우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되었다.

게다가 그사이 알고리즘은 열심히 발달해 한 번 만화를 보면 이후 추천 피드 곳곳에 만화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아빠는 N살> 시리즈를 알게 돼 팔로잉까지 했다. 아마 동일한 경로로 인스타툰을 접하고 인스타그램에서 만화를 보는 독자들이 많았던 듯하다. 2024년 1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3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은 네이버, 카카오로 대표되는 기성 웹툰 플랫폼에 이어 웹툰 독자가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 5위에 올랐다. 만화나 웹툰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봤을 플랫폼들보다 우위를 선점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은 곧 인스타그램에 그만큼 많은 인스타툰이 업로드돼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SNS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공개한 ‘세대별 SNS 이용현황’에서 말하길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반 이상은 인스타그램을 선호했다. 개성 강한 청년층을 인스타툰은 ‘공감’이란 키워드로 청년을 포용했다.
‘공감’: 끈끈한 유대라는 토대
‘공감’은 MZ 고객을 이끄는 주요 키워드로 한참 마케팅 시장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녹이는 마케팅 황금비법처럼 인기 있는 소재였다. 그만큼 ‘공감’은 완전히 무관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감정이다. 인스타툰을 포함한 SNS툰은 이 공감이란 감정을 건드려 팬을 만든다. SNS툰 대부분은 대체로 ‘일상툰’이란 말과 붙어 다닌다. SNS에 기성 만화나 웹툰처럼 복잡한 서사를 다룰 수 없다는 건 환경적 제약이 원인인 이유가 클 테지만 SNS가 지인들과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데에 정체성을 둔 플랫폼이란 점과 즉각적이면서 단발적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임을 생각하면 타 장르물이 업로드되기 어렵다. 또 만화나 웹툰을 즐기지 않을 유저가 보다 많이 모여있는 공간으로 일상툰만큼 인기를 끌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런 일상툰의 주요 주제는 청년 시대의 고민이나 관심사와 일맥상통한다. 진로, 직장생활, 꿈, 여행, 연애나 결혼, 조금 더 무거운 주제로는 자신이 경험했던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나 투병 등을 그려낸다. 감자 작가는 <감자툰>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중소기업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청년층 44만 명이나 ‘그냥 쉬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의 힘듦을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특히 자발적 비취업 상태인 청년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쉬려고 했다기보다 취직하고 난 뒤 부당 대우나 과도한 업무 등의 스트레스로 퇴사 후 취직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청년들이 취업 후 겪은 사회생활에서의 부당한 경험은 공감을 끌어냈고 감자 작가는 22만의 팔로워를 얻게 됐다.
한편, 16만 팔로워를 확보한 마님 작가는 국제결혼과 육아 등 소소한 일상을 인스타툰으로 그려내며 <마님툰>을 연재해 왔다. 특히 이미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만큼 그림과 사진을 적절히 이용해 만화를 그린다. 꾸준히 업로드되는 짤막한 만화의 댓글을 열면 비슷한 경험이나 더 황당한 경험을 했던 국제 커플들의 댓글이 달려있다. 조금은 다른 장르인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도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들의 공감을 사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며느라기>는 인물과 스토리 모두 허구의 이야기지만 계정 프로필을 민사린의 일러스트로 설정하거나 아이디를 민사린에서 따온 ‘min4rin’으로 설정하는 등 현실성을 높였다. 심지어는 일상에서 찍은 사진 구도의 일러스트와 실제 민사린이 쓴듯한 텍스트를 업로드해 이야기가 진짜인지 헷갈리는 독자들도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독자와 만화 인물 간 거리감이 좁혀지자, 독자들은 사린의 이야기를 단순 허구로 느끼기보다는 실제 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공감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콘텐츠, 서로 다른 장르였을지라도 인스타툰의 대부분은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해 팬을 끌어모았고 이를 가능케 해준 소재가 일상이 있었다. 지금 다뤄진 작품들은 인스타툰이면서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세 작가 모두 초창기에는 인스타에서 만화를 그렸지만, 인기를 끌면서 기성 웹툰 플랫폼으로 진출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감자 작가는 <유부 감자>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마님 작가는 기존의 작업을 <마님이네 미국 시골집 이야기>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고 있다. 수신지 작가는 인스타에서 연재됐던 작품을 웹툰 형식에 맞춰 수정한 뒤 카카오웹툰에서 동일 명의 작품으로 서비스했었다.
이 작가들 외에도 최근에 SNS에서 연재하던 작품이 큰 관심을 받아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웹툰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흔한햄>을 연재하고 있는 잇선 작가는 이쪽 분야에선 일가견이 있다. 그의 데뷔작인 <우바우>는 페이스북 컷툰과 베스트 도전에서 연재하다가 PD의 눈에 띄어 네이버웹툰에서 정식 연재가 결정되었다. 완결 후 차기작 연재에 애를 먹던 중 블로그에서 연재하던 <이상징후>는 카카오웹툰의 눈에 띄어 해당 플랫폼에서 연재할 수 있게 됐었다. 그리고 지금, 인스타그램에서 연재하던 <흔한햄>을 가지고 다시 네이버 웹툰으로 돌아왔다. 한겨레21과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잇선 작가는 작품 연재만을 생각하고 여러 방법을 모색했던 것 같다. 그가 찾은 돌파구는 SNS였고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잇선 작가가 모은 팬덤은 작가를 또다시 대형 웹툰 플랫폼으로 보내는 순풍이 되었다.

진실은 결국에 통하는 법
그렇다면 이미 작품들이 충분히 차고 넘치는 기성 웹툰 플랫폼에서 SNS에서 이미 공개된 작품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뭘까? 네이버 웹툰은 올해 초 처음으로 ‘연재직행열차’라는 공모전을 실시했다. 지원자가 작품을 투고하면 2주 만에 연재 여부를 통보해 주었다. 특히 생활툰/썰툰을 가장 먼저 신청받았고 타 장르와 별개로 ‘SNS 링크로 원고 대체가 가능합니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지금까지 네이버 웹툰이 진행했던 공모전은 단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이어야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생활툰/썰툰에 한하여 SNS에서 연재됐던 작품 또한 응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어쩌면 이미 SNS에서 검증받은 작품을 연재하겠다는 것으로도 비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웹툰 초창기 네이버 웹툰의 트래픽을 이끌던 생활툰은 더 이상 네이버 웹툰에서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게 됐다. <대학일기>로 연재를 시작한 자까 작가의 <육아일기>나 <쌉초의 난>을 제외하면 요일 순위의 극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생활툰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나마 앞서 언급됐던 인스타툰들이 어느 정도 상위권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보면 생활툰의 경우 SNS에서 재미를 보장받아야 그나마 험난한 웹툰 플랫폼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전히 긴 시간 기성 플랫폼에서 생활툰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그렇다면 인스타툰이 웹툰 플랫폼에서 장기 연재된 생활툰보다 인기 우위에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이 갖고 있는 팬덤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는 인스타그램의 팬덤이 네이버나 카카오 웹툰에 얼마나 유입되는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특히 인스타툰이 플랫폼을 옮기는 것은 여러 콘텐츠를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인스타가 아니라 웹툰 어플로 접속해야 한다는 보다 귀찮은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 오히려 팬을 떨구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10만이 넘어가는 팬덤이니만큼 또 아예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장기 연재 일상툰이 하위권인 만큼 순위제로 상위 작품이 쉽게 독자에 노출된다는 점, 하루에 연재되는 작품 수가 많은 만큼 최하위권 작품은 독자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러나 이야기만을 놓고 본다면 SNS툰이 기성 생활툰에 비해 대중에 더욱 친숙하고 호소력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대형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작품의 경우 대중성을 고려하면서 논란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정제한 작품을 내놓게 된다. 특히 커뮤니티처럼 이용자 간 격식 없는 대화가 오가는 공간에서 연재되던 작품의 경우 대사나 표현이 수정되거나 아예 위험 요소가 있는 컷이 삭제되고 업로드되기도 한다.
잇선 작가는 페이스북에서 <우바우>를 연재할 당시 가감 없는 표현을 썼기에 정식 연재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상툰에서만큼은 정돈되지 않은 표현이 독자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면서 오히려 작품에 더 큰 공감을 가져오게 만든다. 정돈되지 않은 듯한 날것의 느낌은 때론 진정성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진정성은 일상툰을 읽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이 이야기가 진실한 이야기라 생각하기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이란 독자와 작가 간에 신뢰를 쌓고 그렇기 때문에 걱정 없이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도 된다는, 배신당할 일은 없다는 약속의 보증이다. 이 보증 관계는 기성 웹툰 플랫폼에서 인기가 사그러져 가는 생활툰이 SNS라는 공간으로 밀려났다는 편견, 또 이미 작품이 공개되고 몇만 뷰가 쌓일 만큼 대중에게 소비된 작품이 다시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된다고 하여도 이렇다 할 소구점이 없다는 편견에 맞설 수 있는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SNS는 일상툰에게 대안의 무대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다. 특히 일상툰이 갖고 있던 가치가 SNS 주요 고객인 청년층의 욕구와 꼭 들어맞았다. 이렇게 잘 갖춰진 무대 위에서 청년들의 웃음과 절망을 녹여낸 스토리로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한 SNS툰은 여타 주변의 편견을 부수며 진정성을 원동력으로 자신들이 새롭게 찾아낸 무대에서 더 큰 무대로 옮겨가며 작품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