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화된 일제의 탄압으로 언론들의 시사만화나 풍자는 만화만문식의 에세이 스타일이나 해외 번안만화로 대체되었다.대신 아동이나 성인대상 장르가 분화해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 아동만화나 일반 어른들이 즐길만한 오락만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1930년대에는 많은 작가들이 아동만화 창작에 참여했다. 193년 김규택이 <어린이> 잡지에 연재만화 ‘씨동이의 대모험 세계일주’를, 노수현이 193년 <소년중앙>에 ‘돈 주머니’란 1회로 끝나는 만화를 발표했다조선일보는 <소년>잡지(1937191)를 창간해 또한 아동만화를 주도했다현재덕의 네 칸 만화, 임재천(林載天)의 <비행기 사냥>, 그리고 정현웅의 <홍길동>, 정청우(鄭靑羽)의 1칸짜리 연재만화 <코찡찡이>가 연재되었다한편<조선일보>가 193년 일요일 석간지면 3면을 할애해 <소년조선일보>를 만들어 발행하면서 1937년 1월 이후 더 많은 아동만화를 게재했다.
특히 이 시기 30년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는 대표적으로 최영수(崔永秀,1909)와 김규택(金奎澤,19019)을 꼽을 수 있다.최영수는 193년<동아일보> 입사 후, 동아일보의 전속만화가로 활약하며 많은 만화를 그렸다성인대상 연재만화 <전억망 일대기> (19331011), <얼간선생>(19331019119), <뚱딴지 영감님>(1933)등을 그렸으며 만문만화를 1933년부터 연재했다193년 <漫畵漫文>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웅초 김규택은 일본에 유학, 가와바타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 <개벽(開闢)>, 1933년 <조선일보>, <매일신보> 기자를 시작으로 <신동아(新東亞)>, <별건곤(別乾坤)>, <조광(朝光)> 등에 많은 단편만화, 그리고 만문만화 형식의 <억지춘향전>을 연재했다.
한편,태평양전쟁(1937)이 발발하자 일제는 언론이 폐간시키고 총동원령을 내려 국내에서도 만화가들의 제약이 심해지고 친일그림이 성행했다.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만화가 선전교화의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가로는 노수현으로 친일잡지인 <新時代>에서 삽화, 표지화, 만평 등을 그렸다노수현 외에 <新時代>에 만화를 그린 작가로는 정현웅, 안석주, 노수현, 김규택, 윤희순, 이승만, 박성규 등이 있다이외에도 직접 일본군에 종군화가로 활동한 작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김종찬(金宗燦, 생몰연대 미상)과 송정훈(宋政勳,191미상), 지성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