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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슈 레이더 #1

서찬휘의 만화 이슈 레이더 #1 (2013.09~2013.10)

2013-10-25 서찬휘
안녕하세요.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입니다. 이번호부터 ‘만화 이슈 레이더’라는 제목으로 만화계의 이슈 흐름을 한 달에 한 차례씩 정리하게 됐습니다이슈 레이더는 만화계 이슈들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기보다 이 사안에서 보아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만화계에 무엇이 필요한 관점이 무엇인지에 관해 짚고 논평하는 꼭지입니다. 필요한 경우 글은 물론 인터뷰 등 다양한 형태를 동원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오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첫 호에서는 10월 하순까지 있었던 최근 사안들 가운데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간윤), 애먼 기계적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고질병 못 고치나
2. 『영챔프』 브랜드 역사 속으로…… 대원씨아이, 『코믹챔프』+『영챔프』 통합한 새 온라인 잡지 『챔프D』 창간
3. 『키위툰』 노예계약 사태
 
 
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간윤), 주먹구구식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고질병 못 고치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이 지난 7월 25일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한국어판에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렸다 출판사의 청구에 따라 재심, 8월 29일 판정을 바꾼 사건이 있었습니다.
간윤이 이 작품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한 이유는 ‘음란성’ 때문입니다. 당시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결정내역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오는데요.
 
이 간행물은 외국 만화 번역물로, 스페인 내전으로 프랑스로 탈출,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활동 후 종전과 함께 조국으로 귀국한 주인공이 프랑코 독재정권 등 유럽과 스페인의 격동적인 현대사를 온몸으로 맞이했던 자신의 아버지 일대기를 그린 내용으로,성인 남성이 15세 여성 및 직업 여성과의 성행위와 남성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성추행, 남녀간의 성애 및 성행위 장면(93~94, 136,142,149~154) 등을 묘사 수록.    
 
문제는 이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려 하고 있는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표현 그 자체만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그 자체로 스페인 내전이라는 참상을 겪었던 작가의 아버지 세대 이야기로, 작품 속 묘사 하나하나가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단지 어떤 표현이 나왔는지만으로 유해하다고 결정한다는 것은 심의 절차가 얼마나 단순무식하고 기계적이기만 한 지를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만화는 청소년보호법 제18조 구분 및 격리 조항과 제19조 광고선전 제한 조항에 따라 광고도 할 수 없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별도 매대 없이 비치해선 안 되기 때문에 출판사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게다가 작품 표지에 큼지막하게 빨간색 표시로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낙인 같은 딱지가 붙기 때문에 창작물 표지의 미적 요소에 큰 위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낸 길찾기 출판사는 "작품의 맥락을 보고 하는 얘긴지 의심스럽다, 노출 장면 있지만 모두가 주인공 안토니오의 날 것 그대로의 역사" "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고 독자가 안토니오를 더 깊이 이해하게끔 배치된 장면들이 음란하다는 게 간윤의 결정"이라고 반발하는 한편 간윤에 재심의를 청구하고 보도자료 배포, 표현의 자유 전문가들의 자문과 지원을 구하며 전방위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심지어는 19금 딱지를 못 붙이겠으며, 차라리 재심 결과 나올 때까지 일시 품절을 시키겠고 재심의 결과마저도 청소년 유해매체로 나오면 절판도 감안하겠다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논쟁이 SNS 등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출판사는 페이스북 등을 통한 대중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꾀했습니다. 여기에 만화평론가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작품에 관한 글을 언론 등을 통해 쏟아내며 출판사의 방침을 측면 지원했습니다. 길찾기 출판사는 이러한 여론 흐름을 바탕으로 8월 14일 재심의를 청구했고, 8월 29일 "재심의한 결과 청소년유해매체간행물이 아닌 것으로 변경 결정하였음을 알립니다"라는 결정문을 통보받음으로써 사건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림 : 간윤의 재심의 결정문>
 
이 사건은 간윤과 청소년보호법(이하 ‘청보법’)이 새삼 다시 만화를 옥죄고 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97년 청보법 시행 당시 만화 탄압의 도구로 충실하게 움직였던 간윤은 이후 진흥 중심 기관으로 탈바꿈하며 한동안 다소 느슨한 심의를 보여주었지만 2012년 만화계를 뒤흔들었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유해 웹툰 지정과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의 무원칙·광범위 적용에 질세라 2013년 들어 무리한 유해매체물 지정을 반복합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7~8월에 걸친 사안이었다면, 그에 앞선 6월 27일에는 국내에 어렵사리 발매된 대형 타이틀 「죠죠의 기묘한 모험」 한국어판의 1~2권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때 간윤이 내건 결정사유는 ‘포악성’입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은 1차 발매된 분량 중 1권과 8권, 12권을 뺀 여덟 권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었는데요. 이때는 출판사 애니북스가 발매 당시에 이미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를 붙임으로써 자율적으로 독자 연령대를 높여놓았음에도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림으로써 빈축을 샀습니다.
 
간윤 입장에서는 정부가 내건 4대악 근절에 발맞추며 실적을 높일 필요가 있었겠으나, 그 결과 애초에 성인들 보라고 내놓은 책을 청소년들이 보고 해로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 것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심의였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판정 취소였습니다. 간윤 입장에서는 만화 심의가 얼마나 기계적이고 주먹구구식인지를 다시 한 번 만천하에 드러내며 체면을 구긴 사건이 되겠지만 만화계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사건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손쉬운 실적용 시빗거리로 탄압 카드를 꺼내들기 일쑤인 대중문화 심의기관들이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무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여론이지요. 아청법 헌법소원을 위한 탄원 등과 관련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법을 이용한 통제가 전횡이 될 때 이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여론 모으기입니다. 여론을 얼마나 주먹구구식 심의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모을 수 있느냐에 따라, 쉬 건드리느냐 건드리기 어려워하느냐가 갈립니다. 이러지 않는 국가기관이어야 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겠지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벡」과 관련한 출판사의 대응과 여론전이 이끌어낸 결과는 만화계가 앞으로도 사라질 리 없는 관제 탄압 사안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좋은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제는 만화업계 전체에 해당하는 업계 자율심의에 무게를 실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마침 지난 8월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뮤직비디오와 웹툰의 심의를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로 오는 12월까지 만화진흥법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이 자율심의는 사실은 만화진흥법 제정 움직임이 초기 단계이던 시기 일부 만화가들이 오해에 따른 극단적 반발을 보임에 따라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사안입니다. 결국 돌고 돌아 자율심의가 결국 다시 화두로 오르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안이 ‘웹툰’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웹툰이든 출판되어 나온 만화든 만화는 모두가 업계가 자율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선에서 관제 심의의 폭력성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영챔프』 브랜드 역사 속으로……
대원씨아이, 『코믹챔프』+『영챔프』 통합한 새 온라인 잡지 『챔프D』 창간
 
1994년 창간한 대원씨아이의 『영챔프』는 초반 성인풍을 지향하기도 했지만 이후 청소년과 그 이상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폭넓은 작품군을 보유한 잡지였습니다. 청소년보호법 사태로 성인지 시장이 사라진 이후 『팡팡』(유아) - 『코믹챔프』 (어린이)에서 넘어온 연령대를 소화하는 잡지가 되면서 다소 방향성이 많이 잡스러워지긴 했습니다만 2006년 7월 온/오프라인 병행 발행, 2009년 5월 온라인 전용 발행, 2012년 9월 『영챔프S』 제호로 전용 스마트 디바이스용 어플리케이션 출시 등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유지해 온 브랜드였지요. 그러던 『영챔프』가 이번에 『코믹챔프』와 병합하며 『챔프D』라는 온라인 잡지가 되었습니다.
 
『영챔프』는 9월 1일자로 내놓은 2013년 17호를 『챔프D』 창간준비호 격으로 내면서 『코믹챔프』의 간판인 「짱」과 『영챔프』의 간판인 「열혈강호」를 표지에 함께 내세웠고, 9월 16일부터는 『챔프 D』란 이름을 달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근 20년을 이어온 『영챔프』 브랜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챔프D』는 격주간으로 매월 1일과 15일 출간하며 가격은 매호 1천 원입니다. 여기에는 온라인 『영챔프』와 오프라인 『코믹챔프』에 연재되던 작품 가운데 해외작품을 뺀 작품들이 수록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잡지로는 『코믹챔프 NEXT GENERATION』이란 제목을 달고 『영챔프』 연재작들을 합쳐 내는데 『영챔프』를 소개되던 해외작품과 국내 작품인 「카페 벨로마노」가 빠집니다. 잡지 폐간이 그리 새로운 소식은 아니게 된 마당이지만 그래도 국내 잡지 만화 르네상스기를 이끌었던 이름이 이렇게 사라진다니 안타깝네요.
 

 
 
 
 
 
 
 
 
 
 
 
 
 
 
 
 
 
 
 
 
 
 
 
 
 
 
 
 
 
 
 
 
 
 
 
 
 
 
 
<그림 : 『챔프D』 준비호 격으로 나온 『영챔프』 2013년 17호 표지>
 
대원씨아이의 행보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온라인화 과정에서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지 않았나 하는 겁니다. 2011년 8월 대원씨아이의 모체인 대원미디어가 KT와 ‘올레만화’사업 공동추진과 사업협력을 목적으로 한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KT의 통신 인프라를 통해 온라인 만화 서비스를 넓혀 나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모았었는데요. 대원미디어는 자회사인 대원씨아이와 학산문화사의 콘텐트를 기존 방식대로 물량공세로 밀어 넣는 콘텐트 제공자(CP : Content Provider) 역할만 함으로써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 사이에 2012년 8월 24일 오늘닷컴이라는 만화 중심 통함 콘텐트 플랫폼을 열기도 했는데 콘텐트 노출도를 높이거나 작품을 제대로 연재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죠.
 
KT는 결국 3만 권이라는 콘텐트 수를 앞세우던 대원미디어 대신 작가가 주도하는 에이전시 누룩미디어로 제휴처를 옮겼고, 2013년 7월 17일 0시부터 KT 올레마켓 만화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웹툰 서비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현재 오늘닷컴은 전혀 이슈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대원이 모바일, 태블릿 시대에 접어든 이 시점에 시장 플레이어로서도 그다지 매력이 없는 입장임을 스스로 증명한 셈입니다. 그 때 물량공세가 아니라 제대로 매체를 접목할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당시 분위기는 제휴와 오늘닷컴 론칭을 토대로 주식 상승을 꾀하는 모습이었으니 그다지 생산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하겠지요.
 
지난 8월 26일부터는 만화와 게임 등으로 나름대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일본 스퀘어에닉스 사가 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과 손잡고 직접 대대적으로 종이 만화(페이지 만화) 방식의 유료 온라인 매체 진출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타파스틱에 레진코믹스에 KT 올레 웹툰까지 등장한 마당에 종이 만화의 강자인 외국 업체의 직접 진출까지, 한국 만화계는 그야말로 90년대를 방불케 하는 디지털 매체 폭발기를 겪고 있는 와중입니다. 대원씨아이, 나아가 대원미디어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카드로 잡지 통폐합을 시도한 셈인데 과연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을까 그 동안 행보에 비추어 보았을 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일본만화 수입으로 유지되는 규모라 할지언정, 국내 만화 콘텐트 취급 업체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곳이 주식 장사보다는 조금 더 공격적이고 생산적인 시도를 해 주길 바라는 건 괜한 바람이 아닐 테지요.
 
 
3. 『키위툰』 노예계약 사태
 
8월 30일 새벽 트위터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에 낯선 이름이 하나 등장했습니다. 『키위툰』이란 이름을 지닌 이 사이트는 모바일 게임회사인 팀블루바나나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웹툰 매체였는데요. 그곳의 계약 내용이 작가 사이에서 흘러나오면서 ‘노예계약’이라는 논란이 일어난 겁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계열의 노예계약 사례가 불거졌던 이른바 『팝픽』 사태의 여진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시점에 이번엔 만화 쪽 사례가 터진 셈입니다.
 
「저수지의 걔들」로 데뷔하고 네이트 연재를 거쳐 현재 KT에서 「그 마을의 히어로」라는 작품을 연재 중인 이동욱 작가가 인터넷 개인 방송을 진행하다 후배들에게서 『키위툰』 계약 조건에 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다소 문제가 있어 보였으나 후배들이 연재하는 매체라 공론화는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 후배 중 누군가가 타사와 출판권에 관한 계약을 따로 진행하려 하다 『키위툰』과 계약해지를 했고 그 과정에서 계약해지에 따른 불합리한 처우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다소 격앙된 마음에 작가들의 내부 커뮤니티인 카툰부머에 공론화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외부 검색이 허용된 상태로 설정되는 바람에 커뮤니티 외부로 글이 빠져나갔습니다.
 
이동욱 작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계약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손배소 건을 작가에게 전가, 인기도 확인은 영업 비밀, 계약 해지시 해외 전송권 및 번역권/번역물 소유권 등을 회사가 지닌다, 웹툰 안팎에서 파생하는 광고수익은 회사가 독점한다 등 매우 불합리한 조항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동욱 작가는 이러한 독소조항의 수정을 원했지만 사건은 이 매체에 연재하는 작가가 매체 편을 드는 글을 올리면서 느닷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정작 『키위툰』이 아니라 해당 사이트에 연재하던 사람이자 『키위툰』과 제휴를 맺어 아마추어를 신인 웹툰작가로 연결하는 웹툰 작가 중계소를 운영하던 사람이 "우리들은 노예가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글을 올린 겁니다. 그리고 저작권 운운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단한 작품 그린 사람이 있더냐고 힐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시각 카툰부머를 비롯해 선배 작가들은 "제 판단은 이렇습니다. 작가들은 어서 탈출하세요"(강도하 작가)라는 글을 올리는 등 후배를 염려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었습니다.
 
『키위툰』의 계약 조항은 말 그대로 노예계약이라 할 만큼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독소조항들로 가득합니다. 또한 『키위툰』은 문제를 공론화한 이동욱 작가와 연락하겠다는 약속도 어기고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급기야 연재 작가들이 선배 만화가와 창작 관련자들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단체 성명서를 낸 9월 2일 “작가님들께. 일시: 9월 6일 금요일 오후 7시 / 장소: 강남역 6번 출구 스타벅스 / 한 분도 빠짐없이 뵈었으면 좋겠습니다”란 내용으로 일방 통보를 함으로써 사건 해결보다는 무마를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지정 장소는 녹음도 거의 불가능한 오후 퇴근 시간대의 대형 커피숍이었죠. 이에 따라 『키위툰』 연재 작가 열다섯 명이 9월 4일 한국만화가협회를 방문해 도움을 청했고 한국만화가협회는 이들을 보호하면서 계약 해지 요구에 관한 『키위툰』의 답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9월 10일 『키위툰』은 변호사를 통해 계약해지와 명예훼손 건이 포함된 내용증명을 보냈고, 이에 9월 11일 한국만화가협회가 『키위툰』 대표에게 유감 표시와 더불어 불합리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만화계가 대응하겠노라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9월 12일에는 한국만화가협회가 『키위툰』 변호사에게서 "작가들 모두가 계약해지를 요청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개별적으로 이미 웹툰제공계약해지 통보"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키위툰』은 그 이후로도 보름을 넘긴 9월 말일이 되어서야 작품들을 모두 내렸습니다. 작품이 모두 내려가야 비로소 상황 종료라고 보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한국만화가협회 입장에서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겠지요.
 

 
 
 
 
 
 
 
 
 
 
 
 
 
 
 
 
 
 
 
 
 
 
 
 
<그림 : 작품을 모두 내린 『키위툰』 모습>
 
이번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건 ‘저작물 이용 허락’이라는 창작물 계약의 기본 성격에 관한 이해가 없을 때 어떤 사단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감시관을 자청하는 노예 선언과 다름 없는 행동을 할 때 그렇게 해서 얻은 작은 이익이 자기와 남을 어떤 위치에 놓게 하는지입니다. 『키위툰』 연재 작가들이 단체 성명서에서 밝혔듯 계약에 관한 작가들의 이해가 부족했고, 노예 선언을 한 작가가 이들의 전부도 아님을 알아야 하겠지만 2013년이나 된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창작자들에게 어처구니없는 계약을 들이미는 곳이 많고, 또 데뷔 작가가 되고 싶은 욕구에 자발적으로 속박을 감수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입맛이 꽤 씁니다. 하지만 비단 이러한 작은 매체 뿐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매체들이 신인 작가들에게 들이미는 조건이 상당히 불합리하다는 사실은 상당히 공공연합니다. 이 사안만이 아닙니다. 만화가들이 계약 조건의 불합리성, 또는 박하기 이를 데 없는 기본 원고료에 관해 감수하기만 하거나 오히려 동료, 후배들을 다그치며 “우리 ???가 손 떼면 책임질 거야?” 식의 발언을 퍼붓는 일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여전히 상존해 있습니다. 그것이 어느 선을 넘어갈 때 어떤 결과로 다가오는지 『키위툰』 사태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키위툰』 사태로 만화계가 얻은 것도 있습니다. 2003년 이래 “우리는 자생했다, 우리에게 선배가 어디 있는가”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던 웹툰 작가들로 하여금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함께 해 줄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보여준 겁니다. 그동안 젊은 웹툰 작가들의 모임인 카툰부머를 중심으로 웹툰과 관련한 다양한 사례들에 대응을 해 왔지만, 업체가 맘먹고 사고를 칠 때 법리적인 대응에서부터 압박에 이르기까지 사단법인 형태로 움직일 수 있음을 젊은 작가들이 목도하게 되었지요. 아울러서 만화계에 표준계약서에서부터 관련 변호사 상담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치들이 마련돼 있음을 알게 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선배 작가들이 나서서 진심어린 조언을 해 주기도 했지요. 이번 일이 젊은 웹툰 작가들에게 ‘연대의 힘’, 그리고 이 판에 혼자 서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 외 뉴스들]
 
▶ 인사동 쌈지길 지하1층 두 달만 만화가게 개장
서울 종로 인사동에 자리한 문화상품 골목 매장인 쌈지길 지하에 드림컴어스(대표 황재오)와 문화기획사 사람, 잇(대표 김성진)이 『두 달만 만화가게』를 열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9월 13일부터 11월 12일 두 달간만 39.6㎡(12평) 가량 작은 공간에 연 곳으로, 한국 만화 캐릭터를 전시·판매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 하네요. 최종훈, 신명환, 와루, 한성민, 이향우, 변병준 등 다양한 작가군의 원화/팝아트 전시와 더불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만화, 캐릭터상품, 작가 사인본 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달여가 지난 현재 만화 원화, 팝아트 그림들이 제법 나가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김성진 씨는 이름은 ‘두 달만 만화가게’지만 자리가 잡히면 계속하고 싶다는 의중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만화 없는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콘텐트 외부 제휴 박차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주도해 열어 화제가 되었던 만화 없는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가 외부 사이트와의 제휴를 통한 콘텐트 노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4일 개장 이래 콘텐트 확보에 힘써 온 에이코믹스는 근 한 달만인 9월 12일부터 포털 DAUM의 웹툰 연재 공간인 ‘만화속세상’에 마련된 게시판을 통해 일부 콘텐트를 제공하기 시작한 데 이어 10월 12일부터는 DAUM의 모바일 콘텐트 마켓 ‘스토리볼’에도 공간을 열었습니다. 스토리볼은 연재 중일 때엔 무료고 완결이 나면 유료로 제공할 수 있는 모바일 시장이어서 에이코믹스가 단순 게재와는 다른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읽힙니다. 웹진 운영만으로 수익을 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고 보면 에이코믹스가 어떤 선택을 해 나가느냐 하나하나가 만화 리뷰 매체, 저널이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을 지에 관한 지표가 될 테지요.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 서울시 송파구, ‘한국만화인협동조합’ 사업 아이템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경진대회 사회적기업 부문 최우수상 수상
서울시 송파구가 지난 9월 4일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201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경진대회 사회적기업 부문에서 한국만화인협동조합 만화로의 사업 아이템을 이용해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만화로’는 만화가 조재호 씨를 조합 이사장으로 40여 명의 만화가/만화편집자/칼럼니스트 등을 포괄하고 있는 협동조합으로, 지난 6월 29일 출범 이래 서울 2호선 신천역과 잠실역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잠실3사거리 지하보도 내 창업인큐베이팅센터에 사무실과 교육장을 두고 각종 만화 관련 사업은 물론 만화 직업/창업 교육 및 인력 양성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하고 있습니다.
 
 
[위 기사의 내용은 디지털만화규장각 편집부의 의견과 일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