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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 김동화 화백 인터뷰 : 소소한 다름, 그 아름다움을 말하다

김동화 작가가 소년만화로, 또 성인만화로 뜀뛰며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갈망했던 것도, 성인만화의 카테고리에 걸쳐 있는 ‘어른만화’로 십 년 넘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 2013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된 김동화 작가와 만났다.

2013-07-23 임지희
무작정 그의 만화 속 여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비교적 평범한 외모의 여주인공이라도, 외모와 성품과 재력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녀가 마냥 부러웠다.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판타지는 시대를 불문하고 어린 소녀들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일본에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 캔디>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동화 만화가의 작품이 있다. <아카시아> <내 이름은 신디> <붉은 진주>…. 흔히 만화가 김동화를 수식하는 말로 ‘한국형 순정만화의 창안자’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김동화 작가가 소년만화로, 또 성인만화로 뜀뛰며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갈망했던 것도, 성인만화의 카테고리에 걸쳐 있는 ‘어른만화’로 십 년 넘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 2013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된 김동화 작가와 만났다.
 

  
  
  
  
  
  
  
  
  
  
    
  
  
  
    
[이미지 : 2013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중]
    
먼저 2013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영광이에요. 참 고마운 동시에 긴장감을 주는 상입니다. 만화를 그리면서 이런저런 상을 받아왔는데, 대한민국만화대상도, 부천만화대상도 오늘의 우리만화상도 특정 타이틀에 수여하는 상이죠. 코믹어워드는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 의미가 남다른 것 같아요. 30년 남짓 때론 잘 할 때도 때론 못할 때도 있었던 나의 궤적을 살피고, 그것의 총합을 내어서 이 상을 주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주는 거겠죠. 나의 생을 긍정 받는 기분에 힘을 내서 또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지 마음먹게 됩니다.
 
그럼 힘을 받아 새 작품 구상에 착수하시는 건가요.

실은 지금 제일 몰두해 있는 건 작업실 짓는 일이에요. 의식적으로 작품과 거리가 있는 것에 몰두해보자, 해서 작업실 건축에 아주 세세한 요소까지 제가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설계도 진즉 나왔고 지금 토목공사만 마친 상황인데,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작업실의 풍경이 있어 그걸 구현하고 싶은 마음에 건축가를 귀찮게 하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자연을 좋아해서 그 속에 둘러싸여 있고 싶어요. 영국 시골의 정원이 있는 자그마한 집 처럼요. 가능하면 소박하고 아늑했으면 좋겠네요. 작품은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독자가 원하는 것 보다 내가 원하는 것.
 
밥벌이의 고단함과 창작의 카타르시스 사이에서 아직 고민하고 계신가요. 충분히 많은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걸 바탕으로 ‘자기 작품’을 펼칠 장을 충분히 마련하신 듯합니다만.
젊었을 땐 독자가 좋아하는 얘기를 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제가 해왔던 순정만화들이 그런 범주에 속했죠. 물론 정서적으로 섬세하고 소소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저에게 맞는 것이긴 했으나 독자들을 상당히 의식했었죠. 평범한 소녀의 신데렐라 스토리나, 애절한 로맨스 같은 것들 기승전결이 뚜렷한 러브스토리들이 그런 ‘눈치’의 결과물이었고요.
 
일본 소녀만화의 자장 아래 나온 작품들이었죠. 물론 순정만화를 그리는 게 싫었던 건 아닙니다. 일본 소녀만화의 패턴을 따라야 했던 환경도 있었고, 모든 부분을 체화해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 나의 역량에도 실망했고요. 소녀 독자들의 소중한 지지로 인기는 얻었지만 내 입장에선 내가 아니라도 다른 더 좋은 작가들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마음이 힘들었죠. 분명 나에게 더 맞는 옷이 있을 텐데. 이런 고민은 제가 <곤충소년> 같은 소년만화를 그리게도 했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더욱 깊은 갈등을 하게 만들기도 했죠. <황토빛 이야기>와 <기생이야기>를 하면서부터는 그런 고민은 거의 물러갔지만 여전히 자기 확신보단 의심이 훨씬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만화 다 접고 카페 하시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었죠.
(웃음) 진짜로. 소년만화 하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고, 어느 시점에선 그만해야 하는 걸 깨달았고 멈춰야 하는데 더 가버렸어요. 하면 안될 것을 해버렸었고. 그러니까 슬럼프가 오고 괴로워하면서 제주도로 갔던 거예요. 후배 하나랑 제주도에 내려갔지. 일주일 정도 차를 빌려서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땅도 보고 집값도 물어보고, 진짜로. 어차피 밥먹기 위해서만 하는 일 같으면 차라리 좋아하는 자연에 둘러싸여 카페하면서 살자. 만화 그리는 재주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했지. 반 이상은 진심이었어요. 그러다 ‘하고 싶은 것’을 처음으로 찾게 된 계기가 <서편제>였고.
 
그 얘긴 유명하죠. <서편제>를 연달아 네 번 관람하고 모든 게 바뀐 작품을 들고 나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거.
인터뷰 하면서 많이 얘기하긴 했지(웃음). 임권택 감독도 좋아했지만 특히 정일성 촬영감독을 좋아했어요. <서편제>가 뭔지도 몰랐는데 촬영감독이 그이라는 말을 듣고는 영상 하나는 기가 막히게 예쁘겠구나 싶어 보러갔던 거죠. 거기 오정해라는, 쌍꺼풀도 없니 둥그렇게 생긴 배우가 나왔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아름다운 배경에 스며드는 그 얼굴을 보고 영화가 끝나도 일어나질 못했고. 그 뒤로 내리 4일을 연달아 <서편제>를 봤고, ‘나도 우리의 것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한국의 이야기가, 한국의 풍경이, 한국의 사람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깊은지 몰랐던 거죠.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국적인 것’은 내 작업의 가장 큰 테마가 아닐까 싶어요.
 
그 후 곧 슬럼프에서 빠져나왔습니까.
그럴 리가요. 십 년을 넘게 커다란 눈망울에 12등신 미남미녀를 그려왔는데. 미남미녀들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들을 만들었는데. 암만 해도 내 손에서 ‘한국적인’ 게 안 나왔어요. 순정만화에선 눈을 세로로 길고 크게 그리잖아요? 세로로 눈이 길어지면 턱이 뾰족해지고 목이 가늘고 길어지고…. 아무리 연습을 해도 내가 바라는 한국적인 그 무언가가 잡히지 않아 짜증이 날 대로 났죠. 어느 날엔가는 연습을 하다가 화가 나서 스케치북에 마구 낙서를 했는데, 가로 줄을 마구 그은 곳에서 옆으로 기다란 눈을 발견한 거지. 눈을 가느다랗게 그리니 마침내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한국인의 등신비, 분위기가 잡히게 됐던 거고요. 그래도 화풍을 바꾼 초기엔 키도 많이 크고 눈도 크고. 과도기를 거친 후에 안정이 됐죠. 그게 <서편제>를 만나고 반년도 더 뒤의 얘기네요. 그 후 여성만화잡지 <투유>에서 한국적인 색체의 작품을 단편 연재를 하며 시도해봤고, 좋은 반응을 얻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꼭 ‘눈 찢어진’ 사람들이 나와야 했을까요? 전통적인 순정만화의 작풍을 따른다 해도 배경이나 의상, 무엇보다 한국적인 ‘이야기’로 갭을 메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제 경우엔 그게 안됐어요. 어떤 그림을 그려도, 어떤 배경에 인물을 얹어도 치마저고리를 걸쳐놔도 그게 한복으로 안보이고, 한국으로 안보였어요.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진행이 안됐어요. 불편하고. 아무튼 눈을 작고 가늘게 그리면서 그림에도 방향이 잡히고, 캐릭터를 잡는 것도 재미가 나고. 주연을 확실히 잡아 놓으면 거기에 따라 다양한 결을 가진 조연들도 자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완벽을 기하고 싶어서 한국적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한국 전통음악을 참 많이 들었어요. 대사 한 마디도 그 느낌에 맞게 쓰고 싶어서 몇 시간이고 창을 듣곤 했죠. 고궁에도 출근하다시피 자주 갔어요. <황토빛 이야기> 같은 경우는 중요한 대사들을 죄다 덕수궁에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보통의 순정만화는 인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 배경은 말 그대로 2차원적인 배경‘의 역할을 합니다만, <서편제> 쇼크 이후 작가의 작품은 배경이 당당한 주인공으로 떠오른 경향이 눈에 띕니다.
맞아요. 그건 굉장히 중요하고도 큰 변화입니다.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고 쫓으며 인물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인물을 에워싼 주변 여건도 받쳐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의 그림에서 인물화는 풍경화에 비해 발달이 덜했죠. 먼발치서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했고, 그 속을 움직이는 인물들 까지도 풍경의 일부로 여기던 한국인들의 정서가 거기에 있죠. 촬영기법으로 치자면 평면으로 보는 롱샷 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우리네의 구도에요. 그래서 나도 풍경 속에 인물을 ‘배치’해봤어요. 마을 전체에 인물이 조그맣게 나온다든지, 큰 나무 아래를 사람이 걷는 풍경을 풀 컷으로 쓴다든지. 단순히., 찢어진 눈을 그리고 한국적인 것을 그리기로 했다가 아니라, 그것을 시작으로 모든 것이 다 바뀐 셈이죠.
 
 
순정만화에서 소년만화로, 거기에서 다시 성인만화로. 그리고 최근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어 다시 화제를 얻고 있는 <빨간 자전거>의 경우는 ‘어른’을 위한 만화라고들 하죠. 늘 ‘다름’을 추구해 왔는데 한 결 같이 그 알맹이는 지향하는 바가 하나 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작고 소소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보편적인 이야기. 내가 해야만 했던 것을 할 때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점이 되어서도 ‘김동화’의 정서는 달라지지 않죠.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관심사는 변하게 마련이죠. <빨간 자전거>의 경우는 조금 특별해요. 자연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나이를 먹고 자식들이 장성해서 손자가 생긴 내가 내 또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뒀다가 꺼내서 만든 작품입니다.
 
좋아하는 장소, 영감을 얻은 곳이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홍대 앞에 16년을 살았어요. 한 10년 전 쯤부터 달마다 집 주변이 허물어지고 공사를 하더이다. 몇 년을 공사판 속에 살다 보니 어느 날인가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떠나야겠다 마음먹고 고민 없이 파주로 이사 왔어요. 자유로가 처음 생기던 무렵부터 글 구상하려고 심야의 도로를 달려왔던 곳이라 익숙하면서도 내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파주로 왔지요. 일산 도시 쪽이 아니라 파주 시골. 어디를 둘러 봐도 절반은 하늘 절반은 신록이 보이는 곳이고, 게다가 그 때 마침 내 마음에 쏙 드는 자판기를 발견했거든요.
 
자판기가 다 같은 자판기 아닙니까(웃음).
자판기 커피가 다 똑같은 맛이 아니잖아요. 세팅하는 사람에 따라 좀 더 쓰거나 달거나 하는 차이가 있죠. 내가 집에서 타먹는 그 맛과 거의 같은 곳을 찾아냈어요. 새벽에 자유로를 한참 달리다가 거기 차를 세우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산이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가끔은 저 앞산 정상에 UFO가 내려오지 않을까 상상도 했고.
 
영감을 얻는 곳이 익숙한 곳이라는 건 조금 의외입니다. 새로운 아이템은 ‘낯섦’ 에서 시작되는 것 아닌가요.
동네에 가끔 들르는 손님이 볼 수 있는 동네의 풍경과, 주민이 볼 수 있는 동네의 풍경은 깊이가 달라요. 손님일 때 몰라서 못 가던 곳을 알았고, 새로운 만남이 있었죠. 생각하며 걷다가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동시에 새로운 에피소드도 발견하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온 사람은 목적 없이 걷는 사람과는 자세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까운 곳에서 먼 이국으로 여행을 온 느낌을 저는 여기서 얻을 수 있었어요. 파주에 글을 찾으러 왔어요 나는. <빨간 자전거>는 내가 좋아하는 자연과, 좋아하는 파주 생활에서 비롯된 거네요.
 
<빨간 자전거>야말로 지금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였나요.
현재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요. 1999년인가 2000년에, 프랑스 앙굴렘에 갔어요. 서점에서 만화책을 고르고 있는 노부부를 보고 충격을 받았죠. 곧바로 ‘저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이야 오래 전부터 생각해 둔 것들이 있었지만 문제는 그런 이야기를 ‘어디에’ 할 것인가가 중요했어요. 열심히 그려서 단행본을 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 더 쉬이, 널리 읽힐 수 있는 곳에 연재를 하고 싶었죠. 신문이었습니다. 스포츠 신문이 아닌 4대 일간지여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중앙일간지에는 당시 만화가 실린 적이 없었어요. 네 컷 시사만화 그리고 <광수생각>을 제외하고는요. 전례 없던 신문연재를 해야겠다고 (혼자)마음먹으니 가지고 있던 아이템들의 가지치기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지만 특히 장년층에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 가족과 고향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것을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갈 요량이었어요. 그런데 각각의 사연들을 연결하고 싶은 거지. 처음엔 이장님의 오지랖으로 마을 사람들의 사연이 한데 모이는 걸로 할까, 고민했지만 곧 우체부로 마음을 정했어요. 들고 나는 모든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니까. 그 속에 담긴 감정들까지도 모두 전달해주던 우체부.
 
요즘 사람들은 우편집배원보다 택배기사님을 더 기다리긴 합니다.
그렇지. 나만 봐도 요새 우편집배원이 뭐 좋다고 기다리겠어요. 돈 내라는 고지서나 갖다 주는데(웃음). 어쨌든 <빨간 자전거> 속 우편집배원은 모두가 기다리는 존재였죠. 모든 게 느린 시절이었어요. 휴대전화는커녕 편지도 일주일씩 걸려 답장을 받는 때였는걸요. 약속장소로 많이 쓰던 곳에는 커다란 칠판에 왔다 감을 알리는 메모가 가득 붙어 있었고 셔츠 한 장도 일주일 걸려 맞춰 입던 시절이니까. 느림이 불편함이 아닌 애틋함을 주던 그 시절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하곤 연재할 곳도 결정하지 않은 채 우선 원고를 하기 시작했어요.
   
조선일보에 연재를 하셨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원고를 시작한 당시에는 거기에 연재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다는 말씀이신 것이죠?
선원고를 20화 이상 만들었어요. 어디에 연재하느냐는 뒤의 일이었죠. 무모한 일이긴 했지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야 말겠다는 일종의 결의였어요. 연재 매체를 결국 찾지 못해 단행본으로만 내더라도 이게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의 독자들에게 또 어른들을 위한 만화가 태부족한 한국만화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60대 어른들이 <드래곤볼> 같은 만화를 감명 깊게 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20화 이상 원고를 만들면서 1년이 흘렀어요. 그런 뒤에 이젠 부딪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신문사에 연락을 넣었고, 다행이 일이 잘 풀려서 연재를 했던 겁니다. 당시에 동세대 독자들에게 팬레터도 꽤 받았어요. 꾹꾹 눌러 쓴 편지 끝에 ‘누구누구 할머니 드림’ 이라 쓰인 편지가 참 많았죠. “선원고 작업을 하라”는 건 지금의 젊은 만화가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어디에 쓰겠다, 모월 모일부터 연재를 시작하겠다는 약속과 콘티 몇 화만 들고 일을 벌이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검증받고 입지를 다진 작가들, 그러니까 ‘밥벌이’ 걱정이 없다면 그것이 좋은 방법이겠지만, 연재를 끝내면 본인홍보가 되질 않아 작품준비는커녕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새내기 작가도 분명 존재합니다. 창작의 신성함 이전에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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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해도, 시간 손해를 봐도 그건 작가가 감당할 몫이에요. 본인의 부박함을 외부환경 탓으로 돌려선 안 됩니다. 다만 여기서 작가의 결의 이상으로 중요한 게, 시스템의 변화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는 거죠. 보름, 길어 봤자 한 달 정도의 준비기간을 주면서 대작을 만들라는 연재처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작가에게 청탁을 미리 하고,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제공하는 것 예컨대 선원고료 등의 지급 같은 게 따라와야겠죠.
 
게다가 <빨간 자전거> 때부터 ‘어디에 연재를 해서, 어떻게 보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 때는 신문연재가 최선이었다면 요즘은 인터넷 모바일 시장이 그 해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기도 하고, 메일을 체크하고 웹툰을 보는 등 내 경우에 인터넷은 자유롭게 쓰지만 스마트폰을 얘기한다면, 글쎄. 아직 휴대전화도 스마트폰이 아닌데다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영 익숙해질 수 없는 기기에요(웃음). 게다가 밖에 나오면 죄다 그걸 들여다보느라… 난 그냥 싫어요. 하지만 내 개인적인 기호와는 별개로 현재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면서도 그 보다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5060세대 이상까지도 여기에 자연스레 유입이 되도록 기술적인 문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일단 글자가 너무 작아! 쓸 일 없는 기능이 많은 것도 그렇고. 어쨌든 모두가 그 화면을 들여다보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처리하는 세상이라 그 속에 내 만화를 어떻게 담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그것에 최적화 된 작품을 만들어 서비스 할 수 있을지 새로운 고민이 생겼어요.
 
스마트폰 유저가 아니시라고요?
올해에는 꼭 스마트폰을 구입할 생각이에요. 잠재적 스마트폰 유저라고 해둡시다. 일단 사용을 한 다음에 더 싫어지든 아니면 좋아하며 즐겨 사용하게 되겠죠.
 
익숙해지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신가요.
거기서 볼 수 있는 내 만화를 만들겠죠. 얼른 장년층도 쉽게 만지고 쓰고 볼 수 있게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데!
 
조경규 작가의 <오무라이스 잼잼> 후기에 “시시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가고 싶다”는 표현이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공복상태가 되어 끊임없이 자기 의문을 가지고 의심하며 몰아 부친 후에야 마음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만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그 자신은 정작 소소하지 않지만 <빨간 자전거>에서, 군대 간 아들의 편지를 기다리는 노모의 이야기나 홀로 남은 할머니를 짝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마음 같은 건 어찌 보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너무나 우리 같아서 시시한 이야기다. 어디 한군데 뾰족한 구석이 없는 이야기를 김동화 작가는 소소하게 풀어간다. 그가 집요하게 파내려온 ‘한국적인 미’는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합쳐져 거대한 공감의 울림으로 퍼져나간다.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영미권, 유럽 등지에서도 감동은 여전하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와 공간과 문화가 달라도 매한가지다. 노부부의 느긋한 황혼과 파릇한 첫 연애의 추억 또한 다르지 않다. 환갑을 막 지난 작가가 추구할 다음 ‘다름’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전혀 다른 곳으로 튀더라도 놀랄 일은 없을 것 같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마저 울릴, 보편적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