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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CCA 사이트 공지사항의 “‘만화작가창작활성화 사업’의 최종 결과를 발표”전문 |
지난 9월 28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 이하 ‘콘진’)은 사이트 공지사항을 통해 “‘만화작가창작활성화 사업’의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콘진과 문화관광부가 추진하는 ‘만화작가창작활성화 사업’의 방향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만화가들에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창작 기회를 제공하고 출판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별적인 지원이나 기존 잡지에 대한 고료 지원보다도 국내 만화만을 싣는 새로운 연재 터전을 마련하는 쪽이 좋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즉 새 만화 잡지 창간을 위한 지원 사업인 셈이다.
그러나 사업 공고를 바라보며 상당수 관계자들이 우려했던 건 조건이 시쳇말로 워낙 까다로웠다는 것이다. 반드시 ‘새 잡지 창간’이어야 한다는 건 기존 잡지들도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며 지원 또한 1년분 연재 고료에만 맞춰져 있어 나머지 비용을 직접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공고에 “주관기관 및 참여기관은 총사업비 중 지원금을 제외한 사업자부담금을 현물 및 현금으로 부담하여야 함”이라고 명시)
하지만 중소 규모 만화 출판사들은 단행본 외에 잡지 유통망을 직접 뚫어내기가 힘들어 쉽사리 건드리기 어려웠다. 만화 총판 체제에 적응, 안주했다가 그나마의 영업력을 아예 상실하고 만 대형 만화 출판사들도 하나 둘 잡지를 접고 있는 마당에 이제 와서 새 잡지를 낼 생각을 할 리가 만무했다. 대원씨아이는 바로 얼마 전에도 아동지 『팡팡』을 접었고 다음 타자가 누구일 것인가로 온갖 추측이 오가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공고를 보면서 나왔던 반응은 “과연 어느 용감한 업체가 나설 수 있을 것인가”였으며 만화판에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만 돌 뿐이었다. 조건을 다시 정리해보자. 돈을 주기는 주는데 1년 치 연재 고료만이다. 유통이든 판촉이든 광고 영업이든 판매든 모든 건 알아서 뚫어야 한다. 그런데 잡지 사업이란 게, 찍는다고 판매가 해결되지도 않을뿐더러 정기구독자 수요만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결국 이 사업의 방향 설정은 처음부터 명료했다. 어느 정도 유통망과 판촉이 ‘준비된’ 업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청자도 적었고, 안팎으로 다들 갸웃갸웃 하는 와중에 결국 결정이 났다. 그리고 다들 경악했다. 선정 결과에 등장한 업체 이름은 다름 아닌 영화 전문지 『씨네21』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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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표지이미지중 |
『씨네21』이 영화판에 끼친 영향이나 영화 매체로서 지니고 있는 위상에 대해서야 두 말할 것도 없다. 어쨌거나 ‘가장 잘 팔리는 잡지’다. 게다가 『씨네21』은 영화 잡지임에도 꾸준히 영화 외의 여러 문화콘텐츠(혹은 서브컬쳐) 계열을 건드려 온 편이다. 예상 외의 분야에서 등장한 복병(?)에 다들 깜짝 놀라면서도 비교적 우려가 적은 까닭은 이 잡지가 지금까지 보여 온 만화 쪽에 대한 관심 덕이 어느 정도는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이번 발표 이후 안팎으로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오히려 기대치가 높은 걸 알 수 있다. 기존 만화판에서라면 도무지 답이 안 나와서 난감해 하던 ‘유통’의 문제가 영화 전문지의 가세로 해결이 된다. 이들이라면 서점 뿐 아니라 가판대에도 깔 수가 있다. 게다가 기존 잡지들에선 역시나 도무지 기대할 수 없었던 ‘광고영업’도 『씨네21』이라는 이름을 업으면 가능하다. 적어도 돈줄 확보에는 그 어디보다도 유리할 수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이번 결과를 보며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러 다른 판의 실력자를 이쪽 판에 끌고 들어오기 위한 전략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사업 평가 위원에 평론가와 만화가, 만화가 단체 사무국장은 그렇다 치고 잡지 업계에서 가장 큰 이해당사자일 모 대형 출판사 편집인이 포함돼 있는 점도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어찌되었든 『씨네21』은 이제 만화21이든 뭐든 만화 잡지를 낼 채비를 시작했다. 흔히들 “『씨네21』 만큼만 해 주면”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몇 가지 사항이 조금 눈에 밟힌다.먼저 『씨네21』은 지난 9월 28일, 사업 공모의 최종결과가 나온 그 날 “편집장을 모신다”는 내용으로 공지를 올렸다. ‘콘텐츠기획 5년 이상 경력자’ 한 명으로 잡지 및 만화콘텐츠 기획 경험자를 우대한다고 한다.
사실상 ‘외부 공채 공지’인 셈. 하지만 잡지의 색깔이나 방향이 편집장이 누구냐에 따라 상당 부분 결정되는 것임을 볼 때 잡지 전반에 대한 ‘밑그림’을 책임자 없이 먼저 그려 통과한 후 나중에 인물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살 법도 하다. 게다가 이 편집장은 기존 만화가 단체들과의 오만가지 신경전도 버텨내야만 한다.
무슨 말이고 하니, 이 사업을 통해 지원받는 작품들은 모두 한국만화가협회(만협)와 우리만화연대(우만연)가 사활을 걸고 진행 중인 <코믹타운(구:창작만화웹사이트)>(
http://comictown.co.kr)에도 연재를 해야 하는데다 만협이 연재작 선정과 편집 자문, 저작권 위탁관리, 연재작가 추천의 주체로서 참여할 예정이기도 하다. 좋게 말해 기존 만화계와의 조율과 권한 설정, 나쁘게 말하자면 상성이 맞지 않아 치받을 게 뻔 한 부분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 것인지가 사실 다른 것 이상으로 중요한 상황이다. 가히 발을 들인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게다가 『씨네21』은 ‘영화에 대한 정보와 담론을 담는 전문지’고 만화 잡지는 만화 전문 정보지가 아닌 ‘만화’ 그 자체를 생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너무나도 다르다. 말하자면 영화 전문지를 잘 만든다고 영화사를 곧바로 차려 흥행작을 쏟아낼 수 있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씨네21』은 그 차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만 한다. 영화와 연결 지을 수 있는 만화 원작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혹 세우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창작 산업은 비평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는 점과 프로덕션이라기보다 가내수공업 산업에 가까운 면이 있는 만화 제작 과정의 특성을 존중하며 안배해가지 않으면 1년이라는 기간이 길고 긴 시간으로 돌변할 공산이 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만화계가 “『씨네21』이 만화 잡지를 만든대!”라는 소식에 묘하게 흥분하고 있는 까닭은 다른 게 아니다. 그게 영화매체의 강자이자 잡지 잘 팔아먹기로 유명한 『씨네21』인지라 기존 만화 잡지, 기존 만화 출판사들이 제대로 하질 못했던(아니, 할 생각도자 안 했던) 부분들을 뚫어 ‘선례’를 남겨주길 바라는 거다. 까놓고 말하자. 돈 좀 많-이 벌고, 광고도 많-이 따고, 전국에 팍팍 뿌려서 팍팍 팔아 달라. 그거면 더 바랄 게 있으랴. 돈이 된다고 하면 다른 이들도 뛰어들 텐데.
만화잡지판에 봄날이 올까? 웃긴 일이지만 『씨네21』이 얼마만큼 해내느냐에 답이 달린 모양이다. 기왕 하는 거, 대박 내시라.
2006년 10월 vol. 44호
글 : 서찬휘
(seochnh@manwhain.com) ,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이야기터 『만화인』 지기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