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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의 「바람의 나라」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한 1심 판결, 그 이후

지난 7월 2일 일요일, 소식 한 편이 만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언론들을 통해 일제히 보도된 기사들의 제목은 바로 “「태왕사신기」 표절 아니다!” 말인즉, 만화가 김진(본명 김묘성) 씨가 내년 초 에서 방영할 예정인 드라마 「태왕사신기(太王四神記)」가 자신의 만화 「바람의 나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방송 작가 송지나 씨를 상대로 낸 소송이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2006-07-01 서찬휘

지난 7월 2일 일요일, 소식 한 편이 만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언론들을 통해 일제히 보도된 기사들의 제목은 바로 “「태왕사신기」 표절 아니다!” 말인즉, 만화가 김진(본명 김묘성) 씨가 내년 초 에서 방영할 예정인 드라마 「태왕사신기(太王四神記)」가 자신의 만화 「바람의 나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방송 작가 송지나 씨를 상대로 낸 소송이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주1] 「태왕사신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투자유치를 위해 배포된 드라마 시놉시스가 원고의 저작물 「바람의 나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인지 여부 : 사건 번호 2005가단197078

이번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04년 9월 14일 <김종학 프로덕션>은 방송 작가 송지나 씨와 함께 「태왕사신기」라는 작품을 제작하겠다며 연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시놉시스(Synopsis : 줄거리 혹은 개요. 사전 풀이로는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알기 쉽게 간단히 적은 것’)을 배포했다. 문제는 그 내용이 만화 「바람의 나라」의 줄거리와 구도, 등장인물과 주요 개념 등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바람의 나라 22권 표지 이미지
<바람의 나라> 22권 표지 이미지

이러한 일련의 유사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드라마 제작자 측의 해명을 요구하기 위해 만화 독자들이 뭉친 <바람의 나라 무단 도용 대응 본부>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바람의 나라」의 작가 김진 씨는 2005년 5월 26일, 「태왕사신기」의 작가 송지나 씨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바람의 나라」는 당시 이미 온라인 게임으로 진출해 호평을 끌어낸 바 있으며 드라마?뮤지컬화에 대한 이야기도 오가고 있던 터, 이 정도로 유사성이 드러나는 작품이 먼저 화면을 타려 든다는 건 금전 이전에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작품 보호 차원에서도 허락할 수 없는 문제였을 터이다. 하지만 1년여 만인 지난 6월 30일,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며 소송비용은 원고 부담으로 한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냈다. 언론 보도는 이틀 뒤인 7월 2일부터 일제히 시작했다.

태왕사신기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태왕사신기의 송지나 작가,
김종학 PD, 주연배우 배용준 (사진 발췌 : 마이데일리)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바람의 나라 무단 도용 대응 본부>는 물론 커뮤니티, 블로그 등에서 활동해 온 만화 독자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난 5월 대마초 소지 문제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태왕사신기」의 외국인 촬영감독에 대한 재판까지도 ‘한류 열풍과 국익 등 드라마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자는 판단’으로 미뤄준 사실을 들어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2일 당시에는 판결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고 따라서 반응들 또한 기사들의 내용을 인용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들은 대부분 ‘최종 저작물이 아니라 개요를 정리한 시놉시스로는 이미 출판한 완전한 형태의 만화와의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고, 시놉시스가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2차 저작물이라 해도 역사적 사실은 공공 영역에 해당해 어느 한 작가의 저작물로 보기 어려워 동일한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이용했다 해도 저작권 침해로는 볼 수 없다’ 정도로 요약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분노로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어쨌든 냉정함을 견지하려던 이들의 발언이 간간이 이어졌다. 이들은 당시 판결 전문이 공개되지 않고 당사자들에게만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자면 ‘표절 아니다’라는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는 기사들의 천편일률적인 논조가 다분히 피고 측 입장인 <김종학 프로덕션> 측에서 벌인 ‘언론 플레이’일 것이라는 점, 또 기사들에서 드러난 부분에는 ‘표절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언론 기사들에 일희일비,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을 주문하는(시쳇말로 ‘낚시질에 낚이지 마라’고 다독이는) 입장을 취했다.



어느 쪽이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작성했고 작품의 줄거리와 개요를 담고 있는 시놉시스가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에 근거가 미미하고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입장차를 막론하고 제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투자 유치를 통해 얻고자 하는 비용은 한두 푼이 아니며 그만큼 구체적이고 명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대본이 나온 후에 판단하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주 껄끄러운 판례가 똬리를 틀고 있는지라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가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라는 이희정 씨 만화의 설정을 상당 부분 도용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다소 종잡기 어려운 논리를 전개한 끝에 드라마가 만화에 비해 여러 요소에 격차가 있어 ‘예술성과 창작성을 달리하는 별개의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는 식으로 판결한 바 있다.

소송은 일단 패소로 끝났다. 어떻게 해석하든 어쨌든 ‘소송에서 진’ 것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판결문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무리한 꿰어 맞추기는 앞으로 김진 씨 측이 풀어 나가야 할 숙제들이다. 이미 <김종학 프로덕션> 측은 시놉시스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대본 작업을 진행 중이라 공공연히 밝혀 왔으며, 따라서 친절한 조언대로 대본으로만 초점을 맞추면 저작권 침해 논란은 슬그머니 퇴색할 공산이 크다. 또한 간도 크게 똑같이 작업을 한대도 판례를 들어 피고 측의 손을 들어줄 공산이 있다.

차포를 다 떼고 맞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만큼 덤벼들어야 할 지점이 명확해진 건 있다. 2심, 그리고 3심이 진행된다면 당사자는 물론 만화 독자들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한층 더 냉정하되 짚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뜨겁게 달려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의 구멍들이 전화위복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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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중심의 대중문화 언론 『만』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표절 여부에 대한 찬반이 아닌, 다만 이 사안을 두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참여해보시기를 바란다.
http://mahn.co.kr/marsheaven/survey_baram/


2006년 6월 vol. 41호
글. 서찬휘(seochnh@manhw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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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