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면 누구나 공주가 되는 상상을 한다. 부채를 팔랑이며 드레스 자락을 들고 춤을 추고 싶고 “오오~ 왕자님” 드라마틱한 사랑도 빠질 수 없다. 여성들은 공주 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이미지-우아한 자태와 아름다운 용모, 풍요와 화려함 그리고 고귀한 혈통을 동경해 왔다. 여성이 선망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공주는 궁극의 이상형이다. 그리고 공주를 욕망하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공주를 만들어 왔다. 순정만화 속에서 이들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만큼 매력적인 것이 있던가? 패전국의 공주와 승전국의 장군이 꽃피우는 비극적 사랑 <아뉴스데이>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서사비극로맨스의 전형이다.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고결한 영혼을 지닌 아르벨라 공주는 로마 장군 마커스의 집에 노예로 끌려온다. 나라를 멸망시킨 원수에 대한 증오는 우아하게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어요!”라는 비장한 말을 내뱉는 것 외에 실질적인 힘은 없었지만 말이다. 약속처럼 사랑에 빠진 두 주인공은 이제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서서히 주인공들을 옥죄이는 시련 앞에서 이들은 두 손 맞잡고 죽음으로 사랑을 지킨다.
황미나의 1982년 작품 <아뉴스데이>와 <엘 세뇨르>(1988), 김혜린의 <테르미도르>(1988)에 이르기까지 당시 로맨스 만화의 거대축은 비극적 사랑이었다. 서구나 역사 속 가상국가를 배경으로 왕족이나 귀족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일종의 공식이 되었고 많은 소녀들을 눈물짓게 했다. 독자는 턱을 괴고 두 눈 반짝이며 비운의 여주인공에 감정이입했다. 사랑 외에는 가진 것 없으나 그저 사랑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그 로망에 한숨지었다.
2. 이 한 몸 부서지도록! 자기 희생형 공주 |
1990년대 나타난 한 무리의 공주들은 여전히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만, 다만 사랑만으로 살지 않으며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켰다. 다른 말로 이들은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고난의 공주들이었다. <프린세스>(한승원, 1996)의 비이와 <바람의 나라>(김진, 1992)의 연, <북해의 별>(김혜린, 1983) 안헬리나처럼 연인을 향한 사랑은 더 높은 이상을 위해 희생되거나 모성애로 변모한다. 공주는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눈물 흘리면서도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은 연인의 완벽한 휴식처이지만 스스로는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의 이름으로 사라진다.
연과 비이의 죽음은 만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교량 역할을 한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아들과 딸은 다음 세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중요한 순간에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없다. 모든 헌신은 아내의 몫으로 남는다. 그녀들의 삶은 외적으로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내적인 충만함으로 가득하고 자발적인 희생의 모습을 띄고 있다. 스스로 무엇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기력하지만, 성모 마리아처럼 거룩하다.
3. 내 인생은 나의 것~♬ 운명 개척형 공주 |
일단의 공주들이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공주가 나타난다. 1986년부터 시작한 <아르미안의 네딸들>의 샤르휘나가 대표적인데 이 공주는 단순히 연인의 조력자에 그치지 않고 자발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사태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주변 남성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마침내 신의 경지에 이른다. 신일숙의 장기인 아마조네스-여전사형 캐릭터가 대개 여기에 속하며 이 같은 특징은 가장 남성적인 세계였던 중세를 배경으로 한 <리니지>(1993)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박탈된 왕위를 되찾기 위해 정통 혈통을 계승한 왕자는 마법사와 기사 등 여러 조력자를 모은다. 이들 중 유일한 여성인 로엔그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녀는 인나드릴의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집을 뛰쳐나와 모험에 합류하고 스스로 결혼상대를 택하는 등 역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별빛속에>(강경옥, 1986)의 시이라젠느는 외계 별의 왕녀가 되어 별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고 <여왕의 기사>(김강원, 1998)의 유나는 세계의 봄을 가져오는 대신 자신은 죽어야 하는 운명을 극복한다. 이제 여성은 남성의 등 뒤에서 나와 자기만의 자리를 만든다.
멀리 서구의 어딘가 혹은 가공의 세계 어딘가에서 구현되던 공주는 차츰 현실 속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다. 또한 사랑에만 몰두하거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타자화 되던 패턴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입헌군주제의 대한민국이라는 설정의 <궁>(박소희, 2002)은 그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채경은 지금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한국의 공주이며 일반인의 신분으로 왕세자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공주’가 바로 그 점 때문에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꿈이었다면 ‘자고 일어나니 공주’에는 현실 속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녀가 궁에 들어가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그만큼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공주라는 지위는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이다. 이 어색한 긴장을 극복하기 위해 채경은 개그형 공주의 길을 택한다. 남편의 등짝을 보며 침 흘리고 순대 생각에 잠 못드는 푼수가 된 것이다. 독자들은 현재의 나를 버리지 아니하고 지금 그대로의 자신으로 공주일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공주의 품위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것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한 방법이라면 또 다른 방법은 공주의 영혼을 지닌 일반인을 만드는 것이다.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이빈, 1996)의 신혜정이나 <쿨핫>(유시진, 1996)의 동경이는 공주처럼 오만하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성을 쥐락펴락하며 눈을 한껏 치켜 뜬 자태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아뉴스데이>의 사랑에 목숨 건 공주에서 <바람의 나라>의 자기 희생형 공주를 지나 <리니지>의 운명 개척형 공주와 <궁>처럼 일상 속에서 구현된 현실밀착 개그형 공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투영하는 공주의 상은 부단히 변모하고 있다. 그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며 능동적인 의사결정자로 거듭나는 변화를 포착한다. 이제 우리의 공주가 갈 길은 어디인가? 궁극의 공주는, 마침내 일상 속에 안착하여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아닐까? 나 그리고 당신, 지금의 우리들 말이다.
2006년 8월 vol. 42호
글 :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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