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계 소식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예술과 우정의 공존: 2014년 대만 국제만화가대회

1996년 ‘동아시아만화대회’를 계기로 시작된 ‘국제만화가대회’ (International Comic Artist Conference 약칭 ICC)는 세계 각국의 만화가들이 우정과 화합을 통해 상호 이해를 촉진하려는 국제적인 민간교류기구로 가입국들이 매년 돌아가며 주최하는 만화가들의 축제이다.

2014-12-01 이정헌
1 애하4.jpg
 
1996년 ‘동아시아만화대회’를 계기로 시작된 ‘국제만화가대회’ (International Comic Artist Conference 약칭 ICC)는 세계 각국의 만화가들이 우정과 화합을 통해 상호 이해를 촉진하려는 국제적인 민간교류기구로 가입국들이 매년 돌아가며 주최하는 만화가들의 축제이다. 

국제만화가대회라는 이름이 무척 딱딱해 보이지만 그 안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일 년에 단 한 차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인과의 만남이지만 만화를 그린다는 단 하나의 동질감으로 함께 웃으며 친구가 될 수 있는 마법의 시간이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

올해로 열다섯 번째로 열리는 국제만화가대회는 대만의 가오슝시에서 개최됐다. 가오슝은 대만의 동남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예전 인천의 느낌이 든다. 최근 무역업이 크게 발전하며 초고층의 빌딩과 호화로운 건물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작고 예쁜 어릴 적 우리 동네 같은 포근한 느낌도 간직하고 있다. 웅장함과 소박함이 함께 공존하는 가오슝에서 열린 제 15회 국제만화가대회의 현장으로 함께 가 보자. 


첫째 날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오슝에 도착하다


대만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인천국제공항에 40여 명의 만화인과 관계자들이 모였다. 처음이라 어색해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매년 참가하는 국제만화가대회 베테랑 작가들도 제법 있다. 젊은 웹툰 작가부터 원로 선생님들까지 적지 않은 나이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한 참가자가 비행기 출발 직전에 겨우 도착하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지만 모두가 빠짐없이 탑승하였고, 무사히 비행기는 출발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대만 가오슝까지는 두 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이 걸렸다. 11월 중순으로 제법 춥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대만은 우리나라의 초여름 날씨였다. 그런 현지 날씨 때문에 이맘때면 우리나라에서 골프여행을 많이 온다는 가이드의 안내를 들으며 삼박 사일 동안 묵을 호텔을 향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숙소인 화왕호텔에 짐을 정리한 뒤, 다음 일정까지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숙소 근거리에 있는 ‘애하(愛河, Love River)’를 산책하기로 했다. 가오슝의 최대 운하인 애하는 일찍부터 가오슝의 운수,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이름 그대로 사랑의 강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풍광이 아름다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길을 따라 야자수가 늘어 있고, 강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에는 노천카페가 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담소를 나누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이희재, 김광성 선생님 등은 아름다운 애하의 풍경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는지 화첩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 그 대단한 열의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2 전야2.jpg
2 전야3.jpg
 
첫날의 유일한 일정은 개막 전야제인 환영만찬이다. 숙소인 화왕호텔의 바로 길 건너인 푸롱호텔에서 환영만찬이 시작되었다. 각국 대표와 작가들의 인사가 계속되는 동안 멋진 대만의 요리들이 우리들의 허기진 속을 기쁘게 채웠다. ‘샹차이’라는 채소의 향 때문에 어려워하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리 없이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작가들은 입장할 때 나눠준 사인지에 멋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모두 모아서 다음날 개막식 행사에 쓰인다고 하니 작가들은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올해 국제만화가대회에는 우리나라의 39명의 참가자를 비롯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마카오, 말레이시아, 핀란드에서 총 179명의 작가들이 참가했고, 오늘 이 자리가 처음으로 모두가 모이는 자리이다. 매년 참가했던 작가들은 안면이 있는 타국의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테이블로 이동해 함께 건배를 한다. 아직 수줍어하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잔을 들고 몰려오는 외국인들과 금방 친구가 된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만찬은 끝이 났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첫날밤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둘째 날 : 개막식과 문화체험


3 개막4.jpg
 
본격적으로 국제만화가대회가 시작되는 둘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조식을 마친 작가들은 모두 모여 개막식이 열리는 ‘보얼 예술특구(駁二藝術特區/The Pier-2 Art Center)’로 이동했다. 이곳은 가오슝시 문화국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버려진 창고를 개조하여 전시 및 공연 등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으로 가오슝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사탕수수를 수출하기 위해 보관했던 대당창고들이 시간이 지나 이렇게 멋진 예술단지가 되었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개막식이 열리기로 했던 장소가 지난 8월에 연쇄 가스 폭발로 무너져 야외에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장소가 바뀌어서 그런지 진행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더운 날씨 때문에 고생했지만 무사히 개막식을 마치고 다음 일정을 향해 이동하였다.

문화탐방을 가던 중, 대만의 유명한 파인애플 과자 ‘펑리수’ 상점에 들렀다. 대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심사하여 최고로 뽑힌 상점은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는 기회를 얻는데, 우리가 들린 곳이 그중 한 곳이다. 시식 코너에서 시식을 하고 마음에 드는 과자의 번호와 수량을 적고 계산을 마치면 종업원이 포장을 하여 손님에게 제품을 전달하는데, 상점을 나온 작가들은 뭐에 홀린 듯 양손 가득 과자꾸러미를 들고 있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4 탐방1.jpg

오후 일정은 가오슝시의 문화탐방으로 첫번째로 방문한 곳은 ‘펑이서원(鳳儀書院)’이었다. 1814년(?, 지아칭황제 19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대만에 근대 국민교육이 보급되기 전, 주요한 교육기구 중 하나였으며 1985년 고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서원을 자유롭게 둘러보며 스케치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홍마오 항구(紅毛港)’. 이곳은 예전부터 서양인과의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서양인의 붉은 머리카락을 지칭하는 ‘홍마오(紅毛:붉은 털)’라 불리기 시작했다. 개막식이 열렸던 ‘보얼예술특구’와 더불어 홍마오문화구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일몰과 유람선, 신선한 해산물요리 등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내항을 돌며 세계 4위의 화물수송량을 자랑하는 화물선들을 보고, 가이드를 받으며 전시실을 돌았다.

이날의 저녁만찬은 ‘홍마오 항구’ 내의 ‘고자탑 식당’에서 진행되었는데 식당 바닥이 천천히 회전하며, 식사를 하는 동안 항구의 전경을 보여주는 것이 색달랐다. 


셋째 날 : ‘보얼 예술특구’ 자유 관람과 국제만화포럼 참석


5 보얼1.jpg
 
개막식 때문에 한 번 방문했던 ‘보얼 예술특구’를 다시 관광하는 스케줄이라 이건 미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야 말로 큰 오산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늘부터 이틀 동안 아마추어 만화축제가 열리는데, 주말에 산책을 나오는 가오슝시 시민들까지 합치면 자그마치 1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아마추어 만화축제의 열기도 대단했는데, 더운 날씨에도 몇 시간씩 줄을 서며 행사가 열리는 건물로 들어간다. 일본 만화풍이 짙은 것은 아쉽지만, 만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5년 전 방문했던 한 작가는 대만 만화의 상상도 못했던 발전을 놀라워하며, 또 다음번엔 얼마나 변해있을지 많이 기대가 된다는 멘트를 남겼다.

국제만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가오슝시의 대표 시립도서관인 ‘가오슝시도신총관’으로 이동했다. ‘국제만화포럼’은 ‘국제만화가대회’의 가장 주된 행사로 그 해의 주제에 맞게 각국의 작가들이 포럼의 발제자로 행사가 진행된다. 첫 번째 포럼 주제는 ‘세계 각국 만화가의 디지털 창작 현황’으로 이종범 작가가 발제자로 나와 스케치업으로 구연되는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시연해야 하는데 중국어로 된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 난감할 뻔 했지만 발제자의 능숙함으로 무사히 발제를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제는 ‘각국 만화의 해외 홍보 전략’으로 연제원 작가가 발제한 ‘한국만화의 해외진출’로 진행되었다. 
두 번째 포럼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오재록 원장이 진흥원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의 만화진흥원의 현 상황이 매우 성공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모든 나라의 포럼이 끝난 후에는 국제만화가대회의 마지막을 알리는 폐회식과 다음 개최국인 우리나라에 깃발 전달이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는 내년이 네 번째 국제만화가대회 개최로 서울에서 1회, 부천에서 2회의 대회를 진행하였다. 특히 내년에는 수도권이 아닌 대전이 개최지로 선정되어 준비한다고 하니 많은 만화인들의 관심 속에 더욱 멋진 행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국제만화가대회의 마지막 행사인 만화가의 밤을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만화가의 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송별회이며 차기 대회 장소를 소개하는 시간이다. 대전에서 온 참가자들은 각 테이블을 돌며 차기 개최지인 우리나라의 대전을 열정적으로 홍보했다. 함께 하는 마지막 자리라는 생각을 했는지 그 어느 때보다 큰 웃음으로 잔을 부딪치고,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려주며 명함을 교환한다. 삼일간의 대회 일정이 피곤할 법도 하지만 작가들에게는 헤어짐의 아쉬움이 더 큰 듯하다. 이렇게 셋째 날의 일정은 작가들의 열정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넷째 날 : 굿바이, 가오슝!

6 포럼4.jpg
 
마지막 넷째 날은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어떤 이들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관광을 하거나 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으로 이동하기도 했고, 근처의 마사지샵에 몸을 맡기는 이들도 있었다. 집합 시간에 모두 모여 공항으로 이동, 출국 수속을 마치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내에서 이번 ‘국제만화가대회’에 대해 잠시 되돌아보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행사가 매끄럽지 않게 진행된 부분도 있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한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는 국제만화가대회가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대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만화를 그린다는 단 한 가지 공통점만으로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내년 우리나라의 대전에서 열리는 제 16회 국제만화가대회가 더 많은 작가들이 그 기적의 순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