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입니다. 만화계의 이슈 흐름을 한 달에 한 차례씩 정리하는 ‘만화 이슈 레이더’가 돌아왔습니다. 10월 중하순에서 11월 중순까지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짚고 무엇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월야환담」 레진코믹스 연재 개시 ? 크로스뷰 채택
2. 제13회 만화의 날 ? 이젠 만화가가 즐기는 행사로
3. 한국만화연합, 이번 국회 회기 내 아청법 개정안 통과 촉구를 위한 성명서 발표
4. 조선일보, 출판만화 검열 요구 ? 표현의 자유 보장을 ‘허점’으로 지목하다
1. 「월야환담」 레진코믹스 연재 개시 ? 크로스뷰 채택
큰 인기를 끌어온 현대판 팬터지 느와르 「월야환담」의 만화판이 지난 10월 29일 레진코믹스를 통해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휘긴이라는 필명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홍정훈 작가의 원작을 「서유기 플러스 어게인」 「잭 프로스트」 등을 그린 고진호 작가가 만화로 그렸는데요.
시리즈를 거듭하며 화제를 모아온 원작의 이름값 덕분인지 연재를 처음 시작한 10월 29일 짧게나마 레진코믹스가 서버다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연재 개시와 함께 벌인 코인 증정 이벤트가 꽤 효과가 있었죠. 레진코믹스 내부 결제 수단인 코인의 최소 결제 단위인 ‘20코인에 3900원’을 기준으로 놓으면 1코인당 195원인데 1등에게 1000코인을 줬으니 195,000원 정도를 선물한 셈인데 한 회당 대체로 2~3코인 정도씩을 쓰게 하니 이만하면 제법 많은 만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작품 자체에 관한 관심도가 가장 컸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원작 팬들로서는 원작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고 다소 아쉬워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으나, 만화를 맡은 고진호 작가는 원작 그대로를 옮기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 연재와 함께 주목해 봐야 할 사안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는 레진코믹스가 만화 유료화 이슈에 매우 유연히 대응하는 매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인데요. 일단 레진코믹스는 기본이 유료고 공개된 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료로 풀리는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찍 보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것이죠. 그런데 「월야환담」은 원작자인 홍정훈 작가의 요구로 오히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비용이 두 배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홍정훈 작가는 완결나면 무료로 정주행하는 식으로만 보면 ‘연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방했습니다.
본래 본격적인 상업만화의 매체 연재란 연재하는 동안의 제작비가 보장이 되지 않으면 동력을 얻기 힘든데, 기존의 웹툰 제작이 막 진입해들어온 젊은 신인 작가군이라면 모를까 이미 제작 시스템을 일정 이상 갖추고 있는 중견들은 무료 연재 대신 포털이 제시하는 기간별 전송권 이용허락 계약금으로는 제작비 자체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식객」의 허영만 선생이 올 4월 전문 취재와 제작 보조 등을 위한 화실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에 월 3500만 원을 제시했으나 포털들이 모두 거절했다는 말은 많은 점을 시사하지요. 말인즉 포털 사이트는 젊은 작가 한둘 정도에 맞출 수 있는 최소 비용 선에서 최고의 일정과 분량과 질을 뽑아내길 바라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웹툰 작가들이 온갖 수를 동원해 굉장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밀도 높은 작품 제작은 많은 경험치를 필요로 하지요. 홍정훈 작가의 발언은 이렇듯 호흡 긴 작품의 밀도 높은 제작 과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재마다 그에 걸맞은 비용이 제시되어야 하고, 「월야환담」 이를 기다렸다 무료로 보는 이들까지 그대로 수용해서는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싸게 보려면 제 때 보고, 아니면 두 배로 돈을 내라는 것이지요. 작품에 관한 자신감도 좋지만, 이러한 요구에 바로 대응하는 레진코믹스의 방침이 굉장히 유연해 보입니다. 유료화 모델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방침이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월야환담」이란 대형 타이틀의 연재 개시는 레진코믹스가 2013년 하반기 만화계에 유료화 이슈를 불러 일으켰을 뿐 아니라 나름대로 ‘성공적 연착륙’을 이뤄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 이 작품을 공개하며 레진코믹스는 크로스뷰라는 것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소위 말해서 웹툰의 노출 방식인 스크롤 뷰에 종이 만화의 디지털 노출 방식인 페이지 뷰를 동시에 지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크롤과 페이지 편집을 따로 한 걸 서버에 올려놓고 스위치 전환을 시키겠다는 것으로, 동시 진행인 만큼 작가의 수고가 두 배로 드는 건 물론 서버 공간도 두 배 들어갑니다. 페이지 뷰가 스크롤 뷰에 비해 무조건 밀도가 높은 건 당연히 아닙니다만, 한정된 페이지 안에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해 고안된 각종 방식이 스크롤 방식이 주가 되면서 다소 밀려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종이 만화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단순히 향수만이 아니라 이런 밀도에 관한 허기라 할 수 있고, 이를 동시에 지원함으로써 포털이 쉬 시도하지 못하는 지점을 앞서서 재빨리 선점했다는 점에서 레진코믹스의 기민함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고진호 작가님의 말씀에 따르면 만화 단행본 출판사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2. 제13회 만화의 날 ? 이젠 만화가가 주도하고 즐기는 행사로
매년 11월 3일은 ‘만화의 날’입니다. 이 날은 1996년 만화인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 매체물 규제에 대한 법률안’(1997년 3월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의 전신)이 준비되기 시작한 데에 항거한 날로, 당시 이두호·허영만·이현세·장태산·박재동·이희재·황미나 작가 등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만화인 결의대회’를 열고 표현의 자유를 외쳤습니다.
이후 2001년부터 이 날이 국가의 공인을 받은 만화 기념일이 되어 2013년으로 13회째를 맞이하고 있지요. 일본은 이보다 1년 뒤 11월 3일을 만화의 날로 제정하는데 ‘만화의 신’ 대접을 받는 테츠카 오사무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만화계는 매년 이날을 크게 기념하고 있습니다만, 냉정하게 보자면 ‘만화가들이 그동안 당해온 만큼 대접을 받는 날’이라는 분위기와 ‘관제 슬로건을 부각하기 위한 컨퍼런스 행사’라는 분위기가 다소 기묘하게 공존해 온 감이 없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올해 행사는 그런 기조에 비해서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는데, 그 진원지는 바로 젊은 작가군이었습니다. 젊은 웹툰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모여 있는 ‘카툰부머’가 주축이 되어 만화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가 무엇인가에 관해 조금 더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데요.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의 사회로 진행된 저작권 컨퍼런스와 만화 퀴즈가 그러한 역활을 했습니다.
‘건전한 만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저작권 보호 컨퍼런스’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저작권 컨퍼런스는 최근 문제가 된 키위툰을 비롯해 저작권 계약과 관련한 다양한 사고에 관한 ‘실질적인’ 해결책과 대응방안에 관해 족집게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고, 윤태호/엄재경/이종규/정필원/연제원/김인정 등 다양한 신·구 만화가들이 팀을 이룬 ‘만화 퀴즈왕’ 행사는 만화 퀴즈가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겠어-라는 우려를 딛고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퀴즈대회가 지나가고 나서는 한국만화가협회 안에 웹툰 분과가 별도로 생기게 된 연유와 과정에 관한 윤태호·연제원 작가의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이 건과 관련해서는 실질적으로 분과 설립이 모습을 드러낼 내년 1월경에 조금 더 상세히 소개할까 합니다. 그리고 행사 중간에 예술인복지재단의 찾아가는 설명회도 이어졌군요.
저는 이날 행사가 끝나고 이종범 작가께서 저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건넨 말씀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이제 만화행사도 정말 웃을 수 있는 코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준비했습니다"라셨거든요. 사실 만화의 날의 주 행사는 이후 열린 기념식과 리셉션이었다 할 수 있지만, 그에 앞선 식전 행사들이 이렇게 재미있게 진행된 것은 13회를 통틀어서 거의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한 그 하나하나에 만화가들이 직접 참여해 경험을 나누고, 함께 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했지요. 한 가지 더,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최근 키위툰 사태에서 가장 중심 역할을 했던 이동욱 작가에게 수여했다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현 시점 가장 애쓴 젊은 작가의 공을 인정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화의 날은 매년 11월 3일이었지만 우리나라 근대 만화의 첫 사례로 기록된 이도영 선생의 ‘삽화’가 등장한 1909년 6월 2일을 기려 6월 2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만화가 단체 내부 논의를 거쳐 이번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묻는 게시판을 행사장 입구에 내걸었던데요. 작가들이 한 데 뭉쳐 엄혹한 시대를 극복해 나갔다는 의미를 담은 11월 3일이든, 실제 한국만화의 생일로서 기록되어야 할 6월 2일이든 양쪽 모두 만화의 날로 기념하기엔 충분한 자격이 있는 날이죠. 다만 어느 쪽이든 관에서 만화가들에게 밥 한 끼 사고 넘어가는 날이 아니라 만화가들이 직접 뛰어들어 즐거울 수 있고 또 의미 있는 성과를 얻어갈 수 있는 잔칫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3. 한국만화연합, 이번 국회 회기 내 아청법 개정안 통과 촉구를 위한 성명서 발표
11월 3일엔 단지 잔치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한국만화연합 산하 만화계 6개 단체가 공동 명의로 아청법 개정안 통과 촉구 성명서를 발표했는데요. 이 내용은 국회를 향한 만화계 전체의 입장입니다.
이번 국회 회기 내 아청법 개정안 통과 촉구를 위한 한국만화연합 성명서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조항은 2011년 9월 15일 개정 이래 법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관련없는 방식으로 적용되어 왔다. 위 조항은 아동 및 청소년의 성행위를 기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여 그러한 기록이 해당 아동에게 주는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런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상식인 가운데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문제는 이 아청법의 적용 범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까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개정안 발효 직후 20여 배에 달하는 아청법 위반 사례 폭증이다. 전에 없던 법도 아니건만 느닷없이 위반자로 잡힌 사람들이 늘어난 건 그 기간 동안 아동·청소년 성범죄자가 늘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성범죄와 무관한 가상의 표현이 전에는 아무리 심하더라도 음란물에 ‘불과’했던 콘텐츠들이 이제 ‘아동성범죄’라는 강력단속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상을 통해 창조된 가상 인물이 이미지 안 외양만으로 아동이나 청소년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 또 그 인물의 성적 표현 범위를 어디로 두어야 할지에 관한 기준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법이 지정하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말 그대로 아동이나 청소년을 이용해서 제작한 음란물에 한정해야 함에도, 연령과 표현 범위의 기준을 어느 누구도 정할 수 없는 가상 세계의 표현에까지 같은 선을 적용함으로써 가상 표현을 세상에 내어놓는 주체인 창작자에 성범죄 혐의를 들이미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현행 아청법에 따르면 이러한 제멋대로 기준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로 규정당한 가상 표현 매체를 제작할 경우 최저 5년 이상의 징역을 살아야 한다. 강간범에 적용되는 3년 이상 징역보다도 훨씬 가혹한 처벌을 단속권자의 자의적 판단을 기준으로 성범죄자라는 낙인 즉 20년간의 신상등록과 10년간의 취업제한과 함께 받아야 하는 형국인 것이다. 우리 만화계는 바로 이러한 음란성 시비가 함부로 법을 통해 걸렸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1997년 청소년보호법 발효에 따른 만화 탄압 사태와 1998년 이후 6년을 끌었던 「천국의 신화」 사태를 통해 뼈저리게 겪은 바 있다. 아울러 그 결과 또한 명확하다. 「천국의 신화」음란성 시비는 무죄였고 그 근거조항이었던 미성년자보호법은 위헌 판결을 받았으며, 청소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행해진 모든 제재가 기준도 근거도 마땅찮은 ‘관제 탄압’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났다. 우리 만화계는 이 아청법 사태를 그 때보다 훨씬 심한 사태로 본다. 만화계는 아청법이 모호한 법적 기준으로 창작 자체에 음란성 시비를 반복하는 사례를 일으키고 있음은 물론, 단순히 음란물 결정을 넘어 작가를 성범죄자로 낙인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서 겪은 사태 이상으로 위험한 상황이라 보고 있다. 국회도 이러한 맹점을 분명하게 인정한 바, 지난 2012년 12월 18일 대상을 정의하는 제2조 제5호 내용을 일부 수정해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에 ‘명백하게’를 덧붙이는 개정안을 통과하였으나 이것만으로는 법의 모호성과 법의 과잉성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에 우리는 다시 말한다. 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상식인 가운데 어디에 있을까? 우리 만화계 또한 법의 본래 취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창작이라는 창조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가상 세계 속 표현 일체를 모호한 기준과 단속권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재단하려는 행위 또 가상의 설정을 실제 성범죄와 똑같이 다룸으로써 그런 성범죄에 대한 어떤 표현행위도 모두 성범죄로 처벌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곱게 용납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우리 만화계는 현행 아청법이 대중문화 탄압법이자 만화 탄압법이라 규정하며, 적용 대상을 정확하게 지정해 법이 실존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보호한다는 본래 취지에 맞게 시행될 수 있게끔 문제 소지를 없앤 개정안(의안번호 1903875 / 최민희 의원 등 11인)을 국회가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통과시킬 것을 강하게 촉구한다. 2013. 11. 3 창작자의 표현에 검열과 탄압의 칼날을 들이민 데에 전 한국 만화계가 항거한 날을 기념하는 제13회 만화의 날에 한국만화연합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조관제 우리만화연대 회장 차성진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회장 최재봉 한국카툰협회 회장 신명환 한국원로만화가협회 회장 권영섭 한국여성만화가협회 회장 김기혜 |
4. TV조선, 출판만화 검열 요구 ? 표현의 자유 보장을 ‘허점’으로 지목하다
10월 29일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이 만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변태성행위까지 적나라한 성인만화…청소년에게 무방비 노출 TV조선 (2013.10.23) [앵커] 요즘 청소년이 즐겨보는 만화 가운데 성적인 내용이 잔뜩 들어가있는 낯뜨거운 만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합법이라는 겁니다. 15살 넘은 청소년이기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만화인지, 문현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국내에 정식으로 발간된 만화책입니다. 성적 표현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장면도 여과 없이 나옵니다. 또 다른 만화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적인 성관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성적인 암시가 들어있는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화책입니다. 이처럼 성인물이나 다름없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이 책은 15세 이상이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책을 볼 수 있는 나이를 정부기관 대신 출판사가 직접 결정하는 제도 때문입니다. 출판사는 이런 만화가 성인물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조병권 서울문화사 만화팀장 : "저희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 정도 표현은 15세로 붙여도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청소년들은 이 만화를 보고 낯뜨거워합니다. [인터뷰] 이주희(고등학교 1학년) · 이성원(고등학교 1학년) "15세로 나왔는데 이거 19세고 너무 야해요 진짜로" "15세 이상이 아니라 19세로 고쳐야 해요“ 이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현행법상 도서는 사후심의를 받기 때문입니다. 출판 전 심의는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출판 후에 연령등급을 재조정하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장택환(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사무국장) : "사전심의를 하게 되면 명백하게 헌법 21조 표현의 자유가 명기돼 있고 사후심의는 법에서도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공급자가 직접 등급을 정하는 만화 시장,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만화를 가장한 성인물이 청소년들 틈을 파고 들고 있습니다. TV조선 문현웅입니다. |
보도 내용에 따르면 자율적으로 15금 걸어놓은 만화에 성행위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변태스럽고, 자율적으로 심의를 거는 허점을 이용해서 애들 농락하고 있단 이야기입니다. 화면에 흐림(Blur) 처리를 심하게 해 놔서 어떤 만화의 어느 장면을 문제 삼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관련 법률을 따져보자면, 청소년보호법에는 19세 미만 구독불가와 아닌 것밖에 기준점이 없는 기형적인 상황입니다. 또한 성애나 폭력 등 어른이라면 무난히 볼 수 있는 표현 수준이어서 업체가 자율적으로 “이건 어린애들은 보지 마세요”라고 19세 미만 구독불가 딱지를 붙여도 심의 기구가 멋대로 “이건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고 낙인을 찍어 공시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바로 지난 달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해드린 바 있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과 「죠죠의 기묘한 모험」 사례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애초에 성애 묘사 자체를 틀어막자는 주장을 할 게 아니고서야 어떤 수위를 보여주든, 심지어는 직접적인 묘사가 없다고 하는 것에까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요.
기자는 여기에 덧붙여 아예 현행 사후 심의제도와 업체 자율 등급 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이는 사후심의가 문제 있으니 사전심의를 하라는 종용입니다. 현재 만화 심의는 사후 심의만으로도 충분히 피해를 입고 있지만, 사전 심의는 말 그대로 검열입니다. 다시 말해 TV조선은 관을 항하여 “검열을 하라”고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문화 검열은 곧 독재의 산물이지요. 심지어 기자는 사전심의가 헌법2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사무국장의 말 뒤에 이게 허점이라고 지적하고 있지요. ‘표현의 자유’와 ‘헌법’도 무시하라는 초법적인 위협을 1970년대도 아닌 2013년에 보고 있습니다.
TV조선, 그리고 조선일보는 불과 1년여 전인 2012년 초반 야후 연재 웹툰이었던 귀귀 작가의 「열혈초등학교」를 ‘폭력 웹툰’으로 규정하며 한 면을 통으로 할애해 망신주기 전략을 펼친 바 있습니다. 이 사안은 1997년 청소년보호법 만화탄압사태에 이은 또 다른 만화 탄압 사례로 꼽히는 2012 웹툰 심의 사태 때 대거 일어났던 언론의 부화뇌동 가운데 유난히 질 낮고 악랄한 것으로 꼽힙니다. 그때부터도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이들은 제 버릇을 남 못 주고 있을까요.
[그 외 뉴스들]
▶ 트위터의 첨부 이미지 미리 보기를 이용한 장난들 - 이걸로 만화는 불가능할까?
10월 29일부터 SNS인 트위터에서는 타임라인에 사진과 비디오의 미리보기가 바로 노출됩니다. 이전까지는 해당 트윗을 눌러야 내용이 드러났다면 이제부터는 타임라인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셈이지요. 물론 설정을 통해 이를 직접 보진 못하게끔 조절할 수 있습니다만, 벌써부터 이 기능을 이용한 재기발랄한 장난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두드러지는 건 만화적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 기능을 이용해 만화를 연재하는 건 불가능할까요? 새 기능을 이용한 여러 가지 재미난 장난들이 새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 네이버 붐 서비스 종료
지난 10월 22일, 주호민 작가님이 「짬」을 올리면서 공개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곳이자 젊은 웹툰 작가들이 모인 커뮤니티로는 가장 규모가 큰 카툰부머 이름의 원천이기도 했던 곳인 네이버 붐 서비스가 2014년 1월 1일자로 서비스를 마친다는 공지를 냈습니다. 네이버 붐은 2004년 9월 시작해 짤방보이 등의 패러디물에서도 등장하는 등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만화는 물론 다양한 인터넷 공감 커뮤니티 문화를 이끌어 왔지만 더 이상 커뮤니티 기반 문화가 인터넷의 중심이 아니게 되면서 호응도를 잃었던 모양입니다. 확실히 지금은 커뮤니티는 대세가 아니게 됐지요. 있는 곳들도 대체로 각자의 성격을 확고히 하면서 폐쇄적으로 굳어져가고 있고요. 네이버 붐은 올 연말까지 자기가 올린 글을 백업받을 수 있게끔 할 예정이라는데, 폐장 소식과 함께 여러 작가분들이 아쉬움과 추억을 곱씹는 광경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키위툰 서비스 완전 종료
노예계약 건으로 말썽을 일으켰던 키위툰이 9월 말 작품을 모두 내린 데 이어 10월 말엽부터는 도메인도 파킹, 즉 사기만 하고 서비스는 하고 있지 않으니 도메인을 살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기본 서비스 화면을 띄워놓고 있습니다. 이로써 키위툰이라는 이름과 도메인으로는 더 사업을 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겠는데, 다만 키위툰 후배 작가들의 노예계약 건을 공론화한 주인공인 이동욱 작가님에 따르면 “정식계약해지서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직 찜찜하다”라고 하시는군요. 키위툰 사태는 다른 사태보다도 여론의 힘이 효과를 강하게 발휘한 사건이고, 결국 여론의 힘을 빌려 불합리를 이겨낸 사안입니다. 현재로서는 거의 상황 종료라 볼 수 있겠으나, 끝까지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없게끔 만화계 구성원 및 독자들이 계속해서 지켜보고 잘못된 사례로 입방아를 찧을 필요가 있습니다.
[위 기사의 내용은 디지털만화규장각 편집부의 의견과 일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