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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ANZA > 김보통 인터뷰, 온화하고 유머러스한 보통의 이야기

지난 9월, ‘별로’인 유머를 던지는 암환자를 앞세워 < AMANZA >는 고요한 시작을 알렸다. 고통 속 일그러진 표정의 암환자와는 다른, 의외의 유머러스한 출발은 은은한 울림으로 바뀌어 ‘김보통’이란 이름을 뇌리에 새겼다. 꾹꾹 눌러 담지 않은 정갈함으로 스물여섯 살 암환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 AMANZA >는 무던한 따스함으로 보는 이의 무거운 마음을 다독인다. 만화처럼 온화하고 유머러스한 김보통 작가를 만나 ‘보통의 이야기’를 나눴다.

2013-11-30 이하늘
지난 9월, ‘별로’인 유머를 던지는 암환자를 앞세워 < AMANZA >는 고요한 시작을 알렸다. 고통 속 일그러진 표정의 암환자와는 다른, 의외의 유머러스한 출발은 은은한 울림으로 바뀌어 ‘김보통’이란 이름을 뇌리에 새겼다. 꾹꾹 눌러 담지 않은 정갈함으로 스물여섯 살 암환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 AMANZA >는 무던한 따스함으로 보는 이의 무거운 마음을 다독인다. 만화처럼 온화하고 유머러스한 김보통 작가를 만나 ‘보통의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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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01] 팬티에 워리어 가면을 쓴 김보통 작가의 사진 대신 받아온 그림.
 
인터뷰 전날 트위터에 ‘내일은 에이코믹스와 인터뷰가 있다. 사진을 찍는다길래 팬티에 워리어 가면만 쓴 채 가려고 했는데 사진촬영이 없어져 섭섭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고 썼다. 다음에 에이코믹스와 단독 화보라도 찍겠는가? (웃음)
농담이다, 농담! 웃기려고 한 거다. (웃음)
 
다른 매체에 얼굴을 공개한 적은 없나?
없다. EBS 라디오 경청(2013년 9월 14일 방송)에 나갔을 때도 편집했다. 지난주에 대학교 강의를 갔을 때도 학보사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는데 뒷모습만 찍으라고 했다, 못생겨서. (웃음) 에이코믹스에서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어도 다른 걸로 편집해달라고 했을 거다. 만화가가 된 지는 2개월밖에 안 됐지만, 만화가는 만화로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요즘 아이유가 드라마 <예쁜 남자>의 주연을 맡으면서 ‘김보통’이란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 위기감은 없나?
누가 아이유를 검색하다 우연히 < AMANZA >를 본다면 내가 고마운 일이다. (웃음)
 
우선은 ‘김보통’이란 필명이 궁금하다. 왜 보통인가?
‘대학’이라고 하면 전 국민의 99가 서울·연·고대를, ‘회사’라면 삼성, 현대, LG를 떠올린다. 하물며 시골에 있는 우리 이모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갈 수 있는 숫자는 정해져 있다. 당연히 그 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사회를 이루는 99는 다 그곳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보통의 사람들을 마치 인생의 실패자처럼 보는 게 싫었다. 왜 스스로 특별해야한다는 강박을 만들어서 불행하게 살아야나. 그래서 ‘보통이어도 괜찮다’ ‘평범하게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의도로 이름을 지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인가?
그런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고, 삼성에 다니지 않고, 부잣집 자식도, 서울에 30평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지도 않다는 이유로 불행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행복이란 것에 기준을 긋고 점수를 매겨서 내가 그 중에 몇 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남이 만든 기준에 나를 대입시켜서 불행해질 필요가 없다.
 
지금 행복한가?
아유~ 미칠 것 같다. (웃음) 좋아서라기보다는 불안하고 초조해서 미칠 것 같은데 그래도 행복하다. 만화가라고 하기 뭐할 정도로 그림도 못 그리는데, < AMANZA >가 에이코믹스 데일리베스트에서 2회 연속 1위를 했을 땐 기분이 짜릿짜릿했다! 알려져서 좋은 것보다는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다시 한 번 되뇌듯) 아…! 만화 그리기 시작해서 그때가 제일 기뻤다, 2개월 밖에 안됐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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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02] 김보통 작가가 트위터에서 그려준 누군가의 프로필 이미지.
 
트위터를 보면 헝가리, 터키, 불가리아 등 각종 나라를 여행한 이야기와 헌병대로 복무한 군 시절 등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왠지 내공이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다. 다양한 것을 직접 보고, 듣고, 겪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헌병대로 근무할 때 내 직책의 정식명칭이 군사법경찰관리였다. 법을 집행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내가 잡은 사람은 징역을 살 수도, 전과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몸싸움이 일어나거나 분, 초를 다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서 직접 몸으로 뛰고 대처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이 컸다. 군대에 다녀오기 전에도 여행은 다녔지만 군 생활 이후에는 여행을 맨몸으로 가더라도 ‘죽는 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겪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진 것 같다.
 
다양한 경험 때문인지 손대는 분야도 많은 것 같다. 글을 쓰고, 작사도 하고, 트위터 팔로워들의 프로필 사진도 그려준다.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
만화가가 되고 나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만화만 그린다. (웃음) 처음에는 박철권 대표님(누룩미디어 대표이사)이 그림을 너무 못 그린다고 해서 그림연습으로 트위터 팔로워들의 프로필 사진을 그렸다. 그러다가 신청자가 많아져 그림이 밀리게 되니까 기다리는 분들이 지루할까봐 트위터로 짧은 글을 쓰게 된 거다. 그런 일들이 얽히고설켜서 우연하게 가사(사막의 왕-작사 김보통, 작곡 오소영)도 썼던 거고. 결과적으로는 다른 일들은 만화를 시작하고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만화를 원래 그렸던 사람이면 빨리 그릴 텐데 그림을 못 그려서 캐릭터 한 명을 그리는 데에 엄청 시간이 걸린다. 이 컷에 나왔던 사람이 다음 컷에서도 동일인물이란 걸 알아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다보면 몇 번을 다시 그려야한다. 남들이 볼 땐 되게 쉽게 그리는 것 같이 보일까봐 걱정인데 사실은 엄청 시간이 걸린다. 죽을 것 같다. (웃음)
 
굉장히 공들인 선이란 게 느껴진다. 정갈하게, 그리고 천천히 그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 번에 이어지지 않는 선도 따뜻하고 매력적이다.
한 번에 선을 못 그려서 그렇다. (웃음) 다른 만화가들이 그린 만화를 볼 때마다 내가 어디 가서 만화가라고 하는 게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다. 강도하 작가님이 내 트위터에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정작 본인은 그럴 의도도, 기대도 안 하셨겠지만. (웃음) 만화를 전공하거나 그렸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거쳐 가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잘 그리기위해서 누군가를 따라한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다.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다만 스스로 못 그린다고 하는 건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수준만큼 실제로 그릴 수 없단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가 올레마켓에 올라갈 때마다 창피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 회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지금도 < AMANZA > 1화를 보면 무슨 배짱으로 저런 걸 올렸을까 생각한다! (웃음) < AMANZA >를 완결할 때는 ‘이정도면 내 그림은 만들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 AMANZA >의 그림 표현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눈치는 못 채셨겠지만 거의 매 회마다 그리는 방법을 바꾸고 있다. 선 굵기, 선 색, 채색하는 방법 등을 조금이라도 바꿔서 그린다. 매주 수요일에 2회 연재분을 마감하는데 같은 날 마감하는 2회도 그림이 다르다. 초보 만화가다보니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야하는지 몰라서 선 긋기, 앵글, 말풍선 등 모든 곳에 신경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 속에서 마음에 드는 건 가져가고 아니다 싶은 건 계속 바꿔나가는 거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독자들에게는 정제하지 못한 그림을 매번 다르게 보여드려 죄송하다.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다. 멋지다.
시간이 없어서 따로 연구를 하진 못하고 그저 원고를 하는 과정이 연구인 거다. 남들처럼 완성된 방법으로 일관되게 보여주지 못하고 실험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드려 죄송하다. 가끔 ‘이 사람 만화 처음 그리는 분이냐’고 물어보는 분이 있는데 ‘맞다’고 얘기해 드리고 싶을 정도다. (웃음) 말풍선을 어떻게 배치해야하는지, 한 칸에 적당한 대화의 양이 얼만지, 앵글은 어떻게 잡는 건지를 하나도 모르니까. 친구가 그러더라, ‘너는 왜 만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바스트 샷이냐고.’ (웃음) 듣기 전까지는 그런 줄도 몰랐다. 그 이후로는 다른 앵글도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계속 발전을 도모하는 것 같아 듣는 내가 뿌듯할 정도다.
내 만화를 봐주는 분이 있어서 하는 거다. 돈도 중요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 게 가장 불행하고 슬픈 일이다. 독자가 없다면 마음 속 불이 꺼질 것 같다.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열심히 할 거고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 나는 더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는 스스로 원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하며 살 수 있을 거다. 동시에 견제하고 싶은 건 독자를 늘리기 위해서 자극적이고 억지스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봐주는 사람은 늘겠지만 만화를 그리는 게 괴로워질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 암환자의 투병이라는 소재도 재미없을 수 있지만 즐겁고 재밌게 전달하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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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03] < AMANZA > ? 김보통, 올레마켓
[이미지03] < AMANZA > ? 김보통, 올레마켓
숲 이야기에서 가장 정체가 궁금한 사막의 왕은 주변을 모래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노파심에 묻는다. 작가님 몸은 건강한가? < AMANZA >가 실제 암환자의 경험담이라고 생각될 만큼 감정이입이 잘 되는 만화라 독자입장에서는 작가가 정말로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된다.
아파 보이나? 머리가 좀 아프다. (웃음) 작가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소리가 안 나오니 다행이다. 아버지가 암환자였기 때문에 아버지를 통해 접한 게 많다. 그래도 실제 암 투병하는 분들이 보기엔 부족할 거다. 하지만 가끔 암환자인 독자가 ‘이 사람도 투병중인 것 같다’라고 내 만화를 소개하면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
 
댓글을 봤는데 다들 작가님께 힘내라고 하더라.
‘작가님도 완치하세요.’ (웃음) 다 내가 암환자인줄 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고맙다. 나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다. 독자가 착각할 만큼의 흡입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 AMANZA >를 그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10년 전 일이다. 제대하고 인터넷을 하다가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글을 봤다. 당시 방영하던 <로즈마리>(2003, KBS)라는 드라마에서 유호정이 “나 아만자(암환자)야! 아만자(암환자)라고!” 외친 대사의 뜻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그게 정말 웃겼다. 그때 암환자 관련 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암환자인데 재밌는 암환자를 그려보자고.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의 암환자는 항상 우울하고 슬프고 모든 희망을 버린 사람처럼 묘사되는 게 싫었다. 그런데 그림을 못 그리니까 10년 동안 생각만하고 그리질 못했다. 10년이 흘러 최규석 작가를 통해 만난 박철권 대표님이 만화를 그려보라고 하신 거다.
 
처음에 박 대표님이 말씀하신 만화는 ‘대기업 만화’였다. 직장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미생>과는 다른 노선으로 ‘새벽 3시까지 탬버린을 흔들면서 느끼는 환멸과 모멸의 삶’을 담은 회사원 만화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집에서 콘티를 짜다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 AMANZA >를 그리겠다고 다짐을 한 거다. 박 대표님과 콘티를 들고 만나기로 한 날까지도 다른 소재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안 했다. 얻어맞을 각오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박 대표님이 ‘알았다. 나쁘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다. 대신 한마디 더 하셨다. ‘다음엔 회사원 만화로 하자’고. (웃음)
 
언젠가는 김보통 작가가 그린 회사원 만화를 만날 수도 있겠다.
아마 이번 연재가 끝나면 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원 만화가 워낙 없다. 만화가 중에 회사를 경험해 본 사람이 드물기도 하고. 박 대표님 판단에도 첫 작품으로 연습을 하고 회사원 만화를 그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신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그림을 못 그리니까. (웃음)
 
앞서 잠깐 언급했었는데 아버지가 위암환자셨다. 그 경험이 작품에 투영이 됐나?
부모님이니까 당연히 그럴 거다. < AMANZA >는 아버지께 보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내 인생 3분의 1 정도를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병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봐서 충격이 컸다. 물론 항상 곁에 계시던 어머니만큼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만화 그리는 정성으로 아버지를 간병했으면 하는 죄송한 마음도 든다. (웃음)
 
취재로 다른 암환자들도 만나봤나?
최근에 암환자를 만난 적은 없다. 우선은 저마다 케이스가 달라서 내가 여쭙기도 어렵고 당사자들도 이야기 하는 걸 조심스러워한다. 그래서 예전에 아버지를 통해 알던 암환자들의 경험담이나 암환자 카페를 통해 본 이야기를 참고한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암에 걸렸다면’이란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쓴다. ‘스물여섯 살의 나라면 그랬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몸살이나 감기를 지독하게 앓을 때면 ‘내가 만약에 아빠였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젊어서 돌아가신 게 트라우마이기도 한데, 나도 항상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산다. 얼마 전에도 병원에 갔다가 갑상선에 조그만 결절을 발견해서 정밀검사와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때부터는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지금 암이면 어떡하지?’ ‘얼마나 억울할까?’란 생각을 되풀이한다. 결과적으론 의사 선생님이 멀쩡하니 내년에 오라고 하셨다. (웃음) 항상 그런 불안 속에 살다보니 독자들이 심리묘사가 섬세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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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04] < AMANZA > ? 김보통, 올레마켓
프롤로그에서 보여준 저 ‘으잉?’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 마성의 매력을 갖고 있다.
 
주인공의 나이를 스물여섯 살로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 이야기 구상을 할 때는 주인공 나이를 우리 아버지 또래로 할지, 어린 아이로 할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분명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의 깨끗함도 내가 천진난만하지 못해서 어려울 것 같았다. (웃음) 그러다가 스물여섯이란 나이를 찾았다. 남자로 치면 군대에도 다녀왔고 대학 졸업도 앞두고 있지만 사회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나이다. 결혼도 못했고 꿈도 이루지 못했을 거다. 만약 그 나이에 무엇 하나 이뤄보지 못하고 암에 걸린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안타까울까라는 생각과 함께 젊은이 특유의 치기도 보일 수 있을 거란 판단을 했다. 암에 걸렸지만 본인이 진지하지 않아 농담을 던지고, 주변 친구들도 그 사람의 병이 무겁게 와 닿지 않는 그런 나이.
 
그래서 주인공이 눈썹을 치켜 올리고 입을 삐죽 내미는 표정이 참 좋았다. ‘암환자 이야기에 이런 익살스런 표정도 나오는구나’라는 신선함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항상 그 표정을 떠올리며 작업한다. 암환자라고 해서 ‘나 죽네’ ‘세상이 망했네’ ‘다 나쁜 놈이네’라며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모습도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다.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셨으니까. 그러면서도 비현실적이게 마냥 웃으면서 끝나는 이야기는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표정 이상도 가지 말고 이하도 가지말자’라고 기준을 잡았다.
 
(인터뷰일 기준으로) 20화까지 연재했는데 아직도 주인공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많이 나오지 않나. (언제 나왔나?) 현실의 등장인물들만 이름이 안 나왔지 숲에 나오는 캐릭터는 다 이름이 나온다. (웃음) 만화가 1인칭이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앞으로도 이름은 없을 거다.
 
말한 것처럼 < AMANZA >에는 현실이야기와 함께 숲 이야기가 나온다.
독자들은 숲 이야기를 난해하다고 재미없어하는데 점점 그쪽 비중이 많아진다. (웃음) 나는 숲 이야기가 메인이라 생각하고 있다.
 
숲 이야기에 나오는 귀여운 캐릭터들의 정체가 모호하다. 암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사막의 왕은 더더욱. 숲은 암을 형상화한 공간인가?
가르쳐 줄 수 없다. (웃음) 만화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방법이 있고 독자가 직접 해석하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독자들이 자유롭게 해석했으면 한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면 지금처럼 숲 이야기가 난해하고 어렵다는 독자들을 이해시키기는 쉽겠지만 완결이 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반의반으로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그리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 AMANZA >를 연재하기 전에 이미 완결까지의 이야기를 생각해뒀다. 숲 이야기가 불친절할지 몰라도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니 찬찬히 완결까지 봐준다면 나름의 정답은 내릴 수 있을 것이란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나중에 완결나면 다들 정주행 한 번씩 해야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볼 가치가 없는 텍스트로 끝나고 싶지 않다. 정주행 하면서 ‘이래서 이런 대사가 나왔구나’ ‘이런 뜻이었구나’라고 할 수 있는 만화였으면 좋겠다. 동시에 < AMANZA >를 암환자의 휴먼·감동 스토리가 아니라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같은 판타지로 생각해줬으면 한다. <해리포터>가 가정환경이 불우한 소년이 마법학교에 가서 마법사가 된다는 이야기라면, < AMANZA >는 암에 걸린 주인공이 숲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그저 주인공이 암환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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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05] < AMANZA > ? 김보통, 올레마켓
낯선 숲에서 만난 친구들은 주인공에게 숲 속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화로 표현하기에 실제 암환자나 가족에게 조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는가.
실제 암환자가 봤을 때 상처받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그리는 것이 조심스럽다. 항암치료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암환자 중에서도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렇게 논의 중인 소재를 표현할 때 어느 한 쪽 편을 들고 싶진 않다. 일반 독자를 포함해 실제 암환자들도 < AMANZA >를 보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항암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선입견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한다. 자연치유제, 보조제, 민간요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도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야한다는 점이 어렵다.
 
14화 시베리아 편에서 “살 수가 없다면,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있고 싶다.”는 글귀를 보고는 펑펑 울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버지는 암에 걸리기 전에는 원망만하고 살던 분이셨다. 그런데 암에 걸린 이후로 건강도 챙기고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행도 다니며 시간을 보내셨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지난 8년이 정말 행복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지금도 만화를 보고 계신 암환자가 많이 있다. 한 화가 끝날 때마다 보내주시는 쪽지나 메일 중에는 스물여섯 살 암환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내게 부탁하시는 것은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전해달라’였다. < AMANZA >가 암환자와 잠재적 암환자에게 자신의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사랑하는 여자친구 혹은 가족과 이 지리멸렬한 삶을 좀 더 행복하고 재밌게 보냈으면 한다. 영국에 가서 피쉬 앤 칩스를 먹어봐도 좋고. (웃음)
 
지금까지 < AMANZA >를 연재하면서 만족스런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매번 그림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한다. ‘내가 그린 나무가 나무처럼 보이는 구나.’ (웃음) 아쉬운 점은 마감에 쫓겨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컷의 양의 늘리거나 좀 더 심사숙고해서 컷을 구성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과 여력이 없어서 지나가 버린 부분이 있어 아쉽다.
 
앞으로 < AMANZA >는 어떤 부분에 주목해서 읽으면 좋겠는가.
앞서 말했듯 숲 이야기가 조금 불친절하고 재미가 없더라도 어떤 이야기일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보신다면 더 재밌을 거다. 해답을 찾는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가볍게 곱씹어 달라.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항상 봐주셔서 감사하다. 별 스티커와 댓글도 많이 달아달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