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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07 : 신인 만화가의 등장 김규택, 최영수

1923년 <어린이> <아희생활>에 게재된 만화는 성인들보다 아동들에게서 더 큰 환영을 받았다. 안석주의 <씨동이 말타기> 제하의 여섯 컷 만화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아동만화 작품이다.

2015-07-29 박기준

신인만화가의 등장

1923년 <어린이> <아희생활>에 게재된 만화는 성인들보다 아동들에게서 더 큰 환영을 받았다. 안석주의 <씨동이 말타기> 제하의 여섯 컷 만화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아동만화 작품이다. 1927년 12월에 발행된 <별건곤>지는 학생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별건곤>지는 편집부의 새로운 기획으로 그 시대의 뛰어난 만화가들을 발굴 청탁했는데 신인으로 웅초(김규택), 그리고 권구현 등이 등장하게 된다. 김규택은 당시 젊은이들의 빗나간 생활태도를 비난하는 주제로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노부모 울려> <용맹스런 아가씨> <아이고 머리야> 등 지면을 통해 새로운 풍자를 시도하며 탄탄한 필력을 구사해 나갔다. 역시 1927년 창간된 청소년용 <학생만화>지에는 <꼴불견대회>란 세태 풍자만화가 소개되었는데, 여기서도 김규택, 이상범, 권구현 등 당대의 대표 만화작가들이 참가하는 말 그대로 지상만화 전시회가 펼쳐지기도 했다. 여기 등장했던 작가들은 모두 1930년대 우리 만화계를 이끈 인기 작가군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별건곤>지에는 안석주를 위시한 톱 작가가 만화와 관련된 글들도 발표, 그림 못지않은 뛰어난 문장 실력을 발휘했다.

김규택

경남 출생. 필명을 웅초라 하였다. 휘문중학 졸업 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동양화 전공. 1927년 종합지 <별건곤>지에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노부모 울려>, <용맹스런 아가씨>, <아이고 머리 아파> 등 새로운 시도로 1컷 카툰을 게재해 크게 각광을 받으며 데뷔하였다. 1932년에는 <제일선지>에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모던 춘향전을 연재했다. 그때까지는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고전 해학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데뷔할 때와는 크게 다른 화력을 구사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인물 체형을 삼등신으로 묘사한 화법은 인물표현에 있어 매우 육감적인 느낌을 주어 전문가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청소년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실적 묘사가 성인만화에도 등장하여서, 과장되고 생략된 화풍에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신선미를 주었던 것이다. 이따금 캐리커처도 선보였다. 그는 성인물에서 청소년, 아동물, 그리고 잡지에서 단행본까지 한국적인 것이면 무엇이든지 척척 그려내서 그 시절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인기를 독차지했다. 특히 1932년 <신한민보>에 발표한 휴전선을 풍자한 1컷 시사카툰은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히는 수작이다. 이어서 1933년 6월 1일 <조선일보>에 <벽창호>가 4컷 시사만화로, 또 새로운 화법인 간략한 그림체로 등장한다. 이는 그 후 짤막한 성인용 감각 코믹만화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 만화들은 인기에 편승하여 7개월이나 연재되었다. 1933년 <조선일보>에 이광수의 연재소설 <유정(有情)>이 연재되었을 때는 삽화도 담당한다. 또 1935년에는 어느 작가 못지않게 기지가 넘쳐나는 글 솜씨로 유머소설 <망부석>을 직접 쓰면서 삽화까지 담당, 끝 모를 다재다능한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1946년 9월 <을유문화사>에서 발간한 6×4판형 24쪽짜리 <만화풍자 해학가열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만화 단행본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걸작이다. 김규택은 안석주와 함께 <조선일보>의 간판스타로서 만문작가로 활약했다. 변함없는 직업 만화가 1호로 만화가 협회에도 몸담고 후진들을 보살핀 협회 고문으로서, 1962년 간염으로 사망할 때까지 한국만화 발전에 가장 공로가 많은 첫 번째 인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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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택(웅초), 1906년생(1962년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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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를 주제로 미국과 소련이 이익을 노리고 한판 바둑으로 겨루는 김규택의 시사카툰(조선일보, 1946.1.30.)으로
남북을 갈라 놓은 3·8선을 원만한 시사카툰의 걸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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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때 그린 적진 살포용 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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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성인만화 단행본인 <만화 풍자 해학가 열전>(6×4판, 32쪽, 을유문화사 출판)


최영수

1932년 최영수의 새로운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한국적인 풍채의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뚱딴지 영감님>이란 제호로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연이어 <얼간이선생> 일상기를 50회에 걸쳐 연재,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영수는 문학적인 뛰어난 소양과 필력도 갖춘 인물로 <만문만화>도 선보였다. 1933년 4월부터 <봄이 쓰는 만문>, <봄이 그리는 만화>를 비롯해 <진열장에 오는 여름>, <도회지가 그리는 만화풍경>, <주광곡> 등 도시인들이 느끼는 계절 감각, 거리 풍경 등을 소재로 삼고 있었다. 재치 있는 문장으로 세태를 묘사하면서 이에 걸맞은 그림을 그려 넣고 있었다. 그는 신문을 통해 등단했지만, 그의 작품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잡지를 통해서였다. 다양한 만화, 만문 외에 만화와 관련된 이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사에서 발간되던 월간지 1932년의 <신동아>와 <조광지>에 실렸던 본격적인 <만문만화>는 연재되기가 무섭게 갈채를 받았다. 특히 여성을 캐릭터로 등장시킨 독특한 만화가 눈길을 끌었다. 그의 만화에 등장한 여성은 팔등신의 날씬한 몸매와 예쁜 얼굴, 단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당시 두루뭉술하게 약화시켜 그렸던 기존 만화에서의 여성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여성을 소재로 한 만화는 찾아보기 힘든 때라서 그의 작품은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만문에서 보여 주는 그의 여성관은,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여성은 교양 있고 얌전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유교적 전통의 틀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었다. 1932년 <신동아>의 <서정어화(抒情語畵)>를 비롯, <일인일미 미혼남녀(一人一美 未婚男女)>, <알고도 모를 여자의 마음> 등 그림과 토막글 형태의 산문을 곁들이면서 여성을 주요 소재로 다룬 걸작들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940년 이후로는 재능 넘치는 이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없게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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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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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가정>지에 실린 가정상식란, 알뜰한 전기 절약을 만화 컷들로 소개하고 있다. 1쪽(193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