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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본에서 사진을 참고자료로 사용한 만화가 계속 문제시

트레이스는 표절의 일종으로서 완전히 원본 그림 위에 빈 종이를 겹쳐놓고 따라그리는 것이므로 더 안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의 독자들은 여기에 매우 민감하여 인터넷에는 실로 수많은 작품과 작가에 대해 트레이스 의혹을 제기하곤 하는데...

2007-03-27 선정우

난 2007년 1월 30일, 일본 최대의 출판사 중 하나인 슈에이샤의 소녀만화잡지 「쿠키」에서는 아래와 같은 사과문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쿠키 편집부 사과문
▲「쿠키」 편집부 사과문 http://cookie.shueisha.co.jp/special.html
[사과문과 휴재 안내]
(..전략) 올해 1월호(2006년 11월 25일 발매)부터 연재하고 있었던 『SWITCH』(요시이 린 작)의 속표지 및 예고페이지의 일러스트가 패션잡지 사진을 모사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말씀 올립니다. 이 작품을 읽어주시던 독자 여러분께는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이와 같은 사정으로 인하여 『SWITCH』는 4월호부터 휴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시이씨의 코믹스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silent summer snow』 등 2작품에 대해서도 같은 형태의 저작권 침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판매를 중지하고자 합니다. (중략)
2007년 1월 30일 「쿠키」 편집부 편집장 우메오카 미츠오

이미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2005년에도 있었다. 코단샤의 소녀만화잡지 「별책 프렌드」 2005년 11월호에서는 스에츠구 유키라는 작가의 『Silver』라는 작품의 도작에 관한 사과문이 실렸다. 스에츠구 유키는 1992년 데뷔한 작가로 대표작 『에덴의 꽃』은 국내에도 수입되어 번역판이 출간된 바 있다. 특히 『에덴의 꽃』은 일본의 유명 만화인 『슬램덩크』의 작화를 그대로 모사한 것으로 알려져, 일본에서는 신문이나 TV에도 사건으로 다뤄지는 등 화제가 되었다. 잡지에 사죄문이 실린 것은 물론 작가 스에츠구 유키의 작품 전부가 절판 및 회수 조치가 취해졌는데, 최근 2007년 3월 1일에 발매된 만화잡지 「BE?LOVE」에 단편을 실으면서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


화 제작할 때 사진을 참조하는 방식으로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트레이스(trace)라는 기법이다. 트레이스란 모사의 일종으로 원본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특히 만화에 있어서는 원본 그림 위에 다른 종이를 겹쳐놓고 따라그리는 것을 말한다. 해적판 문제가 비교적 적은 일본에서는, 표절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저작권 침해 행위로서 주로 인터넷 상에서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카드캡터 사쿠라』『X』로 유명한 만화가 CLAMP와 PC게임 『Pia캐럿에 어서오세요!! 2』『코믹 파티』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미츠미 미사토 등은 본인의 웹사이트를 통해 트레이스를 특별히 금지하고 있다.

▶CLAMP 웹사이트 http://www.clamp-net.com
[네트워크, 동인지 등에 있어서 CLAMP 작품의 무단 사용에 관하여]
(전략) 작품을, 저희들이 관여하지 않은 장소에서 관여하지 않은 형태로(작품의 전체, 혹은 일부를 그대로 카피, 스캔, 혹은 트레이스 및 그밖의 방법으로 옮겨 그리거나 가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재ㆍ사용하는 행위는 바라지 않는 바입니다. 일부 지각없는 웹사이트나 동인지, 사설 팬클럽(서클)의 회보, 각종 팬시굿즈 등에 그런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미츠미 미사토 웹사이트 http://mitsumi-web.com
[Caution!!]
이 사이트 상에 있는 화상의 전재, 표절, 트레이스는 금지합니다!! 동인지나 상업지도 마음대로 트레이스하면 절대 안됩니다!

이처럼 트레이스는 많은 작가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트레이스는 표절의 일종으로서 법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취급될 뿐 더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는데, 보통 표절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별도로 그리는 것(모사)임에 반해 트레이스는 완전히 원본 그림 위에 빈 종이를 겹쳐놓고 따라그리는 것이므로 더 안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의 독자들은 여기에 매우 민감하여 인터넷에는 실로 수많은 작품과 작가에 대해 트레이스 의혹을 제기하곤 하는데, 특히 앞서 언급한 스에츠구 유키 『에덴의 꽃』의 『슬램덩크』 트레이스 의혹 때에는 『슬램덩크』 자체도 미국 프로농구리그(NBA)의 사진을 그대로 따라그린 것이 아닌가 하여 국내에서도 일부 인터넷 매체에 보도되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램덩크가 미국 프로농구리그의 사진을 트레이스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국내에서는 그와 관련되어 몇 가지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만화 작화에 있어서 사진 자료를 참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와 관련되어 이번 기회에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①만화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사진을 참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화의 작화에는 실제 존재하는 사물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작화의 퀄리티가 갈수록 높아지는 최근 추세에 있어서 사진을 참조하지 않고 만화를 그리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만화 제작에 사진 참고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고, 또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사진도 당연히 그 자체로 독립된 예술 작품이고, 저작권이 발생한다는 데에 있다. 즉 만화가 본인이나 스태프가 직접 촬영한 사진이거나 사진가가 저작권을 포기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사진을 제외하고, 타인이 촬영한 사진을 참고할 때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물며 단순 참고 정도도 아니고 완전히 베껴 그리는 트레이스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물론 도의적으로도 용인되기 힘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②남들도 다 하는 일이고, 사진가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가?
:일본의 사례이긴 하지만, 사단법인 일본사진가협회에서는 웹사이트 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게재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다.
일본사진가협회 Q&A 페이지
▲일본사진가협회 Q&A 페이지 http://www.jps.gr.jp/kenri/q&a.htm#q1
Q. 사진을 똑같이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A. 그대로 똑같이 그리는 것은 복제에 해당되며, 무단으로 그리면 저작권법 제21조 복제권의 침해가 된다. 또한 사진을 참고하여 그림을 그려 그 그림이 2차적 저작물로서 인정되는 경우에도, 무단으로 그렸다면 저작권의 침해가 된다.


③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문제가 된 경우는 없지 않은가?
: 국내에서는 아직 사진과 만화 사이의 저작권 분쟁이 일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관련된 사건의 판례가 존재한다. 『침묵의 함대』『지팡구』 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카와구치 카이지가 바로 그와 같은 사건을 겪었다. 카와구치 카이지의 대표작 『침묵의 함대』는 잠수함을 그린 작품으로서,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군사 관련 사진자료가 다량으로 필요한 내용이었다. 만화가라고는 해도 결국은 일반인이므로 그와 같은 군사자료를 쉽게 접하기는 힘들었을 터, 카와구치 카이지는 그때까지 일본 만화계에서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일반 사진집을 참고하는 방법으로서 자료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1년 해당 사진의 사진가가 『침묵의 함대』에 자신의 사진이 무단으로 사용된 것에 항의하는 일이 벌어져, 결국 카와구치 카이지 측에서 전면적으로 사과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일본에서는 실제로 사진 자료의 무분별한 도용에 대해 문제가 된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침묵의 함대』 사건 이후 일본의 출판사에서는 만화의 작화를 위한 자료 수집에 있어서 저작권이 있는 사진은 사용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료 사진은 되도록 만화가 측에서 책임지고 촬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2005년 11월 17일 일본 산케이신문에 『에덴의 꽃』 문제에 관해 만화원작자이자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타케쿠마 켄타로씨의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여기에서 타케쿠마 켄타로씨는 "어디까지가 참고고 어디부터가 표절인지, 그 사이에 커다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며,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질문:어째서 모사나 트레이스(베껴 그리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타케쿠마:예를 들어 농구 경기 장면에서, 복잡한 인체의 움직임을 아무 것도 참고하지 않고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입니다. 그밖에도 자동차나 의상 등 리얼한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대량의 사진자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간만화잡지 연재 등 제작 시간이 짧은 경우 작가 자신이 직접 사진을 촬영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료를 베끼게 되는 것이죠.

질문:베끼는 대상이 사진인 경우와 그림인 경우, 또는 모사와 트레이스 사이에는 똑같이 나쁘기는 해도 차이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타케쿠마:베끼는 대상이 사진이든 그림이든, 작가가 노력 끝에 자신의 그림을 완전히 창작했다면 차이는 없습니다. 그림이 능숙한 사람은 트레이스와 거의 동일하게 모사할 수도 있습니다. 베끼는 과정에서 얼마나 어레인지하고 독자성을 가미했는가가 문제인 것이지, 베끼는 수법 자체는 상관없습니다. (하략)

질문:1991년에 사진가가 카와구치 카이지씨의 『침묵의 함대』에 자신의 작품이 무단 사용되었다고 항의하는 등, 사진가가 고소하는 일이 간혹 있습니다. 어째서 허락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까?
타케쿠마:예를 들어 통신사에서 사진을 빌릴 때에는 1점당 수천 엔(수만 원)입니다. 영화의 스틸사진은 2만엔(약 16만원)이나 들죠. 하지만 만화 잡지 1페이지당 단가는 원고료를 포함해서 아무리 높게 잡아도 5만엔(약 40만원) 이상 가지 않습니다. 하나의 작품에 다수의 자료가 필요한 현재의 상황으로는, 원고료가 낮은 신인 작가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 마감에 쫓겨 허락을 신청하는 시간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업계에서는 필요악으로 생각해왔던 것인데, 앞으로는 그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서 언급했듯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만화의 사진 자료 참조가 사법부의 판단을 받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와 같이 이미 여러 번 문제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면서 독자들이 개별적으로 사진을 트레이스한 만화에 대한 비판을 행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만화가들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본문에 실린 이미지는 웹사이트 캡처 화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필자 본인이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