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투자, 진퇴의 비탈에 서다
역풍을 맞은 분산 조각 투자
‘평범한 한 사람,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저작권 개인 소수 지분. 어느 갑남을녀(甲男乙女)의 강남 빌딩 한 조각. 보통 선남선녀(善男善女), 장삼이사(張三李四)의 K 콘텐츠 한몫’
어느덧 돌풍을 지나 주류로까지 올라선 플랫폼 기반 콘텐츠 투자 방식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2001년 영화 <친구> 제작 전후로 확산하기 시작한 인터넷 크라우드 펀딩이 20년 만에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 기업이라는 신생 수익 모델로까지 치고 올라왔다. 세계 최초 저작권 거래 플랫폼을 표방하는 <뮤직카우>는 확장을 거듭해 이젠 누구나 알고 많은 이들이 참여를 저울질하기도 하는 유명 벤처가 되었다. 투자자들은 저작권을 구매한 후에는 보유한 지분만큼 매월 저작권료를 받거나 주식과 유사하게 ‘주’단위로 거래도 가능해 매매를 통한 시세차익도 얻을 수 있다. 지난 4월 말 기준 뮤직카우의 누적 회원 수는 약 110만 명, 누적 거래 금액은 3715억 원에 달한다. 아이유, 트와이스 등 최신 K팝 가수들은 물론 이선희, 김현식 등 중장년 세대 가수들까지 약 1,200곡이 거래 중이다.1)
△ 영화 <범죄도시2> 포스터, 이상용 (출처_네이버영화)
콘텐츠 투자 중개 플랫폼으로서 K 콘텐츠 투자라는 과감한 기치를 내건 <펀더풀>도 MZ세대를 개별 공략하며 유명세를 얻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영화 <범죄도시 2> 개봉 직전 투자 게임 판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시점부터는 차기작 <범죄도시 3> 제작비 모집을 선도하는 발 빠른 이벤트를 시작해 기존 금융시장의 고루했던 투자 방식과 차별화하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을 통한 소셜 인베스팅(social investing)이라고도 부르는 이들 신종 투자 방식은 콘텐츠 프로젝트를 넘어 전 업종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SNS와 기존 증권사의 MTS(Mobile Trading System)를 결합한 소셜 주식 투자 플랫폼으로 선보인 커피하우스가 대표적인 예다. 주식 정보 공유와 매매를 한자리에서 할 수 있게 하면서 여러 사이트나 앱을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커피하우스는 현재 신한금융투자의 비대면 계좌개설과 주식거래 서비스가 연동돼 있으며 SK증권과는 오픈 API를 통한 주식 서비스를 연동 중에 있다고 한다.2)
부동산은 물론 명품 시계, 그림 투자에서도 같은 오픈 시스템 방식이 도입되었다. ‘조각 투자’ 방식을 통해 자본금이 넉넉하지 않은 MZ세대 등 개인 투자자도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들을 낮춘 <카사>가 등장했다. 이 회사는 “2020년 카사가 1호 상품으로 출시한 서울 역삼 런던빌의 공모에선 참여자 1만 5000여 명 중 65%가 2030세대”라고 설명했다. 카사는 건물을 직접 소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해 권리를 주식과 유사한 형태로 거래, 매매가 가능하다. 현재 투자자들의 예치금은 하나은행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관리되고 있으며 투자자는 임대 배당 수익을 비롯해 유동화 수익증권(DABS) 시세차익, 건물 매각차익 등 총 3가지 수익을 얻을 수 있다.3)
이랬던 분산 조각 신규 투자가 제도화라는 거센 역풍을 맞게 되었다. 지난 4월 28일 금융위원회는 ‘조각투자 등 신종증권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핵심은 증권성이 인정되는 조각투자 상품을 발행·유통하려는 사업자의 자본시장법과 관련 법령 준수에 있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해당하면 증권신고서 제출, 공시, 투자자 보호 등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금융위는 투자자들에게 기초자산의 소유권을 쪼개서 주는 게 아닌 수익에 대한 청구권 등을 나눠 줄 때는 증권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자산에 대한 ‘직접 소유권’을 투자자들이 나눠 가지면 일반적 상거래에 해당해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경우 조각투자 플랫폼 사업자들의 사업 성패에 따라 투자자 손익이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증권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례로는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다. 반대로 투자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청구권 등을 서비스하는 파생 성격 서비스인 경우에는 증권성이 명백히 인정된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금융위는 가이드라인 발표에 앞서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서비스하는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의 서비스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각투자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증권성 인정 사례다. <뮤직카우> 등 해당 업체들은 이용자 보호, 전문가 배치 등을 통해 쇄신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동시에 시장의 혼돈과 투자자의 불안감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윽고 ‘양날의 검’이라는 탄식과 볼멘소리도 터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C(콘텐츠)- P(플랫폼)- I(투자자) 유통 왜곡 견제와 탈규제가 해법
새로운 기풍의 열띤 투자가 끝내 휴지조각으로 날아갈지, 투명성과 전문성을 보강한 썩 괜찮은 대박 투자로 반전할지를 가르는 분기점의 비탈 끝에 모두 매달린 셈이다.
지금 찬찬히 살펴봐야 할 이슈는 ‘증권’ 개념이다. 콘텐츠 투자 플랫폼의 여러 신규 서비스가 자본시장법 규제 대상인 ‘증권’인지에서부터 초기화해야 한다. 금융위는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보유한 투자자들의 경우 저작권료 수입, 청구권 가격 변동 손익을 공동으로 누리게 되는데 이 서비스가 투자계약증권의 전형적인 특성을 가진 것으로 봤다. 다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6개월 동안 제재 보류 카드를 제시했다. 이에 뮤직카우는 오는 10월 19일까지 사업 구조 개편안을 금융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은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예탁증권 등 6개로 구분된다. 금융위는 사업자 없이 투자자가 조각투자 수익의 배분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사업자의 운영 노력 없이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는 명백히 증권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사업자가 투자자가 갖는 권리에 대한 유통시장을 개설해 운영하는 등 거래 여부, 장소를 결정하는 예도 마찬가지다. 가치 상승, 손실 방지를 위한 사업자의 노력과 경험 등이 홍보 포인트로 제시된 경우도 포함했다.
때문에, 원천 투자 대상인 콘텐츠(저작권 포함)와 플랫폼, 투자자라고 하는 ‘C-P-I’ 3단계 생태계 구조에서 핵심 쟁점이 되는 플랫폼의 유통 기능과 서비스 범위에 대한 명확한 성격 규정이 필요하다. 플랫폼의 성격이 단순 중개 거래 서비스 제공을 벗어나 유통 시스템 변형, 대행 운영 업무, 정보 경영 컨설팅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포괄하는 복합 중개 쪽으로 확장할 때 엄정한 규제가 불가피하게 된다. 투자자 피해 방지와 구제, 보호라는 명분만으로도 규제 당국은 민간의 실패를 꼬집어 콘텐츠 투자 플랫폼을 제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규제 적용 기준을 확인하는 것으로 ‘양날의 검’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기준은 규제를 합리화하여 들여오는 3가지 실패, 즉 시장의 실패, 시스템의 실패, 역량의 실패라고 하는 실물경제 현장의 조견표이다.
첫째 시장의 실패를 척도로 보면 오히려 국내 콘텐츠 산업에 충분한 자금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최대 문제이다. 증권 또는 비증권 개인 투자 기회를 늘려 더 많은 자금이 적재적소에 가도록 하는 탈규제가 최우선 요구 사항이라는 지적이다.
둘째 시스템의 실패는 콘텐츠 업종의 해묵은 파이낸스 시스템 구체제 질곡을 보면 된다. 제1금융권 자본 조달과 제2금융권 운영자금 조달이 낙후한 가치평가 시스템으로 인해 오랫동안 외면 받아 왔다. 유연하고 원활하며 빠른 민간 대체 파이낸스 시스템을 도리어 적극적으로 환영해야 할 시기가 왔다.
세 번째 역량의 실패는 기존 금융권의 관습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모태펀드이다. 한국벤처투자가 여전히 제조업과 기술 중심 세계관으로 최첨단 문화 트렌드, 소프트파워를 잉태하는 콘텐츠 영역을 마구 다루어 왔다. 이러한 아마추어리즘을 못 벗어난 정부 당국이라면 콘텐츠 투자계의 젊은 피, 당찬 도전을 가로막을 자격이 없다.
결론적으로 콘텐츠를 포함한 온갖 소프트한 자산에 대한 일반인 조각 분산 투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을 감행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체들에 대한 규제는 불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금융위에서도 강조한 이용자 보호, 피해 가능성 차단 차원에서 슬림하고 건강한 감독 시스템 정도는 있어야 할 터이다. 이를테면 콘텐츠 플랫폼 투자라는 경기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VAR(Video Assistant Referees)와 같은 장치만으로도 족하다. 콘텐츠와 플랫폼, 투자자 ‘C-P-I’ 흐름을 왜곡하는 플랫폼 사업자의 탐욕과 반칙을 가려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규제 없는 전반적인 자율 투자 시스템 작동이 가능해진다.
컬처 파워 보듬는 ‘가치 투자’로 미래 개척
투자자도 개별적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콘텐츠 가치와 특성을 직시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 반도체 기업 투자와 달리 문화예술 콘텐츠는 경험재이자 가치재로서 특성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다. 예컨대 팬덤, 팬심에 따른 관심에는 금전적 수익 외에 경제외적 가치, 즉 심리적 보상과 자긍심이라고 하는 또 다른 바깥 세계관이 열려 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 미술가들을 평생 후원해 온 행위는 일반적인 투자의 개념을 넘어서는 정치적, 문화적 가치와 효능, 보상이 드러나 있다. 분명 수백억, 수천억 원 손실과 적자가 기록되었겠지만, 결국 행복이 되고 지역과 인류에 기여하고 가문도 유지하는 마술이 될 수 있었다. 메디치 이펙트다. 가치 투자의 역설이기도 하다. 콘텐츠 가치 투자가 반드시 수반하는 요술 같은 행복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달리 표현한다면 영어의 ‘Philanthropy’를 변형한 ‘Philcontent’ 또는 ‘Philsoftpower’쯤이 되지 않을까? 인간의 인격·휴머니티를 존중하고, 각자 평등이라는 사상에 따라 인종, 종교, 습관, 국적을 초월한 것이 인간애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리스의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신들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philanthropia(인간애)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영화 콘텐츠 <범죄도시 3>을 골라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 또한 천만, 2천만 영화를 기대하는 이익금과 함께 영화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영화와 행복,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애정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소신 투자를 할 일이다. 스스로 책임지고 전방위로 행복감을 퍼뜨리는 콘텐츠 가치 투자의 전성시대를 앞당길 절호의 기회가 지금이다.
BTS도 BBC 뉴스에 따르면 ‘신경쇠약 공식’으로 활동을 중단한 마당에 대한민국이 함께 맞들어 기어이 콘텐츠 시장의 큰 판을 키워 장엄한 슈퍼 파워를 거머쥐어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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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경닷컴, “뮤직카우, 주식보다 안전…증권 규정은 위기 아닌 기회”, 2022.6.5. ,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2060316966
2) 글로벌 경제신문, “‘복잡한 투자 NO’··· MZ세대 투자 트렌드, 쉽고 빠른 ‘플랫폼’이 이끈다”, 2022.5.18., https://www.g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4801
3) 위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