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플랫폼의 거대한 손
웹툰 시장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웹툰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만화시장은 출판만화가 중심이었다. 당시 만화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반만화가 아닌 교육용 만화를 그려야했다. 그렇지 않다면 몇몇의 종이 만화잡지 연재에 의존하여 대여점으로 유통되거나, 대본소 형식에 맞추어 제작되어야 했다. 한국출판만화시장의 죽음은 유통구조가 절대 성장할 수 없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육용 만화는 부모의 허락과 아이들의 요구에 의해 서점을 통해 소비되었으나, 일반만화는 대본소와 대여점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고 나면, 몇몇 매니아층을 제외하고는 소비되기 힘들었다. 만화가 출판될 때, 시장의 규모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결코 성장할 수 없는 시장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만화책’을 구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만화책을 빌려보는 데에 익숙했고, 구매의 10분의 1의 가격인 300원이면 만화를 즐기는 것이 충분했다. 작가는 대본소와 대여점으로 판매가 된 만화에서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본소 만화들은 만화의 질적인 부분보다 양적인 부분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처럼 찍어내더라도 끊임없이 유통시킬 수 있는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음과 네이버와 같은 포털형 웹툰 플랫폼의 등장은 만화시장에 새로운 희망이었다. 몇몇의 작품으로 웹툰 시장의 가능성을 타진한 포털들은 차세대 웹툰 작가를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작가 발굴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웹툰 작가들을 발굴하였다. 그리고 웹툰 플랫폼으로써 작가들과 독자들 사이에 중간 매개자의 역할을 담당하여 수익구조를 설계하고 각종 웹툰 공모전에서 투표의 형태로 독자들의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창작자와 소비자의 접점이 생겼다는 것이다. 창작자가 재미있고 질 좋은 작품을 연재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해당 작품을 찾게 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작품일수록 더더욱 노출도는 올라가며 자신의 수익 또한 증대된다. 즉, ‘만화’를 얼마나 빠르게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재미있는 것을 그려서 인기를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특히 광고유인물에 가까웠던 포털형 웹툰 플랫폼이 웹툰이라는 콘텐츠를 사고파는 콘텐츠 거래 플랫폼으로 변화하면서, 콘텐츠의 질적 성장은 더욱 중요해졌다. 단순히 시간을 떼우기 위한 스낵컬처에서 직접 구매하고 싶은 콘텐츠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플랫폼이란 ‘온라인상에서 생산·소비·유통이 이루어지는 장’, 즉, ‘토대’나 ‘시스템’, ‘기반’을 말한다. 즉 온라인상에서 일정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최적화된 상태로 제공하기 위해 구축된 제반의 환경을 말하는 것으로, 플랫폼이란 생산·소비·유통을 둘러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즉 공급자와 수요자 등 복수 그룹이 참여해 각 그룹이 얻고자 하는 가치를 공정한 거래를 통해 교환할 수 있도록 구축된 환경이다.
플랫폼은 플랫폼 참여자들의 연결과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다. 그러나 현재의 플랫폼은 하나의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플랫폼을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윤의 (profit) 일정부분은 이러한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또한 플랫폼의 특성상 이용자의 수와 이를 유인하는 콘텐츠의 수가 시장 점유율에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쏠림현상(Tipping Effect)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영역에서 하나의 표준적인 거대 플랫폼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이용자와 생산자가 더더욱 쏠림으로써 하나의 독점적인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쏠림현상을 통한 거대 플랫폼의 독점화는 플랫폼 경제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수순이다. 많은 콘텐츠 생산자들은 많은 소비자층을 원하고, 많은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 줄 많은 콘텐츠가 있는 곳으로 모인다. 유튜브가 그러했고 스팀이 그러했다. 이들은 초기 다른 경쟁 플랫폼보다 생산자에게 유리한 수익구조와 '그린라이트 제도'와 같은 신규 창작자의 발굴 등을 통해 플랫폼을 성장시켰다. 플랫폼의 성장에서 우선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콘텐츠의 양적 성장이었다.
웹툰 시장의 성장 요인은 플랫폼의 특징 중 하나인 ‘누구나’ 콘텐츠 생산자로서 참여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웹툰은 단순히 ‘웹’을 통해 소설이 쓰여진 것이 중요한 것이아니라, 플랫폼이라는 ‘마켓’을 통하여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중들에서 선보일 기회를 얻었고 성공을 희망할 수 있었다. 이는 만화 시장이 플랫폼화로 인해 대량생산에서 대중생산으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대중생산이란 플랫폼이 콘텐츠 개발의 기초적인 인프라(유통, 홍보, 수익구조 등)를 제공해 줌으로써, 자신의 관심사 혹은 자신의 강점을 중심으로 소비 주체들이 콘텐츠 창작 및 개발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랫폼화가 된 웹툰 시장은 시장의 성장과 함께 창작자, 플랫폼, 독자 모두 해피엔딩을 맞았을까?
당연히 그러지 못했고 우리는 해결의 방향성 앞에서 고뇌하고 있다. 플랫폼의 미디어적 특성에 의해 웹툰 시장은 무한 경쟁 및 승자 독식 구조 속에 있다. 웹콘텐츠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작품을 최초 구독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요소로 조회 수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 고려되는 요소가 작품제목, 작가의 지명도였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타인’에게 많이 영향을 받는 타인지향적 사회에 살고 있다. 즉, 타인의 가치평가가 자신의 선택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웹툰은 웹 혹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보는 콘텐츠다. 플랫폼에 접속하였을 때 독자들은 메인 페이지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알고리즘에 따라 콘텐츠를 노출시키는 유튜브와 달리, 웹툰 플랫폼의 메인 페이지에서 가장 크게 노출되는 정보는 바로 요일별 인기순위다. 또한 상단에 먼저 자리 잡고 있는 메뉴가 바로 전체 순위를 노출시켜 주는 ‘랭킹’ 메뉴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유명작가일수록 그리고 인기가 많을수록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점은 신인 작가의 발굴이 어렵다는 점이다. 작품의 초기 진입에 있어서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작품은 일명 ‘심해’에 빠져 버린다. 그런 작품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독자들이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작품들을 연재하는 작가들은 창작활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수익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매출에서 창작자에게 수익비중이 높은 편당 결제가 아닌, 조회수를 중심으로 수익이 분배가 되는 구독시스템이나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이러한 문제가 인기 있는 작품의 작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으니, 플랫폼 입장에서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콘텐츠 시장은 창작자의 층, 즉 작가층이 얼마나 두꺼운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작가층이 있어야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그 중에서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빼어난 작품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인 작가와 비인기 작가들의 수익구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한 웹소설 플랫폼의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2013년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의 작가 이탈 사태이다.
조아라는 독자들이 월 구독을 하면, 구독료를 조회수에 따라 배분하는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피아>가 편당 결제 방식으로 유료 웹소설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대거 작가층이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특히 중·하위권 작가들의 이탈이 심하였다. 매니아층이 중심이 되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문피아>가 편당 결제라는 문턱이 있더라도 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이후 구독 경제를 중심으로 형성되던 웹소설 플랫폼들은 편당 결제 시스템으로 재편되었고, 이는 웹툰 시장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대다수의 웹툰 플랫폼이 편당 결제를 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웹툰은 다른 콘텐츠보다 이러한 승자독식 시스템에 취약하다. 웹툰은 웹소설 등에 비해 노동의 강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한 편의 작품을 연재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에서부터 콘티와 채색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적자원이 소모된다. 인기작의 경우, 어시스턴트 등을 통해 노동을 분배할 정도의 수익이 나오겠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은 창작자 홀로 노동을 감내해야한다. 그리고 그 노동에 비해 한 주마다 연재되는 웹툰의 수익은 충분치 못한 실정이다. 주마다 평균 5에서 7회 정도 연재되는 웹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또한 일상툰 등의 가벼운 그림체가 중심이었던 웹툰 시장은 현재 고도화되면서 극화 중심의 웹툰이 대세가 되었고, 이에따라 노동의 강도는 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창작층의 폐사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날 웹툰 시장의 성공에는 플랫폼화로 인한 ‘대중생산’에 그 기원이 있다. 많은 창작자들은 독자들과 대면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좋은 작품을 만들면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은 창작층의 양적 성장을 이룩해냈다. 콘텐츠 시장은 얼마나 많은 창작층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들의 질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웹툰 업계는 웹툰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과거 웹툰 초창기와 같은 희망을 얼마나 선사해 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물음을 던져 볼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