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화는 곧 웹툰인 시대입니다. 물론 한번 다시 생각해 보면 출판 만화도 있다는 걸 모두 인지하지만 만화라는 단어도 잘 쓰지 않는 요즘, 만화란 곧 웹툰을 떠올리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2022년 만화산업 백서에 따르면 웹툰만 이용하는 독자가 71.6%, 웹툰과 출판만화를 모두 이용하는 독자는 25.9%, 출판만화만 이용하는 독자는 2.5%라고 집계가 되고 있습니다. 2023년의 겨울로 달려가는 지금은 웹툰만 이용하는 독자의 수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웹툰 작가는 사석에서 출판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아니, 정말 아주 많이 합니다. 창작이 곧 돈인 작가들이 돈도 안 되고, 사양 산업인 출판 만화에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여유만 허락한다면 출판 만화를 이리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1. 그곳엔 만화가가 할 일이 좀 더 많다.
만화의 정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스콧 맥클라우드가 1993년에 출간한 <만화의 이해(Understanding Comics)>에서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그에 따르면 만화란 “의도를 가지고 병렬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좀 더 요즘 시대에 맞춰 풀어보면 만화란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나열시킨 그림 및 기타 형상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웹툰은 병렬이 아니고 직렬이기 때문에 그런 연출을 함께 포함하자면 ‘나열시키는’라는 말이 맞는 단어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만화는 단순한 그림도 아니고, 글로 이루어진 이야기도 아닙니다. 만화란 작가가 준비한 서사를 의도를 가지고 전달하기 위해 나열시킨 여러 패턴의 조합과 만들어진 여러 기호의 나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독자에게 어떤 시그널로 보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행위 자체를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가라는 직업 자체의 원래 의미는 이런 기호를 독자가 어떻게 만들면 편하게 감상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나열하고 리듬을 만드는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보다 페이지 출판 만화로 작업할 때,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작업해 볼 수 있으므로 다수의 만화가는 출판 만화를 정말 만들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평소 만화를 즐기는 웹툰은 독자들이 대부분 스마트폰을 통해 감상하기 때문에 그것에 기준을 놓고 연출 방식이 발달해 왔습니다. 덕분에 발견한 웹툰만의 무한히 내려가는 스크롤의 미학이 크게 발달했고 또 스마트폰이 빛을 낸다는 점을 활용해 그 빛을 활용한 컬러로 독자들에게 그래픽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스마트폰 기준의 웹툰은 독자의 양쪽 눈이 스마트폰의 한 지점으로 몰려서 작품을 감상한다는 특징 때문에 한 단에 하나의 그림이나 말풍선을 놓고 아래로 한 덩어리씩 떨어지는 방식으로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연출 방식이 한 편의 웹툰을 만드는데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한마디로 작가의 입장에선 연출에 있어 칸과 말풍선을 조합해 기호의 강, 약을 만들고 디자인할 수 있는 거리가 출판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하다 보면 만화가로서 느낄 수 있는 조합의 재미는 솔직히 출판의 양쪽 페이지를 디자인해 이미지를 만들어 낼 때 훨씬 흥미롭습니다. 대신 웹툰은 연출로서는 이런 큰 재미를 주기 어려운 웹툰은 출판 만화와 반대로 서사에 엄청난 공력이 들어갑니다. 독자들이 결국 찾는 재미의 총량을 비슷할 것이기 때문에 연출로서 큰 재미를 줄 수 없다면 다른 것으로 재미를 줘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빛을 뿜어내는 컬러 그래픽이고, 또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 바로 서사의 완결성입니다. 그 결과 현재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 애니메이션 등이 웹툰에서 원작을 찾는 이유가 되기도 했고 그것이 지금의 미디어믹스 시대를 열게 된 하나의 큰 축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출판만화가 만화가를 설레게 만드는 점은 바로 한 컷과 페이지마다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의 밀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흔히 만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일이 독자들이 편하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매체에 맞는 시선의 흐름을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매체에 맞춘 정보량을 정하는 일입니다. 스마트폰의 경우 이 정보량의 밀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인물의 대사를 전달하는 텍스트의 크기도 매우 크고, 그래픽 디자인에서도 최대한 단순하지만, 고퀄리티의 형태를 유지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방식에 어울리는 장르나 서사, 연출 방식이 발달해 왔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느낌의 만화로 웹툰이 재정립되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반대로 페이지 출판만화의 경우 하나의 말풍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텍스트의 숫자가 스마트폰에서 보는 웹툰에 비해 많습니다. 그리고 책은 사람의 눈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수직, 수평을 유지한 채 읽기 때문에 정보량이 높은 그림을 그려도 독자들이 보는 데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그 의미는 밀도 높은 그림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 존재하고 또 거기에 어울리는 서사라는 것이 존재하고 좀 더 진지하고 무겁게 가고 싶거나, 혹은 간단한 서사와 화려한 그래픽으로 매력을 어필하고 싶은 만화 작품의 경우에 선택하고 싶어지는 제작 포맷이 바로 출판만화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가의 입장에서 내가 좀 더 밀도 높은 그림과 무겁고 천천히 전개해도 되는 서사에 강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면 당연히 출판 만화에 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칸과 말풍선의 조합에 의해 작가가 창작할 수 있는 범위가 스마트폰보다 페이지 형태의 만화가 훨씬 넓기 때문에 만화의 정의에 입각한 만화가의 입장에선 훨씬 재밌는 작업을 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여전히 페이지 만화의 미학을 살린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만화가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곤란한 것은 그래서 만화는 역시 출판가 더 뛰어나다는 쪽으로 빠지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확장, 자본주의의 시장의 확대에 기준을 둔다고 봤을 때 만화는 다양한 작품이 다양한 매체에서 많이 전달되고, 산업이 점점 확장되면 될수록 좋습니다. 출판으로 봐야 하는 작품은 그에 맞춰 사랑받고, 웹툰으로 봐야 할 작품은 또 그에 맞춰 제작되어 사랑받고 앞으로 VR을 활용한 매체가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면 또 거기에 맞는 만화들이 요구에 맞춰 다양해지는 것이 좋은 방향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칸과 말풍선의 조합을 다양한 방정식으로 가져간다고 해서 무조건 출판이 더 뛰어나고 위대하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리고 그 출판 만화도 이제 시대가 지나면서 다양한 연출의 형태로 변하고 있습니다.
2. 변화하는 페이지 만화의 매체
우리가 흔히 출판만화라고 부르는 만화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페이지 형식을 띠고 물성을 가진 책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것은 페이지라는 형식과 책이라는 매체의 결합으로 100년이 넘은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다 보니 그렇게 규정된 정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 페이지 만화를 책이 아닌 PC의 모니터 혹은 스마트폰, 아니면 태블릿 패드에서 보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더 이상 집에 만화책을 둘 공간이 없다며 e-Book 형태로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또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감상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동안 똑같은 출판만화라고 생각하며 책, e-Book 할 것 없이 보던 만화들에도 같은 페이지만화지만 매체에 따른 분명한 변화의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페이지 만화를 출판으로 제작할 경우, 다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연출은 바로 펼친 페이지 연출입니다. 두 페이지 전체에 걸쳐 펼쳐진 큰 그림을 통해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쓰이는 연출로 방아쇠 효과를 위한 앞 페이지와의 연동된 형태로 자주 활용되는 연출입니다. 특히나 그림의 구조와 데생이 자신감이 있는 작가들이 자주 활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연출은 같은 페이지 만화라고 하여도 만약 작품이 스마트폰에서 감상 될 작품이라면 이런 펼침 페이지 연출은 활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스마트폰을 가로로 기울여 가며 작품을 보려 하지 않고, 한 번에 한 페이지씩 넘겨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 펼침 페이지는 스마트폰에서 작품을 볼 때 갑자기 끊어진 화면의 등장으로 독자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로 활용됩니다. 또한 책과 다른 PC 모니터, 스마트폰, 태블릿 패드가 가진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액정을 가진 전자기기는 책과 달리 강력한 빛을 뿜어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을 활용하기 위한 컬러링이 그림에 새롭게 연구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 기존의 책으로 출간되던 페이지 만화와 달리 전자기기에서 읽히는 페이지 만화는 강력한 빛을 활용한 그래픽을 강력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 되고, 이것은 작가에게 작품의 컨셉과 방향성을 잡는데 하나의 도구가 더 추가된 셈입니다.
또 다른 변화는 바로 한 페이지를 구성하는 칸의 형태에 있습니다. 기존 페이지 만화의 기본 형태는 ‘3단X3컷’ 구성에서 변주를 가져가는 형태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연재 만화는 책의 여러 판형 중 46판(122mmX188mm)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경우 다수의 독자들은 자신의 눈과 수직, 수평의 거리를 유지했을 때 조금만 움직여도 칸을 하나하나 집중해서 볼 수 있고, 전체도 볼 수 있는 위치에 책을 두고 작품을 감상했는데, 이때 가장 편하게 볼 수 있는 연출이 바로 ‘3단X3컷’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기존의 책 판형에 맞춰 연출되는 ‘3단X3컷’의 구성으로는 독자가 읽어야 하는 텍스트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읽지 못한다거나, 그림의 밀도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최근 소년점프+에서 e-Book의 형태로 연재되었다가 다시 책으로 나오는 엔도 타츠야 작가의 <스파이 패밀리>나, 마츠모토 나오야 작가의 <괴수 8호>, 타츠유키 노부의 <단다단>같은 작품을 보면 기존의 ‘3단X3컷’의 구성이 아닌, ‘3단X2컷’의 구성으로 말풍선과 텍스트의 크기를 좀 더 키울 수 있는 여유를 칸마다 부여하는 형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래픽이 주는 기존의 출판 만화에서 나오던 구성보다 독자가 일단 대사를 읽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작품 기획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또한 그림체도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캐릭터의 명암이나 흑백의 대비를 표현함에 있어 선을 활용한 그림자나 표현이 그림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좋은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면 현재는 그런 도구들이 스마트폰으로 볼 땐 묘한 깨짐 현상과 함께 그림을 더티한 느낌으로 만들기 때문에 지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발표된 작품이나 연재 중인 작품은 기존의 그래픽을 유지하며 연재되지만 새롭게 연재에 들어가는 작품들은 이런 깨짐 현상이나 스마트폰에 맞지 않은 정보량 및 밀도로 발생할 상황을 방지하고자 최대한 선의 활용을 비워내면서도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방식에 관한 여러 연구가 작품 속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페이지 만화가 e-Book으로 꾸준히 읽히게 될 경우 가야 할 방향성의 한 갈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다양해진 페이지 만화의 연구
다양한 만화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매체로 읽히는 것만큼 산업에 좋은 길은 없습니다. 웹툰은 그 넓은 전파성에 맞춰 만화 산업의 큰 역할을 해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출판도 교육 분야에선 나름의 선방을 해내며 산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취향 저격으로 만들어진 각 종 페이지 만화들은 앞서 나열한 좁아지는 집과 비용의 문제 등으로 점점 오프라인 공간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희망적인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페이지 만화가 변화한다면 당도할 수 있는 곳은 e-Book 시장이고, 또 그러기 위해선 매체에 따른 페이지 만화의 연출 및 매력을 새롭게 정립해 가야합니다. 지금은 그런 변화의 시작점에 와있고, 조금씩 분별 되어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 시점입니다. 페이지 만화는 이제 책이라는 물성이 있는 매체를 떠나 새롭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이런 페이지 만화의 연출 연구가 깊게 들어가서 데이터를 쌓고 정립되기에 매우 좋은 시기라고 볼 수 있는 좋은 연구 소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