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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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축제에 무엇을 하러 가나?" 축제의 의의와 기능에 대하여

코로나 이후 다시금 찾아온 만화 축제들, 24년 성공적인 축제들을 기원하며 그 의의를 생각해 봅니다

2024-02-26 이현재

[ 그림 1, 제26회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식 중 ]


생각보다 엄밀한 학술의 대상, 놀이와 축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놀이’를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논다는 행위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다만, 노는 일이라는 설명부는 의미의 환원을 어렵게 만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놀이는 노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놀이를 무언가로 환원되거나 치환할 수 없는 어떤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놀이와 축제에 관한 한 가장 권위 있는 설명 또한 놀이는 그 자체로 본질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놀이와 축제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한 번 즈음은 인용되는 책이 하나 있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1938)』라는 책이다. 책의 제목이자 주요 개념이기도 한 ‘호모 루덴스’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Homo와 놀이라는 뜻을 가진 Ludens가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놀이하는 인간 정도가 된다.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를 인간의 유희적 본성으로 규정하고, 놀이가 문화적으로 표출된 결과를 축제라고 주장한다. 하위징아는 놀이가 일상적인 삶과 생산력 향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하위징아의 아이디어는 문화가 유희보다 상위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은 것으로, 하위징아는 놀이가 생존에 직결된 실생활 밖에 있는 것으로써, 목적을 가지지 않는 비생산적인 행위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놀이의 특성 때문에 놀이는 생활 전반에 걸쳐 보완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이었으며, 다양한 창조 활동을 전개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다양한 창조 활동을 요구받게 되었고, 그 결과 놀이와 축제는 문화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필수적 사회요소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하위징아의 아이디어는 로제 카유아(Roger Caillois)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발전한다. 카유아는 ‘놀이 속에는 성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규칙들이 녹아있다’고 지적했던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의 주장을 수용하여, 놀이와 인간이라는 저서에서 모든 형태의 문화는 놀이형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하기 위해 카유아는 놀이를 △아곤(agon, 경쟁) △알레아(alea, 우연) △미미크리(mimicry, 모방) △일링크스(illinx, 패닉)의 개념을 활용해 4가지 분류로 나누어 설명했다. 나아가 카유아는 놀이만큼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문화적 기제는 없으며, 놀이 정신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 활동을 하게 만드는 동원력으로 보았다.


[ 그림 2,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


생각보다 냉혹한 경제의 대상, 축제

만화 축제 혹은 그와 관련된 축제 역시 놀이에 대한 두 거장의 의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 축제가 두 거장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문화적 기제”와 같은 이상적인 목적을 위해 개최된다고 한다면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만화 축제에 경우, 만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유희적 본능을 해결하기 위한 장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전시하며 본격적인 수익 창출의 기회를 쥐여 줄 PD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축제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PD들은 자신이 소싱한 아이템들을 세일즈하기 위해 축제를 찾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축제는 하나의 시장이 된다. 이는 작품의 교환 가치를 검증받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시장의 선택을 통해 그 해의 아이템들을 결정하고 그 아이템에 할당된 기능과 의미를 결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게 만화 축제와 같은 콘텐츠 축제의 경우 비즈니스 매칭 및 게터링을 지원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테스크는 콘텐츠의 생산자와 공급자가 각자의 거래를 통해 콘텐츠를 유통하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축제에서 만들어지는 비즈니스 매칭과 유통 기회 창출이 모두 수익화를 목표로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자리를 통해서 생산자와 공급자 간에는 모종의 공모가 이루어지고, 그 공모를 통해 작품은 시장 내에서 일정한 기능을 할당받게 된다. 심지어 축제에서 작품 혹은 창작자를 대상으로 수여되는 시상 또한 어떤 가치에 대한 보증보다도 특정한 작품에 기능을 부여하는 성격이 크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하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생각해보자.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만화상은 여성 혹은 약자의 일상을 그린 작품들에 대해 시상을 빼놓지 않았다. △허5파6 <여중생A>(2016)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2016) △수신지 <며느라기>(2017) △단지 <단지>(2017) △미역의효능 <아 지갑놓고나왔다>(2017)와 같은 작품들의 시상은 일종의 어젠다 세팅 기능을 수행하며 단순히 시상식이 가지고 있는 유사 가치체계의 기능 수행 이상의 역할을 했다.

이는 시장 내에서 어떤 작품이 어떤 수용을 받는다는 것을 표명한 것으로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창작자와 공급자의 처지에서는 어떤 아이템이 시장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파라미터 역할을 하게 된다. 위와 같은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장에서 가치를 공급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플레이어들에게 선택을 쉽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시장에 공급될 아이템을 선제어하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역할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 그림 3, 여중생A, 혼자를 기르는 법, 며느라기, 단지, 아 지갑놓고나왔다 ]


생각보다 삼엄한 정치의 대상, 축제

그 반대의 역할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축제가 당사자 간의 직접적인 소통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축제로 돌아가 축제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다양한 체험을 통해 콘텐츠와 직접적 접촉을 지향하는 부스들이 전시장 안에 설치되어 있고, 참여자 일부에게 체험과 관련된 모니터링을 위해 설문을 진행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축제를 소비하는 일반 관객의 역할이 그 설문에서 종료된다는 점이다. 일부 지자체들은 축제의 주요 캐릭터를 통한 홍보 콘텐츠를 통해 SNS 등 온라인 활동을 하며 일반 관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 하지만, 콘텐츠에 대한 홍보 예산이 따로 주어지지 않는 현장의 특성상 콘텐츠를 만들어도 프로모션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접점을 확산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그 결과 축제를 소비하는 일반 관계의 경우 축제에서 마땅한 역할을 찾기는 어렵다. 이로 인해 축제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찾는 일은 비즈니스 매칭과 같이 베타적 성격이 강한 네트워크 내에서 형성하게 된다. 이는 축제의 성격에 모종의 권력관계를 심게 된다. 축제 내에서 생산자가 소비자를 타고 공급자에게 매개 되는 현상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생산자는 축제 운영자를 통해 공급자에게 매게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축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치경제의 특징 중 하나는 행정적으로 제어되는 문서작업이 기록이나 계량화가 어려운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굳이 시상식이 아니더라도 폐쇄적 네트워크에 의한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좋은 조건들을 갖추게 된다.

최근 축제에서는 관객들에게 콘텐츠에 대한 평가 권력을 쥐어주는 방식으로 이러한 폐쇄성에 다양성을 공급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문제는 현장의 유동성을 기록으로써 고착화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객의 평가 기록이 현장에서 즉각성을 발휘하며 네트워크에 개입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더불어 축제 운영자들에게 과부하를 걸어가며 그 기록에 즉각성을 부여한다고 해도, 공급자를 그 현장에 개입시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행정 권력의 힘을 거치게 되어 있다. 다양성 공급의 노력들이 의미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축제의 본연적 특성상 그 폐쇄성을 상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폐쇄성은 축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에 오랜 기간 기능으로서 생존할 수 있었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축제가 본질적으로 일탈을 담보한 행사라는 점이 작용한다. 즉, 행사 자체가 일탈을 위해 폐쇄성을 어느 정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 폐쇄성을 상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불어 이러한 폐쇄성을 통해 산업계, 특히 세일즈 에이전시들이 본인들의 선택에 대한 리스크를 분산하게 되는 이점 또한 있다. 축제의 폐쇄성은 그 폐쇄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모두에게 나름대로 공평하게 작동하는 편이다. 따라서 축제에 개입할 수 있는 세일즈 에이전시들을 제외하면 축제에 접근할 수 있는 산업계 또한 제한적이다. 

이는 세일즈 에이전시들에게 나름의 전문성과 축제 과정에 대한 정보의 제한성을 구축하며 선택의 근거를 에이전시가 취사선택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결과값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상쇄하게 만든다. 축제 운영자의 경우에도 운영 과정을 필연적으로 세일즈 에이전시에 맡김으로써 운영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산하게 되는 잠재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이러한 공모는 궁극적으로 축제를 잠재적 검열의 장으로 만든다. 축제 운영자들은 공급자에게 유통되는 공급 유통의 기회를 제어함으로써, 그리고 공급자는 그 유통 기회에 대한 결과를 통해 평가값으로 치환하는 기회를 만듦으로써 생산을 검열한다. 

위 과정이 건강하다면, 축제는 품질 보증을 수행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축제의 폐쇄성을 의도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축제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기 쉽상이다. 최근 서브컬쳐 시장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소비자의 직접적 개입이 증가하며 이와 같은 체계도 변화를 요구 받고 있지만, 축제가 암묵적으로 지향하는 어젠다에 따라 공통의 의제를 설정하거나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논의의 주제를 정하는 정치적 기능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 자체가 궁극적으로 즐거움을 통해 일상에 윤활을 공급하는 것에 그 본질을 두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축제는 기본적으로 즐기러 가는 장소다. 


필진이미지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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