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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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자유와 오리지널리티, 그리고 표절의 문제

계속 이어지는 표절 문제를 진단합니다

2024-02-22 손유진

예술계에서 유구하게 토의의 대상이 되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표절과 패러디의 경계 문제이다. 많은 경우 표절 의혹에 관한 논란은 대상이 원본과 얼마나 유사한지에 대한 언쟁으로 이어진다. 즉 원본과는 다른 오리지널리티가 존재하는 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는 예술에 보장되는 폭 넓은 자유를 고려할 때 언뜻 소모적인 논란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예술이라는 영역 이전에 작가의 권리 측면에서 접근할 때 표절은 심각하게 숙고되어야 할 개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술이 현실과 독립적이라면 표절은 단지 관념적 차원에서 머물게 되지만 작가의 저작권과 생계는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와 깊게 관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 드라마에 대하여 제기된 표절 의혹을 들 수 있는데, 이 드라마는 큰 흥행을 이루었지만 각본의 원작자임을 주장하는 작가 지망생은 생활고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며 호소했던 경우가 있다. 이는 작품이 내세우는 핵심적인 가치가 작가의 지적 재산으로서 보호받지 못할 때 발생하는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술한 자유의 문제를 고려할 때, 무작정 표절 낙인을 찍는 일 또한 경계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 매체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기법이 패러디와 오마주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을 리퍼런스로 두지 않는 작품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모든 작품은 서로 긴밀하게 질적인 연결성을 갖는다. 가요계의 경우 ‘샘플링’이라는 개념이 있을 정도로 원본과 재창작의 유사성에 대한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의적인 기준으로 표절에 대한 시시비비를 함부로 가리게 된다면 표현의 자유와 나아가 창작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작가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제 3의 길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원본이라는 개념을 긍정한다면 원본의 가치를 보장하는데 있어 창작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며 이를 부정한다면 원본을 통하여 작가가 응당 얻어야 할 수익이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원본 개념을 부정하는, 즉 모든 작품이 서로의 리퍼런스이고 그래야만 한다는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봤을 때, 리퍼런스의 필연성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예술은 작품 그 자체로서 계보학적 측면을 가진다. 획기적인 기법이나 아이코닉한 시퀀스가 등장했을 때, 이는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게 되며 장기적으로 진행될 경우 하나의 클리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대부>의 경우 범죄 영화의 장르적 정립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인물들의 절제된 우아함과 권위적인 무게감을 묘사하는 특유의 방식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영화에 적용되고 있다. 또한 <대부>에서 오렌지가 중요한 사물로 등장하면서 범죄 영화에서 오렌지가 등장하면 인물의 생사 여부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다는 클리셰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렇듯 창작물은 마치 화석이 생겨나듯 여러 작품이 누적된 층계 위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그 하나하나가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는 창작 활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패러디나 오마주가 창작론의 필수적인 요소인 이유는 모든 작품이 현실적 맥락 속에서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풍부하게 일구어진 예술의 토양이 존재할 때에만 새로운 흐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무런 리퍼런스 없이 작품을 창작하려 한다면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특정한 형식과 문법을 갖고 있어서 이에 대한 이해나 참고 없이는 작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즉 창작론은 건축술과 같아서 정립된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작품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 절차는 바로 기성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아무리 개성적인 작품을 만들더라도 계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러한 예술의 상호성은 또한 예술이 가지는 의사소통으로서의 기능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상술하듯 예술은 현실적 맥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작품은 다방면으로 개방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다른 작품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며, 이는 기작품들이 다져 놓은 소통의 문법 위에서 가능하다.

한편, 예술에서 가장 중시되는 가치 중 하나는 자유의 개념이다. 예술이 추구하는 목적 중 하나는 상상력을 통한 인간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이다. 이 때문에 예술이 가지는 자율권은 다른 분야들에 비해 막강하게 작용한다. 작가들 또한 예술인 정체성에 소속되는 한, 창작에 가해지는 제약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기본 입장으로 견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개방성이 예술의 양적,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는 다른 작품을 참고하는 데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원본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덧씌움으로써 예술은 상호간 생명성을 불어넣게 된다. 특히 만화계에서는 패러디가 두드러지지 않는 작품을 찾기 힘들 정도로 상호 참조가 필수적인데, 만약 원본의 개념이 명확하여 이를 침범하고 각색하는 일에 제재를 가한다면 창작계 자체가 타격을 입게 될 위험마저 발생한다. 

그러나 원본, 오리지널리티의 개념도 실상 창작의 자유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작품들이 넓혀 놓은 지평 속에서 새로운 창작물 또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즉 다양한 선택지를 미리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원본은 창의성에 역설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창작이 거울이라면 그가 비추어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 원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원본과 창작의 자유는 선순환 관계에 놓여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원본을 자유로이 재해석하고 전유할 수 있을 때 작품의 고유성은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작품이 서로를 베끼고 참고한다면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결국 모든 작품의 경계와 개성이 흐릿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문제는 흑백의 판단으로 답을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적어도 고유성을 획득하는 데에 유리한 조건들을 고려해볼 수는 있다. 만약 예술적 역량에 편집 기술을 포함시킨다면, 원본을 재구성하는 능력 또한 창의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림 1, 좌) 원령공주, 우) 신세기 에반게리온 ]


또한 재구성의 과정에서 창작자의 신선한 관점이 반영되었다면 이 또한 고유성을 강화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디즈니와 지브리는 많은 경우 원전을 각색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서사를 새롭게 창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기존의 서사를 어떻게 작품 안에 녹여내어 현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지 그 방법론에 대한 고민에 많은 자본을 소요하는 것이다. 또한 작가 간에도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받는데, 한 작가의 작품론에 반발하는 목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스승격의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자신만의 색을 입혀내는 경우도 많다. 한 유명한 일화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제자 격인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한 <원령공주>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포스터가 동시에 걸려있던 때에 그 표제가 각각 “살아라”,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텐데”로 대비되어 사람들의 흥미를 산 적이 있었다. 표제의 첫 인상과는 달리 <에반게리온> 또한 생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하야오가 생의 역동성과 능동성으로 그 가치를 조명한다면 안노는 생의 명암이 만들어내는 대비를 통하여 역설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같은 메시지를 공유하고 계승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관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 또한 리퍼런스로서 원본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수평적인 영향 또한 존재하는데, <원펀맨>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ONE의 원작이 코믹한 색채로 아이러니를 그려낸다면 무라타 유스케의 리메이크 판은 진중한 필치로 장엄함을 연출하고 있다. 원본에서 색다른 매력을 끌어내려는 시도 또한 원본이 예술에서 자유도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지시하고 있다.


[ 그림 2, 원펀맨 ]


그러나 원본의 구분이 모호하다고 해서 표절 개념을 전면 부정해서는 안된다. 지적 재산권의 존재가 시사하듯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이는 작가가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 만약 원본과 매우 유사하여 원본의 영향력을 대체하고 위협하는 작품이 존재한다면 이는 원작자의 생계를 위협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웹툰 표절 건의 경우 대사나 컷, 연출 등이 거의 흡사한 표절작의 작가가 오히려 원작이 표절작임을 주장하며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또한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화풍을 그대로 모방한 다른 작가가 원작자와 혼동되어 원작자의 수익에 지장이 생긴 경우도 존재한다. 이렇듯 고유성을 가로채어 원작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표절로 판단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원작이 창출하는 수익을 의도적으로 도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원작인지 혼선을 주면서 타인의 작품을 수단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는 명백히 문제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유사한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모호하거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감상자에 따라 표절작에서도 유사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절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과제로 남게 된다. 

법률적 개념 중 ‘저작 인격권’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저작자의 명예나 인격 등 정신적 부분에서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이다. 즉 물질적 이익에 관련되지 않더라도 표절로 하여금 창작자의 정신에 피해를 준다면 이는 법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의도적인 표절 행위는 근절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 충분한데, 문제는 법적 사례에서도 명백한 증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판결 상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이다. 상대의 저작물을 의도적으로 베꼈다는 증거, 예를 들어 원본 파일을 훼손한 흔적 등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색채나 실루엣의 유사성을 위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여전히 주관적이다. 그러므로 법적 기준을 적용한다 하여도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현 시점에서도 표절과 도용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창작자들이 다수 존재하는 만큼, 작품 외부의 요소들을 고려해서라도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원본의 전유에서 오는 모호성은 허용되어야만 하고 필수 불가결하지만 그것이 원작자의 권리 침해를 위하여 악용될 때 이를 방지할 기준 또한 불명확한 실정이다. 이는 진퇴양난의 상황과도 같은데, 어느 한 쪽의 입장으로 치우치게 된다면 창작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정당한 수익을 받지 못하는 등 창작자에게는 양쪽 모두 불이익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양가성에 대하여 우리는 신중한 태도로 현실적인 예방책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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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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