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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만 보는 게 아닙니다" [무협]의 대중화

<화산귀환>으로 정점에 이른 무협 대중화

2024-03-18 이현재

[ 그림 1, 주요 무협 웹툰들 - <고수>, <아비무쌍>, <화산귀환> ]


| 무협 장르의 발전 배경, 어떻게 볼 것인가?

웹 콘텐츠의 태동과 함께 소비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2020년대를 통틀어 가장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인 서사 장르를 뽑는다면, 로판(로맨스 판타지)과 무협을 뺄 수 없을 것이다. 로판은 00년대 후반부터 급부상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이후 광포하게 파편화된 서사적 관습들을 판타지・로맨스라는 요소 아래로 묶었다. 로판의 개발은 판타지적인 배경에 로맨스라는 서사만 제공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요소가 개입되어도 비교적 수월하게 로판이라는 장르적 태그를 달 수 있었다. 이러한 로판 장르 특유의 편의성은 넓게 퍼져있던 다양한 이야기 관습을 망라하며, 파편화된 관습들에 전형성을 부여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특히 2010년대부터 약진하기 시작하며 사회에 보급된 페미니즘은 로판에 성공을 욕망하고 성취하는 여성상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성을 로판 장르에 공급했다. 캐릭터의 전형성이 드러남에 따라 로판에 대한 대중의 소구는 일정한 지향점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는 영웅서사가 제시했던 인물의 성장과 유사한 궤적을 그리며 로판에 서사적 관습성을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로판의 이야기 갈래들이 갖는 관습의 관례들을 재관례화(Reconvention) 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광포하게 펼쳐진 서사 관습에 안정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로판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탄탄한 기틀을 닦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위와 같이 로판의 형성과정은 서사 밖에 퍼져있던 다양한 서사적 관습들을 밖에서 안으로 수렴시키며 하나의 소구로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장르를 재개발하며 발전하는 궤적을 보였다면, 무협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장르를 재개발하고 발전시켰다. 무협은 오랫동안 장르를 지탱해온 탄탄한 매니아층들이 합의한 다양한 서사 규칙들을 서사 밖의 관습들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서사적 관습을 재관례화 하며, 서사의 내부 요소를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장르를 확장해갔다. 다만, 이것이 웹 콘텐츠 내의 무협이 보이는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무협 장르가 서사를 갱신해온 전통적 방식에 가깝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 전통이 무협 장르 발전의 탄탄한 토대를 제공했을 것이다.


| 안에서 밖으로, 무협의 갱신과 시대응전(時代應戰)

무협의 갱신에 대한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협의 기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협의 근원지를 뽑으라면 당연히 중국을 뽑을 수 있겠으나, 무협이라는 단어 자체의 기원은 중국이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주장한 한나라를 기원으로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중국을 정복한 정복왕조로 여겨지는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고 있던 14세기에 형성된 단어로 보이며, 이후 간간히 문헌에서 무협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협 자체가 중국의 전통문화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물론 무협이라는 단어가 특정한 장르성을 띈 서사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 사례는 1903년 정일(定一)이 신소설에서 명나라 소설 『수호전』을 평론하는 데 사용하는 순간이다. 쉽게 넘긴다면 정일이 중국에서 간간히 사용되던 ’무협‘이라는 단어를 평론에 끌고 왔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청나라 대에 협의소설이라는 명문화된 장르가 있었다는 점 △1900년대 중국이 신해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국가개방과 정권 교체에 따른 혼란기였다는 점 △정일 본인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유학한 인물이었다는 점 등을 생각해본다면 무협이라는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수입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무협의 장르적 전통은 그 자체로 이미 어딘가에 적을 두지 않고 발전해온 혼종성(Hybridity)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무협이 아무리 깊고 오랜 전통을 가진 문학이라고 한들 그 바탕과 정체성 자체가 혼종적 바탕 위에 올려진 헤리티지로, 누가 이 개념을 점유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오늘날 한국 무협 장르에서 다루는 ’구파일방(九派一幇)‘과 구파일방의 모티프를 제시했다고 여겨지는 대만 작가 와룡생(臥龍生, 1930~1997)이 『비룡(飛龍)』(1959)에서 제시한 구파일방의 모습, 오늘날 무협 장르를 구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용(金庸, 1924~)의 구파일방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오늘날 한국의 무협소설에 나오는 구파일방이 와룡생의 설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큰 틀에서 본다면 무림재패를 목표로 정치적 암투 등을 다루는 모습은 여러모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점들은 무협이라는 장르가 근간하는 혼종성이 서사에 부여한 특유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권력의 쟁취라는 커다란 이야기 목표와 이로 인한 갈등을 중심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허용 아래 서사를 구성해가는 특징들은 무협이 가진 포괄성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무협의 포괄성은 무협 장르의 흥행에 있어 큰 힘이 되었다. 이야기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적절한 소구점을 제시하고 있으나, 장르적 관습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구파일방’이 무엇인지 모른다 해도 무협 장르를 즐기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독자가 작품이 서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합의한 기틀과 관습을 이해하고 있다면, 서사의 표준안과 변주를 비교해가며 재미의 다양성을 부가할 수 있다. 이러한 무협 장르 전반에 흐르는 수용자 친화적 특성은 서사적 맥시멀리즘(Maximalism)을 형성해가며 다양성과 깊이감을 비교적 수월하게 형성할 수 있었다. 


[ 그림 2, 2023 부천만화대상 독자인기상을 수상한 '화산귀환' - 이미지 출처 스튜디오 리코 X(구 트위터) >


| <화산귀환>의 맥시멀리즘과 무협의 대중화

무협 장르가 이룬 가장 큰 대중 서사적 성과가 있다면,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된 비가의 웹소설 『화산귀환』(2019~)일 것이다. 2023년 초 누적 매출액 400억을 달성하며 네이버 시리즈 웹소설 가운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으며 11월 25일 기준으로 6억 1000만뷰를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에서도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수요일 1위를 달리고 있고, 시즌 2가 공개된 6월에는 당일 매출만 4억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애니화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화산귀환』은 환생을 비롯한 웹소설에서 익숙한 설정들을 서사의 기본 요소로 끌어드리고, 환생물이 가진 관습들 위에 성장 서사를 입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문피아에서 연재된 산경의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2017~2018)과도 유사한 구조적 특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중과 접점을 형성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재벌집 막내아들』이 현실의 사건들을 모티프로 독자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끌어냈던 것과 달리, 『화산귀환』은 무협이라는 판타지 위에서 쌓은 성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웹소설 『화산귀환』은 환생이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작품 전반에 구성된 주인공에게 유리한 정보의 비대칭과 먼치킨물이 주는 재자가인의 쾌감에 바탕한 스펙터클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영웅 서사가 갖는 성장의 쾌감이 극대화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재벌집 막내아들』이 기본적으로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유사한 방식으로 성공적인 복수의 과정을 그리며 피카레스크의 쾌감을 겨냥했던 것과 달리, 『화산귀환』은 과거의 가치를 복각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강호에서 도리를 다하는 무인과 같은 영웅적인 모습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과거 잔인하며 독선적이었던 점 등을 제시하며 주인공 청명의 인격적 성장을 그리는 성장 서사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이는 전통 무협이 가지고 있던 주제의 심각성과 설정의 복잡함을 크게 낮춰 독자들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으며, 무엇보다 무협 독자들의 커뮤니티가 형성해온 설정의 맥락과 전통들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경량화하는 큰 기여를 했다. 웹툰 <화산귀환> 또한 웹소설의 이러한 분위기를 그대로 물려받아 만화적 과장이 도드라지는 작화와 캐릭터 디자인을 통해 가까이는 <앵무살수>(네이버웹툰)와 <아비무쌍>(카카오웹툰), 멀게는 <용비불패>와 <열혈강호>가 쌓아온 일정 부분의 리얼리티들을 우회하며 웹소설이 가지고 있던 캐주얼함을 계승했다.


| 캐주얼이라는 양날의 검, 맥시멀리즘의 한계

이처럼 관습을 코드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아닌 정보에 서사의 기준을 두는 전략은 10년대를 거치며 대중 서사의 주요한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무협에서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을 하나만 뽑으라면 정보를 중심으로 장식적 구성이 늘어나는 서사의 맥시멀리즘을 지적해볼 수 있다. 이는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수월하게 하나 최근 웹소설 『화산귀환』에서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원패턴과 같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한계가 있다. 더불어 파편화된 관습을 장르적 패턴 안에 욱여넣으며 발생하는 설정 오류와 같은 파열들은 극복해야 할 난점으로 보인다.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화산귀환’이라는 IP가 지닌 파급력과 2010년대 모바일 시장의 부흥과 함께 빠르게 성장한 웹콘텐츠 시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이끈 적응력 자체는 비난하기 어렵다. 다만, 맥시멀리즘을 지향하는 듯한 ‘화산귀환’이 오늘날 매체환경에 대응하고 적응한 결과인지는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독자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화산귀환』을 향한 조롱과 냉소는 작품이 지켜야할 어떤 선을 넘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히 준다.

“서사의 파편화에 따른 장르의 맥시멀라이즈”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화산귀환의 사례가 앞서 언급했던 ‘서사의 내부 요소를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무협 장르의 갱신 방식과 동일한 것은 사실이지만, 밖으로 끌려나온 서사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꾸준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창작도 구체적인 형식과 전통에 반드시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경계 없음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 잠시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그 방향이 어떠하든, 화산귀환의 귀추는 형식적인 한계에서 탈피하는 것이 과연 콘텐츠와 장르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흥미로운 관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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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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