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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종이책의 불편함을 견디는 방법

웹툰 전성 시대 속에서도, 왜! 독자들은 출판만화를 선호하는 것일까

2024-04-22 은천화


| 종이책과 핸드폰의 장단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내놓은 <2023년 2분기 만화·웹툰 유통 현황>에 따르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웹툰 작품은 약 5,000 작품이며 출판만화는 약 1,000권이다. 웹툰 작품 중에서도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출판만화로만 나오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웹툰이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컷 신이 보강되거나, 단행본만의 장면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단행본만의 장점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이지만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023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출판만화만 이용하는 독자는 전체 만화 독자 중 2.9%에 불과하다. 연령에서는 출판만화가 익숙한 세대인 50~60대 중 4%가 출판만화만 이용한다고 하니 현재의 50~60대가 떠난 이후 출판만화만 보는 비율이 더 줄어들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반면에 출판만화를 이용하는 독자가 28%에서 32%로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미 웹툰으로 본 작품을 다시 단행본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 주된 이유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만화에 대한 인기가 돈을 주고 구매할 만큼 올랐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단행본으로만 나오는 작품을 이용하는 독자는 거의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출판만화가 웹툰에 의존하게 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된 것인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몇몇 만화는 웹툰으로 연재하지 않고 단행본으로만 출판하는 경우가 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과 같이 펀딩을 하는 만화나 <프레시, 헬시 앤드 딜리셔스>와 같이 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독립출판을 통해 나오는 만화책이 그러하다.

이렇듯 단행본으로만 나오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홍보가 쉽지 않을뿐더러 홍보할 비용으로 웹툰 플랫폼에 도전하여 게재되는 것이 대중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도움이 된다. 독자층이 얇은 주제더라도 웹툰보다 단행본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종사자라면 모두 아는 내용이다. 더군다나 종이의 읽기 문법이 디지털 매체의 읽기 문법과 결을 달리하는 것도 한몫하는데, 읽기 방식에 있어 종이에 익숙한 이전 세대와 다르게 학교 수업조차 태블릿으로 받는 최근 세대는 유료분을 구매하더라도 웹툰의 한 회분의 미리보기분을 매번 결제하지 한 번에 몰아서 단행본을 구매하지 않는다.

같은 만화라도 출판만화와 웹툰은 엄연히 다른 매체다. 읽는 방식과 장소, 시간, 목적이 모두 차이 날 수밖에 없다. 한 번에 2페이지만 볼 수 있게 고정된 종이책의 경우 어느 정도 문법이 형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독서법에 따라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만화 또한 그러한 문법을 충실하게 활용한다. 그에 비해 웹툰은 일반적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 스크롤 방식이지만 컷툰이나 스마트툰이 생겨나며 읽기 문법에 있어서 훨씬 자유로운 편이며 이런 자유로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품들도 많다. 이러한 읽기 문법뿐만 아니라 장소, 시간, 목적에 있어 웹툰은 출판만화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다. 굳이 불편한 출판본보다 언제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웹툰 플랫폼이 독자에게는 더욱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중 10~20대의 독자의 2%가 단행본만 본다는 것은 그 2%의 대상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10대의 수요는 온라인으로는 발행되지 않는 코믹메이플스토리나 마법천자문, WHY와 같은 아동 만화나 학습 만화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사안을 고려했을 때 미래의 출판만화의 위치는 매우 불안하다. 이 불안을 안고 만화 카페에 갔을 때 그 예상은 적중했다. 만화 카페는 ‘만화’가 메인이 아니라 ‘여유로운 시간’이 메인이 되어있었다.


| 종이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

‘으뜸과 버금’과 같은 만화방이 거의 사라지고, 이제 ‘벌툰’과 같은 만화 카페가 만화방을 대체하고 있다. 만화 카페는 앉아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누워서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방을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은 ‘시민’에게 여유를 선사했다. 중요한 건 ‘독자’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3년 만에 가본 만화 카페는 만화를 기본으로 보드게임, 레트로게임, 영화, 넷플릭스까지 없는 게 없는 ‘개방형’ 룸카페처럼 보였다. 문제는 만화 카페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다 보니 정작 독자가 원하는 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국내 작품 중 단행본으로만 나온 작품이 단 한 권도 없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모두 웹툰 기반 단행본이었으며, 서양권 만화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만화 카페는 판타지 소설까지 해서 수만 권은 기본이었던 만화방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여가 카페로 변모한 것이다. 다른 만화 카페 체인점도 이러한 형국이라면 단행본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종이책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웹툰에 의존하여 실물로 소장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일까.

이전에 감명 깊게 봤던 <목소리의 형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일본 만화는 온라인으로 찾아보기가 힘들기에 일본 만화를 보고 싶을 땐 만화 카페를 찾는다. 최근 만화는 대부분 핸드폰으로 보지만, 줄글은 되는 한 프린트하여 본다. 약 3분 정도로 짧게 편 단위로 끊어지는 웹툰과 달리 글은 수십 분씩 보다가 쉬기 때문에 모니터나 액정으로 보면 쉽게 눈에 피로가 온다. 다시 말하자면 만화도 길게 봐야 하는 시기가 있다면 액정에 스크롤을 내려가면서 보기보다는 종이책에 옆으로 넘겨 가면서 보는 방식이 더 오래 읽을 수 있다. 7권의 <목소리의 형태>는 금방 읽혔다. 니시미야의 순수와 쇼야의 진심을 보고 있자면 눈이 피로하지도 않았다. 만화책 특유의 종이 질감을 손가락으로 문질러가며 넘기는 과정은 아직도 즐겁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종이와 모니터의 가장 큰 차이는 구속이다. 쉽게 한 편에서 다른 한 편으로 다른 한 편에서 다른 작품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기 힘들게 만든다.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공간이 없는 것은 분명히 해방이지만 쌓여있는 종이책을 좋아하게 된다면 종이책을 옮기고 다시 갖다 둘 생각조차 책을 읽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쌓여있던 7권의 <목소리의 형태>는 금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졌다. 웹툰을 보자면 계속 한 편 끝의 광고와 상단 바에 표시된 시간이 신경 쓰이는데 종이책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2시간으로 정해두고 들어온 만화 카페는 어느새 3시간 반이 지나있어서 책을 금방 읽은 게 아니라 금방 시간이 지나간 것일 뿐이었다.

이 시간에는 어떤 평가도 없이 오로지 재미로만 만화를 몰입해서 읽었다. 직업적으로 만화를 평가하게 되면 만화의 진정한 재미를 놓치게 된다는 걸 알지만 액정으로 한 편 한 편 분석할 때는 그러한 습관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작은 방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고 앉아 니시미야의 수화를 보는 시간은 최근 몇 년 동안 잊고 있던 이야기의 재미를 다시 깨달은 시간이었다. 스크롤을 내리며 한 편씩 내리면서 독자의 댓글 반응을 하나씩 확인했더라면 금방 깨졌을 몰입이다.

단행본만 찾게 되지는 않지만 ‘진짜 재미’를 느끼고 싶을 땐 단행본이 웹툰보다는 훨씬 유리하다는 생각된다. 종이책은 오직 그 내용을 위해 존재하지만, 휴대전화는 모든 것을 위해 존재한다. 웹툰을 보다가 카톡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댓글 반응도 보고 하다 보면 자신이 읽고 있던 부분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혹은 아예 다른 것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 많은 기능은 목표를 잃게 만든다. 하나의 목표에 오롯이 집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아날로그의 매력인 것이다. 단지 매번 단행본을 사기에는 지갑 사정이 여의찮거나 한 번 사게 되면 수십 권에 달하는 시리즈물을 둘 곳이 감당이 안 되어 가끔 이렇게 날을 잡고 만화 카페에 가거나 주변 도서관을 둘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 출판만화와 관련된 소고와 기대

앞으로 출판만화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 것이다. 출판만화로 만화를 시작하여 그나마 출판만화만 보는 세대를 지탱하는 50~60대가 떠날 것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단행본의 역할은 단지 재밌게 본 웹툰에 대한 ‘기념품’, ‘굿즈’로 변모할 것이다. 단행본은 가끔 시간이 될 때 이미 봤던 걸 몰아서 보는 소장된 재방송 파일에 불과하다. 물론 재방송을 보는 독자가 많아지는 것은 만화계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만화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발전가능한 문화로 기능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적 과정으로써 출판만화가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만화의 위상이 떨어진다고 출판만화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지만 아티스트에 관심을 가질 때 앨범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몰아서 보는 것이야말로 단행본의 가치이다. 스크롤로 보는 것보다 종이를 넘기는 것이 더 만화에 몰입해서 보게 된다. 작품을 읽을 때 댓글, 광고, 시간, 연락 그 어떤 것도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할 기회는 종이책을 통해서 가능하다. 종이책은 전자책보다 눈에 대한 건강 면에서도 유의하게 좋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장윤수 외 4명, 2012·김지혜 외 4명, 2018) 눈 건강의 측면에서도 종이책은 디지털 스크린에 지지 않을 이유가 있다. 또한 물질적인 부피가 우리에게 어떤 실제적인 존재를 읽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책을 누가 눈으로만 읽는다고 했는가. 만화책은 눈뿐만 아니라 넘기는 손가락으로, 책 특유의 종이 냄새로, 종잇장 넘기는 소리로 읽는다.

이전 만화방에서 만화책 한 권에 300원, 소설책 한 권에 800원에 대출받던 시기가 떠오른다. 학교 쉬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책상에 구멍을 뚫어 읽던 그 시기. 친구들끼리 돌려 읽으며 나루토와 사스케를 비교하고, 루피와 조로를 비교하던 그 시기에 만화책은 동시에 읽을 수는 없지만 공동의 문화는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지금은 누구나 온라인에서 만화를 동시에 읽을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만화를 공유하고자 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누구나 각자 볼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만화를 보는 분위기가 더 강화된 것이다. 디지털 문화의 대표로 자리 잡은 웹툰이지만 오프라인 공간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출판만화 또한 사장되어서는 안 되는 문화이며 더 나아가 웹툰과 함께 키워나가야 할 문화이다.

주말에 한국만화박물관 2층 만화도서관에 가보면 가족 단위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빈백과 같이 편하게 눕듯 앉아서 읽을 만한 공간이 없는 것은 좀 아쉽지만, 도서관처럼 되어있으면서도 대화가 허용되어 있어 읽으면서도 부모님과 함께 재미있는 만화책을 말하며 돌려보기도 한다. 만화에 어울리는 문화란 재밌고 편하면서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한 담론이 활성화된 문화다. 만화가 부끄러워지지 않으려면 사적 공간인 핸드폰에 만화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닌 책장에 빼곡히 쌓여있어서 친구가 놀러왔을 때 자랑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만화의 개인화가 만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만화 시장을 더 키워준 것은 사실이지만 더 건전하고 발전적인 만화 문화를 위해서는 경제성과 별개로 출판만화에 대한 지원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