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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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라는 여론

악플로 상처 받는 작가들, 웹툰의 성장 속에서 건잔한 '댓글' 문화를 위해서

2024-04-15 이용건

0. 기이한 여론 형성

197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이 당선되었을 때 한 잡지의 칼럼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대체 누가 닉슨을 찍은거지? 내 주위에는 그 사람을 찍은 사람이 없는데?” 이 사례는 여론의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허위 합의 효과는 인지적 편향으로 어떠한 개인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과 합치될 것이라고 과대평가하는 것을 뜻한다. 즉 자신의 의견은 소수 의견임에도 다수 의견인 것처럼 여기고, 자신과 다른 타인의 의견을 소수 의견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정반대의 현상인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는 자신의 입장이 사실은 다수 의견인데도 소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편 ‘침묵의 나선 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가 소수에 속한다고 느끼면 그 의견을 숨기려하고, 다수에 속한다고 느끼면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침묵의 나선 이론’은 각각 ‘허위 합의 효과’와 ‘다원적 무지’와 결합하면 기이한 현상이 도출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 의견임에도 다수 의견으로 인지한 후(허위 합의 효과)에 자신의 견해가 다수에 속한다고 느껴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다수 의견임에도 소수 의견으로 인지하여(다원적 무지) 자신의 견해를 숨기려 한다. 즉 실제로는 다수 의견은 침묵하고, 소수 의견이 의견을 공격적으로 개진하여 다수 의견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웹툰에 관한 글을 쓰면서 다소 지루하고 원리적인 여론 형성 과정과 인지적 편향에 대해서 설명한 까닭은, 각종 웹툰 플랫폼들이 채택하고 있는 ‘댓글’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작가와 독자의 소통 창구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표현과 달리, 댓글 시스템 특히 그중에서 ‘베스트 댓글’ 시스템은 작가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웹툰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자신의 주관을 유지하기 보다는 ‘베스트 댓글’에 달린 댓글들을 통해 체화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자신의 의견이 다수 의견이라고 생각하여 남긴 댓글은 사실 소수 의견이었을 수 있고, 그 의견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다수 의견에 부합하는 독자는 자신의 의견이 소수 의견이라 생각하여 댓글을 남기지 않고, 소수의 의견이었던 웹툰에 대한 평가가 그 웹툰에 대한 다수적이고 지배적인 평가로 변경되는 것이다. 

‘악플’을 넘어 ‘사이버 불링’에 해당한다고까지 할 수 있는 네이버 웹툰 댓글의 신랄한 공격은 일반적으로 하위권 웹툰(1)에 주로 이루어진다. 주목할 점은 ‘사이버 불링’의 목적이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규범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신랄한 공격’이라는 표현이 댓글들의 무례함을 선해하는 것이라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나름대로 웹툰에 대한 미학적 판단을 내리거나, 사회적 주제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들이 지나치게 간편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 확산적 혐오 「뷰티풀 군바리」의 댓글창

네이버 웹툰의 인기작인 「뷰티풀 군바리」가 작성일(11월 27일) 기준으로 전개되고 있는 광우병 에피소드에 달린 댓글과 베스트 댓글은 광우병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조롱과 공격이 포화되어 있다. 네이버 웹툰 독자들의 광우병 사태에 대한 인식은 ‘좌파들의 무분별한 선동 사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이 사실에 부합하는 지와 무관하게 현상적으로 광우병에 대한 인식은 ‘과대 대표’되어 있는데, 그 원인은 ‘좌파 대중들에 대한 조롱’이 깔려있다. 광우병 ‘사태’인지 ‘괴담’인지 확인하기 위해 「뷰티풀 군바리」의 시대 배경으로 잠깐 돌아가보자.

미국산 쇠고기(3)는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소 발견 이후에 2년간 수입이 금지되었는데, 한미FTA 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던 노무현 정부에서 2006년 1월, 30개월 미만 소의 근육 부위 살코기에 한정하여 다시 개방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즉 2006년 3월에 미국에서 다시 광우병 양성 판정을 받은 소가 발견되고, 같은해 10월 ~ 12월 사이에 여러 차례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자 노무현 정부는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후 합의에 의해 2007년 3월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다시 개방되었지만 척추, 갈비뼈 기타 등등이 발견되어 2007년 10월 경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었고, 이는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위생 조건을 개정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KBS(4)와 SBS에서는 광우병 위험성에 대해 보도하였고, 정부의 졸속 협상을 비판하는 논조로 방송이 이루어졌다. 

물론 광우병 사태의 원인이자 기폭제는 2008년 4월 29일에 보도된 MBC의 PD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이었다. 광우병이 원인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다우너 소(뒷다리를 딛지 못해 주저앉는 다우너 증후군에 걸린 소)의 영상을 편집해서 보도했고, 광우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는 아레사 빈슨의 사례를 인간광우병(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사례인 것처럼 보도했다. 실제로 아레사 빈슨은 사인이 광우병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다우너 증후군의 원인은 다양했고 그 원인들 중에서 광우병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한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PD 수첩은 광우병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과장하여 보도했다. PD 수첩의 다소 과장된 보도 이후 대규모의 (촛불) 시위가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시위가 더러 등장하기 시작했다. 

「뷰티풀 군바리」는 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의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뷰티풀 군바리」의 댓글창에는 자극적인 PD 수첩에 ‘선동’되어 시위를 나갔던 모든 시민들을 조롱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들이 이입하고 있는 대상이 의경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는 점과 광우병에 대한 인식이 ‘괴담에 선동당한 좌파들에 의해 벌어진 멍청한 사태’ 정도로 인식되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 그림 1, 「뷰티풀 군바리」 "406화 - 마지막 시위 (4)"의 베스트 댓글들 ]


광우병 사태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학회에서 주목하는 사례로, 대중 - 매개자 - 전문가로 이어지는 과학적 정보의 교환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반면교사로 지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PD수첩의 보도 이후에 정부는 강경 대응을 원칙으로 고수했다. 2008년 5월 11일에 FDA(미 식품의약국)의 영문을 정반대로 해석(5)했고 국민들의 불안감이 각종 언론에 의해 과장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정부는 정보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시위대에 대한 진압만을 강조하였다. 또한 광우병 촛불 시위대가 폭력 시위로 전환된것은 촛불 시위의 목적이 ‘대통령 탄핵’과 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전환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뷰티풀 군바리」의 베스트 댓글에는 마치 모든 촛불 시위가 폭력 시위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 물론 폭력 시위는 그 자체로 문제라는 사실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사실과 다른 허구를 통해 광우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마치 ‘대다수 의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우선적으로 지적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시민들의 대치를 의경과 시민들의 대결 구도로 전환시키는 고전적인 탈-정치화 방식에 대한 비판은 차지하더라도, 댓글창에서 이루어지는 사실과 허구의 혼잡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들고, 여론의 형성이 단선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도록 한다. 「뷰티풀 군바리」의 댓글창은 ‘소통 창구’라기 보다는 일종의 좌파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장이 되어버렸고, 그러한 성토가 대중적인 여론인 것처럼 전환된 것이다.

 베스트 댓글의 공격적인 어조로부터 광우병 사건을 인지하거나 재해석하는 독자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과)대표된 여론에 의해서 자신의 주관을 변경한다. 댓글창으로 ‘키배’를 벌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추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구구절절한 자신의 의견을 남기는 것은 웹툰에 대한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활동이다. 그러나 「뷰티풀 군바리」가 현재 전개하고 있는 매화 에피소드의 댓글창에는 ‘키배’가 이루어지기 보다는 ‘혐오에 정당한 근거’를 부여하면서 혐오만을 확산하고, 혐오를 일종의 여론인 것처럼 둔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멸하는 대상을 경멸할만한 대상이라고 상호적으로 확인받는 댓글창 속에서 거짓 정보가 유포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2. 키배 전선(6) - 「공동급식구역」


[ 그림 2, 청건 작가의 「여자친구」 中 ]


한편 최근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한 ‘청건’ 작가의 신작 「공동급식구역」 1화의 댓글창은 일종의 전선이 형성되었다. 청건 작가의 전작인 「여자친구」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과 전체적인 웹툰의 방향이 남성혐오적이라는 것을 근거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좌표’가 찍혀 ‘별점 테러’와 공격적인 댓글이 남겨지기 시작했고, 청건 작가의 팬덤을 비롯한 독자들은 청건 작가와 「여자친구」를 옹호하면서 댓글창은 일명 ‘키배’의 각축전이 되었다. 위의 장면과 더불어 「여자친구」가 문제된 몇몇 장면들은 웹툰 내에서 일정한 맥락(가령 위의 장면에서 주인공은 누군지 모를 남학생에게 스토킹과 같은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이 존재하며, ‘남성 혐오’ 자체가 ‘여성 혐오’와 완전히 동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도 문제적일 것이다. 사실 이런 교과서적인 반응보다 중요한 건 명백히 일종의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각 웹툰마다 달린 댓글은 독자들의 성향에 따라 ‘젠더화’되어 있다고 판단될만큼 극단화되어 있다. ‘남성향’ 웹툰과 ‘여성향’ 웹툰에 달린 댓글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품에 대해 판단하고 분석한다. 이렇게 양극단에 위치한 독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제로서 ‘페미니즘’은 한 진영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종의 반-사회적인 이념으로, 반대 진영에서는 교양 있는 시민이라면 수용되어야 하는 이념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네이버 웹툰의 독자층이 낮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대남(7)’에 대해 쏟아진 분석을 상기해본다면, 이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댓글창에는 고함과 욕설을 남기고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그러한 데이터 캐시-기록들이 쌓여 댓글창은 일종의 난잡한 쓰레기통으로 변해가고 있다. 난잡한 쓰레기통으로서 댓글창은 웹툰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힘을 부여받고, ‘추천’과 ‘반대’라는 이분법적인 반응만을 유도하여 애매한 입장을 모두 삭제하고 있다.

 

3. 웹툰 플랫폼들이 지지 않는 책임

댓글창에서 형성되는 ‘여론’은 실제로 웹툰의 스토리를 바꾸거나 작화를 수정하거나, 나아가서는 웹툰의 존폐까지 결정지을 수 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종의 유동체로서 ‘독자’들이 남긴 댓글은 작품에 대한 평가로서 웹툰 작가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독자들이 남긴 댓글은 자신의 주관이면서 동시에 댓글창에서 감지된 일정한 분위기를 체화하여 그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거짓과 사실이 혼재된 「뷰티풀 군바리」의 댓글창처럼, 무엇이 독자의 진의인지 알 수 없어진 댓글창이 정말로 유지되어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레진코믹스가 댓글창을 삭제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댓글로 통해 발생되는 트래픽이라는 이익 말고도, 댓글창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웹툰 플랫폼들은 적어도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진실과 무차별적으로 혐오 댓글에 노출된 작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필진이미지

이용건

만화평론가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수상
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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