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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애니메이션' 감상과 팬 문화, 과연 옛날이 좋았을까

과거 출판만화 시절부터 현재 웹툰 시대까지, 변화하는 독자들의 팬 문화 변화에 대한 이야기

2024-04-12 서찬휘

40대 중반이면 어떻게 봐도 ‘어리다’거나 ‘청춘’이라거나 하는 소리를 쓰기는 어려운 시기다. 지금 내 나이가 딱 그쯤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은연중에 예전엔 어땠는데~란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오기 쉽고, 뭘 봐도 예전 그 감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올해 들어 두 학교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각기 2003년과 2004년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에서 바로 떠오른 말은 ‘어 한일 월드컵도 안 본 친구들이네’였다. 그리고 나서는 민망한 표정으로 이렇게 읊조리고 마는 것이다. “아 정말 나이 먹은 티 이렇게 내지 말자”

하지만 그런 민망함도 잠시, 덕질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놈의 ‘나이 먹은 티’가 곧바로 드러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노라면 아무리 요즘 작품도 챙겨 본다고 해도 주로 튀어나오는 이야기는 1980~90년대 작품이고, 활발히 활동했던 통신 공간은 인터넷도 아닌 천리안과 나우누리를 비롯한 PC통신이었으며, 따라서 인터넷 접속이 너무나 당연하다 못해 정신 차려 보니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져 있던 사람들과는 교류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원작 라이트노벨 2003년, 애니메이션 첫 방영 2006년)을 무려 ‘고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야말로 “미안, 이럴 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에반게리온> 중 레이의 대사)라고 읊조릴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나아가, 이제는 아예 인생 첫 만화가 당연히 웹툰인 세대들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가끔, 미안한데 정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나는 2002년에 독자만화대상이라는 행사에 투표 시스템을 짜는 웹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독자만화대상은 그 해 가장 주목할 만한 만화를 만화 독자의 손으로 직접 뽑아보자는 취지로 당시 만화 관련한 이슈에서 목소리를 내던 집단들의 구성원들이 모여 진행한 행사였다. 당시 독자들이 직접 나선 것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독자만화대상에서 2002년 첫 해를 빼고 출판 만화가 대상에 오른 일이 없었다는 점은 해당 시기가 얼마나 한국만화에서 큰 전환기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고백하건대, 2003년에 <마린블루스>의 대상 수상이 내부에서 확정되던 당시 나는 결과 확정을 위한 통계 자료를 내 손으로 뽑아들고는 몹시 절망적인 목소리로 “실질적인 대상은 이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내뱉었더랬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참 어처구니없고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때의 내게 ‘좋은 만화’의 기준은 일단 긴 호흡 안에서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작품이었고 캐릭터가 강조된 일상 만화가 전체의 상위권에 놓을 만한 건 아니라고 (멋대로) 여겼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그 때도 <마린블루스>를 참 즐겁게 읽었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행사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의 심정은 그러했다.

나의 하찮은 반발심과는 별개로 독자들의 선택은 물론 시대가 바라는 만화의 형태는 웹툰이라는 형식으로 변해갔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목하 바뀌어가는 환경 속에서 웹툰은 웹툰 나름대로의 문법과 깊이를 갖추어가기 시작했으니, 내가 내뱉었던 말은 이제 와서는 그야말로 하찮은 투정으로 피식거리며 넘어갈 일화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작품은 이 장르의 클래식(고전)이니 한 번쯤 읽어 봄직 하지요!”라는 이야기가 내 입에서 나올라 치면 아예 아니 그게 뭔데? 하는 눈빛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 됐다. 아니 그래도 작가 이름이나 제목 정도는 들어 봤음직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누구누구(대충 대단한 이름들) 선생들인데……라며 중얼거려 보지만 그들에겐 너무 먼 당신들이다. 하긴 웹툰이 상업적으로 오롯이 정착을 시작한 기점을 2003년 무렵에 태어나거나 유아기를 보낸 이들에게 1980~90년대는 너무나 까마득한 옛날이니 물리적으로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니 그래도 공부 차원에서는 알아야 하지 않아?!

그런 마음이 스쳐 지나가면, 이어서 머리에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생각이란 “아 그 때가 만화 덕질하기는 좋았지. 누구누구(역시 대충 대단한 이름들) 선생들과 동시대를 호흡할 수 있었다니” 같은 생각들이다. 하나하나 호명하는 것 자체가 가슴 설레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끄집어내자면 한도 끝도 없고, 제발 이 정도는 읽어 보라고!라는 심정이 되는 작품들 또한 한가득이다.

물론 이 말은 나름의 당위가 있다. 고전이 고전인 까닭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스스로 세웠기 때문이고, 후학은 이를 찾음으로써 당대의 자산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바를 학습한다. 고전 명작이 계속 회자되는 까닭도,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앞 세대의 저작들이 회자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당시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저작들도 이 과정을 통해 곧잘 명작으로 재발견되곤 한다. 만화만 그런 건 아니다. 애니메이션도, 게임도, 음악도, 문학도 대저 이렇게 끊임없이 회자와 발굴과 조명을 거듭 거치며 문화의 토양을 살찌운다.

이 당위 앞에서 앞 시대의 정수를 실시간으로 맛보았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덕질로 다음 세대들에게 가슴을 편다. 자! 이만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너희는 이걸 모르지! 나는 봤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말을 내뱉는다. “요즘은 저만한 거 없잖아!” 무엇을 숨기랴. 나도 이런 말 곧잘 내뱉기 일쑤였다.

그러던 문득 <마린블루스>의 대상 수상에 내뱉었던 말이 떠오르면, 필자와 같은 세대 사람들은 아마 아직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 팬 문화에서 세대차이 느끼기

만화를 좋아하는 독자로써 팬들의 문화에서 세대차이를 느끼며 떠오른 단어가 '꼰대'이다. 말을 굳이 새로 만들 필요야 없을 텐데도, 내가 은연 중 젋은 세대 독자들에게 흔히 말하는 '꼰대질'을 하고 있나 싶었을 때 불현 듯 떠올랐다. 이런 생각이 들고 보니보니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는 건 나와 동일한 팬 향수를 느끼는 분들도 동일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일정한 당위도, 당장의 필요가 우선하지 않는다면 그리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것은 아니다. 사실 시간이 지나 정말 과거의 작품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찾아 읽을 수밖에 없는 게 고전 명작이다. 굳이 채근 안 해도 볼 사람은 볼 일이다. 그러니 어떤 걸 읽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 정도를 넘어 이걸 여태 안 봤다니, 요즘엔 있을 수 없는 작품 아니냐느니 하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법도 하다. 그럼에도 그 말이 튀어나오고 마는 건 사실 나의 한 시대를 가로질렀던 작품에 대한, 나의 향수와 경탄의 반복일 것이고, 또한 이걸 모르는 사람들을 향한 나의 안타까움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향수와 경탄이 그 시기를 공유하지 않은 자들이 오롯이 알지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따라서 그들로서는 안타까울 일도 없다. 다만 더 앞을 알고 싶을 때 레퍼런스가 되어주면 족할 것이나, 한편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보아 왔던 작품들이 명확하게 역사 속 작품이 되었으며 현재진행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 또한 나이를 한참 먹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에서 청소년기, 넓게 잡아도 20대 초반 정도까지 쌓은 문화적 자산을 평생 파먹고 사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무엇을 얼마나 보았느냐와 누구와 어떻게 즐겼느냐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렇게 쌓아 올린 자산이 궁핍할수록 문화적 소양이 일천함을 쉬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 만난 문화 자산들이 자신에게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의 최고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내가 1980~1990년대를 관통하며 얻어온 자산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로 일종의 자부심마저 품고 있다. 그러나 이 덕질들을 감행하기에 ‘옛날이 좋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문제는 객관적으로 절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내 감정은, 곧장 ‘꼰덕질’이 되기 십상이다.


| 서브컬쳐 팬질에도 각자의 시대가 있다

삶의 방식과 선택지들은 영위하기 어려울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당위라는 이름의 그리움으로 덧칠된다. 우리 앞 세대 어르신들이 그토록 과거를 미화한 형태로 되새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르신들은 어느 한 시기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또한 자랑스러워한다. 놀랍게도 흔히 말하는 일명 '꼰덕질'은 이와 같은 발전기 한국의 한 부품을 이루었던 앞 세대들의 사고를 정확하게 공유한다. 문화적 자산을 쌓는 데도 힘들었고, 문화들의 창작 환경과 소비 환경도 열악하다 못해 시종일관 탄압 당하고 감시당했다. 만화 찾아 읽는 행위, TV에서 애니메이션 한 편 제 때 챙겨보는 게 얼마나 욕먹을 일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그 취향을 유지하기 위해 경주한 노력은 분명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건 분명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 과정을 뚫고 작품들을 만났던 과정도, 또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말도 안 될 것 같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던 작가들도 굉장했고 이 시간을 공유한 이들간의 유대감이란 것도 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만난 작품 외에 쳐다보지 않을 것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같은 경우는 불법복제가 대부분을 차지했던 게 과거의 풍경이다.

만화 또한 도서대여점에 시장이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비틀린 독자들의 소비 행태가 불법 스캔본이라는 무단복제 시장에 곧바로 연결되는 상황을 맞이했던 과거가 있고, 상업 웹툰의 초기 무료화 전략 또한 이러한 환경적 한계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크다. 그에 앞서서는 일본만화의 해적판 문제가 있고, 한 시기에는 “일본만화 팔아서 한국 작가들을 키운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우리의 덕질은 상당부분 이렇게 다양한 도의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또한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콤플렉스와 극복 의지가 교차한 채로 쌓여 왔다. 

그 때의 작품들이나 활동들이 유난히 각별한 까닭은 그 숱한 생고생과 더불어 정보 하나 찾기 어려운 시기에 발품을 팔아야 했던 수고가 워낙에 컸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박힌 그 수고에 대한 비용이 사무친 나머지, 나를 비롯한 많은 ‘꼰덕’들은 고전이 된 수작 명작들에 대한 추천을 넘어 어느 사이엔가 별 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어 보이는 ‘요즘 작품들’에 대해 무시하곤 한다. 울 어르신들마냥 “옛날이 좋았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그 시대에 만화를 읽었던 독자들도 한 때는 그런 어려움 없이도 만화를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5월이 되면 만화책이 활활 타오르던 풍경을 안 봐도 되고, 어른들이 만화 읽는다고 화내지 않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제값 내고 마음대로 보고플 때 볼 수 있고, 게이머가 존경받는 환경을 원했다. 버블경기의 부를 구가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말도 안 되던 한 시기를 부러워하면서 우리도 언젠가 그만한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길 바랐다.

뭘 어떻게 해도 불법복제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것은 여전하지만, 최소한 지금 이 시대는 그야말로 예전에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던 바로 그 모습을 - 원하던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시대 위에서 창작된 작품은, 변한 시대를 자기 시대로 삼은 독자들 사이에서 명작과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그들의 문화적 자산이 되어가는 중이다.

내기 요즘 작품이 잘 접수가 안 되는 건 지금 이 순간 내 세대가 젊지 않기 때문이고, 감성 자체가 달라진 만큼 젖어들 소재도 달라진 것이며, 현실을 꿰뚫는 정치사회적 화두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작품들을 보면서 잘 안 와닿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다. 그렇지만 그건 지금 세대 입장에서 앞 세대 작품들을 보면서 마찬가지 감정일 터다. 그래서 이제 와 고전이 된 내 시대의 작품들을 너희가 모른다고 우쭐해 할 것도, 또한 모른다고 슬프거나 노여워할 것도 아닐 것이다. 나도 요즘 작품들을 공부하는 감각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감각으로 읽지는 못하니까. 그래도 다시 말하건대 이 풍경이, 내가 정말 바라 마지않던 풍경이다. 물론 이 역시 무조건 좋은 구석만 있진 아니하지만 말이다.

그런 연유로 요즘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고전이 된 작품들을 ‘공부’할 대상으로서 추천을 하되 그래서 이런 게 나왔던 옛날이 좋았다는 말은 안 하려고 애를 쓴다. 꼰덕이기는 확정됐을지라도 꼰덕질을 덜 부릴 방법은 있을 테니 말이다. 구할 수 있는 선에서 내 시대의 작품들을 좀 더 잘 소개하는 과정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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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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