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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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공감’이 우선인, 어린이 만화

좋은 '어린이 만화'는 무엇일까요. 가족이 함께 향유하는 대표적인 콘텐츠 만화 속 어린이 만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2024-05-06 문종필

지금 우리에겐 읽을 어린이 만화는 있는가? 이 질문은 곤혹스럽다. 그 이유는 좋은 ‘어린이 만화’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주체가 어른이기에 좋은 어린이 만화에 관한 질문은 그래서 모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질문에 온전히 답하기 위해서는 직접 어린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순서다. 동시대의 어린이들에게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어린이 만화가 무엇이냐고 묻고, 그 물음을 옮겨 적으면 그 결과물이 좋은 어린이 만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성인의 경우 여러 기관이나 단체 혹은 개인이 매월 또는 매주 작품성이 좋은 출판만화나 웹툰을 소개하는 것처럼, 어린이에게 좋은 만화에 관해 묻는 것은 일부의 어른 전문가 집단이 이달의 좋은 만화를 선정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성인들은 스스로 모여 이런 작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어나가는데, 왜 어린이들은 스스로 모이지 않고 담론을 만들지 못하는가. 당당히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고, 이들의 거침없는 목소리를 담아낼 창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어린이만이 표현하고 표정 지를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어린이 만화를 판단하는 주체가 어른이 아닌 ‘어린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어린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힘을 내기 힘들다. 여기서 힘의 존재는 어린이가 어린이 책과 웹툰을 구매해 볼 수 있는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즉, 돈의 영역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나아가 동시대에 펼쳐진 어린이 만화 관련 매체를 어린이가 직접 찾아가 작품을 탐닉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린이 만화에 대해 논할 때 어른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어린이가 냉정한 사회에 편입해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에서, 어른의 개입은 필연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어린이에게 좋은 어린이 만화를 추천해주어야 하는 어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훌륭한 어린이 만화를 읽힐 수 있는가이다. 하지만 이 대답도 정해져 있지 않다. 수많은 어린이 책 추천 목록이 참고 사항이 될 수 있지만, 강제로 읽힐 수 없기 때문이다. 강압적으로 읽혀야 할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주체인 어린이의 수준에 맞고, 그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소재와 주제를 수동적인 방식이 아닌 능동적인 방식으로 텍스트가 선택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 자체가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어린이 만화이다. 어른의 경우 생각해 보라. 아무리 좋은 명작이 서가에 쌓여 있다고 한들 읽기 힘들거나, 읽기 싫다면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책들은 아름다운 벽지에 불가하다. 공간만 차지하는 허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좋은 어린이 만화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와도 교환 불가능한 어린이라는 한 존재의 입장과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 곁에서 함께 읽을 수 있는 과정 자체가 가장 좋은 어린이 만화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곁에 읽을 어린이 만화는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린이에게 적합한 텍스트가 가장 좋은 어린이 만화인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적합한’에 찍힌다. 그러니 어른들은 어린이의 여리고 작은 숨소리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가 좋아하는 만화가 결정되는 것이 옳다. 따라서 ‘지금 우리 곁에 읽을 어린이 만화는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잘못된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좋은 만화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어린이’와 진정성 있는 소통을 바탕으로 ‘좋은 만화’가 결정되니, 어린이의 고민과 입장과 처지에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은 만화를 읽힐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 어린이에게 적합한 어린이 만화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앞선 주장과 반대로 좋은 어린이 만화는 무엇일까. 어른과 어린이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어린이에게 모든 잣대를 맡길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니 어른으로서도 좋은 만화에 관해 이야기해야만 할 것만 같다. 이 목소리는 어린이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소통하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어른의 목소리 또한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이 둘이 서로 분리된 영역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모순이니 그렇다. 어떤 방식이든지 만나고 겹치고 혼동되는 것이 어른과 어린이의 입장이니 어른이 좋아하는 만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는 이 글에서 ‘소녀’와 ‘천사’ 이야기를 다룬 최규석 만화가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소년은 동료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이고, 청년이 되어서도, 중년이 되어서도, 노인이 되어서도, 현실을 견디는 인물로 묘사된다. 인용이 다소 길어질 수 있지만, 활자화된 부분 모두 인용해 보고자 한다. 주의할 것은 ‘소년’과 ‘청년’과 ‘노인’은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불행한 집에서 태어난 불행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불행해서 더럽고 냄새나는 그 아이를 놀리고 괴롭혔습니다. 불쌍한 소년은 복수하고 싶어도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려 주려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 네가 그 아이들을 때리면 그 애들은 더더욱 너를 괴롭힐 거야.

소년: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천사: 네가 먼저 참고 용서하렴. 그럼 언젠가 그 아이들도 자기 잘못을 뉘우칠 거야.


불행한 소년은 천사의 말이 잘 납득되지 않았지만 천사의 따뜻한 목소리 때문에 조금 행복해졌습니다. 불행한 소년은 자라서 불행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지만, 청년은 늘 참고 견디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천사: 힘을 내세요. 그 사람들도 제각각 괴로움이 있답니다. 모두가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당신에겐 제가 있잖아요. 

천사의 말을 잘 납득할 수 없었지만, 청년은 사람들이 조금 불쌍하다고 느꼈습니다. 청년은 어느덧 늙고 병든 노인이 되었습니다. 보살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노인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오직 천사만이 노인의 곁을 지켰습니다. 

청년: 천사님이 시키는 대로 참고 용서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네요. 

천사: 비참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었어요. 그리고 아직 제가 옆에 있잖아요. 


노인은 천사의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그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분노와 슬픔의 소용돌이 속에서 번개처럼 하나의 깨달음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천사: 왜…왜 이러세요? 

노인: 네가… 네가! 평생 나를 속인 거야!! 



글자로 따지자면 200자 원고지 5매 정도의 짧은 말풍선이지만 이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용서하는 것과 참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부분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용서만으로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때론 강력한 힘으로 잘못된 것들에 대해 용기 내 발언해야 하기도 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향해 당당히 맞서야 할 때도 생긴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더욱 의미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규석의 이 작품은 기존의 통념을 비틀어 버린다는 데 있어서 의미가 있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 읽어도 섬뜩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이런 감정선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태도이다. 어린이에게는 무엇인가 때 묻지 않은 세상 전부를 알려주어야 할 것 같은 강박도 작동한다. 모든 스토리가 해피엔딩으로만 끝나야만 하고, 모든 이야기가 틈이 없는 온전한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무엇인가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이곳의 세계가 이미 오염되고 감염된 세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 순간 좋은 것들로 채워지진 않는다. 때론 지치고 힘들거나, 앞을 바라보지 못할 때도 많다. 벽에 부딪히는 사건 사고도 함께 존재한다. 불합리한 것은 물론, 폭력적인 순간도 많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어린이 만화에서 제외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필자가 주로 읽는 만화가 어린이 만화는 아니어서 정확한 동시대의 어린이 만화 현황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린이 만화 표정 역시 한쪽으로 기우는 것은 피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사는 커다란 동시대를 있는 그대로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적어도 정직한 것이라고 믿는다


[ 그림 1, 아이나무 툰(inamu toon) 플랫폼 ]


어린이 만화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어린이 만화 역시 이제는 종이책에서 웹툰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대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이 〈아이 나무 툰〉이 있다. 필자 또한 이 플랫폼이 있는지 몰랐다. ‘어린이’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어서, 주변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곳이다. 이 플랫폼은 네이버나 카카오와 비슷하게 요일마다 새로운 작품들이 올라오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잠시 갈무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연재 웹툰] 코너 창을 열어 보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 〈다 푼다 카카오프렌즈〉, 〈요조신사 마초숙녀〉, 〈학교 미스터리〉, 〈아머드사우르스〉 등으로 제목 그대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와, 누가 더 키가 큰지 경쟁하며 키 재기에 필요한 단위와 수를 공부할 수 있는 학습만화, 멀티버스의 세계관을 담은 이야기 등 생활에서 필요한 내용과 동시대의 감각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브랜드관] 코너에서는 대원씨아이, 교원, 이퍼블릭코리아, 조선일보, 거북이북스, 락킨코리아 등의 어린이 웹툰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웹툰]의 경우는 독립운동가의 삶과 여정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조명을 하였고, [강추 발굴단] 코너의 경우는 “최소 3화에서 10화 분량까지의 작품”을 작가가 등록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연재 여부를 경정하는 시스템이다. [K콘첸츠]는 한국의 음식이 알리는 웹툰으로 의도를 품고 제작된 코너이다. 일반 플랫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이 나무 툰〉은 앞으로 더 다양한 웹툰들을 소개하고 운영하겠다. 


[ 그림 2, 아이나무 툰에서 만날 수 있는 독립운동가 웹툰 ]


이러한 운영과는 무관하게 이제 더는 어린이들은 종이책을 느낄 수 없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이런 세대가 청년으로 성장해 만화를 바라보고 이야기한다면 이들은 지금, 우리 만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볼까. 그리고 이 세대들이 부모가 된 이후, 다시 아이들과 소통하며 좋은 만화를 소개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어떤 작품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소개해 줄까. 이런 여러 복잡한 심정이 어린이 웹툰 만화를 보며 든다. 하지만 이것은 2023년에 만화를 보는 나의 입장일 뿐이다. 그 세대는 그 세대만의 방식으로 어린이에게 좋은 만화를 선별해 소개하는 과정에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먼지처럼 사라진 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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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