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유 캐릭터와 IP 개발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는 데는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전 몇년간의 정량적·정성적 자료들을 참고해서 다음 해의 개발 요소에 적용한다. 많은 기획 기사들은 어떠한 국내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인기를 끌고 매출을 올렸는지를 논한다. 소위 말해 대중에게, 특히 캐릭터를 많이 소비하는 MZ세대 (특히 Gen-Z)와 유아·아동들(과 그들의 부모들)에게 어떠한 캐릭터가 얼마나, 왜 어필했고 그들의 지갑을 어떻게 열었는가를 얘기한다.
최근 몇 년 간 대중들에게 어필한 한국 고유 캐릭터 및 IP들을 살펴보면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유아 및 아동용 콘텐츠를 통해 알려진 캐릭터들: 뽀로로, 로보카폴리, 펭수 등
2)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이모티콘 등의 콘텐츠를 통해 알려진 캐릭터들: 유미의 세포들, 몰랑이 등
3)기업들에 의해 생산, 마케팅을 통해 알려진 캐릭터들: 밸리곰, 진로 두꺼비 등
[ 그림 1, EBS 개발 캐릭터 <펭수>, 웹툰 원작 <유미의 세포들>, 롯데홈쇼핑 개발 캐릭터 <밸리곰> ]
이와 같은 캐릭터들은 탄생된 배경은 다르지만 각자의 활동 영역을 넓혀 다각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아 콘텐츠에서 탄생한 캐릭터들은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서 멈추지 않고 Gen-Z를 넘어선 더 넓은 대중에게까지 어필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모티콘 등으로 유명세를 떨친 캐릭터들은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 애니메이션, 그리고 교육용 콘텐츠를 생산한다. 기업들의 마케팅을 위해 생산된 캐릭터들 역시 다양한 상품 및 콘텐츠 생산으로 대중들에게 스며들고 있으며, 기업과는 상관 없는 캐릭터들이 기업들과 콜라보를 통한 마케팅 상품 및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소위 “잘 나가는” 한국 캐릭터 및 IP 들은 탄탄한 백그라운드 스토리, 확실한 타겟팅, 그리고 효율적이고도 신선한 마케팅 전략 들을 통해 그들의 영역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인지도를 점점 넓혀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2024년 한국 고유 캐릭터 및 IP들이 갖춰야 할 요소들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필자보다 캐릭터 산업에 훨씬 능통하고 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2024년에도 신규 캐릭터 개발 및 기존 캐릭터들의 성장은 이러한 요소들을 접목하여 이뤄질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2024년 한국 고유 캐릭터와 IP개발에 필요한 부분들을 논해보고자 한다. 고전 만화부터 현재 만화 및 캐릭터 시장까지 살펴보고 아우르고 있는 ‘독고탁 컴퍼니’의 대표로써, 다른 부분보다는 “한국 고유의” 캐릭터 및 IP 개발에 보다 중점을 맞추고자 한다. 즉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한국에서만 개발 가능한 캐릭터는 과연 무엇일까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1970-90년대는 한국에서 만화 캐릭터들이 매우 흥행했던 시기다. 특히 1970년대에는 캔디, 아톰 등과 같은 일본 만화 캐릭터들이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던 한국 사회에 한국 고유의 만화 캐릭터들이 부상하기 시작한 첫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원로 만화가들 대부분이 자신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을 갖고 작품을 연재했으며, 이 캐릭터들은 자연스레 한국을 배경으로 한, 한국적인 스토리 안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한국인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MZ 세대들에게까지 익숙한 이름의 한국의 고전 캐릭터들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故길창덕 화백의 꺼벙이,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와 개똥이, 故신문수 화백의 로봇 찌빠, 故이상무 화백의 독고탁, 이두호 화백의 머털 도사, 이희재 화백의 악동이, 이현세 화백의 까치, 허영만 화백의 이강토, 김수정 화백의 둘리, 배금택 화백의 영심이, 이진주 화백의 하니 등의 많은 만화 캐릭터들이 1970-80년대 탄생했고, 만화영화화 되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어 당시 만화를 읽지 않은 세대에게도 알려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한국 만화 캐릭터 시장의 전성기는 9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일본 만화 캐릭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고, 故이우영 작가의 검정 고무신, 이빈 작가의 안녕 자두야 등의 작품들이 한국 만화 캐릭터 시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캐릭터 중에서도 만화 캐릭터는 특수성을 갖는다. 일반 캐릭터의 경우 캐릭터를 개발하며 배경 스토리를 만들고 성격을 부여한다면, 만화 캐릭터의 경우 만화 스토리를 통해 캐릭터들의 성격과 배경 스토리가 자연스레 탄생한다. 그렇기에 독자들과 관객들은 만화를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작품 내에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인생에 함께 감화되며, 이러한 경험들이 독자들과 관객들의 인생에서의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독자들과 추억을 공유하는 만화 캐릭터들은 쉬이 잊혀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일반 캐릭터 시장에서 개발된 캐릭터들에게 스토리를 만들어 애니메이션 및 극화를 시키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 것일 거다.
[ 그림 2, 故길창덕 화백의 <꺼벙이>, 故이상무 화백의 <독고탁>, 이두호 화백의 <머털이> ]
외국의 경우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캐릭터들은 작가의 페르소나이기에, 그 나라의 만화/애니메이션계에 큰 획을 그은 존경받는 작가들의 캐릭터들의 경우 작가들 사후에도 민관 협력을 통해 영속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캐릭터 시장의 파워에 비해 예전 캐릭터들이 살아남는 힘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경우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20대들조차 7-80년대 시대를 풍미했던 캐릭터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 무엇보다 한국적인 캐릭터이며 한국의 역사 속에서 대중들과 함께 숨쉬며 살아왔던 캐릭터들이 현시대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에게 온전히 잊혀졌다는 것은 매우 큰 상실이자 손해일 것이다. 특히 “한국적인”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몰고 있는 현재이기에 이러한 상실이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전 세계의 K-Culture 팬들은 보다 한국적이고 한국에서만 가능한, 한국 고유의 것들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다. K-drama, K-movie, K-pop 등을 통해 한국에 관심 갖는 해외 팬들의 경우, 한국 전통과 역사에 관심을 갖고 한국의 고유한 대중문화를 향유하고자 한다. 그들은 한국을 방문해 한국만의 색채가 짙은 명소들을 찾고, 한국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소비한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일상적이라 특별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국 문화”와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는 매우 귀중하고 특별하며 신선한 콘텐츠인 것이다. 이들은 “자장면과 단무지를 먹으며 만화책을 보기 위해” 한국의 만화방을 찾고, “치맥을 하며 축구를 보기 위해” 한국의 술집을 찾는다. 길거리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사먹고, 밤에 숙소에서 족발과 소주를 배달 시켜 먹으며 K-contents를 통해 접한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본인들이 즐겨 본 K-contents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찾아가서 캐릭터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추억들을 곱씹는다.
이처럼 스토리와 함께 탄생되고 그들의 인생사가 전달되는 캐릭터들이 갖는 강점은 명백하다. 독자들과 관객들은 이러한 캐릭터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기쁨과 아픔에 즉각적으로 공감할 수 있으며 그들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그렇기에 이런 캐릭터들은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의 한 조각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현재 기성세대들이 7-80년대의 한국 만화 캐릭터들을 “친구”라고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것 또한 만화 캐릭터들이 갖는 파워일 것이다.
최근 뉴트로 열풍, 한국적 콘텐츠들의 개발에 힘입어 잠들어 있던 한국 만화 캐릭터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내가 그린 까치” 프로젝트, “달려라 하니”의 애니 후속작인 “나쁜 계집애” 런칭, 독고탁 부활 프로젝트인 “꼬마 꼰대 독고탁”, 둘리 40주년 기념 행사 등을 통해, 마치 마법에 걸려 석화되어 있었던 영웅들이 마법이 풀려 깨어나듯 한국 레전드 만화 캐릭터들이 깨어나서 하나씩 기지개를 펴고 있다.
[ 그림 3, <둘리> 40주년 기념,꼬마꼰대 <독고탁>, 달려라 하니 후속작 <나쁜 계집애> ]
한국이 새로운 것을 잘 만든다는 것은 지난 십 여년 간 한국 캐릭터 시장이 증명해 왔다. 하지만 인터넷도 없고 TV도 잘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았던, 동네 작은 만화방에서 시작한 큰 저력을 지닌 캐릭터들을 리뉴얼과 스토리 재생산 등을 통해 명맥을 이어나가게 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시장의 실정이다. 이러한 힘은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작가 한 명이, 회사 하나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한국 만화 캐릭터 전성기 시대를 살아왔고 그 캐릭터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결정권을 갖고 있는 지금, 단기간에 정량적 성과를 내지 못할지라도, 책임감과 사명을 갖고 긴 호흡으로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한국 캐릭터 및 IP시장 뿐 아닌 전반적인 한국 사회에 많은 것을 남길 것이다. 예전 만화 캐릭터들을 살려 냄으로써 그들과 함께 성장해온 이들의 어린 시절 또한 영원히 살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세대들이 이 캐릭터들을 접하고 그들의 스토리에 감화됨으로써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지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개발되고 있는 캐릭터들 역시 유행에 따라 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보다 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곧 뽀로로와 함께 노니는 둘리, 또봇과 함께 날아다니는 찌빠, 펭수와 티격태격하는 독고탁을 볼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