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세계 만화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 만화시장 총액은 대략 15~17조원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일본 만화시장만 해도 6,770억엔으로 한화 약 6조원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환율이 지금처럼 낮지 않았다면 약 7조원 정도로 집계되는 수치이다. 이만큼 전세계에 큰 영향을 펼치고 있는 일본 만화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일본 대표 출판사인 '슈에이샤(集英社, 집영사)'가 자리 잡고 있다.
| 슈에이샤의 ‘경력작가 공개모집’
21세기 초반 만화 시장을 지배했던 3작품인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가르켜 각 작품의 앞단어를 따 '원나블'이라고 불렀다. 이 세 작품 모두 슈에이샤에서 퍼냈다. 당연히 그 앞의 ‘점프 황금기’ 시절 <드래곤 볼>, <슬램덩크>, <북두의 권>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이 그 토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하이큐!>,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주술회전>, <최애의 아이>, <스파이x패밀리>에 이르기까지, 명실상부 일본 만화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작품들을 배출한 ‘주간 소년 점프’는, 일본 만화의 심장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주간 소년 점프 역시 슈에이샤에서 발행하고 있다. 이렇게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는 슈에이샤가 기존과 다른 이슈로 주목을 받고 있다.
[ 그림 1, 기존 일본 출판 만화 시장에서 보기 힘든 원고료를 제시한 경력작가 모집 공고 ]
인기 작품들을 발굴하고 대중들에게 선보였던 슈에이샤에서 '경력작가 공개 모집' 공고를 시작하였다. 시장의 1/4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기업에서, 그것도 가만히 있어도 투고 작품들이 끊임 없이 들어오고 있는 출판사에서 '경력작가를 모신다’고 하자 시장에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또 다른 놀랄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경력작가 모집 요강에 적혀 있던 '원고료' 때문이다. 슈에이샤가 제시한 원고료 기준. 최하 원고료를 표기했는데, 굉장히 높은 편의 원고료이다.
슈에이샤가 제시한 원고료는 흑백만화 1페이지에 18,700엔(한화 약 16만원), 컬러 1페이지당 28,050엔(한화 약 24만원) 정도로 일본 기준으로도 꽤 높은 편이다. ‘소년 점프’에 연재되는 기준인 16페이지 1화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흑백은 299,200엔(한화 약 257만원), 컬러는 448,800엔(한화 약 385만원)가량으로 주 1회 연재했을 때 억대연봉이 넘는 금액이다. 일본 내에서도 해당 내용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왜 슈에이샤는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 일본의 인구절벽, 그리고 ‘주간지’ 시장의 변화
[ 그림 2, 일본 총인구 추이 - 일본 총무성 자료 ]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 역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22년 일본 인구는 1968년 인구조사를 시작한 이래 80만 1천명이 감소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모든 도/부/현 단위에서 인구가 감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원래 만화의 주요 타깃이었던 젊은 독차층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단기간 안에 일본의 망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어도 일본 내에서는 늘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인구수 변화와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것이 주간지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기 시절인 1995년 653만부를 발행하며 기네스북에 오른 ‘주간 소년 점프’는 이제 200만부가 채 안되는 발행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디지털로의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일본 내에서도 ‘일본 망가’ 하면 생각나는 주간 잡지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한 시대가 끝나기 전에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
수에이샤의 이번 구인에 대한 이유로 '발빠르게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과정'로 평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원나블”의 시대를 만들었던 세 작품 중 두 작품은 이미 완결됐고, <원피스>역시 최종장을 알린 상태이다. 그리고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최종장에 접어들었고, <주술회전>, <체인소 맨>등은 기복을 보여주고 있고, <최애의 아이>나 <스파이x패밀리>역시 ‘원나블’의 왕좌를 물려받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주간 만화잡지의 판매부수는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대로라면 ‘일본 망가의 심장’인 ‘주간 소년 점프’역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슈에이샤는 변화를 통한 돌파구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곳보다 높은 원고료를 공개하고, 직접 설명회까지 열고, 레전드 작가들이 직접 강의를 하는 등 작가 모시기에 들어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슈에이샤의 움직임은 다른 출판사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실제 '만화 주간지 시장이 소멸로 향해 간다면, 언젠가 우리도 사라질 수 있다'라는 두려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주간 소년 점프'의 상징성과 함께 가지고 있는 이정표적인 역할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주간 소년 점프를 지켜야 한다'라는 테제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슈에이샤의 이번 발걸음의 보폭이 일본 만화 시장의 전망치를 크게 넘어서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일본 만화시장 내 반응과 놀라움과 함께 당황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 그림 3, 주간 소년 점프 2024년 1호 ]
| ‘웹툰’의 영향은 없었을까?
다만, 슈에이샤의 큰 포복의 움직의 원인으로 '웹툰'을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웹툰'이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번 슈에이샤의 선택은 철저히 출판만화의 상징인 ‘소년 만화 주간지’를, 보다 정확하게는 “일본 망가의 심장”을 지키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여기서 웹툰이 경쟁자로 등장했다거나, 그로 인한 위기를 느꼈다고 보긴 어렵다. 만약 이유게 '웹툰'이 있다면 모집 경력에 '웹툰 연재 경략', 최소 '디지털 만화 연재 경력'이 핵심적으로 적혀 있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웹툰은 아직까지는 참고 대상이지, 높은 순위의 고려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움직임을 눈여겨 봐야 하는 건, 슈에이샤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결집’을 시작했다는 데 있다. ‘암묵적인 룰’을 중시하는, 격변을 되도록 피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사회에서 이런 파격을 보여주었다는 것 만으로도 주목할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일본 만화 시장의 대격변이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 시장에서 성장 중에 있는 웹툰 시장 속에 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다음 스텝'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한국 웹툰 업체들에게 순발력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