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를 위한 팬덤 비즈니스에 중요한 건 '독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494,000원. <내가 키운 S급들> 단행본 펀딩의 가격이다. 현재 네이버웹툰에서도 각색되어 연재되고 있는 <내가 키운 S급들>(이하 <내스급>)은 판타지 웹소설로 유명한 작품이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처음으로 진행되었던 펀딩 프로젝트는 사전 알림을 신청한 인원이 5천 명을 넘겼고, 오픈 직후 많은 접속량으로 인해 텀블벅 사이트에 접속하기도 쉽지 않았다. 소문난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던가. <내스급> 펀딩은 높은 가격에 비해서 메리트가 전혀 없었다. 양장본도 아닌 일반책 5권의 가격은 132,000원이었고, 굿즈만 살 수 있는 구성은 전혀 없었다. 굿즈 세트 또한 특별한 구성이 아니었다. 핸드북, 엽서, 지도 등 단가가 높지 않은 지류 위주였고, 특별히 <내스급>만의 특성을 살린 굿즈도 아니었다.
[ 그림 1, 논란이 된 <내가 키운 S급들> 펀딩 페이지 ]
물론 그동안의 펀딩에서 가격에 대한 논란은 있었던 바다. 하지만 높은 가격에 걸맞게 아트북 혹은 양장본으로 단행본이 제작되었고, 작품 특성에 맞는 굿즈를 구성하였다. 동일한 사이트에서 진행된 <백작가의 망나니가 되었다>의 최고가 세트는 약 23만원이었다. 이는 양장 단행본 5권에, 굿즈 박스, 북 보틀, 무드등, 족자봉 2종을 포함한 가격이다. 부담스러운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사이트 내 커뮤니티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심지어 후기 내용 대부분이 만족하고 있다는 반응 일색이다. 동시에 2부를 기다리고 있다는 언급 또한 많다. 즉, 만족할만한 질이 담보된다면 팬들은 언제나 구매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팬들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지는 않는다. <내스급> 단행본 펀딩은 펀딩 시작 이틀 만에 2억원을 넘겼지만, 결국 수많은 논란 끝에 펀딩 자체가 무산되었다. 펀딩을 진행했던 ‘굿즈 판타지’는 이후 더이상 어떠한 굿즈 제작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논란이 컸다는 의미다. <내스급>의 원작사인 제이플미디어가 공지사항에서 직접 언급했듯이 독자들의 의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펀딩의 최대 문제점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가격과, 원작을 굿즈로 만드는 과정에서 ‘팬심’만을 믿고 펀딩을 진행한 결과다. 결국, 단행본을 기다리던 팬들의 기회까지 빼앗고 말았다. 작가도, 제작사도, 팬들도 상처뿐인 펀딩이 되고 만 것이다.
| 무늬만 크라우드 펀딩
‘내스급’ 펀딩 무산 사태로 인해 우리는 두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인기작품인 ‘내스급’을 굳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다. 크라우드 펀딩은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한 용어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뜻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를 적극 활용해 ‘소셜 펀딩’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사실 크라우드 펀딩은 출판사를 구하기 어렵거나, 자력 출판의 여력이 되지 않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최근 웹소설과 웹툰의 단행본은 펀딩을 통하여 제작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단행본 크라우드 펀딩 금액의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대부분 출판에 필요한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단행본 원고의 편집 및 디자인, 인쇄와 제본비로 사용된다. 또한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리워드 제작비로도 지출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샘플을 제작하는 비용까지 펀딩 금액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펀딩을 통하여 단행본을 제작할 경우 마니아층에 해당하는 팬덤의 요구 사항을 빠르게 수용할 수 있다. 또한 단행본에 관한 호감도와 기본적인 수요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출판사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굿즈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업체와 협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출판이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펀딩을 통한 제작의 이점은 모두 ‘제작하는 업체’가 얻게 된다.
물론 펀딩 사이트의 특성상 일찍 구매하는 소비자는 ‘얼리버드’라는 시스템을 통해 조금 더 저렴하게 단행본과 굿즈를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할인된 가격으로 책정된 수량은 한정되어 있다. 또한 굿즈의 선택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제작하는 업체에서 구성한 세트대로만 구매할 수 있다. 원하는 물품만 선택해서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구성품이 다 포함된 세트를 구매하거나, 소장하고 싶은 물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제작 기간이 길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보통 펀딩이 종료된 후, 짧으면 2주 길면 40일을 기다려야만 한다. 또한 펀딩 특성상 단순 변심으로 인한 환불도 불가능하다는 점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구매의 불편함이다.
사실 인기 작품의 경우 충분히 자력으로 교정과 교열을 진행할 수 있고, 출간에 필요한 비용은 단행본 수익으로 충당할 수 있다. 또한 굿즈 제작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굳이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을 이용하여 제작하는 구조가 일종의 관례화가 되고 있는 것은 곧 팬들의 충성도를 활용하여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 팬덤, 그들은 누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금액을 감수하고, 오랜 기다림을 통해 단행본과 굿즈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팬덤이다. <내스급> 펀딩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결국 팬덤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문제다. 팬이기에 당연하게 감수할 만한 소비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팬덤은 무조건적인 애정을 퍼붓고 무조건 소비하는 집단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도가 높기에 제반상황을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집단은 바로 ‘팬덤’이다. 팬덤은 한국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집단이자 현상이다. 팬덤을 문화현상으로 바라본다면 유의미한 취향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뚜렷한 실체가 없고 유동적이며 전체를 대표하는 ‘대표자’는 없으나 다수에 의한 방향성은 존재한다. 즉, 가장 느슨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취향이라는 확고한 동질감을 통해서 유의미한 집단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팬덤은 하나의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 소비 담론에 중심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시에 엄청난 실천력 또한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실천력이란 단순히 소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생산자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역동적인 세력이며 적극적인 재매개 집단이라는 것이다. 팬덤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의미를 확산시키며 문화의 창의적인 수단이자 창구를 개발하는 집단으로서 활동한다.
| 단순한 오덕이 아니라구
‘내스급’ 팬덤에서 조금 더 넓은 범위로 나아가보자. 웹툰 팬덤, 웹소설 팬덤, 만화 팬덤까지. 이들은 그야말로 ‘텍스트’ 자체에 대한 애정을 담보로 하는 집단이다. 기본적으로 웹툰, 웹소설, 만화는 서브컬처의 전형이다. ‘오타쿠’가 서브컬처를 탐닉하는 사람들의 총칭이라는 아즈마 히로키의 정의에 따르면, 웹툰, 웹소설, 만화 팬덤은 결국 ‘오타쿠’들의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홍미·안병곤은 「「오타쿠」에 관한 인식 변화 연구」에서 오타쿠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이며, 기존의 생산자가 지니고 있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자극제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오타쿠’는 ‘오타쿠’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양질의 재생산을 독려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도출될 경우 그들은 최대의 소비자로 거듭난다는 현상을 분석하며 오타쿠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결국 ‘오타쿠’는 ‘마니아’를 뜻하며 팬덤을 구성하고 있는 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폐쇄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공개적인 활동이 지향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타쿠가 오덕, 덕후 등 명칭의 변화 및 인식의 변화 과정을 거치며 점차 긍정적인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다. 즉 ‘오타쿠’는 과거의 부정적인 선입견과 달리 최근 전문가급 아마추어로 점차 인식이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웹툰-웹소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 오픈 플랫폼이기에 서브컬처에 호감을 갖는 대중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 소비의 정서 혹은 정서적 소비
서브컬처(웹툰, 웹소설, 만화) 팬덤은 ‘텍스트’ 자체에 애정을 지니고 있다. 이는 곧 텍스트를 창작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애정과도 결부된다. 따라서 이들 팬덤은 자신의 구매가 창작자의 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웹소설이나 웹툰에 “작가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와 같은 댓글이 달리는 것은, 팬인 나의 구매가 작가에게 수익을 창출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결제가 작가의 창작에 도움을 주고,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느낌을 부여한다.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생각을 지니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서브컬처 팬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텍스트’ 그 자체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의 세계관, 인물들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고, 작품에 몰두한다. 작품이 완결이 나더라도 그들은 작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동일한 작품을 재탕, 삼탕을 하는 식으로 여러 번 읽는다. 하지만 웹에서 연재되는 서사물을 ‘소장’하고 있음에도 부족한 느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웹툰·웹소설·만화 팬덤은 ‘텍스트’, 즉 허구의 서사를 ‘물성’으로 치환하여 소장하고 싶어 한다. 웹 혹은 모바일로 접하는 텍스트와 또 다른 느낌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그림 2, 마루와 춘배의 툰페스티벌 팝업스토어 ]
따라서 최근의 굿즈가 단순히 책갈피, 뱃지와 같은 흔한 아이템에서 벗어나 확장하고 있는 것은 팬덤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의 경우 텀블벅을 통해 웹툰에서 의미가 있던 악세사리와 깃펜을 펀딩을 받아 제작하였다. 이외에도 네이버웹툰의 <가비지 타임> 경우도 웹툰과 연관된 제품인 섬유 향수를 제작하여 웹툰프렌즈스토어(네이버웹툰 굿즈 공식몰)에서 상시판매하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웹툰·웹소설 작품을 평소에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굿즈(그립톡, 케이스, 인형 등등)에서부터, 작품의 세계관을 담은 물품(악세사리, 섬유향수, 인센스 등등)까지 굿즈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정서적인 소비와 연관된다. 샌드보스는 <Fans>에서 팬 경험이 “특정한 대중적 서사 혹은 텍스트에 정서적으로 꾸준히 관여하는 소비” 활동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즉 팬덤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팬덤을 통한 비즈니스는 점차 늘어날 것이다. 2023년 네이버웹툰 팝업스토어는 세 차례 열렸고, 17만명이 방문하였다. 1인 최대 결제 금액이 65만원에 이르기도 하였다. 웹툰 팝업스토어는 웹으로만 볼 수 있었던 작품을 오프라인상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실체가 있는 대상으로 체험하면서 팬덤은 강화될 수 있다. 동시에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굿즈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소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업이 확장될수록 팬덤의 마음을 헤아려야만 한다. 팬덤을 그저 소비하는 대상으로만 치부할 때, 팬덤은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돌아설 수 있다. 웹툰·웹소설·만화 팬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작품을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자신과 가깝게 두고자 하는 것이다. 한정판인 단행본을 소장하거나, 공식 굿즈를 구매하는 방식은 결국 ‘작품’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돈벌이형 기획은 팬덤의 사랑을 가장 처절하게 기만하는 방식이다. 결국 IP 굿즈 기획자들이 가장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장의 이익이 아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팬덤의 ‘정서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방식일 것이다. 팬덤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실망하지 않으면 쉽사리 돌아서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