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10컷~네이버는 보너스컷으로 컷수 꾸역꾸역 채우며 4컷ㅋㅋㅋ이번 결혼식 에피소드도 한 이야기 분량 다섯토막으로 쪼개서 20컷에 5쿠키 처먹어버리는 마님 굿굿! 댓글이 폭주하는데도 눈막귀막 대처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이젠 갈비찜 레시피까지 댓글에 올라왔던데..이미 실패한 작품이라는게 인증되죠?ㅎㅎ 그런식으로 연재하실거면 다시 인스타로 돌아가세요”
이 글귀는 <마님이네 미국 시골집 이야기>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 웹툰에 만화를 연재 중인 마님 작가의 개인 인스타그램 @manim_toon에 달린 덧글 내용이다. 그냥 보면 정말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한심하고 지질한 드잡이 덧글이지만, 달리 보면 소위 ‘포털 정식 연재’에 대해 웹툰 독자들의 기저에 어떤 생각이 깔려 있는지를 농축해 담고 있기도 하다. 대체 “그런 식으로 연재하실 거면”의 ‘그런 식’이란 뭘까?
| 태업, 소통, 실력
마님 작가는 일찍이 ‘올리버쌤’이라는 이름으로 영어 교육 콘텐트를 유튜브에 올려 인기를 얻어 온 미국인 올리버 샨 그랜트 씨와 2016년 국제 혼인한 한국인으로 본명은 정다운 씨다. 2020년 남편에게 아이패드를 선물 받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한 일상툰 <마님툰>이 17만 구독자를 얻으며 인기를 얻자, 네이버 웹툰에서 먼저 연재 제안을 받게 된다. 그렇게 2023년 8월 시작된 <마님이네 미국 시골집 이야기>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마님툰>과는 별도로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로, 주 2회 연재되는 컷툰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마님툰>과 달리 컬러 채색이 되어 있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게시판 커뮤니티 등에서 얻은 화제를 바탕으로 포털 사이트의 제안을 받아 연재를 시작하는 사례는, 외부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최근 추세에서는 비교적 드물어지긴 했으나 없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님 작가의 만화에 달리는 덧글들이 호의적이지 않은 까닭에는 웹툰의 독자들이 암묵적으로 독자에 대한 결례로 마음대로 설정하고 있는 조건들을 마님 작가가 두루두루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조건이 무엇인가. 가장 큰 건 “태업하지 말 것”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돈 받는 프로답지 않게’ 태업하는 걸 너무나 싫어한다. 원고 마감이 단 한 시간 정도만 늦어도 프로답지 않다는 덧글이 달리기 일쑤고, 분량이 적으면 그 자체로 게으름을 피웠다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태업과 더불어서 중요한 것이 두 가지 더 있다면 ‘소통’과 ‘실력’에 대한 요구다. 웹툰 작가는 독자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프로로서 돈 받는 값 만큼의 실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말만 들으면 그럴싸하다. 돈을 받는 프로페셔널로서의 조건이 ‘성실할 것’과 ‘실력 있을 것’이라고 하면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기준점이다. 태업 논란 대부분은 시간을 맞추지 않는다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왕년의 웹툰 악플 중 유명했던 사례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작가에게 달렸다던 ‘네 부모가 죽든 말든 나는 네 웹툰 보려고 일주일 기다렸는데 왜 비축분도 없이 휴재를 해?’다. 자매품으로 ‘혼인을 위해 상견례를 치르려고 휴재를 하면 마찬가지로 비축하지도 않고 휴재를 하냐 프로 의식이 없다’도 있다. 이게 ‘일부’라고 할 일만도 아니다. 웹툰의 덧글들에는 언제나 분량을 재고 있는 독자들의 “이번엔 왜 이리 적어요” “갈수록 성의 없어진다”라는 볼멘소리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전개를 위해 빠르게 읽힐 연출이라고 감행한 날에는 더욱 그렇다.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게 적은 분량이냐며 비명을 지른다. 배경 미술에 세밀한 묘사가 들어가 작업에 들이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독자가 보고 지나가는 시간은 정확히 반비례로 짧아지게 마련인데, 이런 점을 감안해주는 독자는 많지 않다. 칸의 세로축 너비가 일정한 것도 아닌데 아주 산술적으로 세고 있는 사람까지 만나면 숫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원고 입고가 늦는 데 대한 비판은 분명 프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눈앞에서 세어 대고 있는 것이다. 너 지금 분량 모자라다고, 성실하지 않았다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고쳐야 한다고. 그리고 이를 적극 반영하지 않으면 곧바로 나오는 말이 있다. “소통이 부재하다” “작가가 귀를 막고 있다”
흔히 웹툰 연재처에서 1화 분량으로 제시하는 분량은 60~80칸(대체로 70~80칸)이 거의 표준처럼 굳어져 있고 인스타그램식 가로 넘기기를 지원하는 컷툰은 10칸 정도가 보통이다. 지금 웹툰 독자들 상당수는 60~80칸에 익숙해져 있는 추세인데, 이게 사실 주간 연재에 풀컬러 채색임을 감안하면 사실 ‘말도 안 되는 분량’이다. 오로지 칸 수로만 보자면 주간 만화 잡지의 주당 연재 분량에 준하는 분량인데, 그 시기에도 최소한 이를 소화하기 위한 문하생 또는 어시스턴트가 대거 투입되지 않으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연재 자체가 불가능한 시스템이었고, 이 때문에 고료 수준 및 사정상의 이유로 사람을 많이 쓰지 못하는 만화가들이 건강을 더 해치는 문제는 예전에도 심각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10칸이라고 무에 다를까? 어떤 연재 시스템에서도 장편 극화가 있으면 짧은 분량으로 합의된 연재 꼭지도 있었다.
성실함, 그 중에서도 특히 분량에 대한 부자비한 강요가 너무나 당연하게 악순환을 일으키는 원인임에도, 불과 몇 년 전 터졌던 레진코믹스의 지각비 이슈에서 보듯 업계는 이 문제를 철저히 작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성실성의 의무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독자들 또한, 이 성실성의 의무를 무기로 작가를 쥐 잡듯이 잡아 뜯는다. 돌아와서 <마님이네 미국 시골집 이야기>에 달린 근자의 덧글은, 비단 해당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의 잡아 뜯기가 얼마나 웹툰 업계와 웹툰 수용자 문화를 망치는 원인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분량이 왜 4컷 뿐이냐’
‘당신은 이렇게 쉽게 돈 버는데 밤샘 작업하는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지도 않느냐’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실력은 좋은데 데뷔도 못하는 다른 작가들은 얼마나 짜증날까?‘
| 많은 이들에게 웹툰은 작가 것이 아니다
웹툰은 형성기에서부터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강한 매체였다. 웹툰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정착되기 전부터 초기 웹툰들은 출판 만화 시장이 쌓아 왔던 매체적 전통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가운데에 웹이라는 새 공간 위에서 직접 독자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전통을 쌓아 올렸다.
그래서 웹툰은 독자들로 하여금 강한 주인 의식을 심어준 매체가 되었고, 웹툰의 독자들은 내가 이 웹툰을 만들어가는 주체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경향이 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작가를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한 대리 구현자쯤으로 여기는 구석이 있다. 단순히 작품 진행에 대한 예측을 넘어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늘어놓은 후, 이를 듣지 않는 듯할 때엔 대뜸 귀를 막고 입도 닫고 소통하지 않는다며 화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이 직접적으로 창작 행위와 그 결과물인 창작물에 내 말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창작 주체인 작가 개인 단위에 화를 내고 이를 매체적 전통으로서 당연히 여기는 건 웹툰이 대표적이다.
물론 웹소설이나 유튜브 같은 웹 기반 콘텐트 전반도 웹툰을 통해 구축된 수용자적 전통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는데, 장기 회차에 걸친 도화 제작이라는 본질적 성격에 따라 방향 수정의 난도가 아예 달라진다는 점을 봤을 때 웹툰의 방향성에 대한 지적이란 사실상 대체로 수용 불가능한 바를 강요하는 수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웹툰이 상업 매체로서 개인 대 개인 창작자가 감당 가능한 다수의 범주를 넘어서게 된 시점에서, 독자는 작가가 자신의 조언이나 피드백으로 포장된 표현욕에 모두가 일일이 반응해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웹툰으로 대표되는 웹 기반 콘텐트가 일련의 대중 반응성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고 또한 대중 수요층이 일으키는 트래픽으로 먹고 사는 건 분명하지만 그 반응이 문자화해 직접적으로 전달되었을 때 이를 반드시 받아들이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의무’는 없다. 일부 작가는 그렇게 대응을 하기도 하고, 또한 일부 작가는 회사로 창작 업무를 키워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부가 그럴 수는 없다.
독자의 만족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작가지만, 작가가 독자의 말을 들어주어야만 하는 감정노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용한 문구를 다시 한 번 보자. 사람들은 “눈막귀막”이라는 말에 이어 “이미 실패한 작품이란 게 인증”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말대로 안 했으니 이미 실패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또 다른 덧글은 어떨까. 너보다 실력 좋은데 데뷔 못한 다른 작가들은 짜증나고, 이거 그리고 쉽게 돈 버는데 미안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글귀만으로 판단할 게 아닐까? 천만에. 덧글 초기의 분위기가 잘못 형성된 작품은 긍정적인 반응조차 고스란히 밀려난 채 작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악의의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설령 마님 작가가 이후에 80컷을 넘게 그린대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부터는 또 다른 기준점이 적용될 것이다. 그림이 단순해요, 배경도 단순해요, 일상 팔아먹어요, 인스타그램 줄이고 여기에 집중해요……. 웹툰에서 ‘소통’이란 이 일련의 과정을 함축한 말이고, 성실성과 실력이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적하기 위한 자기 마음 속 잣대일 뿐이다. 설령 그 분량이나 표현이 연재 업체와 합의된 것이어도, 그 연재가 연재처에서 먼저 제안 받아서 시작된 것이어도, 중간에 유산을 했든 무슨 일이 있든 아무 상관없다.
이 웹툰의 주인은 나지 작가가 아니고, 작가는 나의 대리인일 뿐이니까, 내가 가리키는 방향에 맞춰서 구현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 을 간의 전쟁을 멈추게 하라
<마님이네 미국 시골집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이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웹툰을 그리는 만화가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하루 이틀도 아닌 널리고 널린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악성 덧글을 규제하자 같은 말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포털은 트래픽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기계로 걸러낸다고 말할 뿐 실질적인 규제를 할 리가 만무하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이 ‘주인의식’에 따른 주장들이 다분히 을(乙)간의 전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계 표준계약서 중 웹툰 연재 계약서를 보면 저작재산권자(저작권자)와 사업주(서비스업자)라는 구분이 등장한다. 근래 계약서 추세가 갑과 을 구분을 두지 않는 데에 따른 것이겠지만, 어떻게 바꾸어 쓴다 한들 - 또한 창작자와 서비스업자 사이의 관계에서 명목상으로는 창작자가 갑 위치에서 저작권 이용 허락을 해 주는 것이라 해도 - 실제 ‘갑님’이 어디인지는 누구라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갑님’ 반대편에서, 창작자들은 수많은 ‘을’의 위치에서 열심히 달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 주당 풀컬러 80컷이 넘는 분량을 꾸역꾸역 해내야 하는 것이 ‘업계 표준’이 되는 것은 이러한 ‘을’들이 감내해 온 결과지만, 한편으로는 주인의식에 넘쳐나는 독자들이 돈 한 푼 받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내기도 하면서(!) 감행한 마름 노릇의 결과기도 한 것이다.
독자가 없으면 만화도 없지만, 작가가 쥐어뜯기면 만화가 시작되지도 않는다. 이건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최소한 주5일제 1일 6~7컷을 최저한선으로 놓고 그 이상을 그리게 하려면 고료를 최소 2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 말은 노동량을 물리적으로 줄일 수 없으면 제작인력이라도 더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자 한편으로는 현행 연재 분량의 1/2 이상 감소를 독자가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꼴로는 “태업이다!” “프로답지 않다!”소리부터 튀어나올 마당이다.
을들은 그 요구들을 맞추기 위한 전쟁을 감행하다 힘이 빠져 꺾인다. 일부 괜찮은 을이 생길 뿐이지만 그들이 표준이 되어선 안 된다. 업체들도 업체들이지만, 업체들이 듣게라도 하려면 독자들부터 을 간의 전쟁을 멈추라 말해야 한다.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작가를 더 ‘양산’하고 싶지 않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