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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원작 크리처물의 유행과 영상화 기대 작품들

크리처물 작품들의 출현과 향후 미래의 방향, 알아보기

2024-07-25 박수민

웹툰 원작 크리처물의 유행과 영상화 기대 작품들

장르의 불모지에서 최전선으로

  과거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본격 장르물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영상물로 옮길 플롯과 서사의 원천으로서 우선 떠올릴 수 있는 소설 분야를 오랫동안 순문학이 지배했다. 당시 작가들이 처한 시대의 한계로 독자의 관심을 일으킬 소재와 이야기 자체의 매혹보다는 개인의 각성과 사회 문제의 폭로가 작품 테마의 우선 순위였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추리를 내세워 서스펜스-스릴러 장르의 범죄 소설을 꾸준히 써온 작가들이 존재했지만 민주화 이후 등단과 미()등단 사이 벽은 오히려 높이 굳어졌고, 아카데믹한 순문학의 권위에 눌려 장르문학이란 곧 비()문학 같은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순수는 예술, 장르는 상업이란 이분법이 평단과 작가는 물론 독자들의 내면에까지 자리 잡았다.

  (거친 요약이지만) 이러한 파생적 결과로 80-90년대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장르의 불모지처럼 여겨져 왔다. 크고 작은 장르적 시도는 물론 있었으나,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하이 콘셉트 블록버스터들과 오랜 전통을 가진 일본의 특촬·괴수물 등에는 감히 비교가 불가능할 수준의 미미한 시도처럼 보였다. (유럽의 에로물과 한국 에로방화를 같은 착취-ploitation 장르로 놓고 비교해볼 수는 있겠지만 이건 본 칼럼의 용도를 아득히 벗어나므로 일단 무시토록 하자) 비슷한 장르물이 아주 없었다기보다, 시장에서 비평 및 대중적으로 성공하여 오늘날까지 프랜차이즈로 이어진 작품이 드물기 때문에 대체로 장르의 부재가 더 크게 보였다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일 테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이런 와중에도 장르가 굳건히 작용하는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만화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출판 연재만화에서 큰 인기를 구가한 스포츠 장르물들이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빈번히 영상화되었던 사례들이 존재한다. 장르의 원천 소스가 되어준 만화 덕분에, 한국 대중문화는 결코 장르가 전멸한 곳은 아니었다. 다만 만화가 다른 미디어로 이어지기엔 매체 간 소통과 시스템적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산업적 인식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은 영화든 만화든 간에 완성된 작품을 독자와 관객에게 도달시키는 일차적 목표에만 급급한, 주로 작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한 일회성 기획이 대부분이었음을 돌이켜야 한다. 장르적 열망을 가진 작가 개인보다 이를 지속적인 결과물로 도출시킬 목적과 자원의 부족, 즉 프로듀서와 시장의 부재가 장르의 필요성을 늦게 불러온 것이다.

  이러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오늘날 한국 영화와 드라마(시리즈)는 장르의 최전선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스릴러와 호러 장르는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는 의견이 세계의 평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나올 정도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밀레니엄 이후 20여 년 동안, 한국 영화는 시네필 출신 감독들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이래 기술적으로나 작품성으로나 세계 수준에 도달했고, 출판 만화의 좁은 한계를 넘어 도리어 세계를 선도하는 시스템이 된 웹툰은 우리의 미디어 산업에 있어 장르의 방대한 원천 소스가 되었다. 게다가 지금 한국의 문학, 소설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는 SF. 한국은 더 이상 장르의 불모지가 아니다.

OTT가 선택한 호러-크리처 장르

  이제 한국은 못 만드는 장르가 없다. 할리우드나 일본에서만 볼 줄 알았던 슈퍼 히어로, 좀비 아포칼립스, 대규모 재난물, 디스토피아 및 우주 배경의 SF, 대체역사물은 물론 이종의 크리처(creature)가 난무하는 호러와 스릴러까지 다양하다. 이중에서도 특히 <스위트 홈>, <지옥>, <방과 후 전쟁활동>, <기생수 더 그레이> 등 호러에 장르적 기반을 두고 극중 중요한 설정으로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OTT를 통해 많이 제작된 점에 주목하고 싶다. 한국영화의 몸집을 양적으로 키워준 천만 영화들이 애초 기획부터 휴먼 드라마 기반에 온갖 장르의 혼합물이었다는 것을 되새겨본다면, 다양한 장르별 특성이 다이내믹하게 섞이는 것이 한국 장르물의 하이브리드적인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OTT 시리즈가 흥하는 시대에 들어서 기획과 투자의 선택을 받은 장르가 유독 크리처물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먼저 격세지감을 느끼는 게, 봉준호 감독이 <괴물>(2006)을 만들던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계에서 크리처가 나오는 장르란 이무기 영화 만들다 망할 일 있냐?”라는 우려부터 듣기 십상이었고 이런 인식이 보편적일뿐더러 당연시 되었다. 우선 호러 장르가 외국에선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저예산에 특화된 장르임에 반해, 한국에선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제작상의 난이도에 비해 관객층이 얕다는 인식이 있었다. 더구나 크리처가 나오는 호러나 SF, 판타지물은 장르 이해도를 신뢰할 만한 작가와 연출의 부재 등의 문제를 이유로 더욱 실패할 위험이 큰 장르로 여겨졌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개연성을 따지는 게 바로 한국 관객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인식이 뒤집힌 모양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 매력적인 기획으로 여겨지지 않고서야 만들기도 성공하기도 어려운 장르물이 이렇게 OTT마다 경쟁적으로 제작될 리 없다. 영상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어마-무시한 소재와 스케일의 본격 장르물들이 OTT를 통해 아무렇지 않게 제작되고 있다. 플랫폼의 막대한 자본이 주어지자 장르는 더 이상 산업적 모험이 아니라 소비자를 사로잡을 매력적인 상품의 규격으로 변모했고, 다종다양한 장르의 방대한 웹툰 작품군은 각색할 원작으로 접근할 최선의 선택지가 되었다. “이 웹툰을 실사로 만든다고?” 불가능해 보일수록 플랫폼의 구독자 수를 확보할 미끼 상품으로선 더할 나위가 없다. 여기서 각광받는 장르가 놀랍게도, 장면마다 세상에 없는 CG 괴물이 득시글대는 크리처물이다.

  그 원인으로 앞서 말한 봉준호의 <괴물>이 한국 대중문화에서 하나의 장르적 사건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괴물>의 혼합 장르물로서 퀄리티는 물론 천만 영화에 오른 커다란 성공은 한국의 모든 서사 분야를 아우르는 작가들에게 전환점이자 이정표였고 이제 내재된 DNA가 되었다고 본다. 이미 과거 칼럼(지금 만화 13만화 VS 영화)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2006년 이후 작가들은 <괴물>을 통해 한국 사회와 장르를 접합하는 법, 즉 장르를 통해 현실을 소환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정성일 평론가가 말한 상상력의 허구 안에서 필사적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하려는 긴장이다. 한국에서 소설을 쓰든 만화를 그리든 영화를 찍든 간에 장르를 다루려면 이 긴장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사회 드라마로 결론이 나는 한국의 모든 장르물 중에서도, 크리처물만큼 이 긴장을 극한으로 추구하기 좋은 장르는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국산 크리처 장르의 번창에는 기술적 요소도 큰 몫을 한다. 크리처물의 영상화 구현에 있어 첫 번째 관문일 CG의 퀄리티가 엄청나게 발전한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괴물> 때만 해도 크리처의 리얼함 수준이 혹여 관객의 몰입을 해치지 않기 위해 외국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웹툰 원작 크리처물에서 작품의 어떤 요소들보다 먼저 CG가 뚜렷한 장점으로 평가되거나, 최소한 전개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정도로 국내의 CG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올랐다. 그 어떤 형체와 질감을 가진 생명체든 영상에 구현할 수 있다. 장르의 선택이 작가가 추구하는 테마로서 예술적인 동기 혹은 목적이라면, 이를 뒷받침할 기술적 수단 역시 갖추어진 셈이다. 이리하여 할리우드도 일본도 못 하는 매운 맛, ‘K-크리처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영상화를 기대하는 크리처 장르 웹툰/만화

  K-크리처물의 명맥을 이어갈, 다음으로 영상화가 기대되는 크리처 소재의 만화에는 무엇이 있을까? 웹툰 좀 본다는 독자에겐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보편적 기대의 예상 리스트에는 이경탁 글, 노미영 그림의 <심해수>가 먼저 올라와야 할 것 같다. <워터월드>를 연상시키는 수몰된 세계에서 변이한 바다 생명체 심해수가 등장하는 이 작품의 유려한 작화는 실사만큼 애니메이션도 보고 싶게 만든다. 여기에 캡콤의 몬스터 헌터같은 게임으로도 연계하여 프랜차이즈 전개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올해 국산 게임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데이브 더 다이버><P의 거짓> 사이 심해수 수렵 게임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부부의 다음 작품 <!단군> 역시 CG로 구현할 크리처가 가득 나오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웹툰이다. 두 작품 모두 미디어 믹스하기 좋은, 대중에게 어필할 상품성을 가지고 있다.

 

  천안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온 날, 감염된 개체를 흉측하게 변이시키는 정체불명의 세포들이 서울 전역에 퍼진다.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걸작 아포칼립스 <드래곤 헤드>의 한국적 변용이라 할 만한 박창근의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이다. 우선 실제 지명과 건물 이름을 괜히 회피하지 않은 결정이 작품의 현실성을 높였다. 일반적인 좀비와는 다른 방향성의 감염과 변형 양상을 그려 크리처물로서의 개성 또한 더했다. 통상의 크리처물이 재난 상황의 충격과 괴생명체의 공포 이후의 전개에서 서바이벌이나 이능력 배틀로 장르를 이동하며 본래의 호러 요소는 옅어지는 것이 익숙한데, 이 작품은 무엇보다 등장인물간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장점이다. 학생들 각각의 그룹이 처한 상황 속에서 주요 인물마다 사연을 꼼꼼히 쌓는데, 주변의 단역은 물론 지나가는 길고양이까지 허투루 다루질 않는다. 스토리상 세포의 정체와 최종 목적에 대한 미스터리를 더해가면서, 궁극적인 작품 테마에 있어 잘 만든 인간군상극을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체불명의 크리처가 주는 순수한 공포, 이 장르를 파생한 본질인 호러에 집중한다면 서우석의 <괴생>이 리스트의 다음 순위다. 스토리는 익히 접해온 B급 크리처물의 집대성이라 할 만큼 새로울 게 없고 오히려 아마추어리즘을 벗지 못한 서사로까지 느껴진다. 시즌 12 모두 이야기의 시작이 길 가던 노상에서 대소변을 보다 일어난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등장인물의 대사 중에 기억할 만한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웹툰에 없는 박력이 넘친다. 웹툰에서 일반적으로 배경에 깔리는 사운드나 서술자의 절절한 심리 설명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활자적인 기교를 치워버린 이 만화는 대신 집요하리만치 세부묘사에 충실한 그림체로 독자를 압도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공포만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각을 다시금 느꼈을 만큼, 그림이 곧 연출이며 그것이 만화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드문 웹툰이다. SCP 재단 시리즈도감을 연달아 펴낼 만큼 괴물에 진심인 이 작가의 그림을 실사로 보고 싶다.

  이 밖에도 이상윤의 <괴물아기>, 디디의 <아귀><○○인간>시리즈, 황준호의 <피와 살>, 나우원 글, 오른손(정종수 작가의 네이버 웹툰 연재시, 또는 작화가로서의 펜네임으로 보인다) 그림의 <바퀴>도 영상화를 기대하는 크리처물 웹툰 리스트에 오를 만 하다. 여기까지가 웹툰 팬들이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선택의 리스트라면, 이제 대안으로 개인적 선택의 리스트로 넘어가볼까 한다. 약간의 반칙으로, 본격 크리처물 보다는 크리처가 나올 수 있는 상위 장르로 확장하는 동시에 웹툰 형식에서도 좀 벗어나보겠다.

 

  예전에 오민혁 단편선을 소개하면서 <매듭>이란 SF 작품의 영상화를 강력 추천한 적이 있는데 이는 크리처물로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주선에서 매듭균에 감염된 개체들과 특히 결말부 매듭으로 일체화된 승무원들의 크리처적인 기괴함을 실사로 보고 싶다. 물론,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시킬 각색과 감독의 비전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오민혁과 함께 현대 한국 만화계에서 몇 안 되는 독보적 개성을 지닌 작가 정지훈의 <모기전쟁>도 추천한다. 최강의 포식자로 진화한 모기들과 6인조 특수부대의 끝없는 전쟁은 개인적으로 일본의 <테라포마스> 따위 우습게 만들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과 재미를 주었다. 이 작품을 영상화 한다면 OTT 플랫폼 입장에서도 큰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인류의 생사가 달린 전쟁의 스케일과 하드코어 액션 묘사에서 타협점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간화되어 2족 보행을 하는 근육질 모기 크리처 15천억 마리를 영상으로 구현한 압도적인 절망감을 느껴보고 싶다.

  웹툰에서 벗어나 페이지 만화 중에서는 강착원반 글, 가네다 사토 그림의 <데드미트 패러독스>를 꼽고 싶다. 정확히는 크리처물이라기보다 좀비물이지만, 19세기 말 산업혁명 시대 영국 비슷해 보이는 가상의 제국에서 좀비의 사망보험금을 둘러싼 재판을 다루는 독특한 이야기를 OTT의 자본과 기획력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영상화 하겠는가? 기왕이면 유명 서양 배우들을 기용해서 만든다면 멋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영화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조성환의 첫 그래픽 노블 <재생력>을 추천한다. 건강보험이 민영화되고 생명공학이 발달하자 도리어 인명 경시가 만연해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프랑켄슈타인 같은 실험의 결과물인 머리와 매리가 살아가는 가치를 본능적으로 갈구해나가는 내용이다. 영화계에서 현역으로 콘티를 작업하는 작가의 필력으로 마치 영화를 보듯 읽을 수 있는 작품인데 결말의 여운이 상당하다. 실제로 영상화가 된다면 작품의 앞뒤로 궁금한 이야기를 보강하여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장르의 부흥이 계속되려면

  리스트를 뽑고자 많은 웹툰을 검토하다 의구심이 생겼다. 한국형 장르물이 자칫 비슷한 공식을 반복함으로서 대중에게 금방 식상해질 우려다. 인기와 유행에 편승한 기획이 반복되면 오히려 K-크리처 장르의 태동은 단기간에 끝나버릴 수도 있다. 요즘은 처음부터 프랜차이즈를 욕망하는 작품들이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PD와 분업화된 스태프들이 모여 만든, 애셋과 모델링이 적재적소에 쓰이고 잘 채색된 수많은 기획 웹툰 속에서 만화 본연의 재미를 찾기란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겉으로 매끈한 천편일률적인 웹툰들 중에 정작 이 만화를 선택하고픈 작품의, 작가의 개성이 보이지 않는다. 영상화와 프랜차이즈는 웹툰/만화가 성공하는 마지막 결과물이 아니다. 먼저 만화로서 완전한 작품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장르의 발전은 곧 작가의 개성, 그 만화만의 정체성에 달려있음을 이제 막 시작된 장르 산업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진이미지

박수민

만화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탐독의 만화경>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