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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지타임> 청소년스포츠 만화의 오늘을 만나다.

<가비지타임>으로 보는 스포츠 만화

2024-08-29 김경훈

<가비지타임> 청소년스포츠 만화의 오늘을 만나다.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2024 파리 올림픽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각자 맡은 종목에서 최선을 다하였고 역대 최소인원 출전에 대한 걱정이 무색하게 준수한 성적으로 올림픽을 마무리 지었다. 필자 역시도 평소 스포츠를 즐겨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시청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필자는 평소에 스포츠 시청 및 관람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물론 만화라면 좀 다르긴 하다.) 

  때문에 올림픽에 몰입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물론 혹자는 얄팍한 민족주의의 발현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나라 선수들뿐만 아니라 시청한 모든 경기의 선수들 대부분을 응원했다. 생각컨데 평소에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는 필자가 올림픽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올림픽이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함축적으로 보는 이에게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선수의 드라마가 아나운서 및 지면을 통해 소개되고, 그 드라마를 따라 자연스럽게 선수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것은 올림픽 정도 규모의 국제대회가 아닌 다음에는 힘들기 때문이다.그렇다면 필자가 여기서 말한 스포츠의 근원적인 부분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필자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은 드라마가 스포츠에 열광할 수 있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최고가 되기 위한 땀과 노력, 승리의 환희, 패배의 슬픔 등 인간이 짧은 생에서 경험하기 힘든 극적 감정가 순간들을 스포츠는 함축적으로 보는 이에게 전달하며 그들을 매료 시킨다. 1등에 대한 찬사도, 패자에 대한 위로도 모두 이러한 매료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앞서 필자가 언급한 스스로의 몰입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기인하였을 것이다.

스포츠만화의 메인스트림은 청소년!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스포츠는 만화에서 매우 빈번하게 다뤄지는 소재이다. 그리고 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 필자는 스포츠 만화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성인이 주인공이며 프로의 세계를 다루는 성인스포츠물과 청소년이 주인공이며 아마추어 대회를 다루는 청소년스포츠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두가지 분류 중에서도 앞도적으로 높은 지지를 차지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이 의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으신 분도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다만 반론 전에 여러분들이 일독 하였을 만화들을 되새겨보자. 얼마전 극장판 개봉을 통해 다시한번 정전의 힘을 보여준 <슬램덩크>부터 최근 히트를 치고 있는 <하이큐>에 이르기까지 스포츠 만화 부분에서 인기를 얻거나 명작으로 평가 받는 대부분 작품들은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스포츠 만화들이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삼는가. 그것은 청소년이야 말로 고민과 성장, 노력과 열정, 승리와 패배에서 오는 환희와 좌절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력을 통해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것, 자신의 삶의 태도를 고치고 스포츠에 진지하게 임하게 되는 것은 개연성적인 측면이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성인의 서사는 아니다. 이러한 서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가 열려있고 그 미래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청소년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 하이큐의 쇼오, 겁쟁이 페달의 다이키 등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주인공들의 대부분은 바로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춘분한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특히 청소년들의 현실 위에 낭만을 잔뜩 부어 만든 서사는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긴 하나 이미 낡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낭만과 열정 만으로 스포츠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언제나 낭만적인가? 이 같은 물음들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이상 청소년스포츠 만화에서 보여주는 모든 서사와 장면들은 그저 고전적인 영웅서사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도 현실을 살아간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비지타임>은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유리된 청소년 스포츠 만화의 서사를 현실의 곁으로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기상호가 속해있는 지상고등학교는 이미 패배가 확정된 이들이 모인 팀이다. 만년 벤치인 주인공 기상호, 피지컬은 있지만 농구경력이 없는 김다은과 공태성. 실력은 준수하지만 조바심 때문에 팀원간 불화를 일으키는 성준수, 타코난 피지컬로 인해 한계에 부딪힌 진재유, 발은 빠르나 어느것 하나 특출난 것이 없는 정희찬. 이렇듯 지상고등학교의 농구부원들은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하나 모자란, 재능과 실력 모두가 애매한 인원들의 집합이다. 그렇기에 작품 초반 주인공팀이 느끼는 매 순간 느끼는 현실은 작품의 제목인 가비지타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 농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엘리트 체육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엘리트 체육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스포츠는 가혹한 현실이다. 초등학교 혹은 그 이전부터 운동에 모든 것을 걸어온 이들에게 스포츠는 단순한 청춘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과정이다. 즉, 어느 순간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은체 계속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준수가 8강에 집착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전국규모 대회에서 8강에 들어가는 것이 대학의 최소 조건인 그에게 매 시합은 칼날위를 걷는 것과 같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비단 농구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체육분야의 특성이기도 하다. 종목이 마이너하면 마이너할수록 기회의 문은 더 좁아지고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진다. 다시 올림픽을 떠올려보자. 국가대표가 되어 국위선양을 한 대부분의 선수들을 우리는 잘 모른다. 국제대회에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때 비로소 이들은 빛을 보게 된다. 이렇듯 여타의 작품이 다루지 않는 불안한 미래와 여기서 비롯되는 초조함을 표현한 점이 바로 기존 스포츠만화와 가비지타임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점이 지금_여기의 독자들이 가비지타임의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애정을 줄 수 있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일부는 여전히 강백호의 명대사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라는 대사를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물론 이 대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주는 대사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리고 작품 속 청춘들의 삶이 과연 그러 한가? 이러한 물음이 바로 기존 청소년스포츠물과 현실의 간극일 것이다.

어른은 필요없다?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가비지타임에서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어른의 역할이다. 몸은 농구선수를 할 만큼 크지만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은 고등학생이다. 이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감에 휘둘린다. 그리고 이로 인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번민한다. 하지만 기존 스포츠만화들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 그저 출중한 재능과 높은 이상을 바탕으로 이러한 고민들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가비지타임에서는 이러한 고민의 해결을 청소년인 주인공들에게만 맡겨 두지 않는다. 청년들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어른의 존재가 있으며 그 인물이 바로 이현성이다.

  초반 이현성의 등장 장면에서 우리는 여타 다른 청소년스포츠물의 클리셰를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 기상호를 만나는 지점에서는 실력을 숨긴 은둔 고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물론 머리털 공격에 이성을 잃기는 하지만) 그리고 짜잔! 감독으로 지상고등학교로 입성한다. 오합지졸의 팀을 맡아 정상에 올려놓는 유능한 젊은 감독 클리셰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가비지타임은 이러한 예상을 보기좋게 비켜간다. 2부 대학 출신으로 노력 끝에 프로가 되었지만 1년만에 방출된 과거를 가진 이현성은 감독으로도 사회인으로도 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그저 조금의 농구경험과 어책임감이 있는 초짜 어른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성이라는 캐릭터는 매우 유니크하다. 보통의 청소년스포츠만화에서 젊은 감독의 스테레오 타입은 유능하거나, 혹은 악역으로 그려진다. 그저 주인공을 빛내주는 조연인 것이다. 하지만 가비지타임의 이현성은 지상고등학교의 일원으로 팀원들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으로 그려진다. 지상고등학교가 승리를 거듭하면서 팀으로 완성되어 갈수록 이현성 역시 함께 성장해 나간다. 작품 초반 어리숙했던 모습의 이현성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 명의 어른으로 지상고등학교 팀원들을 이끌며 이들의 방황과 불안을 포용해준다.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그게 저의 하이라이트 필름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 제 애들은 저처럼은 안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중 윤경택 감독에게 조언을 구하며 그가 한 말은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생각하는 어른임을 보여주는 하일라이트 장면일 것이다.

  어른은 필요없다? 만화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좋은 어른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청소년스포츠물이 간과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현성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비춰지는 어른의 역할은 가비지타임이 기존 스포츠물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비지타임이 대체 언제 시작되는 긴데?”

  가비지타임은 기존의 청소년스포츠물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현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뒤늦게 인기를 얻어 인기순위를 역주행한 저력의 뒤편에는 이러한 작품의 특징이 작용을 했을 것이다. 웹툰을 보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가지고 있을 고민을 가비지타임은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승리를 보면서 대리 경험을 하거나, 가슴이 뜷리는 사이다 전개를 통해 현실의 답답함을 잊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_여기의 현실에 공감해주는 작품을 만났을 때 우리들은 작품에 그리고 작품의 인물들에 더욱 큰 애정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물론 가비지타임이 현실적인 부분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방황하고 좌충우돌하던 지상고등학교 팀원들은 점점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가고 결국 지상고등학교는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매우 왕도적인 서사 전개이지만 이 서사의 사이에 존재했던 인물들의 고민과 성장이 있었기에 그 결말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초반 후반의 밸런스 또한 가비지타임이 가진 매력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 작품 모티프가 된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실제 이야기 역시 이 작품의 결말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현실성을 더욱 높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청소년스포츠 만화이다. 작중 이현성의 대사, “가비지타임이 대체 언제 시작되는 긴데?”라는 질문은 이 만화가 다른 차별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소년스포츠만화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비지타임의 시작? 그건 바로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이 얼마나 스포츠라는 행위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인가. 이는 비단 스포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국면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비지타임을 읽은 독자, 혹은 이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 모두 저 대사를 기억했으면 한다. 가비지타임은 없다는 것을. 가비지타임이 오는 것은 오직 포기하는 그 순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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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