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 ‘각본 있는’ 스포츠 장르의 법칙들
21세기에 접어든 이후로 스포츠를 받아들이는 감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분발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많은 고양감을 얻지만, 한편으로는 스포츠에 대한 열광에 담긴 내셔널리즘이나 탈정치화 등의 부정적인 면모를 경계하는 사람이 속속 생기고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행사에 막대한 비용과 자원이 소모되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스포츠 경기가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 아닐까. 평소에 강하다고 해서 모든 경기에 꼭 승리하리라는 법이 없다. 도리어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약체가 기적의 대역전극을 펼치기도 한다. 설사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맞붙었다면 패자를 위한 격려가 이어지기도 한다. 무수한 경기 끝에 이긴 승자에게 돌아오는 영광은 물론이다.
하지만 ‘스포츠 장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실제 현실에서 펼쳐지는 스포츠는 각본을 짜는 순간 곧 ‘부정행위’가 되어 무수한 비난에 시달리겠지만, 픽션으로 성립하는 스포츠는 창작자가 적절하게 흐름을 설계하며 표현되어야만 팬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이들이 작중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시합의 전개와 결과를 구성함에 있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끝내 이기든, 안타깝게 지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결코 성공한 스포츠 만화라고 부르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다른 장르들이 그러하듯, 스포츠 장르에서도 독자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오랜 시간 축적된 여러 법칙들이 존재한다. 동시에 그 법칙을 따르면서도 색다른 감각을 주기 위한 시도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어지고 있다.
‘일반인’이든 ‘실력자’든, 스포츠를 통해서 한 걸음 성장한다
스포츠 장르의 만화에는 수많은 경향들이 있지만 크게 두 갈래로 나누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의 소질이 평범한 수준이거나 없다시피 한 주인공이 어떤 계기를 통해 스포츠에 빠져들거나, 작품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스포츠에 뛰어난 소질을 가진 주인공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과 맞먹거나 뛰어난 수준의 강호들과 맞서거나. 전자의 작품이 일반적인 독자가 주인공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면서 보기 쉽다면 후자에 속하는 작품들은 마치 ‘먼치킨물’처럼 무수한 상대들을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상대하는 모습에 열광하며 보기 쉽다.
하지만 어떤 전개로 흘러도 공통되는 법칙이 있다. ‘일반인’에 가까운 주인공이든, ‘실력자’에 가까운 주인공이든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작중의 수많은 경기들과 만남, 사건 등을 거치며 성장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근래의 독자들이 점차 ‘초반부에 약한 주인공’보다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맞설 상대가 없어 보이는 ‘힘세고 강한 주인공’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면만 강조해서는 좀처럼 작중의 서사가 형성되기 쉽지 않다.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 없이 밋밋하고 평탄한 전개가 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강한 실력을 가진 주인공이라도 결국 어떤 순간에는 자기보다 훨씬 강한 등장인물과 부딪치고, 이를 넘어서는 과정이 그려져야 카타르시스를 독자에게 선사하기 좋다.
△ 정재훈의 권투(복싱) 만화 <더 복서>는 격투 장르 스포츠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력자’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동종의 만화와는 결이 다른 서사적 전개를 통해 독특한 감각을 만들 수 있었다.
특히 격투기를 다루는 만화일수록 후자의 경향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스포츠는 학교나 일상에서 ‘생활체육’으로 만나기 쉬운, 다시 말해서 스포츠 만화를 읽는 독자 다수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기 쉬운 구성이라면은 격투기는 다른 스포츠의 유형과는 또 이입되는 경로가 다르다. 격투는 직접적으로 몸과 몸이 맞붙는다는 점에서 다른 스포츠와는 상당히 느낌이 달라질 수밖엔 없다. 이학의 <격기 3반>이나 작년에 연재 35주년을 맞이한 모리카와 조지의 <더 파이팅> 같이 약한 주인공이 성장하는 감각을 주려는 격투기 만화도 적지 않지만,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주인공이 치열하게 맞붙는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 다른 스포츠 장르에 비해서 많은 것은 이러한 차이가 클 것이다. 마치 어느덧 연재 30년을 훌쩍 넘긴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바키> 시리즈나 약 10년 가까이 연재한 박용제의 <갓 오브 하이스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강자의 성장담을 그리는 것에는 피로감을 느끼는 독자도 적지 않다. 이미 강한 주인공이 벽에 부딪치는 전개를 그리려면 더욱 실력이 강한 상대방을 붙이기 쉽게 되고, 대결을 거치며 강해진 주인공이 다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전개를 만들기 위해서 더욱 더 강해진 상대방을 붙이게 되는 전개가 계속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주인공이 패배하는 등의 충걱적인 전개를 넣기도 하지만, 연재가 점차 길어질수록 점차 독자들이 원하는 자극의 수치도 늘어난다. 강자의 성장을 그린다는 연출이 역설적으로 더욱 깊은 매너리즘의 늪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함정에서 벗어나는 작품도 존재한다. 정재훈의 권투(복싱) 소재 만화 <더 복서>는 먼치킨에 해당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단순히 ‘더욱 더 강한 상대방’이 아니라 ‘맞붙는 인물 그 자체’, 그리고 주인공과 인물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면서 독특한 감각을 줄 수 있었다. 마치 권투 만화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치바 테츠야의 <내일의 죠>가 주인공이 맞붙는 상대방에 대한 묘사를 상세하게 그리며 매 싸움을 그렸던 것처럼, <더 복서>는 이미 강한 주인공이라도 단순히 강한 적과 만나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싸움 속에서 형성하는 관계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음을 세밀하게 짚어 나갔다.
실력을 떠나, 스포츠의 유형을 떠나, 스포츠로 ‘관계’가 형성된다
한편으로 이러한 ‘관계’는 특정 스포츠 만화만이 지니는 요소는 아니다. 작품마다 표현의 방법이나 강도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거의 모든 스포츠 만화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완결이 될 때까지 스포츠를 통해서 주인공이 만나는 다양한 존재들과의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실력이 강한지 약한지, 주인공의 성격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도 상관이 없다. 스포츠의 유형이 팀을 짜서 이루는 집단 스포츠인지, 개인 단위로 형성되는 것인지도 무관하다. 심지어는 바둑 같이 더더욱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이른바 ‘마인드 스포츠’여도 동일하다. 스포츠를 다루는 만화는 어떤 의미로는 ‘스포츠를 통해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는’ 만화로 봐도 무방한 것이다.
대신 작품마다 이 관계를 형성하고 드러내는 방법이 차이 날 따름이다, 흔히 보이는 관계의 유형은 ‘대립’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가 그랬고, 다시 그 전후에 등장한 다수의 스포츠 만화가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인물들 사이의 라이벌 의식이나 대항심은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갈래의 서사나 또 다른 관계성을 형성하기에 매우 용이한 구도이기 때문이다. 대립이 이뤄지려면 대립하는 인물들 사이가 끈끈하게 이어질 요소들도 필요하다. 이 요소는 평범한 인물과 천재적 인물, 열혈스럽고 저돌적인 캐릭터와 침착하고 냉정한 캐릭터 등처럼 서로 상반되는 특성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다수다. 하지만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배구 만화 <하이큐!!>가 그랬던 것처럼, 메인 주인공 모두 비슷한 성품으로 설정되어 대립이 이뤄지는 경우도 종종 보이곤 한다.
△ 스포츠 만화에서 드러나는 무수한 관계 구도 중 ‘애정’은 상대적으로 희소한 유형이다. 하지만 최근 인기를 얻는 미우라 코지의 만화 <푸른 상자>처럼, 이러한 포인트를 강조한 작품은 꾸준하게 등장하고 있다.
대립 이외에 자주 보이는 관계의 구도는 ‘동경’이지 않을까. 평범했던 주인공이, 스포츠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스포츠에 빠지게 되는 계기를 주기 좋고, 작품 전반에 있어서는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형성하기 좋은 관계의 유형이다. 극의 전개와 함께 주인공은 점차 성장하고, 그러면서 주인공이 동경하던 존재에 점차 가까워진다. 때로는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동경했던 대상과 맞붙는 구도를 설정하기도 좋다. 한편 ‘동경’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 ‘우정’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야구나 축구, 농구처럼 팀 단위로 전개되는 것이 필수적인 스포츠에서는 사실상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관계의 구도이다.
‘우정’만큼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애정’의 관계도 이따금씩 보이는 스포츠 만화 속 관계의 유형이다. 비록 근래의 스포츠 만화가 동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의도인지 아닌지, 우정인지 애정인지 쉽게 가를 수 없는 ‘브로맨스’나 ‘우먼스’의 관계가 두드러지지만 애정이 직접적으로 강조되는 작품은 여전히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마치 <터치>나 <H2> 같은 아다치 미츠루의 스포츠 만화 다수나 <슬램덩크>가 그랬던 것처럼, 최근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모두 인기를 얻고 있는 미우라 코지의 농구 및 배드민턴 소재의 만화 <푸른 상자>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비록 애정을 직접적으로 강조한 작품 상당수가 이성애에 한정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최근 BL이나 GL이 빠른 속도로 분화되는 만큼, 언젠가는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스포츠와 BL/GL이 결합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시합이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모두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스포츠 만화 역시도 그렇다. 연재가 갑자기 중단되지 않는 이상, 시작과 전개는 모두 제각기 달라도 결말을 맞이해서는 주인공들이 몰두했던 일련의 시합들도 결국 종지부를 맞이해야만 한다. 물론 각각의 스포츠 만화가 진행되는 방향이 다른 만큼, 종지부를 찍는 방식도 저마다 달라진다. 결말로 나아가는 방향을 나눈다면 크게 두 개의 타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종 시합에서 끝내 이기거나, 안타깝게 지거나. 심지어 안타깝게 지게 되는 결말로 마무리를 짓는 작품들은, 결승전이나 챔피언 결정전 같이 정상을 겨루기 위한 시합에 미처 오르지도 못하고 지게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시합의 승패에 상관없이, 마무리를 위한 시합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강하게 공을 들이는 장면이 되기 마련이다. 작품 초반부에서 가졌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시합이든, 끝내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몰린 상태의 시합이든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둬야 하는 중대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실력과 상황에 상관없이 아득바득 안간힘을 쓰며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느긋하고 냉정해 보였던 캐릭터도 격정적으로 변하기도 쉽게 된다. 작품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마지막 시합의 뒤는 더 이상 없는 만큼 창작자와 캐릭터의 모든 공력이 이 시합 하나에 집중된다.
△ 이현세의 야구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지금은 자주 보이지 않지만 1980년대 유난히 한국 스포츠 만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스포츠에 모든 것을 걸고 불태우는 유형의 흐름을 격정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시합’의 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치열했던 클라이맥스의 순간 이후로도 작품 속 캐릭터들에게는 이후의 삶이 있고, 작품 역시도 에필로그를 거쳐 마침표를 찍어야지만 진정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최종 시합에서 승패의 여부가 상관없었던 것처럼, 이후의 에필로그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하던 순간과 비교해보면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든 달라져 있다. 나약하고 내향적이었던 주인공은 조금은 활기찬 모습으로 달라져 있고, 자신의 강한 실력만을 믿으며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던 주인공도 결말부에 도달한 순간엔 자신의 뒤편에는 소중한 동료들이나 맘에 드는 라이벌이 서있다. 설사 <내일의 죠>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모든 것을 새하얗게 불태운’ 결말이 되더라도, 이 또한 변화라면 분명 변화이다.
작품이 어떤 식의 결말도 종지부를 찍을지라도, 대다수 작품은 에필로그를 통해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이 어떠한 삶을 향해 나아갈지 넌지시 암시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깊게 발을 들인 스포츠의 세계에 계속 몸을 담는 길을 향해 나아가기도, 다른 누군가는 스포츠의 경험을 일종의 추억으로 간직한 채 또 다른 길을 향하여 전진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스포츠에 모든 걸 불사르고 재가 된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어떤 식의 결말이든, 작중에 등장인물들이 스포츠를 통해 쌓은 관계를 통해 도달한 모습이며, 동시에 이 작품을 그린 작가가 독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선사하고 싶었던 하나의 상이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또는 결말 그 자체에 대한 호불호나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의 전개나 마무리든, 얼핏 거기서 거기 같은 스포츠 만화에 때로는 비슷하고, 때로는 또 독특한 유형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본다면 생각지 못한 흥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