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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계의 한(恨)을 풀어 헤친 손상익 만화평론가 1호

만화가가 문화인으로 인정받는 시대, 만화를 당당하게 보고 있어도 어른들에게 혼나지 않는 시대를 만들고 싶었다.

2024-09-09 김정영

만화계의 한()을 풀어 헤친 손상익 만화평론가 1

만화가가 문화인으로 인정받는 시대, 만화를 당당하게 보고 있어도 어른들에게 혼나지 않는 시대를 만들고 싶었다.

  대한민보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18841933)의 시사만화(時事漫畫)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현대만화는 115년이 지났다. 지옥 같은 일제 강점기의 고통을 벗어나 꿈과 같은 광복을 맞이했으나 이데올로기(Ideologie)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한국동란을 겪어야 했다. 시대를 거슬러보면 일제 강점기 만화는 주로 시사만화로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했고 날카로운 풍자로 시대의 아픔을 대변했다. 그리고 한국동란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황폐화 시켰지만 만화는 아이들에게 오락과 위안을 주었고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만화가 본격적으로 성인들의 오락 문화로 자리 잡은 시기는 아이러니(irony)하게도 분단 이후 이어진 독재정권 시기였다. 이현세와 박봉성이라는 걸출한 출판만화가의 출현은 만화방 문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시대가 암울하고 답답할수록 대중들은 영웅을 기대한다.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고 나를 이끌어 줄 리더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이현세작() 공포의 외인구단까치와 박봉성작() 신의 아들최강타가 만화 속 영웅이었다. 현실을 이겨내는 까치최강를 통해서 독자들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고 삶의 새로운 도전을 꿈꾸었다. 하지만 현실 속 만화는 값싼 싸구려 하위문화로 인식되어 언론의 비판과 정치적 탄압물이 되어버렸다. 소재는 제약(制約)되었고 아이들에게는 멀리해야 할 문화가 되었다.

  그동안 긍정적인 문화적 영향력과 성인들의 해방구(解放區) 역할을 하던 만화가 제대로 된 평가 한번 못 받고 왜곡되어가는 현실은 한 기자의 열정을 이끌어 냈다. 때마침 1991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 부문이 신설되었고 손상익의 평론이 당선되면서 손상익은 국내 공인 1호 만화평론가가 됐다. 마치 만화 속 영웅 캐릭터처럼 만화계에 올바른 글과 비판을 할 수 있는 만화 평론가가 등장한 것이다. 문화가 제대로 된 사회적 평가를 받고 진화하려면 평론이 함께 있어야 한다. 작품이 감성이라면 평론은 이성이다. 작가가 본인의 작품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다. 작가들은 자기애가 강하여 자칫 편협적이고 독선적인 시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때 올바른 길을 찾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이 평론이다. 문화는 다양성이고 다양성은 존중과 균형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다양성이 배제된 문화는 결국 순혈주의에 빠져 쇠락(衰落)의 길을 걷게 된다. 현대 문화는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평론의 역할이 필요하고 평론가가 있어야 한다. 미술은 미술 평론가가 있고 영화는 영화 평론가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만화 평론과 평론가는 없었다. 이때 손상익이 만화 평론가로 등단하면서 올바른 만화평론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손상익 원장이 만화 문화계에 끼친 다양한 업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한국만화통사(이하 통사’) 편찬과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설립이다. 한국만화통사(프레스빌, 1996)1992년부터 시작하여 5년 동안의 작업의 결과물로 대중문화로서 만화를 통시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만화적 상상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고대 벽화로 출발하여 조선시대 대중들의 이미지라 할 수 있는 민화에 나타난 만화적 기법들, 그리고 우리나라 초기 만화 형태와 최초의 만화, 일본과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만화에 끼친 영향 등이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정리되어 있다. ‘통사에 실린 자료의 분량도 엄청나다. 관련 그림 자료만 해도 6백여 컷을 넘는다. 책을 집필하는 시간보다 구상하고 자료를 모으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정도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다. 이후 1998한국만화통사(시공사, 1998) ()권이 나오며 통사는 장장 7년에 걸친 산고를 겪고 완성되었다. 그동안 활동해 온 기자로서의 근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7년 동안 통사를 저술하며 손상익은 질곡의 등성이를 몇 구비를 넘어야 했다. 평생 직업으로 여겼던 기자 생활도 통사를 위해 접어야 했고,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로 생사의 넘나들기도 했다. 당연히 경제적 어려움도 감내하기 버거웠을 것이다.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통사’ ()권에 만화라는 이름의 화두라는 권두언(卷頭言)을 보면 손상익이 왜 그토록 애정을 가지고 통사를 집필했는지 그 이유를 확인 할 수 있다.

좌 : 한국만화통사(1996)
우 : 웹툰만화콘텐츠 세미나(손상익 원장 마지막 공식 활동 2022)

  “우리나라 만화는 90여 년의 장구(長久)한 역사를 가진 이 땅의 대표적인 대중문화 영역 가운데 하나다. 그간 우리 만화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사실은 많은 만화인들의 가슴에 아린 상처로 남아있다. 만화가 우리 문화사(文化史)를 살찌웠던 부분은 사실상 지대했다. 그러나 이 노력들은 일부 편향된 지식인에 의해 무참히 폄하됐을 뿐 아니라 만화작가는 이 시대의 한 그늘진 구석자리를 지키는 한낱 환쟁이로 비하되었다. 이런 오도된 사실(史實)은 이제 새로운 시작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한국만화통사가 얼마만한 성과로 우리 만화계와 문화계에 자리 매김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독자 한사람만이라도 우리 만화와 만화문화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필자가 지난 7년여의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다는 보람이 될 것이다.

-한국만화통사() 권두언 중에서...”

  당시 손상익은 만화에 대한 폄하(貶下)되고 오도된 시각을 바로 잡고 싶었고, 만화가들의 아린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만화의 격을 높이고 싶었고 대중문화로서의 가치와 올바른 만화문화를 알리고 싶었다. 이를 공감하는 많은 만화가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고행석, 이현세, 허영만 등 당시 스타 만화가들은 정기적으로 통사지원을 위해 후원금을 보태었다. 그리고 익명의 만화인들은 통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통사가 한국 만화계에서 갖는 의미가 얼마나 각별했는지, 19961010일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한국만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통사의 출판을 축하해 주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국만화가협회 권영섭 회장은 이름도 빛도 없이 사라져 간 작가와 그림들을 되살려 기쁘다.” “이렇게 완벽한 만화사는 일찍이 없었다.”며 손상익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이후 통사는 만화관련 산업계는 물론 대중 문화 평론, ·박사 만화 관련 논문의 귀중한 참고 도서로 활용되면서 만화가 지금의 문화적 위상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학문적 기초를 제공했다.

  손상익의 두 번째 업적은 한국만화통사 편찬위원회를 모태로 한 <한국만화문화연구원>의 설립이다. ‘만화문화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대에 우리나라 만화문화연구를 위해 매년 연구원들을 선발하고 연구하도록 했다. 만화 문화계에서 활동할 인재를 양성한 것이다. 연구원들은 나이와 연령, 성별에 상관없이 만화에 애정을 가지고 학문적인 연구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연구원의 성과는 당시로서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만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중 하나가 본격적인 만화 비평지를 표방한 코코리뷰의 발간이다. 코코리 뷰의 발간 이유도 한국만화통사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 만화는 90여 년의 장구(長久)한 역사를 가진 이 땅의 대표적인 대중문화 영역 가운데 하나다. 그간 우리 만화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사실은 많은 만화인들의 가슴에 아린 상처로 남아있다. 만화가 우리 문화사(文化史)를 살찌웠던 부분은 사실상 지대했다. 그러나 이 노력들은 일부 편향된 지식인에 의해 무참히 폄하됐을 뿐 아니라 만화작가는 이 시대의 한 그늘진 구석자리를 지키는 한낱 환쟁이로 비하되었다. 이런 오도된 사실(史實)은 이제 새로운 시작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한국만화통사가 얼마만한 성과로 우리 만화계와 문화계에 자리 매김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독자 한사람만이라도 우리 만화와 만화문화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필자가 지난 7년여의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다는 보람이 될 것이다.

-한국만화통사() 권두언 중에서...”

코코리뷰 1999 시즌호로 발행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후 연구원에서는 한국 만화의 20세기 초의 만화가들부터 신인 작가에 이르기까지 1천여 명의 한국 만화인에 대한 자료를 수록한 만화인명사전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작가의 프로필과 대표작을 소개하였고, 수록된 작가 중 한국 만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만화인들에 대해서는 그 위상도 함께 적었다. 이어서 만화가이드 2002등 관련서도 발행했다. 또한 각종 만화 관련 연구 및 전시 용역 사업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수년에 걸쳐서 70여 명의 연구생들이 배출 되었는데, 이들은 초창기 웹툰 문화 산업계를 이끄는 인재들로 성장하였고 지금도 우리나라 웹툰 문화 콘텐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024년 현재 만화웹툰산업계는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웹툰을 기반으로 성장한 네이버엔터테이먼트는 4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글로벌 경제 중심지 나스닥에 상장이 되었다. 카카오 계열사인 픽코마는 만화 강국인 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며 한국 웹툰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있다. 전국에 만화 콘텐츠 관련학과는 62개를 넘어서고 있고 관련 고등학교도 26개교에 이른다. 매년 3,500여명의 학생들이 만화 웹툰 산업계로 쏟아져 나온다. 만화 관련 지원 정책은 정부는 물론 지역단체에서도 앞다투어 만들어 내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만화에 대한 편견이나 저급한 대중문화로 보는 시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제 만화는 당당히 대중문화의 하나이자 미래 우리나라 대표 문화상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과거 손상익이 한국만화통사<한국만화문화연구원>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만화가가 문화인으로 인정받는 시대, 만화를 당당하게 보고 있어도 어른들에게 혼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정말 어려운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손상익은 자신이 그토록 바꾸고 싶고 꿈꿔 왔던 만화세상이 완성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810일 손상익은 끝내 지병을 견디지 못하고 만화계의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영면(永眠)에 들어갔다. “내가 할 역할은 다했으니 이제 쉬고 싶다.”는 듯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만화계는 기억할 것이다. 그가 있어 지금의 만화가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고, 그가 있어 우리의 후배들이 만화가라는 직업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서늘한 가을녁 유난히 책을 좋아하고 만화를 사랑했던 손상익 원장님의 선한 눈빛에 파란 하늘빛이 가득하다.

웹툰만화콘텐츠  세미나 후 한국만화문화연구원들과 기념 촬영 (2022)

 만화평론가 1’ 손상익의 삶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사회학과), 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방송학과)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 대학 졸업 후 동아그룹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경인일보문화일보에서 10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1991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신설된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국내 공인 1호 만화평론가가 됐다. 한국만화문화연구원을 설립 만화평론 학습 조직을 운영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각종 만화 관련 연구 및 전시 용역 사업 등을 진행했다. 2010년 이후로는 인천 문화계에서 주로 활동했다화승총동호회인천황해문화행동대 등을 결성해 신미양요 때 강화도 일대에서 벌어진 광성보 전투(1871)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기획 제작했다당시 용병 역할을 했던 범포수들이 사용한 화승총을 실물로 복원하고 정부의 허가를 받아 사격 대회를 여는가 하면 일본 화승총보존회와 국제교류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만화평론가, 소설가, 문화활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2022년 암이 발병되었다. 이후 공식적으로 연성대학교 웹툰만화콘텐츠 세미나를 마지막으로 2년 여에 걸친 암투병 중 만화계와 한국만화문화연구원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영면에 들어갔다.

 

- 저서 및 활동

1983 인하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987 경인일보 기자
1991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 평론 당선
1991 문화일보 기자
1992 <만화세상이 오고 있다>(한국문화사, 1992),평론집
1995 <한국만화통사편찬위원회>
1996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원장>
1996 <만화로 여는 세상>(고려원, 1996)
1996 <아톰의 철학>(개마고원, 1996) 
1996 <한국만화통사()>
1997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1998 <한국만화통사()>
1998 <코코리 뉴스레터 발간>
1999 <망가 vs 만화>(초록배매직스, 1999) 
2000  ()코믹플러스 대표
2002 <만화인명사전>
2002 <만화가이드2002>
2004 ()한국만화문화연구원
2005 한국만화사 산책(살림)
2005 신문방송학 박사(중앙대학교 대학원)
2014 <총의 울음>(박이정, 2014), 소설
2017 <타이거헌터>(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뮤지컬, 2017) 

필진이미지

김정영

연성대학교 웹툰만화콘텐츠과 교수
문화기획자, 컨템퍼러리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