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좀처럼 고구마밭을 떠날 수 없다
웹툰에서 고구마는 익숙한 키워드다. 웹툰을 선택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 중요한 요소는 바로 ‘고구마’의 유무다. 목이 막힐 것 같이 느리고 답답한 전개, 혹은 결정적인 선택이 지연되는 상황을 흔히 고구마라고 한다. ‘고구마’는 웹툰을 고르는데 결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한다. 웹툰을 서사체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장르에 따라서 웹툰의 분량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 50여 개의 회차가 넘어가는 작품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는 웹툰의 특성상 메인 서사의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회차마다 독자의 흥미를 끄는 사건이 존재해야만 한다. 재미가 없다면 ‘긴’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고구마’ 구간이 긴 작품을 꺼린다. 번뜩이는 반전이 즉각적으로 반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구마’ 작품들은 창작되고 소비된다. 심지어 ‘고구마’를 일부러 찾기도 한다. 도대체 왜 우리는 고구마밭을 배회하게 되는가. 왜 여전히 누군가의 ‘띵작’이 되는가.
고구마? 고구마!
호박고구마, 꿀고구마, 밤고구마. 여러 종류의 고구마가 있듯이, 웹툰에서의 고구마도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웹툰에서 대표적인 고구마는 세 가지의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주인공의 성격으로 구성된 고구마다. 로맨스 장르나 판타지 장르에서 캐릭터들의 성격이 고구마를 만든다. 그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을 위해 결정의 순간에서 빠르게 자신의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디게 인지하거나, 다르게 표상하면서 고구마 구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피폐물’이라고 표상되는 세부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쉽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선택을 빠르게 하지 못하는 데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작가가 이야기 속 사건들을 느슨하거나 복잡하게 표현하면서 발생하는 고구마가 있다. 100화가 넘어가는 웹툰의 경우 서사가 길어지면서 작품 초반에 깔아둔 복선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사건들은 맥거핀으로 작동하며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면서 ‘서사’ 자체가 고구마가 되기도 한다. 보통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독자가 견디지 못해서 생기는 고구마도 있다.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 묘사에 치중하는 구간을 견디지 못해서 발생하는 고구마다. 모든 고구마 중에 가장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야기에서 필요한 부분으로서 등장하는 과거의 사건이 전개되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 혹은 지나치게 비슷한 장면이 반복될 때 독자들은 ‘본래의 이야기’가 진행되기를 요구한다. 주인공과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장면이 고구마 구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실 고구마를 나누는 방식도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여러 가지의 고구마가 있지만 결국, 고구마 구간을 ‘견디는’ 사람들은 오히려 서사의 카타르시스를 취하게 된다. 권선징악이라는 통쾌한 순간을 바라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주인공이 마음껏 사랑받기를 바란다. 자신의 소망이 충족되는 순간을 고대하고 함께 참아내는 것이다. 답답함을 견디면서 오히려 웹툰의 인물과 사건, 상황에 몰입하여 작품에서 제기하는 질문 선택을 고민할 수 있다. 덕분에 작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의 사랑을 염원하기에
사랑은 여러 모양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각자 자신만의 사랑을 꿈꾼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바라는 사랑이 통할 경우, 비로소 그들은 서로의 짝이 된다. 과정이 원만하다면 좋겠지만, 실은 쉽지 않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렵다. 지난한 과정이다. 사랑이 그렇게 쉽다면 ‘로맨스’라는 장르는 지금처럼 힘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타이밍과 방식이 어긋나는 모습을 옆에서 보자면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사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구마일지도 모른다.
△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네이버웹툰, 글/그림 EDDiERiNG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는 끝까지 개운하지 않다. 영 찜찜하다. 서로의 목을 겨누는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에 상대를 파괴하며, 사랑하기에 상처입힌다. 증오하지만 결국에는 용서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는 가득하다. 고구마 포인트는 ‘그럼에도 왜 서로를 놓치 못하는가’다. 그들의 ‘혐관’을 좇다 보면 어느새인가 우리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된다. 여러 모양의 사랑을 생각하다 보면 우빈과 수지의 선택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든다. 과연 우빈과 수지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 <날 닮은 아이>, 네이버웹툰, 글/원작 플아다, 그림 팻녹
현대 로맨스물의 사랑에서 가장 큰 복병은 늘 오해에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을 때의 배신감은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날 닮은 아이>는 어쩌면 클리셰로 가득한 작품일 수 있다. 재벌, 기억 상실, 미혼모. 키워드만 나열하자면 진부해 보인다. 낯설지 않은 설정 자체가 고구마다. 나를, 그리고 아이를 지키는 것이 전부가 된 정오와, 기억을 잃은 후에도 정오에게 이끌리는 지헌을 둘러싼 상황과 사건들은 도무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후에도 여전히 사랑했던 대상에게 운명처럼 다시 이끌리는 모습은 답답한 ‘고구마’ 구간을 넘길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사랑과 가족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날 닮은 아이>는 매력적인 이야기다. 뛰어난 작화를 지켜보는 재미까지도.
어떤 마무리가 좋을까?
모든 이야기는 결국 시작해서 끝난다. 하지만 ‘잘’ 끝맺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서사의 요소들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고 몰입감이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건이 커지거나 지속되면서 인물의 성격이 바뀌기도 하고 설정 또한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독작들은 이로인해 늘어지거나 느슨해진 이야기를 반기지 않는다. 물론 ‘매주 연재’라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긴장-해소’하는 사건들로 배치하며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마’를 견디는 것은 결국 독자들이 작가를 믿기 때문이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 <이두나!>, 네이버웹툰, 글/그림 민송아
어쩌면 사랑 이야기일수도 혹은 성장물일 수도 있다. <이두나!>는 조금 다른 형태의 고구마다. 결말로 인해서 초중반의 모든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남기기 때문이다. 주인공 두나와 원준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다. 두나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입장도 처지도 너무나도 달랐던 그들의 연애는 평탄치 않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결국 끝난다. 사실 모든 로맨스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물론 그래야만 할 당위성도 없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인가는 다른 문제다. 두나와 원준의 관계에 집중하던 이야기는 갑자기 결말에 이르며 원준의 현실적 연애로 급선회한다. 미련과 후회 및 복합적인 이유로 곁에 있던 인연이 연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새로운 연애에 더 많은 서사가 부여되었다면 모두가 성장형 사랑 이야기라고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만으로도 <이두나!>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네이버웹툰, 글/그림 삼
로맨스 판타지 장르라고 하지만 이만큼 복잡한 작품이 또 있을까. 수도없는 사건들이 연일 터진다. 주인공인 메데이아와 프시케는 이아로스로 인해 연적이 된다. 모든 것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결정하는 메데이아와 모든 것을 품어주려는 프시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일견 완벽해보이는 왕세자 이아로스는 잔혹한 인물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내버릴 수 있다. 모종의 이유로 메데이아와 프시케는 몸이 바뀌며 이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서로를 살리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이아로스를 막으려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실패한다. 하지만 문제는 과정이다. 입체적이었던 캐릭터가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거나 복잡한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배치하면서 본래의 이야기가 길을 잃은 상태다. 하지만 결말은 여전히 궁금하다. 지금껏 작품을 이끌어왔던 삼 작가의 역량이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끝까지 서로를 믿고 나아갈 수 있을까. <하네되>가 기대되는 이유다.
고구마라 부르기에 고구마
모든 이야기는 ‘하나’만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건이 벌어지는 작품에서는 더더군나나 그렇다. 메인이 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서브 플롯은 탄탄하게 이야기를 받쳐주어야 한다. 게다가 세계관까지 새로이 설정하였다면 그 부분까지 설명해야만 한다. 당연히 이야기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웹툰 속 세계를 설명하면서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을 동시에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탄탄한 이야기를 구축하기 위한 빌드업은 상황에 따라 고구마가 되기도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이뤄지기에 사건의 결말은 유예되기에 빠르게 통쾌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곱씹을수록 재미있어지는 것도 동일한 이유 때문이다.
△ <물 위의 우리>, 네이버웹툰, 글 뱁새, 그림 왈패
<물 위의 우리>는 사실 고구마 작품이라고 말하기에 조금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전개 방식으로 인해 독자들에 따라서 고구마로 불리기도 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귀여운 캐릭터 한별이가 극의 긴장감을 풀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메인 스토리는 매우 잔혹하다. 세상의 위기에도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하며 금기시되던 영역까지 손을 대면서 세상은 물에 잠긴다. 이후 생존이 문제였다. 거주지 간의 생활의 차이가 커지면서 살아남는 것이 전부가 된다. 문제는 지역에 따라 그들의 선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와, 각 지역의 이야기가 병존하면서 작품을 쉽게 넘길 수 없다. 곳곳에 깔린 복선을 해석해야만 하며, 그들의 선택의 이유를 생각해보아야만 에피소드를 마무리할 수 있다. 여러 지역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를 혼재하면서도 여전히 본래의 서사를 무사히 잘 끌어내고 있다. 2부 또한 느리지만 방향을 잃지 않는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 <화산귀환>, 네이버웹툰, 글/그림 LICO, 원작 비가
이미 웹소설로도 엄청난 성공을 이룬 <화산귀환>은 웹툰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매화검존 청명은 천마를 쓰러뜨리지만 결국 죽고 만다. 그러나 백 년 후 아이의 몸으로 다시 살아 남게 된다. 청명은 자신의 문파인 화산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다시 세우고자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길고, 길고, 또 길다. 망한 문파를 천하제일의 문파로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일견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는 원작의 유쾌한 대화와 묘사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웹툰 또한 원작과 궤를 함께 한다. 탄탄한 이야기에 작화까지 뛰어나다. 인물들의 이미지를 잘 살려냈으며 원작의 말장난과 개그코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글로는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액션씬 또한 화려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원작의 재미를 배가한다. 하지만, 원작 자체가 워낙 전개가 느리다보니 웹툰으로 편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도가 느리다. 과연 얼마만큼의 각색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청명이 결국 어떻게 화산을 살릴지, 이번에는 얼마나 황당한 사건을 벌일지 계속 보고 싶은 작품이다.
고구마도 이야기의 요소다
사실 고구마를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성향일 수 있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한다. 이점을 고려한다면 좋은 이야기란 결국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삶의 태도 혹은 상황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마다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하는 과정마다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느리지만 결국에는 끝에 이를 것을 알기에 우리는 고구마 구간을 견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