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AI와 손잡다
(1) AI 웹툰, 현실과 가능성
Prologue
지금 하루가 다르게 생성되고 있는 것 중 단연코 가장 많이 생성하고 있는 주체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인공지능이다. 불과 몇 년 사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부터 시작된 사회의 변화는 우리의 일상을 엄청난 속도로 바꾸고 있다. 우리는 AI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 문화, 산업 등 사회 전반에 걸쳐 AI는 조용하지만, 급격하게 우리 삶을 재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창조란 무엇인가?’, ‘권리는 누구에게 부여되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AI 시대 우리는 창조자인가?
AI 웹툰, 현실과 가능성
인공지능(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웹툰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도구의 도입을 넘어, 웹툰이 제작되고 소비되는 방식 전체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웹툰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가 필요했고, 이야기 구조에 능한 스토리 작가가 스토리보드를 짜야 했으며, 이를 기획하고 연출하며 전체 흐름을 조율하는 편집자의 존재 또한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역할들은 각각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긴밀하게 분업 되어 왔고, 그 협업의 결과로 한 회차의 웹툰이 완성되는 것이 일반적인 제작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이러한 창작의 주요 공정들이 점차 AI라는 주체 안에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은 AI가 생성하고, 대사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며, 대본은 프롬프트 하나로 제안된다.
AI는 작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구성하며, 필요한 연출을 알고리즘 규칙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처리해 낸다. 이에 따라 창작의 노동 구조는 바뀌고 있으며, 작가의 역할도 기술을 운용하는 설계자 혹은 기획자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지 한 명의 작가를 돕는 도구의 등장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제작 방식과 유통 구조, 나아가 창작의 주체성과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웹툰이라는 장르 자체가 변화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제 웹툰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명령어를 통해 설계되는 그림’으로, 서사는 ‘삶을 반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패턴에 기반한 확률적 생성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창작물’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조합한 시뮬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가?
이처럼 웹툰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AI 기술은 기존의 창작 프로세스 전반을 재구성하고 있다.
현재 많은 창작자와 플랫폼은 AI를 활용해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대사 자동 생성, 대본 구성, 채색, 플랫폼별 포맷 편집에 이르기까지 웹툰 제작 전반의 프로세스를 보조하고 있다. 이처럼 제작의 거의 모든 단계에 걸쳐 AI 기술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웹툰 제작이 단순히 ‘손으로 그리는 일’이 아니라 ‘AI와의 협업을 통해 설계되는 과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아이디어 발상 단계에서부터 실질적인 이미지 구현까지, 과거에는 다수의 작가나 어시스턴트가 협업하던 과정이 1인 또는 소규모 단위에서도 가능해지고 있다. 즉, AI는 웹툰 제작 단계를 수직 통합이 가능한 구조로 바꾸어놓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단순한 시간 단축이나 비용 절감을 넘어, 콘텐츠 생산 속도와 규모 자체를 재설계하게끔 한다. 기존에는 한 회차를 제작하는 데 수일에서 수 주가 걸렸지만, 이제는 AI를 통해 단 하루, 심지어 몇 시간 만에 완성하는 사례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의 회전율을 높이고, 연재 주기를 단축하며, 수익 창출의 시점을 앞당기는 구조적 장점을 제공한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처럼 신속한 공급 시스템이 독자 유지와 유료 결제 전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작가에게는 반복적 제작 노동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설계와 연출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나아가 AI는 오류 감지나 레이아웃 분석 같은 기술적 보조뿐 아니라, 캐릭터 감정선의 유사도 판단, 특정 장면의 정서적 연출 추천 등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신인 작가에게 유리한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에는 전문적인 드로잉 훈련이나 만화 제작 도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웹툰 제작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반면, 이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작화를 AI가 대신 구현해 줌으로써 진입 장벽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키워드 몇 개만 입력해도 등장인물의 외형, 배경, 분위기 등을 조합할 수 있고, 서사 구조 또한 언어 생성 모델이 제공하는 초안이나 플롯을 통해 빠르게 시각화할 수 있다. 특히 미드저니(Midjourney)1), 레오나르도 AI(Leonardo AI)2)와 같은 시각 모델과 ChatGPT 계열의 언어 모델을 결합해 스토리와 이미지를 통합 설계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으며, 이는 ‘비전문 작가’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촉진제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기술은 새로운 창작 실험의 장을 여는 동시에, 기존 작가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과 불안을 안긴다. 자동화된 도구가 반복적인 채색, 배경 묘사, 프레임 디자인을 대신하면서 작가는 기존 역할에서 벗어나 기획 중심으로 전환하거나, AI가 생산한 결과물에 자신의 미적 감각과 개성을 덧입히는 ‘감독’ 혹은 ‘편집자’의 역할로 확장하게 된다. 즉,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작가는 창작자라기보다 오히려 기술 운용자에 가까운 역할로 밀려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창작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기 위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AI가 그려낸 그림이 예상보다 정교할수록 작가의 존재 이유는 더욱 철학적인 차원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개인 차원의 기술 적응을 넘어, 산업 전체의 직무 구조 재편으로도 이어진다. 앞으로의 작가는 ‘그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설계하는 사람’으로 정의될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교육과 훈련, 평가 기준 역시 바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AI가 생성한 원화를 교정하고 윤색할 수 있는 능력, 프롬프트를 효율적으로 설계해 스토리보드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데이터 기반 연출을 해석할 수 있는 감각 등이 요구될 것이다. 다시 말해, AI는 ‘웹툰을 만드는 방식’뿐 아니라 ‘창작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그 변화가 일방적 수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서는 기술이 전통적인 가치와 충돌할 때마다 윤리적·미학적 정당성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기술이 창작 영역에 깊숙이 침투할수록, 사람들은 ‘창작의 진정성’에 더 민감해졌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조합해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지만, 그 안에 창작자의 내면세계나 감정의 흔적이 없다는 인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웹툰은 작가의 세계관, 감성, 시선이 축적된 서사의 결과물이다. 컷의 길이나 대사의 배치 같은 요소들도 작가의 감정과 리듬이 담긴 결과다.
AI가 이 모든 것을 ‘모사’하거나 ‘재현’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그것을 창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또 그 창작물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단지 수사적 질문이 아니라, 저작권·산업 구조·법적 기준에 관련된 핵심 쟁점이다. AI는 작가의 드로잉 스타일, 색감, 구도, 서사 구조 등을 학습해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이는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조합’일 뿐, 본질적으로는 기존 요소의 재배열이다. 특히 동의 없이 원작 데이터를 학습하였을 때 윤리적 문제가 불거진다. 창작의 본질을 창의성에 둔다면 사람의 감정과 경험이 개입되지 않은 AI 산물은 창작으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독자에게 신선함과 몰입을 제공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현행법은 ‘인간이 창작한 것’을 저작물로 보지만, AI와의 협업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 판단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AI가 제안한 대본을 사람이 일부 수정한 경우, 그 기여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산업계와 법조계 모두 이 기준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AI 기반 창작물이 독자에게 감동과 재미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창작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AI 웹툰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일부 독자들은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기술이 사람의 창작물과 유사한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우리가 AI를 창작의 조력자로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하게 한다.
결국 창작의 본질이 작가의 내면과 상상력에 있다고 믿는 이들은 불안을 느끼고,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들은 창작의 확장 가능성을 본다. AI와 예술의 관계는 ‘가능 여부’가 아니라 ‘창작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달려 있다.

『사이버펑크: 피치 존』 (출처: Anime Senpai)
2023년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사이버펑크 : 피치 존(Cyberpunk: Peach John)』의 논란은 이 지점을 잘 보여준다. 작가 루트포트(Rootport, 필명)는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 미드저니를 활용해 이 만화를 제작했다. 줄거리와 세계관을 직접 구성하고 시나리오도 창작했지만, 모든 시각적 이미지는 AI를 통해 제작했다. 그는 블로그와 여러 외신(CNN 등) 인터뷰에서 자신을 스토리를 구상하고 AI를 통해 시각화하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기획자라고 정의하며, AI는 상상력을 구현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just a tool)’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작업을 줄임으로써 정보 조사, 스토리 개발 등 창의적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고 강조하며, AI는 인간 창작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창작 가능성을 확장하는 도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 대 AI라는 구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AI는 ‘숙련된 어시스턴트(skilled assistants)’가 부족한 상황에서 작가들의 반복적인 수작업 과정을 줄이고, 창작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이 아닌 ‘훌륭한 동반자(great companion)’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다만, 이미지 생성 과정에서는 손 표현의 왜곡, 캐릭터 일관성 부족, 장면 간 전환의 부자연스러움 등 여러 기술적 한계가 드러났다. 그는 이를 창작 실험의 일부이자 진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작품 공개 직후, 작화 스타일이 일본 인기 만화 『도쿄 구울(Tokyo Ghoul)』의 그림체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확산하였다. 이에 원작자 측은 AI가 작품을 무단 학습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콘텐츠가 게재된 플랫폼은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해당 작품을 삭제 조치했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
같은 해 5월, 네이버웹툰 신작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3)은 AI 기술을 실제 상용 제작 공정에 적용했다. 이 작품은 일부 회차의 배경과 채색 작업에 AI 기반의 자동 보정 기능을 활용함으로써, 작업 속도 향상과 일정한 화풍 유지의 기술적 가능성을 실험했다. 특히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공정에 AI 기술을 접목해 작가가 더 창의적인 스토리 구성과 세계관 설계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연재 직후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 작화의 흐림, 손 묘사의 어색함, 마감 선의 비일관성 등이 지적되며, 해당 장면들이 AI 보정을 거친 결과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논란이 커지자, AI 기술 사용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후에는 AI 보정 없이 순수 창작 방식으로 연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글 지대공마법소년·그림 전천후마검사·원작 사람살려, 네이버웹툰)
이 사건들은 기술의 도입이 단순히 효율성을 위한 도구의 차원을 넘어서, 콘텐츠에 대한 신뢰성과 진정성을 해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플랫폼과 사용자 간, 창작자와 독자 간의 보이지 않는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컸다. 단지 기술을 썼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이 어디까지 개입했고, 그 사실을 독자와 얼마나 투명하게 공유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다.
네이버웹툰의 「도전 만화」4) 코너에는 ‘인공지능(AI) 웹툰 보이콧’이라는 제목의 만화들이 연이어 업로드되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며칠 사이에 60여 편의 관련 만화가 올라왔고, 일부는 「도전 만화」 인기 순위 상단에 오르며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이는 웹툰 작가와 독자들이 AI 웹툰의 저작권 침해와 창작의 진정성 훼손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며 자발적으로 단체 행동에 나선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작가는 만화 형식을 통해 AI의 학습 방식이 기존 작가들의 창작물을 침해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풍자했고, 일부 독자는 댓글과 공유를 통해 보이콧 운동에 동참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 작가들이 체감하고 있는 위기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AI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이후 그해 6월, 노컷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주요 플랫폼은 자사 웹툰 공모전 규정에 AI 활용 출품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는 웹툰 산업 전반에 강한 메시지로 작용했다. AI 기술의 발전 자체를 부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공모전과 같은 공식 창작의 장에서는 창작자의 고유성과 진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창작자 보호와 공정성 확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AI 기술을 창작 과정에서 어디까지 수용할지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이 일련의 흐름은 단순히 AI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산업 구조 안에서 ‘창작이란 무엇인가?’, ‘창작의 주체는 누구이며, 권리는 누구에게 부여되어야 하는가?’, ‘기술은 어디까지 창작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실제 법과 제도의 구조, 산업 윤리, 플랫폼 운영 기준 등 현실적인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AI 기술은 이미 창작 현장에 들어와 있으며, 앞으로 더 정교하고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단순한 찬반의 태도가 아니라, 이 기술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감수성과 제도적 상상력이다.
독자의 반응도 양극화하고 있다.
일부 독자들은 AI 기반 웹툰의 정교한 작화, 빠른 전개 속도, 새로운 연출 실험에 대해 긍정적인 호기심을 보인다. 특히 SF, 판타지, 공포물 등 시각적 실험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르에서는 AI의 작화 능력이 하나의 경쟁력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물리 법칙을 넘나들며 복잡한 배경을 요구하는 장면, 고정된 화풍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의 혼합을 시도하는 실험적 시각 표현은 작가에겐 시간과 자원의 한계가 있지만, AI는 상대적으로 빠르고 유연한 구현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일부 독자는 AI 웹툰이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장르적 상상력을 더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적인 감정선이나 서사적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사나 전개가 기계적이다’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가 부자연스럽거나, 갈등의 전개가 얕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AI가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률적으로 적절한 반응을 생성하더라도, 그 안에 작가 특유의 내면적 고뇌, 미묘한 감정의 결, 맥락에 따른 정서적 뉘앙스를 정확히 담아내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 작가는 한 장면을 구성하기 위해 인물의 과거 경험, 배경 맥락, 독자의 예상 반응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지만, AI 웹툰에는 이러한 복합성에 대한 해석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독자의 반응은 단순히 ‘좋다’ 혹은 ‘나쁘다’의 문제를 넘어 창작에서 감정과 기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창작자에게 던진다. 감정의 뉘앙스나 심리 묘사, 인물 간의 복잡한 관계 구조 등은 여전히 AI보다는 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서사와 감정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의 고유한 창의성과 감수성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결국 AI 웹툰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작가가 부여하는 ‘깊이’와 ‘감동’의 요소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같은 의견은 AI 기술의 언어적·정서적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며, 기술만으로는 창작의 감동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번 대선에서 제기된 ‘전 국민 AI 무료 활용’5) 공약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이 공약은 AI 기술을 소수의 기업이나 특정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로 두지 않고, 일반 국민 누구나 손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 자원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AI 접근성 확대 차원을 넘어서, 창작과 표현의 기회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다면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 다시 말해 ‘기술 민주주의’의 실현, , 즉 ‘창작의 민주화’는 지금의 창작 구조 자체를 뒤바꿀 수 있다. 이 공약이 실제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예산, 인프라, 데이터 윤리, 저작권 체계 등 다양한 문제들이 제도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의가 본격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동안 창작은 자본, 재능, 시간, 네트워크 등 다양한 자원을 가진 소수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AI라는 도구가 보편적 기술로 자리 잡고 공공재로 확장된다면, 창작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동의 실천이 될 수 있다. 이는 창작의 보편화이며, 콘텐츠 생산 분산화의 가능성을 여는 지점이 된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AI의 보편화는 콘텐츠의 질적 저하, 과잉 생산,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생성형 AI를 통해 웹툰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또 창작자 보호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저작권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플랫폼은 유통의 기준과 책임을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며, 독자는 창작물의 진위를 판단할 역량을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가? 이 모든 문제는 기술이나 산업 차원을 넘어, 사회적 합의와 교육, 문화적 기반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AI는 창작자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강력한 파트너로 작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적 철학과 운용 방식에 달려 있다. AI를 단지 도구로만 한정 짓기보다는 새로운 협력자 혹은 어시스턴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창작 방식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기술은 더 이상 창작의 외곽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의 AI는 스토리텔링의 문장 하나, 캐릭터의 표정 하나, 장면 전환의 연출 방식 하나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창작의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창작자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일부는 AI를 위협으로 보고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도구로 수용하며 창작의 확장판으로 삼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과연 AI는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창의성을 가속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직면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등장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우리 고유의 문화적 활동이 기술과 어떻게 조우하고, 그 만남이 어떤 새로운 서사와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집단적 시도다. 이 연재가 그러한 실험을 고찰하고 질문을 던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창작이란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람다움에 대한 탐구다. 그리고 AI는 그 질문을 더욱 깊고 복잡하게 비추는 거울이자, 함께 탐구할 수 있는 협력자일 것이다.
앞으로 연재될 이 칼럼 시리즈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AI 웹툰의 실질적인 가능성과 한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저작권과 윤리 문제, 창작자의 정체성과 기술의 역할, 독자의 감정과 경험의 변화, 플랫폼의 책임과 정책적 대응, 시장의 수용성과 확산 조건, 그리고 창작 교육과 창작자 양성에 이르기까지, 작가와 AI가 협력하는 창작 생태계의 바람직한 방향을 다른 시각에서 탐색하고자 한다.
연재를 통해 우리는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고자 한다. 각 회차에서는 실제 사례와 현장의 목소리, 제도적 흐름과 기술적 조건을 엮어가며, 지금 창작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해부하고 분석할 것이다. 동시에, 이 변화가 창작자의 정체성과 노동 구조, 독자와의 관계,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어떤 긴장을 만들어내는지를 들여다볼 것이다.
1) 인공지능 연구소이자 해당 연구소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이름.
2) NUI 스튜디오에서 만든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플랫폼.
3) 동명의 웹소설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을 원작으로 한 한국의 현대 판타지 웹툰. 각색은 지대공마법소년(필명), 작화는 전천후마검사(필명)가 담당해 연재 중.
4) 네이버웹툰에서 실력 있는 아마추어들을 발굴하려는 목적으로 운영하는 아마추어 만화 게시판.
5) 21대 대통령선거 이재명 후보 공약으로 정확한 명칭은 '누구나 사용가능한 '모두의 AI' 프로젝트 추진'
[참고문헌]
Oscar Holland, Natsumi Sugiura and Emiko Jozuka. (2023.3.9.). This is Japan’s first AI-generated manga comic. But is it art?. CNN.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japan-first-ai-generated-manga-art-intl-hnk/index.html
Tomohiro OSAKI, (2023.8.18.). Machine magic or art menace? Japan's first AI manga. AFP.
https://www.afpbb.com/articles/-/3456201?pno=6&pid=25445546
Ryan General. (2023.3.8.). Manga author with ‘zero’ drawing talent to launch Japan’s first fully AI-drawn manga. NextShark. https://nextshark.com/manga-author-with-zero-drawing-talent-to-launch-japans-first-fully-ai-drawn-manga?utm_source=chatgpt.com
임수근. (2023.3.10.). 日, 인공지능(AI)으로 그린 첫 만화책 출간...'창작성·예술성' 논란. YTN.
https://www.ytn.co.kr/_ln/0104_202303101710594080?utm_source=chatgpt.com
Rootport. (2023.9.8.). Now is the TIME to make mangas with AIs. Hatena Blog.
https://rootport.hateblo.jp/entry/2023/09/08/141446?utm_source=chatgpt.com#google_vignette
Jonathan Clements.(2023.3.24.). Manga: Cyberpunk Peach John. All the anime.
https://blog.alltheanime.com/manga-cyberpunk-peach-john/
김민수. (2023.6.1.). AI 웹툰 논란에 네이버·카카오 “인간 작품만 받는다”.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5952678?utm_source=chatgpt.com
전남혁. (2023.6.5.). 손가락이 6개, AI가 그린 웹툰 안돼… 포털에 반대의 글 봇물.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605/119619926/1?utm_source=chatgpt.com
민주당, (2025), 제21대 대통령선거 이재명 선거공약서. 정책·공약 마당.
https://policy.nec.go.kr/plc/commiment/UELPromisePopup.do?menuName=%EC%A0%9C21%EB%8C%80+%EB%8C%80%ED%86%B5%EB%A0%B9%EC%84%A0%EA%B1%B0&ocrCnvrSeqNo=11230
나무위키. (2025). https://namu.wiki/
위키백과. (2025). https://ko.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