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BL은 어디로 가는가? : 검열 이후, 이름을 바꾸고 국경을 넘는 장르

“중국 BL 하시는 분”의 탄생
“아 그 중국 BL 하시는 분?” 한동안 나는 학계나 다른 전공의 교수님들에게 저렇게 소개되거나 인식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21~2022년 당시 중국 BL에 관해 연구하는 연구자는 없거나 매우 적었기에 학계에 BL 장르나 문법 자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전통적인 문학 연구자들에게 BL의 세계는 그야말로 고자극 콘텐츠였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섹슈얼리티나 유저데모그래픽 측면 모두에서 비당사자인 사람이 BL에 관해 일련의 연구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주변의 의혹(?) 어린 흥미도 끌었던 것이다. 동료·선배 학자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얘기가 “그런 거 하셔도 괜찮으세요?” 아니면 “재미있는 거 하시네요.”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Cisgender Heterosexual) 남성 (당시) 30대 연구자는 어쩌다가 BL의 세계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필자의 주력 분야가 콘텐츠 산업이기에 BL 장르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21년 정도였던 것 같다. 어느 날 퇴근하던 길 지하철 통로에서 금발의 소년과 청년이 누가 봐도 그윽하고 로맨틱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웹툰 포스터를 발견했다.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을까? 누가 봐도 BL인데 우리나라에서 BL 포스터가 저렇게 대중교통, 공공장소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이게 된다고?’ 내심 놀라웠지만, 피곤했던 나는 이런 생각을 잠시 뒤로하고 집에 가서 치킨을 뜯으며 격무로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OTT를 틀었다. 원래 좋아하는 무협이나 선협을 중국 콘텐츠 연구라는 핑계로 자주 보던 나에게 그때 새로운 콘텐츠가 눈에 띄었다. 바로 <진정령>과 <산하령>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멋진 액션 연출보다는 유난히 두 남주의 촉촉한 투 샷이 많았다. 이건 또 뭐지?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아마도 이때부터 BL이라는 콘텐츠가 양지화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네이버’를 들어가면 BL 콘텐츠 광고가 갑자기 팝업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필자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RIDI 같은 유명 전자책 플랫폼에서도 BL은 가장 앞쪽에 배치된 키워드였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아차렸지? 연구 먹거리가 고팠던 필자는 점점 더 관심을 가지고 국내, 일본, 중국 BL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탄력받기 시작한 돈 되는 산업의 냄새였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노래를 꽤나 좋아하는 필자는 가끔 혼자 코인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안예은 가수의 <홍연>을 부르려고 입력한 순간 당시 국내에서 대히트였던 BL 웹툰 <야화첩>이 MV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때의 도파민이라니…. 나는 노래를 부를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그 상황을 사진으로 찍고 바로 다음 학술대회 발표에 반영했다. “동네 사람들!! 여러분!! 지금 온 세상이 BL입니다!!” 그렇게 “중국 BL 하시는 분”이 탄생했다.
![레진코믹스 <야화첩> 레진코믹스의 웹툰 <야화첩> [저자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3811242_KOBOG3V8.png)
그때 보았던 BL 트렌드
한창 학회나 학술지에 BL 관련 논문을 발표할 즈음에 한국에서는 속속 ‘서브컬처의 주류화(메인스트림화)’라는 키워드로 여러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리포트나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해외에서도 BL 관련 포럼이 많아졌다. BL을 위시한 서브컬처의 경제적·문화적 임팩트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하겠다.
그렇게 2022년 한창 BL을 파고들면서 텍스트, 장르, 산업과 한중일 및 동남아시아, 글로벌 IP 시장의 트렌드를 살펴보고 있자니, 몇 가지가 필자 나름대로 정리되었다.
1) BL의 부흥 혹은 양지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고 최소한 트랜스-동아시아적 혹은 트랜스-내셔널적 현상이라는 점,
2) BL은 여성향 콘텐츠에서 정말 굉장한 파이를 차지하는 대형 시장이라는 점,
3) BL이 다양한 장르나 가치사슬과 결합하며 BL×@ 혹은 @×BL의 시너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4) 한중일 3국의 BL은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이른바 기존의 ‘정통’ BL 문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장르문법을 써가며 대중화하고 있다는 점,
5) 그리고 필자의 주 전공 지역인 중국의 BL은 특유의 정치·사회·문화 지형으로 인해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는 점 등이다.
이상의 관점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4~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BL, 특히 중국과 동아시아 BL을 둘러싼 여러 환경은 더욱 흥미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숫자로 보는 중국의 BL 트렌드
2022년의 필자가 BL의 양지화를 보고 “지금 온 세상이 BL입니다!!”라고 외쳤다면, 2026년의 필자는 그 말을 조금 고쳐야 할 것 같다. 지금의 BL은 단순히 온 세상에 퍼진 것이 아니라, 원작·투자·촬영·심의·유통이 초국경적으로 엮이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 최근의 흐름을 다섯 가지 포인트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전에 먼저 시장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숫자부터 확인해보자. 매출 자료만으로 중국 BL 산업 규모를 산정하기는 어렵다. 중국 최대 여성향 웹소설 플랫폼인 진강문학성(晋江文学城 2026년 7월 11~14일 수집, ID 중복 제거 후)의 2003~2026년 연도별 생산 작품 누적수는 385만 6,274편이다. BL의 중국식 명칭인 순애(纯爱)는 2024년 발표작 7만 4,725편에서 2025년 발표작 10만 952편으로 35.10% 늘었고, 증가분의 98.44%가 오리지널(原创) IP이다.1)
1) 순애는 진강에서 어디까지 왔는가
이 수치가 흥미로운 까닭은 단지 전년보다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3년 발표 작품 가운데 순애는 300편, 남-녀 커플링 장르인 언정(言情)은 2,415편이었다. 순애 한 편에 언정이 여덟 편꼴이었다. 2015년에는 순애 3만 3,549편과 언정 6만 5,189편으로 격차가 두 배 이내로 좁혀졌고, 2025년에는 각각 10만 952편과 11만 4,005편으로 거의 나란히 섰다. 순애 비중도 2003년 7.90%에서 2020년 35.14%까지 높아졌다. 2021년 13만 85편, 35.88%를 기록한 뒤 2022년 28.12%로 급락했지만 2025년에는 다시 33.91%까지 올라왔다. 2025년 작품 수가 아직 2021년의 고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순애가 진강의 주변 장르에서 언정과 플랫폼을 양분하는 중심축으로 이동했다는 장기 추세는 분명하다.
2) 순애는 더 이상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순애라는 성향 표지가 반드시 로맨스 서사를 전제하는 것도 아니다. 2025년 순애 작품 10만 952편 가운데 ‘애정(爱情)’ 장르로 분류된 작품은 5만 8,955편이고, 나머지 4만 1,997편은 극정(剧情)·선협·라이트노벨·판타지·미스터리 등 다른 장르와 결합했다. 극정이 1만 716편, 선협이 6,916편, 라이트노벨이 5,214편, 판타지가 4,534편이었다. 현대물이 아닌 작품도 3만 5,075편에 이른다. 2024년에서 2025년 사이에는 애정 장르 순애가 49.83%, 비애정 순애도 18.71% 늘었다. 애정물이 더 빠르게 증가해 그 비중은 높아졌지만, 다른 장르와 결합한 순애의 작품 수도 함께 커진 것이다. 이처럼 중국 BL에서 남성 간 관계성은 하나의 고정된 장르라기보다 선협·서스펜스·SF·ACGN 서사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모듈’에 가깝다.
3) No CP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변화
순애의 성장과 함께 보아야 할 범주는 No CP(无CP)2)다. 최신 분류표에서 No CP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2014년 발표 작품은 5,345편이었지만, 2022년에는 3만 6,240편으로 늘었다. 비중은 2023년 11.10%로 가장 높았고, 2025년에는 2만 4,714편, 8.30%로 내려왔다. 따라서 No CP를 지금도 계속 팽창하는 범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진강의 독립된 독서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내용도 달라졌다. 2025년 No CP 가운데 애정 장르는 449편, 1.82%에 불과한 반면 극정과 라이트노벨은 합쳐서 1만 458편, 42.32%를 차지한다. No CP는 사랑이나 친밀성을 모두 지운 장르라기보다, 연애 상대를 작품의 첫 번째 설명으로 내세우지 않는 방식이다. 독자가 관계의 유형뿐 아니라 주인공·세계관·사건의 성격으로 작품을 고르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4) 순애라는 장르명 밖에도 BL은 있다
분류의 경계도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 2025년 5월 자료에서 순애로 분류됐던 작품 가운데, 동일한 제목과 작가로 연결되면서 2026년 7월판에서는 다른 성향으로 옮겨간 사례가 82편 확인됐다. 현재 분류는 No cp 25편, 다원(多元) 21편, 언정 20편 등이었다. 반대로 2025년 비순애 작품의 제목을 살펴보면 ‘탐미(耽美)’·‘쌍남주(双男主)’·‘남남(男男)’·‘BL’을 직접 내세운 작품도 73편 발견된다. <탐미문 속 여조연은 수라장을 거부한다(耽美文女配拒绝修罗场)>나 <탐미문에 들어가 엑스트라로 CP를 덕질하다(穿到耽美文里当炮灰磕CP)>처럼, BL 소설의 독자·조연·방해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메타픽션이 적지 않다. 물론 이를 모두 ‘숨은 BL 작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BL이 순애 선반 안에만 머무는 장르가 아니라, 다른 성향의 작품에서도 독자가 곧바로 알아보는 세계관과 이야기 문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3)
![중국 웹소설 플랫폼 진강문학성 진강문학성 [플랫폼 메인화면 갈무리]](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4022402_HOTBGU3U.png)
지금의 동아시아 BL판, 무엇을 봐야 하나?
1) 중국 BL과 검열회피 2.0
중국 BL을 둘러싼 가장 흔한 설명은 ‘검열로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2021년 이후 탐개극(耽改剧)이 사실상 멈추었고, 2024년에는 하이탕문화성(海棠文化城)에 작품을 올린 중국 본토 작가들이 구금·기소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Ge, 2026).4) 해외 서버라면 안전하다는 믿음도 흔들렸다. 이를 ‘기발한 생존법’으로만 낭만화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중국 BL이 끝났다면 글로벌 플랫폼 상위권에 랭크되는 중국어 작품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GagaOOLala의 2025년 순위에서 <Revenged Love(逆愛)>는 1위, <Desire(垂涎)>는 2위였다(TAICCA, 2026; ContentAsia, 2026).5) 비록 한 플랫폼의 결과지만 국제 팬덤의 존재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국적이다. <Meet You at the Blossom>은 플랫폼에 따라 ‘중국대륙’ 또는 ‘태국’버전으로, 중국 소설 원작 <Revenged Love>는 Viki에서 ‘대만’ 카테고리로 표시된다.6) 필자는 검열 회피를 엑소더스·모듈화·카모플라주로 설명한 바 있다. (류호현, 2022).7) 이제 모듈화는 원작·투자·촬영·판권·유통을 여러 지역에 나누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중국 BL은 국적을 분산하고 플랫폼을 갈아타며 돌아오고 있다. 이것이 ‘검열 회피 2.0’이다.
2) ‘서브 중의 서브’였던 오메가버스, 드디어 실사 드라마화
두 번째 변화는 더 노골적이고, 그래서 더 재미있다. 2025년 《Desire》는 오메가버스를 실사화한 중국어 BL 시리즈다. GagaOOLala는 이를 ‘세계 최초’라고 홍보했다.8) 플랫폼의 주장이라는 단서는 필요하지만, 웹소설·만화·팬픽의 설정이 16부작 실사 드라마의 몸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오메가버스는 제2성별로 생식과 권력의 규칙을 다시 짜는 세계관이다. 필자가 SF×BL 연구에서 주목했던 것도 인간·가족·젠더의 기본값을 바꾸는 힘이었다(이가현·류호현, 2022).9) 다만 알파=지배, 오메가=보호와 임신이라는 새 운명론을 세울 수도 있다. 그 모순 때문에 실사화는 구경거리 이상의 실험이 될 수 있다.
3) 일본 BL, 현실과 연결되면서 시즌 롱런까지
2025년 GagaOOLala의 글로벌 BL 톱10 중 일본 작품은 여섯 편이었다(ContentAsia, 2026).10) 한 플랫폼의 결과지만 국제 OTT의 안정적인 상품군이 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필자는 그 특징을 ‘현실에 대한 침투’로 설명했다(류호현·이가현, 2022).11) 이제 《25시, 아카사카에서》처럼 시즌2가 제작되며 해외 판매를 계산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4) 한국 BL, 웹소설과 웹툰을 가장 빠르게 영상으로 바꾸는 공장
한국 BL은 검증된 웹툰·웹소설 IP를 빠르게 영상으로 응축하는 데 강하다. 2025년 GagaOOLala 한국어 작품 상위 5편 중 세 편이 BL 웹툰 원작이었다(TAICCA, 2026).12) 그러나 짧은 러닝타임은 감정의 도약을 낳는다. 다음 승부처는 ‘더 짧고 더 예쁜 BL’보다 장르적 사건과 시즌제의 시간을 결합하는 데 있다. 단순히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넣는 기술보다 오래 사랑할 이유를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5) 이제 BL의 국적보다 ‘네트워크’와 ‘중계지’를 볼 때
앞의 변화들을 묶으면 이제 동아시아 BL을 중국형·일본형·한국형으로만 나누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중국에서 태어난 원작이 대만이나 홍콩의 제작·판권 구조를 거치고, 태국의 제작 경험과 팬 비즈니스를 참고하며, 일본에서 판매되고, GagaOOLala·Viki·iQIYI 국제판의 다국어 자막으로 유통된다. 한 작품의 여권이 여러 장인 셈이다.
지도를 거칠게 그리면 중국은 원작과 팬덤의 저장소, 대만·홍콩은 중국어권의 중계지, 태국은 제작과 배우 CP 팬 경제의 허브, 일본은 안정적 제작과 국제 판매, 한국은 웹소설과 웹툰 IP의 영상화에 강하다. 글로벌 OTT는 이 기능들을 접속한다. ‘트랜스-동아시아 BL’은 여러 나라가 한 작품의 공정을 나누어 맡는 제작방식이 되고 있다. 원작·제작·유통의 나라가 달라도 하나의 팬덤을 만드는 국적의 얽힘이 지금의 콘텐츠 문법이다.
![<Meet You at the Blossom> <Meet You at the Blossom> [imdb.com 화면 갈무리]](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4107879_YWK95VC8.png)
앞으로 BL은 어디로 갈까?
BL이 계속 커질 것이라는 말만으로는 별로 재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커지느냐다. 앞으로 BL은 한쪽에서는 방송사와 OTT가 투자하기 쉬운 부드러운 로맨스·유명 웹툰 원작·시즌제로 대중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메가버스·남성 임신·호러·SF처럼 강한 장르문법을 지닌 작품으로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중화와 고자극화가 함께 진행되는 셈이다.
BL×@의 결합도 더 과감해질 것이다. 오메가버스가 실사화 되었으니 게임·버추얼 아이돌·세로형 숏폼까지 관계문법이 들어갈 수 있다. GagaOOLala도 2026년 ‘Verticals’를 내놓았다(Portico Media, 2026).13) 다만 그것이 젠더와 가족의 규칙을 흔드는 지, 이름만 바꾼 신데렐라 이야기인지는 함께 살펴볼 일이다.
작품의 국적도 원작·투자·촬영·심의·플랫폼으로 갈라서 보아야 한다. 한국은 웹툰 영상화에 장르적 사건과 충분한 플레이타임을 붙이는 일이, 일본은 일상적 로맨스를 프랜차이즈로 만드는 일이 다음 단계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대만과 홍콩은 중국어권의 중계지 역할을 이어가면서도 독자적 기여를 더해갈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국적인’ BL이 오히려 중국 작품으로 표시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작가와 기업이 중국 BL에서 참고할 것은 검열 회피 같은 특수성도 중요하겠지만, 선협·SF·오메가버스처럼 관계성과 강한 세계관을 결합하고 원작을 웹툰·영상·팬 비즈니스로 옮기기 쉬운 구조를 설계하는 법이다. 짧은 영상 한 편보다 번역·각색·시즌제·해외 플랫폼의 태그와 등급까지 묶은 이동 경로를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BL이 퀴어 재현의 진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퀴어 당사자는 BL을 혐오하기도 하니까. 오히려 BL이 낡은 권력관계를 되세우거나 배우의 실제 관계까지 상품화할 수도 있다. 검열회피 역시 창작기법인 동시에 누군가가 안전과 생계를 걸어야 하는 조건이다. BL의 성장을 곧바로 젠더 관념의 ‘해방’과 연결한다면 자칫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BL을 주목할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BL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를 넘어, 콘텐츠의 국적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플랫폼은 어떤 욕망을 보이게 하고 지우는가, 작은 장르가 어떻게 국경을 건너 산업의 공정을 다시 배치하는가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2021년 지하철의 웹툰 포스터와 코인노래방의 <야화첩> MV 앞에서 필자는 돈 되는 산업의 냄새를 맡았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냄새는 난다. 다만 이번에는 돈만의 냄새가 아니다. 국경이 움직이는 냄새다.
[각주/출처]
1) 류호현 수집, 「진강문학성 연도별 분류 데이터」, 2003~2026년 24개 연도×3개 공개 경로, 2026. 7. 11.~14. 수집·병합(원자료 3,911,466행, 작품 ID 중복 제거 후 3,856,274건).
2) No CP(No Coupling 또는 None Coupling)는 특정 인물 간 연애·커플링을 작품의 중심 서사로 설정하지 않는 작품을 가리키는 중국 웹소설 플랫폼의 성향 분류다. 이는 사랑이나 친밀성의 완전한 부재를 뜻하지는 않으며, 고정된 연애 상대가 작품의 전제 혹은 중심축이 아님을 뜻한다.
3) 류호현 수집, 「진강문학성 2025년 5월판·2026년 7월판 성향 표지 및 제목 표지 대조 데이터」, 2025. 5. 8.·2026. 7. 11. 수집.
4) Liang Ge, “The Haitang Incident 2024 and the Ugliness of Danmei Culture/Industry,”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vol. 29, no. 2, 2026, pp. 454–464, https://doi.org/10.1177/13675494251326775.
5) TAICCA Issue, 「亞洲BL崛起,從平臺2025年觀影榜看各地BL觀影與製作趨勢」, 2026. 3. 31., https://taiccaissue.taicca.tw/article/research-17b (2026. 8. 18. 접속); ContentAsia, “Japan Rules GagaOOLala’s 2025 BL Rankings,” ContentAsia eNewsletter, 9–22 March 2026, p. 4, https://www.contentasia.tv/eNewsletter/2026/ContentAsia_eNewsletter_9_March_2026.pdf (2026. 8. 18. 접속).
6) iQIYI International, “Meet You at the Blossom,”
https://www.iq.com/album/meet-you-at-the-blossom-2024-1689d4pr2sl?lang=en_us; WeTV, “Meet You At The Blossom (Thai Ver.),” https://wetv.vip/en/album/vtuw83i78hsgxiz; Rakuten Viki, “Revenged Love,” https://www.viki.com/tv/41152c-revenged-love?locale=en (모두 2026. 8. 18. 접속).
7) 류호현, 「글로벌 서브컬처 트렌드로서의 BL과 중국 BL―중국 BL/탐미/순애 연구에 관한 시론」, 『중국문화연구』 제57집, 중국문화연구학회, 2022, 63–85쪽, https://doi.org/10.18212/cccs.2022..57.004.
8) GagaOOLala, “Desire,” https://www.gagaoolala.com/en/videos/5570/desire-2025 (2026. 8. 18. 접속).
9) 이가현·류호현, 「동아시아 SF×BL 서사의 트랜스-휴머니즘적 상상력과 젠더·섹슈얼리티 실험」, 『중국소설논총』 제67집, 한국중국소설학회, 2022, 495–517쪽, https://doi.org/10.17004/jrcn.2022..67.021.
10) ContentAsia, “Japan Rules GagaOOLala’s 2025 BL Rankings,” ContentAsia eNewsletter, 9–22 March 2026, p. 4, https://www.contentasia.tv/eNewsletter/2026/ContentAsia_eNewsletter_9_March_2026.pdf (2026. 8. 18. 접속).
11) 류호현·이가현, 「트랜스 동아시아 BL 대중화 경향 연구―한·중·일 3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일어일문학』 제94집, 대한일어일문학회, 2022, 149–168쪽, https://doi.org/10.18631/jalali.2022..94.008.
12) TAICCA Issue, 「亞洲BL崛起,從平臺2025年觀影榜看各地BL觀影與製作趨勢」, 2026. 3. 31., https://taiccaissue.taicca.tw/article/research-17b (2026. 8. 18. 접속).
13) Portico Media, “GagaOOLala Enters the Vertical Era with Two New Viewing Functions, ‘Verticals’ and ‘Discover’,” 2026. 5. 14., https://www.porticomediacenter.com/press-releases/en/20260514/01 (2026. 8. 18.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