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와 숏폼 시대의 웹툰, 이질적인 리듬 사이에서
A는 근래 대형 콘텐츠 플랫폼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스릴러 장르 웹툰 작가다. 이에 해당 작품의 드라마화가 결정되어 A는 첫 기획회의에 참석한다.
이윽고 기획회의가 시작되고 십 분쯤 지났을 때 A는 자신이 처음 듣는 생경한 언어와 낯선 분위기 속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먼저 영상화를 위해 기존 웹툰의 서사를 3막 구조로 다시 짜야 하고, 1회 시작 후 15분 안에 주인공과 메인 플롯이 전개되어야 하기에 원작의 전개를 대폭 수정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어 캐릭터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며, 인물들이 너무 만화적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여기서 편집점이 안 잡힌다, 이 시퀀스는 통째로 들어내고 훅을 앞으로 당기자. 누군가는 드라마 서사의 리듬을 언급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프리 비즈를 비롯한 촬영 이야기를 한다.
A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이어가려면 그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알아야 했는데, A에겐 다소 생소한 어휘가 섞여 있었다. 회의실에서 오가는 '컷'이라는 말조차 A가 쓰던 컷과는 종종 쓰임이 달랐다. A에게 컷은 종이 위에 멈춰 있는 사각형이지만, 여기서 컷은 화면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는 순간도 뜻했다. 같은 소리를 내는 한 단어가 정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A도 나름 자신의 영역에서는 할 말이 있었다. 이 칸에서 다음 칸으로 넘어갈 때 독자가 자연스레 시선을 이동하도록 씬 구성을 설계했다든지, 마지막 컷에 하이라이트를 주기 위해 일부러 인물선의 톤을 흐리게 하고 작화에 신경 썼다든지 말이다. 그렇지만 그 말을 하려면 ‘홈통’이니 ‘스크롤 여백’이니 하는 단어를 설명부터 해야 했고, 그건 이 회의의 톤과 맞지 않았다. A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A가 원작자로서 각색 방향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결국 이 같은 당혹 속에서 A는 이제 기획회의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기획PD의 말과 함께, 각색 권한은 전적으로 드라마 제작사에 있다는 씁쓸한 말을 들으며 회의를 마무리하게 된다.
더 많이, 더 빨리, 쇼츠와 함께하는 뉴노멀
다소간 실제와 가상이 혼재된 A의 당혹스러운 이야기는 어쩌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웹툰이 영상과 만나기 시작한 이래 반복되어온 장면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 같은 2차 창작 과정은 IP 확장이라는 좋은 표현으로 윤색되었으나, 원작자에게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물론 이보다 유쾌하고 원작자가 존중받는 제작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제까지와 다른 난관이 펼쳐진다. 더욱 짧고 자극적인 쇼츠 형식의 콘텐츠가 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드라마보다 극성과 전개가 극단적으로 빨라진 숏폼 드라마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웹툰이 근 20년 동안 차지해온 자리는 '틈새 시간'이었다. 지하철 안, 점심시간 끝자락, 잠들기 전 손에 쥔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손쉽고 간편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는 점은 웹툰의 최대 강점이자, 종이 만화가 틈입하지 못한 지점까지 웹툰이 침투할 수 있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 새로운 경쟁자인 쇼츠와 숏폼이 새롭게 들어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숏폼 이용률은 전체 응답자의 58.6%에 이르고, 이용자 다수가 거의 매일(66.0%), 그중 상당수는 하루에도 여러 번(33.4%) 숏폼을 본다1). 같은 십 분을 두고 30~40컷의 이미지가 담긴 웹툰 한 회와 30초에서 1분 남짓의 쇼츠 열 개가 경쟁하는 구도다. 같은 조사에서 게임 이용률이 2022년 74.4%에서 2025년 50.2%로 떨어지고 그 대체 여가로 영상 시청을 꼽은 비율이 86.3%였다는 점을 함께 놓고 보면, 쇼츠가 잠식하는 것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잉여 시간 전체인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긴장해야 할 수치는 따로 있다. 숏폼 시청이 원작 콘텐츠 시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1.3%에 불과했다2). 열 명 중 아홉은 짧은 영상 한 편으로 소비를 끝낸다. 쇼츠는 원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닫히는 새로운 방이 된 것이다. 이제 A가 마주한 위기의 성격도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문제가 '원작이 각색되며 훼손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였다면, 이제는 훼손을 감수하고도 원작으로 향해오는 이들은 미미하며, 그 훼손의 방향마저 더 짧고 자극적인 쪽으로 주로 향한다는 문제다.
숏폼 각색은 무엇이 다른가
이 변화에 웹툰을 비롯한 기존의 IP 진영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형식에 직접 도전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레진엔터테인먼트가 2026년 2월 내놓은 숏폼 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은 레진코믹스와 봄툰에서 검증된 웹툰 IP를 키다리스튜디오가 직접 제작해 세로형 숏폼으로 옮기는 구조다.
다만 그 설계가 흥미롭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출시 당시 숏폼 드라마의 짧은 제작 리드타임을 활용해 IP의 시장성을 빠르게 확인하고, 이후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으로 확장하는 밸류체인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3). 숏폼 드라마가 완성된 작품이자 동시에 시장성 검증 장치가 되는 셈이며, 원작은 옮겨지는 대상이면서 다시 시장에서 시험받는 자리에 함께 놓이는 것이다.
여기서 각색의 성격이 바뀐다. 기존 드라마 각색이 덜어내거나 새로운 것을 대폭 추가하는 것이었다면 숏폼의 각색은 자극의 농축에 가깝다. 원작에서 가장 반응이 좋을 만한 것을 골라 더 세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남고소년 레진엔터테인먼트 [평론가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4/20260909102905730_SK10TJZ2.png)
한 사례로 런칭과 함께 공개된 2월 라인업에는 박지 작가의 〈남고소년〉이 있었다4).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며 상당한 인기를 누린 학원물이다. 이 작품은 2차 성징이 멈추면서 교내 서열 최하위로 밀려난 소년의 이야기인데, 이 설정은 만화적 이미지가 아니면 서사적 몰입이 성립하기 쉽지 않다. 만화는 신체와 나이의 불일치를 만드는 이미지를 통해 이 같은 아이러니가 성립할 수 있음을 하나의 규약으로 만들고, 독자에게 그것을 일종의 이미지의 문법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하지만 이를 실제 배우로 옮기는 순간 그 규약은 사라지고 실재의 이미지만 그 자리에 남는다. 이미지의 아이러니가 아니라 실재의 신체가 화면 전면에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숏폼은 그 아이러니를 자극의 강도로 대체하게 된다.
그리고 달라지는 것은 수용자의 위치다. 웹툰이 독자로 하여금 서사 사이를 능동적으로 누비는 하나의 사건이자 이벤트로 기능한다면, 움직이는 이미지로 구성된 숏폼은 약속된 1~2분을 온전히 통과해야만 비로소 콘텐츠에 도달하는 관객의 자리를 수용자에게 요구한다. 읽는 사람에서 보는 사람으로, 시간을 조율하는 쪽에서 시간에 지배당하는 쪽으로 축이 옮겨가는 것이다. 각색이 무엇을 덜어내고 추가했는가 이전에, 그것을 받아 드는 수용자가 이미 이전과는 다른 자리로 향하는 것이다.
사실 각색 과정에서 무언가가 어긋나는 일은 새롭지 않다. 원작을 압축하든 확장하든 만화와 영상의 시각적 문법은 언제나 어긋나왔다. 원작 팬이 각색에 분노하는 지점은 대개 줄거리 변화가 아니라 궁극적인 이 시각적 문법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이 결정들이 악의에서 나온 것은 아니며, 원작과 관계성이 느슨해지는 대신 판권 수익이 들어오고 드라마가 흥행하면 원작으로 독자가 역주행했던 시절에는 견딜 만한 거래이기도 했다.
다만 그때의 어긋남은 어디까지나 다른 시장의 문제였다. 만화와 영상이 서로 다른 시장에 존재했고, 그것을 받아 드는 사람의 위치까지 흔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시각적 문법 자체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방향은 더 짧고 자극적인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 둘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한다. 그러니 이제 물어야 할 것은 각색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새로운 흐름 자체에 만화가 무엇으로 대응할지다.
더 짧아질수록 더 만화다워져야 한다
만화가 나아가야 할 길은 쇼츠의 성질과는 반대편에 있다. 소비가 짧아지고 빨라지며 범람할수록, 만화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더 밀고 나가야 한다. 물론 짧아지는 것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스무 컷 안팎으로 한 편을 끝내는 숏툰이나 한 컷으로만 승부를 보는 연재도 흥미로운 실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의 규칙으로 싸우는 일이 된다. 만화가 가진 매력은 짧은 호흡이나 자극의 반복에 있지 않다. 수용자가 이미지 사이를 자유롭게 횡단하도록 두는 것, 그리고 그 질감 자체에 빠져들게 하는 2차원의 상상력에 있다.
만화에서 시간의 주인은 독자다. 작가는 여백과 이미지를 배치할 뿐이고, 그 사이를 얼마나 천천히 통과할지는 독자가 정한다. 긴 세로 여백이 연출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반면 영상에서 시간의 주인은 연속하는 이미지 자체이며, 수용자는 지루한 순간 손가락으로 이를 넘기는 것 외에는 저항할 수단이 없다.
![<유니버설 픽처스> [한대호 평론가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4/20260909103019641_B692QKPQ.png)
이 판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뜻밖의 자리에서 나왔다. 올여름 극장가의 필름 열풍, 영어권에서 필름의 부활(resurgence of film) 혹은 셀룰로이드 리바이벌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상업영화 사상 처음으로 전 장면을 70mm 아이맥스 필름으로 찍었다. 5분마다 필름을 갈아야 하는, 명백히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전 세계에 마흔 곳 남짓 남은 아이맥스 필름 전용관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관객은 그 불편을 감수하고 극장으로 몰려갔다. 국내에서 가장 근접한 화면비를 구현하는 상영관은 자정을 넘긴 회차까지 매진됐고, 중고 거래 앱에는 웃돈을 주고 표를 사겠다는 글이 올라왔다5).
역설처럼 보이지만 이는 역설이 아니다. 짧고 빠르고 휘발적인 소비가 증가할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밀도 높은 경험과 매체적 경험의 값어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여기서 배울 것은 복고가 아니라 물성이다. 매체 고유의 조건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내세울 때 그것은 불편이 아니라 경험이 된다.
그렇다면 만화의 물성은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하나로 고정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종이 만화의 물성은 페이지를 넘기는 손과 지면의 크기였고, 웹툰의 물성은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는 스크롤과 무한히 길어질 수 있는 디지털 이미지다. 만화는 종이와 디지털 사이를 횡단하면서 그때마다 다른 조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왔고, 이 매체적 다채로움 자체가 이 장르의 힘이었다. 그리고 형태가 바뀌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시간의 주인이 언제나 독자였다는 점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든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든, 만화는 독자에게 속도를 맡겨온 매체다.
그러니 지켜야 할 것은 이 관계성이다. 지난 20년간 웹툰은 스크롤이라는 조건 위에서 문법을 만들어왔지만 그것을 어디까지 밀 수 있는지 끝까지 시험해본 적은 많지 않다. 스크롤 속도 자체를 연출로 강제하는 컷, 한 화면에 결코 다 담기지 않도록 설계된 그림, 여백을 줄이는 대신 여백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감정을 심는 구성이 바로 그것일 터다. 이는 확장된 형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웹툰의 캐릭터 채팅에 추가된 〈해시태그는 첫사랑〉은 원작에서 비중이 적었던 인물과의 대화 비율을 의도적으로 높였는데6), 이는 원작이 남겨둔 자리를 독자가 자기 속도로 채우게 한 시도에 가깝다. 관객의 자리로 밀려나던 수용자를 다시 독자의 자리로 부르는, 작지만 분명한 가능성인 것이다.
짧고 빠른 소비에 지친 독자가 돌아올 자리는 짧고 빠르게 흉내 낸 만화가 아니라 만화여야만 가능한 경험일 것이다.
프롤로그의 A에게 돌아가자. A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 회의실에서 각색을 막아설 발언권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회의실은 A의 싸움터가 아닐 것이다. A가 할 일은 작업실로 돌아와 자기 작품에서, 칸과 칸 사이에 시간을 설계하고 이미지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하며 매체의 극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흔치 않은 아이맥스 상영관을 찾아가는 관객이 있는 것처럼, 5분을 온전히 몰입하고 스크롤을 내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쇼츠는 만화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쇼츠 이후의 시대는 자극에 이르는 시간 자체를 극단적으로 앞당겨 놓았고, 그렇게 빨라진 시청각적 문법의 변화 앞에서 만화가 무엇으로 응답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만화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 그것을 온전히 자기 언어로 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각주
1)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2025년 12월.
2)「[ET시론] 숏폼 드라마의 성장이 던지는 과제」, 『전자신문』, 2026년 5월 31일.
3) 「레진엔터테인먼트,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 출시」, 『머니투데이』, 2026년 2월 4일.
4) 「레진스낵 오늘 런칭…이준익·이병헌 감독 참여 2월 숏드라마 라인업 공개」, 『아주경제』, 2026년 2월 3일.
5) 임소정, 「'오디세이' 아이맥스 전석 매진…영화 '경험'하러 극장 간다」, 『MBC 뉴스데스크』, 2026년 8월.
6) 「네이버웹툰, 웹툰부터 숏드라마까지…IP로 글로벌 진출」, 『블로터』, 202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