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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AI 시대, 웹툰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프롬프트 한 줄과 이미지 한 장으로 얼마든지 비디오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웹툰 교육이 사수해야 할 가치는 독자가 손끝으로 시간을 조절하며 칸과 칸 사이(칸새)의 여백을 능동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게 만드는 ‘시간 통제의 연출력’이다.

2026-10-06 임재환

숏폼·AI 시대, 웹툰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스크롤을 멈춘 독자들, 움직이기 시작한 웹툰


웹툰 교육 현장에서 체감하는 AI와 숏폼의 충격은 ‘만화라는 매체의 정의와 서사 문법의 해체’라는 위기감과 맞닿아 있다. AI 툴이 빚어내는 즉각적인 비주얼은 화려하지만, 정작 작가가 연출하려 했던 미세한 호흡과 서사적 복선은 그 움직임에 집어삼켜지기 일쑤다. 기승전결의 축적 대신 초반의 강력한 후킹과 자극적 갈등만을 요구하는 숏폼의 문법 속에서, 창작자는 전체 서사를 축적하기보다 알고리즘의 간택을 위한 파편만을 쫓게 된다. 그 결과 창작자도 독자도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서사의 빈곤’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미지와 영상의 렌더링이 더없이 쉬워진 시대일수록, 그 화려한 결과물 안에 정작 ‘창작자의 본래 의도’가 얼마나 담겨 있는지를 교육계가 엄중하게 되물어야 한다.


웹툰 플랫폼에서 체류시간 감소와 유저 유입량 둔화의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숏폼으로의 이탈’이 지목된 지는 오래다. 독자들의 시선과 여가 시간은 정적인 스크롤에서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같은 세로형 숏폼 비디오로 급격히 이동했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웹툰의 긴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는 독자보다, 무표정한 얼굴로 숏폼 영상을 쉼 없이 스와이프하는 이용자를 마주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료 회차 결제 성장세의 정체를 마주한 웹툰 플랫폼들로서는 독자의 ‘시간 점유율’을 빼앗아 간 숏폼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맞서 플랫폼들은 웹툰을 ‘읽는 콘텐츠’에서 ‘보는 영상’으로 전환하며 숏폼을 앱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네이버컷츠 정식 오픈 홍보 이미지.


네이버웹툰은 숏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공유하는 이용자 참여형 서비스 ‘컷츠(Cuts)’를 도입한 데 이어, 클릭 몇 번으로 원작 컷을 영상으로 변환할 수 있는 AI 창작 도구 ‘컷츠메이크’를 선보였다. 나아가 글로벌 플랫폼 모바일 앱에 영상 전용 공간을 신설하고 인기 웹툰 IP를 숏애니로 제작하는 한편, 일본 시장에서는 대형 애니메이션 OTT와 손잡고 앱 내에 대규모 스트리밍 탭을 전격 신설했다. 

카카오 진영 또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일본 픽코마에 숏폼 전용 카테고리인 ‘ANIME’를 구축하고, 자체 AI 브랜드 ‘헬릭스 숏츠’를 통해 원작 웹툰을 AI로 자동 가공해 제작 기간과 비용을 대폭 단축한 숏폼 영상을 작가들에게 지원하는 등 영상화 실험을 전방위로 밀어붙이고 있다.


입구가 아닌 종착지가 된 숏폼


이러한 공격적 행보의 이면에는 웹툰을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영상, 캐릭터, 굿즈로 끝없이 변주되어야 하는 ‘원천 IP 자산’으로 바라보는 플랫폼의 시각이 있다. 연재가 끝난 구작이나 휴재작도 숏폼 밈과 AI 챗봇을 통해 끊임없이 재조명하여 IP의 생명주기를 연장한다는 점과 외부 SNS에서 무분별한 저작권 침해로 소비되던 2차 창작물을 플랫폼 안으로 정식 흡수해 팬들이 직접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되도록 장을 만들어준다는 점을 플랫폼 관계자들은 숏폼 도입의 이유를 꼽는다.


하지만 실제 창작과 독서의 생태계에서는 심각한 구조적 모순과 역효과가 노출되고 있다. 숏폼은 웹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독자의 소비가 끝나버리는 ‘종착지’로 굳어지고 있다. 숏폼 영상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요약본이나 밈 영상 자체만을 휘발적으로 즐길 뿐, 스크롤을 내리며 결제하는 본편 정주행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숏폼만 보고 나가는 체류 행태는 플랫폼 내 체류시간 수치를 일시적으로 방어해 줄지는 몰라도, 정작 만화 창작의 핵심인 정규 연재 웹툰의 독자층으로 전환되지 않는 ‘트래픽의 공동화’ 현상을 낳고 있다. 


또한 웹툰의 본질은 스크롤을 내리는 손끝의 속도 조절, 그리고 칸과 칸 사이의 여백을 독자 스스로의 상상력과 호흡으로 채워 넣는 ‘능동적 독서 행위’에 있다. 그러나 1~2분 안에 결론까지 밀어붙이는 숏폼 비디오는 독자의 상상력을 개입시킬 틈을 주지 않고 수동적인 시각 자극만을 일방적으로 주입한다. 만화가 가진 고유의 시간성과 공간성이 숏폼 영상이라는 획일화된 타임라인에 갇히면서, 만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정서적 몰입과 여운은 도파민을 좇는 감각적 찰나로 축소된다. 결국 플랫폼의 숏폼 드라이브는 이탈하는 대중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전이지만, 역설적으로 ‘만화를 굳이 만화로 읽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플랫폼 스스로 구축하는 기형적인 자가당착을 낳고 있다. 


가주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새로운 창작 돌파구로서의 SNS 숏폼 웹툰


과거 포털 공모전이나 에이전시 투고 일색이던 웹툰 작가 데뷔 경로에 뚜렷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기존 웹툰 전문 플랫폼들을 제치고 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비스 상위권에 안착할 만큼, 대형 플랫폼 중심의 독점적 유통 구조에는 명확한 균열이 발생했다. 독자들이 대형 플랫폼을 벗어나 SNS로 발길을 돌린 일차적 원인은 ‘서사의 정형화’와 ‘비용 피로도’다. 대형 포털 웹툰이 흥행 보증수표인 ‘회빙환(회귀·빙의·환생)’과 ‘일진·학폭물’ 등 자극적 상업 공식에 매몰되고 결제 부담이 늘어나는 사이, 독자들은 짧고 직관적이며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생활·공감형 만화로 이동했다. 작가들 역시 포화 상태에 이른 플랫폼 공모전의 좁은 문을 뚫거나 높은 수수료를 떼이는 대신, SNS를 통해 독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굿즈 판매나 브랜드 광고를 유치하는 ‘개인 브랜딩’을 생존 전략으로 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플랫폼의 IP 소싱 전략도 ‘SNS에서 검증된 IP와 창작자를 공격적으로 스카우트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초기에는 일상을 연재하던 인스타툰 작가를 정식 연재처로 모셔오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정지된 컷을 옆으로 넘겨보는 카드뉴스형 만화를 넘어 영상 알고리즘을 탄 ‘릴스·숏폼 특화 작가’들을 수혈하는 경쟁으로 격화되었다. 런칭 1년도 되지 않아 7만의 팔로워를 모은 《가희주하》의 가주 작가처럼, 음원과 모션그래픽을 얹어 릴스 피드를 공략한 창작자들은 플랫폼 공모전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거대한 팬덤을 입증해 보였다. 플랫폼들은 이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한편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며 영상툰 작가들을 자사 생태계 안으로 포섭하고 있다. 지망생들에게 SNS 숏폼은 플랫폼의 간택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직접 시장성을 증명해 계약 조건을 역으로 이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대안 사다리가 된 셈이다. 


심각한 서사적 부작용을 초래한 숏폼 연출 


그러나 독자의 콘텐츠 선택 기준이 ‘스토리의 완성도와 서사적 개연성’이 아니라 ‘피드 썸네일과 3초 안의 시각적·청각적 타격감’으로 완전히 이동하면서 심각한 서사적 부작용이 찾아왔다.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아 피드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첫 장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강력한 후킹과 갈등의 폭발을 의도적으로 배치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러한 숏폼 연출 방식이 1화부터 차근차근 세계관과 인물의 인과를 쌓아가는 ‘서사의 빌드업’을 완전히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릴스나 숏츠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도달하므로 독자가 이전 회차의 맥락을 알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창작자는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을 묘사할 시간을 포기하고, 스와이프를 멈추게 만들 수 있는 파렴치한 불륜, 극단적인 학교 폭력, 삼각관계의 파국, 통쾌한 즉각적 응징 등 즉각적이고 평면적인 기호만을 파편적으로 나열하게 된다.


그 결과, 릴스 특화 연출로 거대한 팬덤을 모아 플랫폼에 입성한 신예 작가라 할지라도, 주간 연재라는 수십 컷 단위의 장편 웹툰으로 넘어갔을 때 서사적 한계에 부딪힌다. 숏폼의 자극적 스파크를 일으키는 요령은 탁월하지만, 회차를 거듭하며 인물의 관계를 심화하고 사건의 복선을 팽팽하게 유지해 나갈 서사 요소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숏폼이 열어젖힌 새로운 데뷔 경로는 창작자에게 전례 없는 자유와 사다리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장기적인 서사 예술로서의 만화를 지탱하는 창작의 뼈대를 안쪽에서부터 갉아먹는 역설을 낳고 있다. 


중국의 AI 만극(漫剧) 유행과 도파민의 함정 


중국에서는 가장 앞선 웹소설·웹툰 IP를 마이크로 드라마와 애니 영상으로 소비하는 모델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이른바 ‘만극(漫剧)’이라 불리는 AI 숏폼 애니메이션 시장은 폭발적인 팽창세를 보이며 신규 출시되는 숏폼 콘텐츠의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주류가 되었다. 이러한 폭발적 공급을 가능하게 한 것은 대형 AI 영상 모델의 진화와 제작 파이프라인의 극단적 표준화다. 과거 수작업에 의존하던 스토리보드, 캐릭터 디자인, 컷 편집, 더빙 공정이 원스톱 AI 워크플로우로 통합되면서, 제작 주기는 한 달 이상에서 단 며칠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제작비 역시 기존 대비 70~80% 절감되었다. 레퍼런스 기반 영상 생성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컷이 바뀌어도 인물과 배경의 일관성이 유지되는 시각적 완성도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공장형 생태계는 창작의 본질 측면에서 심각한 병폐를 고스란히 노출한다. 알고리즘의 즉각적 간택을 받아야 하기에 시각적 스펙터클과 빠른 충격을 줄 수 있는 장르에만 수요가 쏠린다. 매 회차 1~2분 안에 유료 결제나 광고 시청을 유도해야 하므로, 인물의 내면적 고뇌나 다층적인 갈등, 서사의 완급 조절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된다. 복선은 회차 내에서 즉시 해결되어야 하고 자극적인 사이다 복수만이 반복된다. 카메라 없이 영상을 만들고, 붓 없이 그림을 그리는 기술적 편의성은 창작자의 ‘기술적 비숙련화’를 부르고, 이야기의 깊이 대신 도파민 자극에만 매몰되는 소모적 내부 경쟁을 낳고 있다.


끊임없는 결핍과 선망의 자극


존 버거는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광고 이미지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며, “광고는 결코 현재를 만족시키지 않고, 오직 끊임없는 결핍과 선망을 자극해 다음 소비를 강제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말대로 현재의 AI 숏폼 영상은 독자적인 완결성을 지닌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자본주의적 ‘광고 이미지’로의 퇴행과 같다. 초반에 시선을 낚아채는 도파민성 연출은 감상자에게 서사적 포만감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시청자를 자극 직후 찾아오는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스와이프하게 만드는 ‘결핍의 쳇바퀴’에 불과하다. 그간 롱폼이 품고 있던 시간의 축적, 인물의 인과관계, 침묵의 호흡을 의도적으로 거세하고, 오직 클라이맥스만을 떼어내 영상화하는 행위는 이미지를 ‘맥락 없는 도파민 파편’으로 전락시키는 과정이다.


미술비평가 테리 바렛의 지론을 빌리자면 위기는 더욱 명확해진다. 바렛은 예술과 시각 매체의 생명력이 ‘해석의 다층성’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했다. 텍스트가 품은 침묵과 여백, 인물의 다면적인 갈등 구조는 수용자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해석의 공간을 열어준다. 그러나 숏폼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콘텐츠는 짧은 시간에 인과를 즉각 식별할 수 있는 원초적 클리셰만을 강박적으로 나열한다. 해석의 여지가 거세된 텍스트는 감상자의 지적·정서적 개입을 차단하며, 한 번 소모된 즉시 폐기되는 일회용품으로 전락한다. 해석할 거리가 없는 이미지는 축적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산 단가를 낮추어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 한들, 다시 읽고 곱씹을 가치가 없는 장르는 필연적으로 감각의 내성과 독자의 피로감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도서관 입구 모습.


도구의 호흡에 잠식당하지 않는 ‘칸새의 시간’을 향하여 


그렇다면 숏폼으로의 전향을 그저 불온시하고 지양하게 만드는 것만이 웹툰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길일까? 문제는 숏폼이라는 형식 자체가 아니라, 교육 현장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에 있다. 현재 대학 만화·웹툰 전공학과의 강의실은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시대의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구호 아래 앞 다투어 모션그래픽과 3D 툴, 생성형 AI 영상 제작 수업을 개설하고 숏폼 공모전을 열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직업적 수익 모델은 전무한 기형적 현실에 놓여 있다. 국내 콘텐츠 생태계에서 플랫폼이나 CP사와의 정식 계약 이외에는 개인 창작자 단위에서 릴스와 쇼츠의 조회수 수수료만으로 콘텐츠 제작에 수반되는 AI 토큰(크레딧) 소비량 대비 이렇다 할 수익을 기대하기가 힘든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산업적 토양과 보상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유행과 화제성만을 좇아 학생들에게 영상 툴을 쥐어주고 숏폼의 단막 연출로 내모는 행위는 결국 학생들을 ‘단가와 토큰 경쟁의 소모품’으로 만드는 무책임한 처사일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창작자로서 ‘주체성 상실’이다. 실제 AI와 영상 툴을 쥐어주면, 학생들은 몇 번의 클릭과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즉각 감탄을 자아내는 화려한 비주얼과 역동적인 모션을 손쉽게 뽑아낸다. 그러나 그 현란한 결과물을 한 껍질 벗겨내면 뼈아픈 역설이 드러난다. 학생이 본래 설계하고자 했던 섬세한 감정의 뉘앙스와 인물의 고유한 연출적 호흡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툴이 확률적으로 제공하는 기계적이고 과장된 움직임에 연출 의도가 통째로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창작자도 의도하지 않았던 창작 문법의 왜곡이자, 도구의 자동화에 작가가 압도당한 현장 경험의 실체다.


일본 만화의 거장 타니구치 지로는 『그림 그리는 사람』 대담을 통해 이와 같은 유혹을 일찌감치 경고한 바 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테크닉이나 유행의 자극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쉬운 표현 방식이나 도구가 만들어내는 표면적 완성도에 기대는 순간, 작가가 정작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하고 싶었는가 하는 본래의 의도는 화면 뒤로 사라져 버립니다.”


타니구치 지로가 평생 인물이 숨 쉬는 시간과 침묵의 결을 묵묵히 그려냈듯, 연출의 본질은 화려한 움직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움직임 사이에 흐르는 뉘앙스와 여백’에 있다. 자동화 툴이 몇 초 만에 빚어내는 현란한 비주얼은 결코 창작자의 호흡이 아니라 ‘도구의 호흡’일 뿐이다. 생성된 시각적 스펙터클에 취해 자신의 고유한 박자를 망각하는 순간, 창작자는 연출가가 아닌 도구의 오퍼레이터로 전락하고 만다.


프롬프트 한 줄과 이미지 한 장으로 얼마든지 비디오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웹툰 교육이 사수해야 할 가치는 영상 테크닉이 아니다. 강제된 타임라인에 시선을 묶어두는 영상과 달리, 독자가 손끝으로 시간을 조절하며 칸과 칸 사이(칸새)의 여백을 능동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게 만드는 ‘시간 통제의 연출력’이다.


즉 학교가 가르쳐야 할 것은 툴을 다루는 요령이 아니라 도구에 휘둘리지 않는 ‘창작의 주체성’이다. 툴이 뿜어내는 자동화된 스펙터클에 눈을 빼앗기지 않고, 그 칸에서 내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침묵의 밀도와 연출적 박자를 스스로 장악하는 힘. 모든 이미지가 손쉽게 움직이는 영상의 범람 속에서, 만화 교육은 눈에 보이는 시각적 만족을 넘어 ‘칸새가 빚어내는 사유의 깊이’를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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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환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웹툰 비평의 유형별 질문법」 저자
2018 신인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19 부천만화대상 우수학술 연구상
前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포럼 위원, 前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경영기획실 책임연구원
교토 세이카대학 만화학과 졸업, 공주대학교 만화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