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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작가의 집(Maison des auteurs)의 첫 번째 오픈 하우스

15년간 세계 각지 다양한 작가들의 창작 요람이 되고 있는 앙굴렘 작가의 집 (Maison des auteurs)은 작가들 사이에서의 높은 인지도에 불구하고, 실제 앙굴렘 지역 주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일반 사람들은 매번 작가의 집 앞을 지나면서도 그곳이 작가 아뜰리에라는 사실이나, 실제 내부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어떤 작가들이 머물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7-04-19 윤보경

15년간 세계 각지 다양한 작가들의 창작 요람이 되고 있는 앙굴렘 작가의 집 (Maison des auteurs)은 작가들 사이에서의 높은 인지도에 불구하고, 실제 앙굴렘 지역 주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일반 사람들은 매번 작가의 집 앞을 지나면서도 그곳이 작가 아뜰리에라는 사실이나, 실제 내부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어떤 작가들이 머물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공의 자산으로 운영되는 작가의 집을 일반 대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소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면서, 작가의 집 오픈 하우스 행사가 이번에 처음으로 진행되었다.


△ 그림 1. 작가의 집 건물 외관과 입구

△ 그림 2. 작가의 집 오픈하우스의 초대장.

2017년 3월 16일 저녁 6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작가의 집의 주요 공간이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작가의 집은 휴식 공간과 전시 공간이 있는 지하층과 공동 작업공간과 행정 공간이 있는 1층, 각각의 작가 아뜰리에가 있는 2, 3,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번 오픈 하우스 행사에는 1층과 4층 방문이 가능했다. 특히 작가들이 실제 작업하고 있는 4층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만화가 올리비에 바레즈(Olivier Balez), 제이슨 시가(Jason Shiga), 로라 포지(Laura Pozzi), 오드 솔레이악(Aude Soleihac)과 애니메이션 작가 프란체스카 마리네리(Francesca Marinelli)가 그들의 작업실에서 방문객을 맞았다.
먼저, 다인 작업실에서 함께 작업하는 올리비에 바레즈와 제이슨 시가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작업했던 과거의 작품들과 지금 진행 중인 작업의 과정을 선보이고 있었다.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바레즈는 9년간 칠레에서 지내다가 최근 가족들과 함께 앙굴렘에 정착하면서 작가의 집에 입주했다. 15년간 만화, 동화 일러스트레이션, 신문 삽화(르 몽드지), 책 표지 작업 등을 통해 활발히 작가 활동을 해왔는데, 대표작으로는 글레나(Glenat) 출판사에서 출간된 <로버트 모즈, 숨겨진 뉴욕의 주인 / Robert Moses, le maitre cache de New York (2014)>, <나는 너를 죽이겠다, 도미니크 에이 / J’aurai ta peau Dominique A (2013)>등이 있다. 현재 작가의 집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품은 ‘물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주제로 칠레의 실태를 그려낸 시리즈로 된 리포타쥬(Reportage) 만화이다. 콘티와 캐릭터 연구, 진행 중인 몇몇 페이지를 소개했다. 몇몇 방문객은 일부러 그의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받기도 했는데, 오랫동안 프랑스 만화계에서 활동해 온 그의 인지도를 엿볼 수 있었다.

△ 그림 3. 올리비에 바레즈(Olivier Balez)의 작업실, 최근작과 대표작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 그림 4. 올리비에 바레즈와 그의 책에 사인을 요청한 할아버지 방문객들.
올리비에와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는 제이슨 시가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 작가로는 드물게 수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독특하게도 그는 수학적 이론을 만화에 자주 이용한다. 그래픽 스타일은 도형이 드러나는 듯 아주 미니멀한 반면, 서사 고리는 복잡하게 이어져 독자들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과정과 결말이 달라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20여년간 그는 6권의 책을 출판했고 20권의 미니 책을 만들었는데, 그의 대표작으로는 <바닐라 아님 초콜렛 / Vanille ou chocolat (Cambourakis 출판, 2012)>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 사랑이야기 (혹은 아닐수도) /Empire State - A Love Story (or Not) (Abrams 출판, 2011)>이 있다. 작가의 집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품은 500페이지가 넘게 구성된 총 2권의 책으로, 언뜻 보기엔 각각의 이야기에 특별한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전개되는 과정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전개 과정에 따라 20가지의 결말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는 방문객을 맞아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화 콘티를 보여주며 작품의 작업 과정과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 그림 5. 제이슨 시가(Jason Shiga)가 최근 작업하고 있는 작품의 콘티.

△ 그림 6, 7. 제이슨 시가의 대표작 <바닐라 아님 초콜렛 / Vanille ou chocolat>.
최근 유화 작업을 하고 있어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일부러 개인 작업실로 옮긴, 로라 포지는 이탈리아에서 온 작가이다.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녀는 밀라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동화 일러스트레이션과 학습 만화, 아동 만화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작가의 집에서 작업하는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인데, 처음에는 아동 만화 시리즈 <비즈빌, 마녀 대참사 / Bisbille, la sorciere catastrophe (Les Petites Bulles editions 출판, 2016)>와 <비즈빌, 바보짓 앞으로! / Bisbille, en avant les betises ! (Les Petites Bulles editions 출판, 2016)>를 작업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번에는 폴란드 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시모나 코작(Simona Kossak)에 대한 책을 작업하고 있는데, 아직 완성된 페이지를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자료들과 만화 작풍에 대한 연구 과정, 만화 콘티들이 그녀의 작업실을 채우고 있었다.

△ 그림 8. 로라 포지(Laura Pozzi)의 개인 작업실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과 작품을 위한 자료들과 스케치들.

△ 그림 9. 로라 포지의 콘티 작업들.
로라의 맞은 편 개인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오드 솔레이악은 앙굴렘 유럽 상급 이미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앙굴렘과의 인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졸업 이후, 2005년부터 예티(Yeti)와 스피루(Spirou) 잡지에 페이지 만화를 연재하면서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삽화가로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80일간의 세계일주 / Le tour du monde en 80 jours (Delcourt 출판)> 3권의 시리즈를 작업했고, 2011년에는 <버튼 전쟁 / La gerre des boutons, (Delcourt 출판)>을 그렸다. 그녀는 작가의 집에서 작업한 것이 세 번째 인데, 첫 번째 시기였던 2012년에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네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고, 두 번째에는 아동 만화를 작업했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시나리오 작가인 프레데릭 모뽀메 (Frederic Maupome)와 함께 해적 유령에 의해 길러진 어린 고아의 이야기에 대해 작업하는 중이다.

△ 그림 10. 오드 솔레이악(Aude Soleihac)의 책상과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작업 콘티들.

△ 그림 11.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오드.
마찬가지로 개인 작업실에 머물고 있는 프란체스카 마리네리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애니메이터이다. 로마에 위치한 대학에서 건축 학위를 땄지만, 이후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이후 2년간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작업했고, 이후에는 프리랜서로 광고영상이나 2D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했다. 작가의 집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화이트 페이퍼 / White paper>라는 2D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에서는 어린 아이가 꾸미고 만들어내는 상상 속의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오르텐(Orten)은 일곱 살 어린 소년으로, 예수님을 그의 놀이 친구로 삼는다. 그녀의 작업실에서 캐릭터 연구를 위한 스케치와 직접 만든 작은 캐릭터 피규어를 볼 수 있었는데, 평소 어떻게 작업하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 그림 12. 프란체스카 마리네리 (Francesca Marinelli)의 개인 작업실.

△ 그림 13, 14. 프란체스카의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과 캐릭터 연구를 위한 작품들.
오픈 하우스가 있던 날, 작가의 집은 방문객으로 찾아 온 가족 단위의 주민들,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로 가득 채워졌다. 대부분의 방문객은 지역 커뮤니티나 앙굴렘 만화이미지 센터의 알림 메시지로 오픈 하우스에 대해 알게 되었고 평소 작품의 과정에 대해 관심이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작가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기도 아직 미완인 작품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는데, 그 방문의 끝은 대부분 ‘작품이 기다려진다, 작품이 마무리가 되면 꼭 보겠다’로 마무리 되었다. 웹툰과 달리 출판 만화는 독자의 피드백이 출판 이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가는 오랜 기간을 (적게는 1년, 많게는 2~3년) 독자의 피드백 없이 작업을 진행한다. 앙굴렘 작가의 집이 외부에 개방이 된 날, 작가들은 미래의 독자들을 만나며 작업에 대한 동기와 의욕을 재충전했고, 방문객들은 작품이 외부로 나오기까지의 다양한 전개 양상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 그림 15. 공동 작업실을 취재하고 있는 지역 방송 기자와 방문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