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석
1943년 부산 동래 출생.
1956년 <동래중학> 시절 교지 <동명>에 만화 ‘마이동풍’, ‘맹초선생’을 기고하면서 학교에서는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동래중학은 일찍이 우리 만화계의 거목인 코주부 김용환 선생이 다녔던 모교이기도 하다.
1960년 <사범대> 졸업 후 동국대학교 입학. <사범대> 학보에 ‘쪼달선생’ 4컷 만화를 기고한다.
그밖에 <동아일보>와 <세계일보> 등에도 작품을 투고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독자에게 무언가 재미와 웃음을 주는 내용이었는데 그림 또한 알기 쉽고 심플한 것이 특징이었다.
1961년 <국제신보> 소년 판에 ‘따개비’가 실리면서 정식 만화계에 데뷔하였다. 반응이 좋았으므로 이후 4년간 연재되었다.
1964년 <가톨릭소년>지에 ‘빅토리 찐방’, <경향신문>에 ‘코망쇠’, <신아일보>에 ‘능글첨지’, 그리고 <충청일보>에 4컷 만화 ‘와룡선생’이 실린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년동아>, <소년조선>, <전우신문> 등 각 일간지에 연재하였고, 그리고 <새벗>, <소년>, <아리랑>, <야담과 실화>, <명랑> 등에 단골작가로 등장하며 작품이 빠지지 않았을 만큼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소년 캐릭터 ‘따개비’오서, ‘따개비’는 1960년대부터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갔던 명랑만화 주인공이다.
우리에겐 웃음보다는 짜증나는 일이 더 많았던 힘들었던 시절에 ‘따개비’ 만화는 늘 신선한 웃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또한 그의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어린이 학습만화에 있다. 박수동처럼 학교 선생을 동경하던 학도여서 어린이의 정서에 맞추고 싶은 욕망이 컸을 것이다.
1970년 <소년한국일보>에 학습만화 ‘따개비 한문숙어’를 연속만화로 연재해 폭발적인 대환영을 받았다.
어린이들이 제일 지겨워하는 학습을 만화를 통해 재미있게 보고 있는 동안에 공부도 겸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연재되는 원고를 책으로 묶어 시리즈로 8권을 발행해서 무려 1200만부라는 놀라운 판매력을 자랑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집토끼 산토끼 다 잡으려다 모두 놓쳐버린 주위 만화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사범대학을 졸업해서 순조롭게 교육자의 길을 걷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게 만화책을 통해 교육계에도 한 몫을 한 셈이니 그의 꿈도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우물만 파는 원칙주의자요, 고지식한 그는 20여 군데 연재한지 50년이 넘는다. 조항리, 김우영, 임웅순, 윤준환 등과 오래전부터 광화문회 모임을 갖고 있다.
△ 따개비 캐릭터
△ ‘따개비 한문숙어’ 소년한국일보에 학습만화로 연재, 반응이 좋아 대장편과 단행본 발행
단행본의 인기 폭발로 학습만화 붐을 이룸(민서출판사 발행, 1991년)
△ ‘따개비와 쪼달아빠’(1970년)
명랑만화로 ‘카톨릭 소년’에 연재되며 화재 불러 모음
△ 데뷔시절 신문 4컷 만화 ‘따개비’(좌, 부산국제신보 1961년 8월 5일)
‘와룡선생’(우, 충청일보 1980년 9월 28일)
△ ‘코망쇠’(경향신문 1964년 2월 20일)
△ ‘코망쇠 형제’ 소년동아일보 대장편 연재후 4권의 단행본으로 출간
(베스트셀러 민서 출판 1994년 4월 11일 발행)
△ 신문 잡지 위주의 작가들 모임(광화문 모임에서 1975년)
(앞좌 : 김태홍, 김성환(시사만화가협회장), 김삼, 김세환, 윤영옥, 오룡(부석언), 이여진
뒤좌: 김대영, 이정문, 허어, 이홍우, 오원석, 김재문)
△ 고바우 퐁속화전 축하객(1986년)
(좌: 신문수, 김삼, 윤영옥, 오원석, 김우영, 고우영, 홍모래, 이홍우, 김성환, 허어, 정운경(만협고문), 박수동, 이정문, 오성섭, 윤승운, 미상, 박동일, 김박, 지성훈)
△ 만화100주년 순천국립대 만화영상과 초청 방문
(앞좌 : 윤승운, 박기준, 뒤좌 : 허어, 박수동, 이정문, 임웅순, 오원석, 사이로, 조관제, 조항리, 정종환 교수)
이소풍
1946년 부산출생
서울 <남산공업전문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공업 디자인 학도로 유난히 눈빛이 범상치 않았다. 타고난 근면한 성격은 본격적 사회생활에 들어서서도 여전하여 그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일 없이 한시도 그림 연습의 손길을 늦추는 일이 없었다.
이윽고 능력을 인정받아 이정민의 작품을 거들게 되고, 만화가로서의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65년 <크로바문고>에서 ‘억세게 재수 좋은 소년’을 펴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업성공 명랑 경쾌한 만화였다. 정확한 데생력을 구사하여 참신한 기법으로 그려진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부담 없이 독자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만족시켜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소년을 보라’, ‘삼천리 공짜여행’, 그리고 ‘진동일과 마용길’에 이어 ‘바보와 천재’ 시리즈를 펴내며 20편에 가까운 대 장편을 발표. 지속적인 족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소풍은 선배 이정민의 ‘해저와 상어호’와 쌍벽을 이루며 명랑만화 붐을 이끌어 갔다.
1966년 ‘꼭 일등’ 시리즈도 역시 인기리에 10편이 이어졌다.
이 시기는 5. 16. 군사정부가 들어선 급변 사태로 만화의 심사가 엄격해지고 독점 출판사 합동이 활개를 치던 때여서 그는 잠시 애니메이션계로 옮겨 가게 된다.
1980년 월간 <양계>지에 ‘닭띠 부부’ 연재. 단행본 ‘마술등잔’, ‘사차원의 정보부’ 발행.
1984년 월간 <여학생>지 미술부장 역임.
1985년 기본기가 출중한 그의 솜씨는 <신원문화사>의 애니메이터로 다시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한다.
1986년 일본 도쿄의 애니메이션 회사 <동화공방>에서 연수 하는 특혜도 누린다.
1986년 <신원문화사>의 공로패 수상. 이현세의 ‘아마겟돈’의 감독으로 제작에 참여해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TV시리즈와 장편 애니메이션 원화 및 감독으로 아시아 애니메 페스티발에 참가.
1998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로 만화계를 위해 봉사.
1998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공로패 수상. <인덕대학> 만화 애니메이션학과 강사 역임.
1977년에 만화계의 친목 단체인 <만필회>를 결성할 때도 그는 중심에 서서 활약했다. <만필회(漫筆會)>라는 명칭의 작명도 그의 고안에 의한 것으로서, 그의 친화적인 성격과 열정을 따를 자가 없었다.
노후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부지런함은 아직 당할 자가 없으며, 식을 줄 모르는 작품열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좌) 이소풍의 데뷔작 ‘억세게 재수 좋은 소년’(크로바문고 발행 1965년)
정확한 데생 실력이 스토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 (우) 인기에 편승, 대장편으로 속편 2부, 3부로 계속 펴낸다(합동문고 발행 1967년)
△ ‘억세게 재수 좋은 소년’(크로바문고 발행 1965년)
어류상 말단 판매원이 대기업 총수가 되기까지
독특한 기업 만화 스토리로 독자를 사로잡은 대장편 만화
△ 꼴등 일등(진선미문고 발행 1966년)
△ 카툰 ‘마지막 이별’ (만화선집 게재 1975년)
△ 아시아 만화 원화전 출품작(1997년 9월)
△ 제7회 한일만화가 연하 엽서 교류전(2004년)
△ 학원폭력 근절 만화포스터전(1996년 출품)
△ 아시안게임 육상경기 3관왕 임춘애의 감동 실화의 애니메이션 작품 ‘아리수변 꿈나무’
원화연출, 스토리보드는 이소풍이 담당하였다.(KBS TV 방영 1988년 3월)
△ 셀 원화지에 옮겨져 채색된 ‘아리수변 꿈나무’의 주요 등장인물들
△ 홍능 만화동인회(1965년 1월 26일)
(뒤 좌 : 이정민(회장), 이행남, 김영총(김영주), 김유성, 김태호, 이소풍(이현식)
앞 : 이송남, 이광순, 이정희 자매, 박순)
△ 만필회 야유회(여주 신륵사 1975년 5월)
(앞 좌 : 이우봉, 이소풍, 중간 : 정훈, 최정수, 최운정, 김준, 김태곤
뒤 : 심명섭, 여태수, 박기준)
△ 철원 평화 전망대 견학(2009년 5월)
(뒤 좌 : 장종철, 이현세(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교수), 이두호 교수, 이희재, 이소풍, 박기준, 김광성, 조원행, 앞 : 세종대 학생들)
△ 만화의날 행사장 대기실(2014년 7월)
(좌 : 김마정, 박기준, 박현석, 이소풍, 조항리, 이상무)
하고명(하청)
1939년 대구 출생. <부산동아대학교>에 다니던 중 만화계와 인맥이 닿게 되어 입문하게 된다.
인기 만화가 박기당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땀과 정성을 쏟아 작가적 능력을 키웠다.
1964년 명랑하고 쾌활한 ‘배짱 좋은 소년’을 펴내며 주위 부러움을 살 만큼 크게 히트를 친다.
‘일류 멋쟁이’, ‘차돌맹이’, ‘새마을다리’, ‘ 팔도강사’, ‘겁주지 마라’, ‘돈 받아라’ 등 그의 작품은 속속 출간되는 대로 인기가 있었다. 캐릭터 ‘청이’가 등장하는 그림체는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의 굵은 터치가 화면 가득 시원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스토리 전개도 그림과 일체감을 느끼게 하면서 템포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명쾌한 느낌을 준다.
일제 강점기에 저항하며 활약한 독립군으로 그려져서 ‘쾌남아 쌍권총’, ‘옛날의 더벅머리’ 등 조선시대의 야담과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던 캐릭터 ‘청이’는, 당시 명랑만화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임창의 ‘땡이’를 바짝 뒤쫓는 걸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고명은 친동생 ‘하룡’과 형제 만화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사촌동생 하정균(1943년생)도 사촌형의 일을 돕다가 독립해서 ‘치악산 흑두건’ 등으로 데뷔하며 맹활약하였다. 그는 체구도 좋은 만능스포츠맨이다.
1969년 문화인 야구대회에서 손의성, 이근철, 백산 등과 적극 합세하여 만화가 야구팀이 준우승을 차지하게 한 공로도 있다. 만화계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멋쟁이 백구두 사총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975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 역임.
1987년 <대한민국거류민단 중앙본부>에서 발행하는 ‘만화 한국의 역사’ 일본어판 발간.
1993년 <월간시사법률>에 ‘만화로 배우는 법률 상식’ 연재.
1999년 경기도 용인시에 <둥지만화 박물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이 박물관에서는 그가 오랫동안 공들여 수집해 온 옛날 희귀 만화와 원고들이 전시되어 있어 만화에 관심을 갖는 관람객을 반기며 즐거운 추억 속으로 안내해 준다. 가끔 만화 전시회나 미술전이 열리는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2005년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안산지부 만화가 협회장 역임.
하고명은 매달 많은 분량의 작품을 창작했는데, 주인공 ‘청이’가 등장하는 배경도 아주 다양했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으로 나오는가 하면, 조선시대 야담과 전설의 주인공으로 나왔고, 학창시절 의리의 사나이와 서부의 사나이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청이’는 전국 만화방을 찾은 꼬마들의 우상이었고 따뜻한 친구였다. 지금도 40, 50대들은 하선생의 ‘청이’를 보면 초등학교 시절의 잃어버린 옛 골목동무를 만난 양 반가울 것이다.
△ 명랑, 쾌활한 청이와 친구 캐릭터들
△ ‘외톨박이’ 시리즈
소박하게 살아가면서도 정의감이 넘치는 당찬 소년이 펼치는 명랑활극만화
△ ‘특별 수사반 시리즈’
한국도서잡지 주간 신문윤리위원회 심의결과 폐기된 작품 반사회적인 내용,
범죄단체에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고, 범죄소탕장면 폭력 묘사 등으로 원기 폐기 당한다.
(1977년 군사정권하의 비극)
△ 4컷 카툰 ‘스마일 운전사’와 ‘안계십니까?’(만화선집 게재 1975년)
△ 제1회 한국만화산업예술전 출품작(1994년 10월)
△ 하고명(하청) 캐리커쳐(박인권 그림)
△ 둥지박물관 건물과 실내 진열장(경기도 용인시 소재, 용인시 투어가이드북 발췌)
△ 오랫동안 수집해온 옛 희귀만화와 원고들이 전시,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조선일보 발췌, 2002년 12월 14일)
△ 제14회 만화의 날 연회 식장에서(2006년 11월 3일)
박기준(좌), 하고명(우)
△ 제11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시와 카툰전’(부천시청 전시관 2008년 8월)
(앞 좌 : 조원행, 이희재(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신문수, 이소풍, 윤승운
(뒤 좌 : 박경근, 조항리, 민경남(부천교육박물관장), 김광성, 미상, 조관제(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 홍건표(부천시장), 박재동, 박기준, 사이로, 하고명(하청))
△ SICAF전시장(2013년 7월 24일)
(좌 둘째 : 하고명, 이두호, 신문수, 김산호, 박기준, 윤승운, 손기환(상명대 교수), 이소풍, 조관제(만화가협회 회장))
강철수
1944년 진주 출생(본명 배윤식). 학창시절부터 그림과 재담꾼으로 소문나 있었던 그는 친구들에게 만능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크나큰 즐거움을 주었고 언제나 생동감 넘치게 하는 활력소 역할을 해 주었다.
서울로 상경한 그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아르바이트할 일자리를 찾다가 유명한 김종래 선생을 찾아가 만화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배우다 보니 만화계에서 일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때마침 대본용 만화가 한창 인기 있던 시대였다.
인기작가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신생출판사들은 소질이 있어 보이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폭넓게 수용하던 시대였다.
1965년 명탐정의 활약상을 그린 ‘태양소년’으로 데뷔하였다. 사나운 고집통 ‘돌돌이와 멍멍이’ 등 개구쟁이 왈패 시리즈 만화도 시작된다.
1969년 ‘서부로 가는 길’, ‘청동마패’, ‘독수리 편대’ 시리즈 발표.
1970년 ‘필사의 120시간’ 시리즈 발표
1972년 ‘장군의 아들’ 시리즈를 단행본으로 펴내면서 단숨에 인기작가 대열에 올랐다. 초기에는 향수 향원 등과 비슷한 그림체를 구사하였으나, 탄탄한 스토리야말로 그의 최대 강점 이었다.
1974년 고우영의 시대 극화로 성인극화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강철수도 시대 변화를 따라 이때부터 성인극화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일간스포츠>에 ‘청춘만세’를 연재하였고, ‘사랑의 낙서’ 시리즈를 발표하고부터는 최고의 성인만화가 대열에 올라서게 되어 고우영과 쌍벽을 이루는 작가가 되었다.
1977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 역임.
1980년 ‘내일뉴스’, ‘팔불출’, ‘발바리의 추억’, ‘바둑시리즈’ 연재
1982년 <만화보물섬>에 ‘소년 수호지’ 연재
1990년 ‘돈아돈아돈아’ 시리즈 발표, ‘밤사쿠라’ 발표
1992년 수필집 ‘인생이 뭔지 알고들 사느냐’ 발행.
2001년 <스포츠서울>에서 ‘한숨의 법칙’ 시리즈 발표
1974년 <주간여성>에서 발표된 ‘사랑의 낙서’ 시리즈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산업화 사회 초기의 통키타와 청바지, 청년문화 풍속도로서 스포츠 신문만화의 새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특이한 발상에 의한 스토리 구성력과 감각적인 그림, 끝없이 샘솟는 아이디어가 함께 어우러져서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면서 독자들을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그의 작품이 거론되어 화재를 일으키곤 하였다.
산업화 시대 청춘남녀들의 애정 의식이 모티프였고 19880년 ‘발바리의 추억’ 시리즈로 대학로에는 ‘발바리의 추억’이란 맥주집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1988년 그의 대표작 ‘사랑의 낙서’는 심재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97년에는 음란물 유포혐의로 고발당해 스포츠 신문 만화작가 11명이 함께 검찰에 기소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기나긴 시간을 거친 2003년에 무혐의 처리가 나면서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는 1995년 <경민대학> 만화영상과 겸임교수로 초빙되었으나 한 달 만에 사표를 냈다.
방송에도 출연하였고 후반기에는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로 드라마 작가로도 활동했다.
2012년 자랑스러운 한국인 시나리오 공모전 우수상 수상 만화가로서 드라마계에서도 큰 업적을 남기길 기대해 보자
△ ‘서부로 가는길’(자유문고 발행 1969년 5월)
강철수 데뷔시절 청소년 서부극화 시리즈
△ ‘서부로 가는길’ 본문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기병대가 공격 포위 하는 장면이 생동감을 준다.
정밀한 스캐치에 힘찬 팬터치가 박진감 넘친다. 인기가 있어 장편으로 독자를 사로잡다.
△ (좌)독수리 편대(파랑새문고 1970년), (우)필사의 120시간(파랑새 문고 1971년)
△ <주간여성>, <일간스포츠>에 ‘사랑의 낙서’
연재 청소년 극화에서 성인극화가로 변신한 출세작(1974년)
△ 스토리 구성력과 감각적인 그림으로 우리 사회가 소외시킨 젊은이들의 성풍속도를 수필형식으로 녹여 열렬한 성원을 이끌어 냄
△ ‘사랑의 낙서’ 영화광고(1988년 개봉)
심재석 감독이 연출하고 이덕화, 김청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 ‘발발이의 추억’영화화
‘스포츠 서울’에서의 연재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 각본, 감독을 맡아 제작 하희라, 주희, 이효정 등 열연
△ 4×6배판 크기의 32쪽 신문 가판용 책으로 성인 독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려 몇 백만 부가 팔리기도 (화문각 발행 1974년)
△ 강철수 캐리커쳐
△ 스포츠종합지에 청춘극화 잠순이 연재
눈코 뜰 세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폭발적 화제 속 영화, TV, 연극 에서도 손짓
△ 발바리 캐릭터
△ ‘돈아 돈아’ 극화 연재 후 소설로 발행(시간과 청춘사 발행 1991년)
△ 수필집 인생이 뭔지 알고들 사느냐 저술(문이당 발행 1992년)
△ 청소년의 달 서해 낙도 위문단(협회 임원단 일행 1977년 5월)
(앞 좌 : 소년한국 기자, 김찬, 현지여교사, 만화가협회직원,
중 : 김영하, 강철수(부회장), 이상무, 박기준(만화가협회장), 현지교장, 박진우(부회장, 김홍일(만화가협회 국장)
뒷 줄 : 심명섭, 황정희)
△ 만화가들 여행(일본 교토 금각사 1993년 3월 24일)
(좌 둘째 : 박기준, 넷째 : 강철수, 끝 : 사이로)
△ 저녁 식탁에서(교토 일식당에서 1993년 3월 24일)
(좌 : 박기준, 강철수, 이해광, 사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