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실사판 <공각기동대>가 개봉했다. 스칼렛 요한슨이 ‘소령’(영화에선 ‘메이저’라고 번역하다니!)이 되어 ‘광학미채(光学迷彩)’를 입고 점프하는 모습을 보고, 카와이 켄지의 사운드트랙을 DJ 스티브 아오키가 덥스텝(dubstep)으로 리믹스한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잘 만든 IP의 수명은 길고 프랜차이즈와 미디어 믹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훌륭한 원작의 뿌리는 깊고, 그 가지는 얼마든지 뻗어나가 새로운 열매를 만들 수 있다.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처음 보았던 때의 충격은 이제 구닥다리 추억이 되었다. 90년대 소규모 동인 모임의 상영회나 PC통신을 떠돌던 무명의 애호가들로부터 구한 복제물로 알음알음 접해야만했던 작품을 이제는 떳떳하게 정식 루트로 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새삼스럽게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표현했지만 물론 요행은 아니다.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와 ‘전성기’, ‘성운아’ 등의 이름이 친숙했던 저작권의 사각지대가 이만큼이나 성장한 것은, 소위 ‘서브컬처’를 당당히 대중의 문화로 향유하려는 소비자들과 공급자들 사이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땅의 산업은 이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함부로 깔보지 못한다.
할리우드 버전이 원작을 어떻게 재현하고 재해석했는지, 그 결과물은 정녕 아름다운지의 문제보다, 골수 만화돌이의 입장에선 오래 전 절판되었던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가 영화 개봉과 함께 재출간된 것이 먼저 기쁘다. 더 큰 규모의 신상품이 나온 덕분에 오래전 얻지 못했던 종이책을 다시 구할 기회가 생겼다. 마땅히 서재에 꽂혀있어야 할 작품, 라이브러리의 ‘누락된 줄기(missing link)’를 채우는 기쁨은 단순히 오타쿠의 수집 욕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인간의 서재는 그가 오랜 기간 쌓아올린 취향의 최전선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소비하는 순간 잊히지만, 몇몇 작품은 라이브러리로 남겨 오랜 ‘레퍼런스(reference)’가 된다. 부모나 배우자가 호시탐탐 내다버릴 기회를 노릴지도 모를 책과 음반, 영상물, 게임 타이틀이나 프라모델, 피규어 따위가 사실은 그것들을 소유한 한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인 것이다.
△ 시로 마사무네(士郎正宗) <공각기동대, 2, 1.5> (1991, 2001, 2003)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7
“기업의 네트워크가 별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사방에 넘쳐흘러도 국가나 민족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정보화되지는 않은 근미래(공각기동대의 유명한 오프닝 서문)”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감상자(독자-관객-유저)는 곧 비평가이고 또 새로운 창작자가 된다. 해당 분야에 대한 공인된 권위나 학문적 전문성을 담보하지 않는, 자칭 애호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비자 중심 비평이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에 올리는 리뷰로 수익을 창출하는 ‘리뷰어’들의 등장은 대중 지향의 비평이 나름의 재창작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중이 이들의 비평을 받아들이는 까닭은 우선 말이 통하고, 곧 취향이 통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리뷰어의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자신의 라이브러리를 바탕으로 언급하는 원형의 예시가 얼마나 적절한지를 보고서, 그 장르에 대한 오랜 연구의 증거와 다른 새로운 작품을 논할 수 있는 자격으로 판단한다. 서재의 목록을 들여다보면 장서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음과 같다. 서로가 공유하는 동일한 레퍼런스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두의 라이브러리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작품들, 각자의 취향보다 우선하는 장르별 명예의 전당이 존재한다. ‘고전(古典, classic)’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필수 교양을 넘어, 처음 접한 이후 오늘날까지 온갖 매체와 장르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히 ‘정전(正傳, canon)’이라 부를만한 작품들이 있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와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1988), 두 애니메이션이 여기에 속한다. 지금 세대의 SF는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 뭐든 간에 이 두 작품에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우리는 원형의 레퍼런스로 이들 작품을 원조로 꼽고 ‘전설’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우린 두 작품의 ‘본편’을 제대로 보진 못했다. 두 애니메이션은 어디까지나 극장판이고 만화가 본편이다. 정작 원작 만화를 정식으로 접한 건 나중의 일,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 이후나 지나서였다. 그 시절,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단절이 있다. 한국에선 언제나 영화가 먼저 들어오고 원작은 그 다음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온갖 슈퍼히어로를 원작 코믹스 이전에 할리우드 영화로 접해서 알게 되었다. (지금도 영화만 보고 만족하는 관객이 대다수이긴 하다) 영화 자체가 원작인 경우, 속편이 먼저 개봉하고 전편을 나중에 수입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해적판이 먼저 들어왔던 일본 만화는 더 말해 무엇하랴. 순서가 뒤죽박죽된 세계에서, 본편의 흐름을 제대로 확인하길 원하는 소수 애호가들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그래서 필자 같은 근본주의자들은 라이브러리의 빈 칸, ‘미싱 링크’가 늘 가슴에 사무쳤던 거다.
△ “직구해. 직구하면 편해.”
다시 “기업의 네트워크가 별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사방에 넘쳐흐르는” 오늘날로 돌아오자. 이제 여간한 IP는 외국과 거의 동일한 시간으로 접한다. 약간의 시간차를 견딜 수 없다면 인터넷을 통해 직접 구하면 된다. 어둠의 루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매체를 아마존으로 직구해도 되고, 넷플릭스 류의 스트리밍 서비스나 전자책 등 새로운 플랫폼을 이용할 수도 있다. “네트는 광대”하고 세계는 열려있다. 요즘 세상에 묵묵히 정식 발매를 기다리는 쪽이 어쩌면 미련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는 여전히 ‘정발’을 선호한다. 한글이 좋고 정식 한국어판의 그 ‘오피셜’한 느낌이 좋다. 해적판만 가득했던 유년기의 PTSD 때문일 거다.
꼭 원작을 봐야하는지 필요성과 가치를 묻는 이도 있으리라. 영화나 애니메이션만 봐도 어느 정도 충분하고, 또 그게 속 편하다. 정보는 널려있고, 궁금한 부분은 ‘위키’에 들어가서 확인하면 그만이다. 위키의 누군가(나는 한때 PC통신을 떠돌던 무명의 애호가들이 이젠 위키를 정리하고 계시리라 확신한다)는 이 작품이 원작과 다른 부분을 친절하게 항목별로 서술해놓는다. 그런데 지식으로 확인하는 일과 작품으로 감상하는 일은 분명히 결이 다르다. 내용을 안다고 해서 재미도 똑같은 건 아니다. 평범한 작품은 스토리가 전부지만, 훌륭한 작품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또 서사의 매체와 방식이 바뀌면 같은 이야기라 해도 감상이 변한다.
<공각기동대>의 원작을 보면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는 무척 가벼운 톤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95년 극장판의 묵시록적인 분위기만 알고 있던 관객은 만화를 보고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심각하게 정체성을 고민하던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는 만화에선 공안9과 부장에게 “월급 많이 주시와요♡”라고 말하는 발랄하고(?!) 욕망과 호기심에 솔직한 캐릭터다. 산 속에 숨어 산다고 전해지는 작가 시로 마사무네의 비정기 연재물을 모아놓은 단행본은 선정적인 표현이 난무하는 하드코어 액션물인 동시에, 페이지 곳곳에 작가의 주석이 가득 적힌 거대한 SF 설정집이기도 하다. 이후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소설, 게임 등이 각각의 스토리로 계속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가 남겨놓은 만화책의 세계관이 그만큼 방대했던 덕분이다.
△ 오토모 가쓰히로(士郎正宗) <아키라 AKIRA> (1982-1990)
김완 옮김, 전6권, 세미콜론 2013
<아키라>의 원작 만화는 오래 전부터 현역 만화가라면 누구나 서재에 반드시 꽂혀있다는 명성의 커다란 단행본으로 유명했다. 일본에서 발매된 호화 사양의 스페셜 에디션 DVD 박스세트를 어렵사리 구해 부록이었던 붉은 색의 스토리보드 책자와 (<아키라>의 콘티 북은 KC 디럭스판 단행본과 함께 여전히 만화가와 애니메이터의 필독 아이템으로 일컬어진다) 95년에 발매된 컬러자료집
을 개인적인 보물로서 보고 또 보았던 추억이 있다. 그러나 원작 만화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만 남아있었다. 조악한 판형의 해적판 일부를 통해 겨우 가늠만 했던 원작이 2013년 마침내 정발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작 오토모 가쓰히로의 압도적인 필력으로 채운 작화의 스케일과 액션 연출은 극장판 애니메이션보다 만화책의 컷 안 세계가 더 거대하게 보이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원작을 읽고 나면 그 전설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사실은 <아키라>의 세계를 최대한 응축하여 보여준 중간 축약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토리와 캐릭터 모두가 애니메이션보다 원작 만화에서 더욱 뚜렷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애니메이션이 ‘데쓰오’와 ‘가네다’에 집중했다면, 만화에서 재발견되는 캐릭터는 ‘케이’와 바로 ‘아키라’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에서 ‘폭주’와 문명의 종말을 보았다면, 만화에서는 ‘진화’와 문명의 새로운 시작을 목격할 수 있다. 원작을 읽고 나면 놀랍게도, <아키라>의 결정판은 극장판이 아니라 만화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 아직 애니메이션만으로 <아키라>나 <공각기동대>를 보았고 또 알고 있다고 믿는 분께 권한다. 원작 만화를 지나쳤다면 반드시 만나보시길. 모든 전설에는, 그 본편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