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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MD의 하루 : M(뭐든지) D(다)해드립니다.

오늘도 내 책상에는 새로운 만화책이 10권 남짓 쌓여있다. 어제도 그랬고, 엊그제도 비슷했다. 지난주라고 달랐던 건 아니고 아마 내일도, 다음주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니까 한 달에 내 책상 위에 놓이는 만화책은 어림잡아 200~300권이다.

2018-08-09 이주현


만화 MD가 뭔데?
오늘도 내 책상에는 새로운 만화책이 10권 남짓 쌓여있다. 어제도 그랬고, 엊그제도 비슷했다. 지난주라고 달랐던 건 아니고 아마 내일도, 다음주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니까 한 달에 내 책상 위에 놓이는 만화책은 어림잡아 200~300권이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일년에 출간되는 만화(종이)책이 총 몇 권인지. 16년엔 3,031권이 출간됐고 17년엔 3,862권이다. 300권×12개월=3,600권, 대략 맞아떨어진다. 옛말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데 이 중 소중하지 않은 책은 없다. 이 말인 즉, 누군가(작가)의 소중한 창작물이자 누군가(출판사)의 밥줄이 달린 3,600권의 책이 내 책상 위에 놓인다는 거다. 그 무게를 버텨야하는 게 MD의 숙명이다.

무게, 숙명 따위로 무지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쉽게 말해 ‘책팔이’다. 자동차를 팔고, 과자를 팔고, 옷을 파는 것처럼 나도 물건을 판다. 조금 다른 점은 그 물건이 ‘책’이라는 거고 그 중에서도 ‘만화’라는 거다. 어느 산업이든 MD(merchandiser)라고 하면 자신이 담당한 그 ‘물건’을 팔기 위해 ‘M(뭐든) D(다)한다.’ 라고 하는데, 만화책 MD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만화책을 손님에게 팔기 위해 뭐든지 다한다.

뭐든 다 하는 MD의 하루
만화만 취급하는 작은 독립서점을 운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혹은 인터넷 쇼핑몰을 내가 혼자 운영한다고 생각해도 된다. 하나의 상품이 고객의 주문을 받고 배송되기까지 전 과정에 MD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이 안 오는 분들이 있을 거다. 나 역시 그랬다. 이곳에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볼 때에도 나는 내가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 몰랐다. 그래서 긴 설명보다는 내가 겪은 하루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게 낫지 싶다.

9시
출근과 동시에 어제 판매된 만화들을 살핀다. 판매도서는 수백 종일 때도 있고 천 단위로 뛸 때도 있다. 어제 기준으로는 954종이 판매됐는데, 이 모든 걸 다 체크할 순 없다. 그래서 판매량 순이나 중요도 순으로 선별적 체크를 진행한다. 그렇다고 ‘아 팔렸구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팔렸지?’까지 고민해야한다. 그 와중에 경쟁사의 판매 상황도 체크해야 하고 각종 만화 커뮤니티나 관련 이슈도 살핀다. 뿐만 아니라 판매된 만화책의 재고 확인도 필수다. 하루, 한 주, 한 달 판매량을 참고하여 적정 수량보다 부족한 만화책은 출판사에 필요 수량을 요청한다. 이 과정을 발주라고 하는데, 시스템을 통해 신청하긴 하지만 급한 경우 전화와 메일로 요청하기도 한다. 이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이 와중에 등록이 누락된 만화책이나 내가 놓쳤던 만화 이슈가 있는지 확인하고 또 대처해야한다.

10시
주문과 동시에 자동 배송으로 이어지는 상품이 있는가 하면, 주문만 먼저 받는 예약 판매 도서가 있고 그 외에도 품절, 일시품절 등 여러 상태의 만화책이 있다. 그때마다 해당 만화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개별 체크를 하는데, 이 역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쉽지가 않다. 제 각각 폭탄을 안고 나에게 달려드는 만화책들을 쉴 새 없이 쳐낸다고 할까. 그렇게 사투를 벌이는 중에 출판사 분들의 문의 전화는 끊임없이 걸려온다. 간단한 문의에서부터 복잡한 사안까지 다양하게 문의를 주시는데, 이와 동시에 메일함에도 무수한 출판사 요청 메일이 쌓여가는 게 함정이다.


11시
앞서 발주, 시장 체크, 이슈 파악, 재고 관리, 출판사 문의 대응을 하는 동시에 여유가 되면 페이지 관리를 한다. 매장으로 치면 ‘진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흔히 쇼케이스라고 부르는데, 어떤 책을 독자에게 추천하고 또 상단에 진열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마블 영화 개봉을 앞둔 시기에는 마블이나 DC코믹스의 그래픽노블을 노출하기도 하고 전날 TV에 소개된 만화가 있다면 해당 만화를 특집 코너로 노출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내, 외부 채널을 통해 독자들에게 만화를 소개할 방법을 찾고 또 진행한다.

13시
점심 이후부터는 신간 미팅을 준비한다. 14시~17시로 이어지는 미팅 시간에는 출판사 별 주요 만화들과의 만남이 있다. 미리 파악하고 있는 출간 소식인 경우 해당 신간 만화를 어떤 식으로 소개할지 미리 기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 외 출판사가 아닌 제휴를 진행할 만한 기업과 컨택하기도 한다. 만화책의 특성상 영화사, 영화관, 전시 기획 업체 등에 제안을 자주 하는 편이다.


14시 ~ 17시
사무실 1층에 마련된 미팅룸에 각 분야 신간들을 들고 대기하는 출판사 분들이 매일 100분 이상 계신다. <원피스>나 <하이큐>,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같은 주요 일본만화의 경우 따로 미팅을 갖지 않는 편이나 국내 웹툰이나 캐릭터 만화, 그리고 마블 히어로물로 대표되는 그래픽 노블의 경우 신간이 나올 때마다 미팅을 가진다.
하루에 5~10번의 미팅이 진행되는데, 그 미팅은 새로 나온 책의 내용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참 많은 얘기가 오고간다. 좋은 만화임을 어필하려는 출판사와 만화를 판단하는 MD간의 기 싸움은 당연하고, 해당 신간을 얼마나 받을 것인지 그리고 어떤 조건, 어떤 가격으로 받을지도 이 시간에 협의한다. 일주일에 2~3번을 보는 분들도 계시기에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 거래를 하는 입장인 만큼 묘한 긴장감도 맴도는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서점과 출판사가 어떻게 협업하여 도서를 홍보하고 판매로 이어지게 할 것인지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굿즈를 함께 기획할 때도 있고 독자 참여 이벤트를 기획하거나 독특한 큐레이션을 떠올리기도 한다.

17시
미팅에서 만난 무수한 책들 중 우선 순위를 정하고 해당 도서들의 프로모션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기획안을 작성한다. 해당 프로모션 페이지를 오픈하기 위해 IT팀, 디자인팀과 회의를 갖기도 한다. 그 외 미처 처리하지 못한 출판사 문의나 고객문의에 대해 답변을 하고 수십 개의 출판사 이벤트들을 한 번 더 점검 및 관리한다.

아주 표면적인 업무만 나열해보았다. 그러니까 매출관리, 마케팅, 재고관리, 발주, 출판사 관리, 고객 관리, 시장분석 등 정말 모든 걸 다한다. 그만큼 처음부터 많은 권한을 가진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맡은 만화 분야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다. 이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덕분에 만화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쉽고 훗날 자기 사업을 하기도 좋다. 정말 1부터 100까지 다 어우르는 직군이니 말이다.
사업 분야를 만화 쪽으로 이어가기엔 더 좋고. 물론 내 권한이 많은 만큼 책임질 부분도 많다. 만화 이슈를 파악하지 못해 타사 대비 매출이 떨어졌을 때는 물론이고, 물류 쪽의 배송과정에서 생긴 문제나 출판사의 제작과정에서 생긴 문제 역시 유통사를 대표하는 MD에게로 항의가 들어온다. 그때마다 중간에서 대책을 세우고 일일이 응대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신간 소식을 알리고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가 ‘병먹금’을 먹은적도 있다. 고독하고 쓸쓸한, 직업이다.
그래도 좋은 점이 많으니까 여태 만화 MD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추가 적인 이점이라고 하면 앞서 말한 집에 수북히 쌓인 만화책이다. 물론 그 만화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는 게 문제지만. 그래서 가장 큰 수혜자는 MD의 가족들이다. 매일 새로운 만화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 그 외 본인이 진행했던 프로모션의 반응이 좋았을 때도 뿌듯하다. 영화 개봉에 맞춰 도서 프로모션 차 제작한 굿즈가 고객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거나 <종이 남친 선발대회>라는 독특한 참여 이벤트가 만화 커뮤니티에서 반응을 보일 때, 평소 좋아하던 만화 작가와 컨텐츠를 함께 기획할 땐 새삼 MD라는 직업을 갖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보람은 잘 팔리는 만화를 더 많이 파는 게 아니라, 판매는 더디지만 정말 좋은 만화를 독자에게 소개할 때, 그래서 누군가 그 만화를 펼쳐볼 때다.

만화 MD의 자격
사실 내가 재직 중인 회사를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대형 서점의 경우 특정 도서 분야의 MD를 뽑는 것이 아니라 ‘도서 MD’ 직군으로 채용을 진행한다. 따라서 MD 공고가 떴을 때 난 ‘만화 MD’에 지원한다는 자소서는 회사 입장에서 편협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도서 전반에 대한 호감을 표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만화에 대한 애정은 추후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밖에, MD라는 업무 자체가 타 MD와 함께 진행하는 업무보다 개인 혼자 진행하고 처리하는 게 많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무수한 출판사와의 끊임없는 미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의 경우엔 많은 사람과 만나는 것보다 혼자 책을 읽는 게 좋은 아이였다. 그래서 처음 업무에 적응하기까지 애를 먹었다. 따라서 만화만큼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직업이 꽤 괜찮을 거 같다.
필진이미지

이주현

파란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