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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를 밀어주세요> <악의 꽃>, 스믈스믈 피어난 사춘기의 독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중학 시절, <데미안>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저 구절을 외우다시피 읊고 다녔다. 무엇을 깨고 나와야 하는지는 몰랐다.

2018-08-02 최유성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중학 시절, <데미안>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저 구절을 외우다시피 읊고 다녔다. 무엇을 깨고 나와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어린 마음에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난다는 말이 멋있었던 것뿐. 정작 책 내용은 잘 이해 못했다. 그래도 한껏 들떠서 친구들에게 <데미안> 이야기를 했다. 물론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도 읽은 사람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나의 우월함인 듯 더 우쭐거렸다. 요시미 슈조의 문제작 <악의 꽃>의 카스가도 그런 중학생이다. <데미안> 대신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심취한 게 다른 점이지만.

난 변태가 아니야!

중학교 2학년 카스가 다가오는 늘 책을 읽으며 나름 평범함을 거부하는 중학생이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바이블인 양 가지고 다니며 읽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건 아니다. 지적 허세와 허영이라고 할까. 나는 이런 걸 읽어, 라는 과시적 독서광 수준의 남학생이다. 아무도 보들레르를 이해 못하는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같은 반의 미소녀 모범생 사에키 나나코를 짝사랑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방과 후 충동적으로 교실에 놔둔 사에키의 체육복을 훔쳐 집에 가져간다. 그리고 그 장면을 같은 반 여학생 나카무라에게 들킨다.


나카무라는 카스가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이다. 사람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같은 반 친구는 물론 선생님에게까지 버러지, 똥 등 공격적이고 거친 말을 퍼부어대 모두들 피한다. 왕따를 당한다기보다 자신이 모두를 왕따시키고 있는 반의 문제아다. 나카무라는 체육복을 훔치는 카스가에게서 자신과 같은 변태의 모습을 발견하고 카스가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기로 한다.

이 세상 전부, 내 부글부글 속에서 버러지가 돼버리면 좋겠어.

카스가는 다음 날 체육복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하지만 이미 사건은 일파만파 커져버려 어쩌지도 못할 상황에 처한다.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집에 가는 카스가를 만난 나카무라는 체육복 훔치는 걸 봤다고 말한다. 비밀을 지켜줄 테니 자신과 계약을 하자고 강요하며, 거부하는 카스가에게 변태스러운 행동까지 지시하며 계속 몰아붙인다.
나카무라가 모두에게 말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키는 대로 휘둘리던 카스가는 우연히 사에키와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날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한다. 물론 그 데이트 내내 나카무라는 카스가를 따라다니며 이상한 상상을 하게 부추기고, 사에키의 체육복을 안에 입고 데이트를 하게 하는 등 변태적인 행동을 강요하며 괴롭힌다.
카스가의 껍질을 벗기고 변태적인 진짜 모습을 모두 드러내주겠다며 섬뜩하게 카스가를 몰아붙이는 나카무라의 행동은 무서울 정도로 기이하다. 이혼한 아버지와 사는 편부모 가정의 조금 삐뚤어진 사춘기 소녀로 보기엔 너무나도 비정상적이고 충동적인 나카무라의 행동들은 이야기의 추를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여놓아 독자들을 강한 불안감의 수렁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불안의 수렁에 더욱 깊이를 더하는 건 바로 나카무라의 대척점인 모범생 사에키다.


왜 나는 안 돼, 왜 내가 아냐.

사에키 나나코는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모두 좋아하는 예쁘고 착한 모범생이다. 귀엽고 상냥한 그 모습은 또래 남자애들에게 천사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정해준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 단지 표현을 안 할 뿐이다. 사에키의 사춘기는 본인도 모르고 주변에서도 모르지만 아마 찾아오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짜여진 틀과 그 틀을 맞추는 노력이 버겁고 귀찮아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 다른 카스가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자신과는 다르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고 남들과 다르다 해도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이라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카스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하자 망설임 없이 사에키는 카스가와 사귀기로 한다. 그리고 멋진 교제를 꿈꾸며 이상적인 연인을 상상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진짜 나를 봐준 사람’이라 좋아하게 된 카스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불안해진다. 뭔가를 숨긴 채 자신보다 나카무라를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맘에 걸려 하던 사에키는 자신의 체육복을 훔친 범인이 카스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에키의 이후 대응은 일반적인 통념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헤어져야 마땅한 이 상황에 마치 피해자가 가해자의 마음을 헤아려 먼저 용서하고 포용하듯 카스가를 대한다. 자신의 치부를 들켜 부끄러운 카스가가 먼저 헤어지자 하지만 사에키는 카스가가 자신을 좋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거란 걸 알기에 헤어질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카스가의 집에까지 찾아와 헤어질 수 없다고 매달리는 바람에 가족에게까지 모든 걸 알게 만들어 카스가를 발 디딜 곳 없는 궁지로 내몬다. 그 밤, 설 자리를 잃어버린 카스가는 나카무라와 함께 지긋지긋하고 갑갑하기만 한 마을을 벗어나 산 너머 저편으로 탈출하기로 한다.
나카무라와 카스가가 사는 마을은 쇠락한 시골의 작은 도시다. 오시미 슈조 본인이 나고 자란 군마 현의 작은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살던 곳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자란 마을은 과거엔 번영했지만 그 당시엔 많이 쇠락해져 마을의 모든 철물은 녹이 슬고, 상가의 셔터는 늘 내려져 있고 주변은 온통 산인 마을이었다. 거기 살다 보면 마음까지 비뚤어지고 말 것 같은 곳이었다.”


변화가 사라진 마을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지옥 같을 수도 있다. 갑갑한 공간이 자신을 옭아매는 듯 조여온다고 느낄 뿐이니 어디든 벗어나고 싶은 일탈의 유혹이 찾아올 수밖에 없지 않다. 사춘기에 가출이 많은 이유도 그런 답답함에서 도망치려는 욕구의 충동적 분출이다. 그렇게 궁지에 몰려 산 너머 ‘저편’으로 탈출하기로 한 카스가와 나카무라는 마을을 벗어나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저 산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나, 늘 생각했어. 저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세상은 거기서 끝나고, 그 너머에는 시커먼 어둠만이 쫘~악. 죽을 만큼 질퍽하게 깔려 있는 게 아닐까 하고.”(나카무라)
“왠지 알 것 같아. 이 마을에는 아무 것도 없어.... 아무것도... 어디도... 누구도.... 있는 것이라곤 그저 녹슨 철과 파친코 가게와 잡초뿐. 여기 있다간... 난 망가지고 말 거야. 도망쳐야 해....”(카스가)
그러나 예상보다 강한 사에키의 집착은 둘의 탈출을 막아선다. 왜 자신을 밀어내고 나카무라와 함께하려는지 알 수 없는 사에키는 카스가에게 왜 나카무라야, 라며 따지듯 애원한다. 마찬가지로 시시한 사랑 타령 할 건지 저편으로 갈 건지 선택하라는 나카무라와 애원하는 사에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카스가는 어쩌면 진짜 자신의 내면을 그때서야 마주한다.
“나... 난... 난... 빈 껍데기야.... 난 악의 꽃을 읽어. 시부사와 타츠히코를... 부르통을... 하기와라 사쿠타로를... 바타유를 읽어. 하지만 그래서 뭐? 난 다르다고 생각했어... 다른 하찮은 녀석들과는 다르다고... 그런데... 뭐가? 보들레르니... 악의 꽃이니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해... 그저 그걸 읽는 나 자신에게 취했던 것뿐이야...! 보지 않으려고 했어. 진짜 나를... 특별하지 않은 나를...! 난... 텅 빈 껍데기야...! 난 나카무라가 기대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 아무것도 드러낼 게 없어... 드러낼 만한 알맹이 자체가... 아무것도 없어...! 버러지야... 난 누구보다도 못한 버러지 자식이라고!”
가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나타면서 그들의 탈출 시도는 완전히 막을 내린다. 그렇게 한순간의 해프닝 같았던 사건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밤을 기점으로 어쩌면 진정한 사춘기의 일탈은 시작된다.


자신에게 무엇을 바란 건지 나카무라의 마음을 알게 된 카스가는 이제 자신을 외면하기 시작한 나카무라에게 오히려 집착하며, 자신의 존재 의의를 나카무라를 웃게 하고 나카무라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내는 것에 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카무라에게 자신을 봐달라며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주도적으로 변태적이며 비상식적인 행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한 사에키의 집착은 그런 그들의 일탈을 방해한다. 또 다시 궁지에 몰린 두 사람. 그리고 여름의 축제에 나카무라와 카스가는 죽음마저 각오한 마지막 그들의 결행을 준비한다.

전 11권 분량의 <악의 꽃>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카스가의 중학교 시절 시한폭탄 같은 사춘기의 일탈을 그린 1~7권 분량의 전반부와 사건 이후 사이타마로 이사 간 후 의욕 없고 수동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등학생 카스가의 이야기를 그린 8~11권까지의 후반부다. 그러나 이 작품을 좀 더 재밌게 즐기려면 조금 더 세분화해서 네 파트로 보는 게 좋다.

첫 번째는 ‘악의 꽃’의 싹이 트는 태동편(1~3권)이다. 나카무라에 의해 카스가가 각성하는 부분이며, 아직은 설익은 반항과 도발이 가득한 이야기다.
두 번째는 ‘악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개화편(4~6권)이며, 카스가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나카무라와 함께 ‘저편’으로 가기 위한 둘만의 과격한 일탈을 펼치는 부분이다. 불안과 긴장감이 극도로 치닫는 파트이며, 걷잡을 수 없는 사춘기의 비정상적인 충동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파트다.
세 번째 파트는 ‘악의 꽃’이 지는 낙화편(7~9권)이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쫓기듯이 이사를 간 사이타마에서 무기력하게 생활하는 카스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나름 안정을 찾은 듯 지내지만 여전히 불안해 보이는 카스가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 파트는 ‘악의 꽃’이 소멸하는 결말편(10~11권)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고향을 찾은 걸 계기로 카스가가 과거와 맞서는 이야기며, 길고 힘들었던 카스가의 사춘기의 여정이 나름의 결말을 맞는다. 그렇게 카스가의 ‘악의 꽃’, 지독한 사춘기는 끝이 난다.


성장통처럼 찾아오는 사춘기는 누구나 겪게 되지만 그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며, 어느 누구도 그 사춘기의 해답이나 원만한 마무리를 찾아주지 못한다.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 새로운 자신을 찾아야 끝이 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하림의 노래처럼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의 과제를 찾으면서 시나브로 극복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래 말로 사춘기에 대한 생각과 이 <악의 꽃>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알려준다.
“사춘기는 언제 끝나는 걸까요. 사춘기란 건 요컨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초등학생’과 분별력이 생기면서 자의식의 사슬이 풀린 ‘어른’ 사이의 어둠의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춘기의 시작은 알기 쉬워요. 제2차 성징이 시작되고 목소리가 변하고 생리가 시작되고 체모가 나고. 몸의 변화가 그대로 자의식으로 바뀌어 가죠. 하지만 끝은 알기가 어려워요. 중년이 되고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이 생긱고 백발이 성성해도 자의식은 사춘기 때 그대로인 인간들이 많습니다. 시작은 대상을 불문하고 무조건 찾아오지만 그 끝은 저절로 오지 않아요. 스스로 찾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만화도 내심 <사춘기의 끝>을 발견하는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악의 꽃>으로 사춘기의 거친 방황과 불안한 성장기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오시미 슈조는, 2003년 고단샤의 <별책 영 매거진>에서 단편 <수퍼 플라이>로 데뷔한 이후 줄곧 일관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평범하지 않은 시각을 가진 사춘기 소년소녀를 통해 그 또래의 고민과 갈등은 물론 이 사회와 인간 구성원들의 다양한 모습을 섬세하고 강렬한 내면 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초기작은 최근작에 비해 좀 더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성(性)적으로도 직설적이다. 남자의 성기를 보고 싶어 하는 여고생을 다룬 데뷔작 <아방가르도 유메코>나 털이 안 난 중학생 남자아이가 털이 많은 같은 학년 여자 아이의 털을 깍아주는 이야기를 다룬 <스위트 풀사이드>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표류 인터넷 카페>부터 조금씩 무겁고 깊이 있는 내용들을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악의 꽃>에서 오시미 슈조는 본인이 생각하던 사춘기의 모든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감가지만 파격적인 스토리를 자기만의 색깔로 그려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최근작인 <해피니스>, <피의 흔적>에 와서는 사춘기의 고민을 넘어 인간 존재 본연에 대한 고민으로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피의 흔적>은 부모와 자식 사이란 전통적이고 익숙한 관계를 사랑이며 집착인 묘한 구도로 엮어간다.
특히 스크린톤 사용을 배제하고 펜으로만 그린 그림은 작품에 팽팽하게 감도는 기묘한 불안감의 연출에 큰 역할을 한다. 펜으로 농암을 조절하다 보니 그림에 화이트와 블랙의 대조가 강해지고 선과 면의 대비로 인해 선명한 인상을 주게 된다. 집중해야 할 부분에 쉽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클로즈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컷 배열과 연출도 압권이다. 원래도 얼굴이나 눈의 클로즈업을 통해 효과적으로 캐릭터의 심리를 잘 묘사한 오시미 슈조지만 <피의 흔적>에서는 거의 완성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함을 보여준다. 아직 연재 중이고 정식 발매 전인 작품이지만 꼭 챙겨 볼 만한 작품이다. 기묘한 불안감과 서스펜스가 취향이신 분이라면 <악의 꽃>은 물론 곧 발매될 <피의 흔적>도 꼭 챙겨보시길 바란다. 물론 지금 핫하게 발매 중인 <해피니스>도 놓치지 마시길!